벽암록(碧巖錄)

제72칙 운암의 목도 입도 막은뒤〔雲巖倂却〕

通達無我法者 2008. 3. 3. 11:11
 

 

 

제72칙1) 운암의 목도 입도 막은뒤〔雲巖倂却〕


(본칙)

백장스님이 또다시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술을 막고 어떻게 말하겠느냐?”

-풀머구리의 굴 속에서 왔군. 무슨 말을 하느냐.


“스님은 할 수 있습니까?”

-(칼이 살과 뼈 사이로 지나가지 못하고) 살에 달라붙고 뼈에 달라붙네. 진흙을 가지고   물로 들어간 격이다. 앞으로 나아가자니 마을도 없고, 뒤로 돌아가자니 주막도 없다.


“나의 자손을 잃어버렸군.”

-뻔하다. 이러한 대답은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 간다.


(평창)

운암스님은 백장에서 20년 동안 시자로 있다가, 그뒤에 도오(道吾)스님과 함께 약산(藥山)에 이르자 약산스님이 말하였다.

“백장스님의 회하에서는 무슨 일들을 하고 있는가?”

“투철하게 생사를 벗어나는 일을 했습니다.”

“투철하게 벗어났는가?”

“거기에는 생사가 없습니다.”

“20년 동안 백장에 있었으면서도 아직도 번뇌〔習氣〕를 없애지 못하였구나.”

운암스님은 하직하고 남천(南泉)스님을 찾아갔다가, 그 뒤 또 다시 약산으로 되돌아와서야 깨침을 얻었다.

옛사람을 살펴보면 20여 년 동안 참구하고서도 미숙하여, 살에 달라붙고 뼈에 달라붙어 싹 빠져나오질 못하였다. 이는 옳기는 옳으나 앞으로 나아가도 마을을 만나지 못하고, 뒤로 돌아가자니 주막도 없는 것처럼 오도가도 못하는 격이다. 다음과 같은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언구가 고정된 틀〔窠臼〕을 여의지 못하면

어찌 5개 10전(五蓋十纏)을 벗어날 수 있으랴.

흰 구름 골짜기에 덮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헤매었을까.


조동 문하에서는 이를 한 번 딱 건드려 봄〔觸破〕이라 한다.

그러므로

봉화루 앞에서 선장(仙仗)을 살짝 여니

당시의 사람들이 호령을 할까 두려워하네.


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가시덤불을 뚫고 지나야 한다”고 하였다. 만일 이를 뚫고 지나지 못한다면 결국 가느다란 실오라기에 걸려서 끊어버리지 못한다. 이는 앞서 말한 “앞으로 나아가자니 마을도 없고, 뒤로 돌아가자니 자막도 없다”는 말이다.

운암스님은 그저 관계없는 사람을 점검하였을 뿐이다. 백장스님은 그같은 모습을 보고서 대뜸 잡아다가 쳐버렸다. 설두스님은 이를 다음과 같이 송하였다.


(송)

스님은 할 수 있습니까?

-공안이 그대로 드러났군. 물결에 따라 움직이는군. 흙탕물 속으로 들어갔군.


황금빛털 사자는 땅에 쭈그리고 앉아 있지 않네.

-환하다. 무슨 쓸 곳이 있으랴. 애석하군.


삼삼오오 옛길로 가는데

-목구멍과 입을 막고서 어떻게 말하겠는가? 몸을 비껴서 기염을 토해냈다.

그 자리에서 빗나가버렸다.


대웅산(大雄山) 아래에서 부질없이 손가락을 튕긴다.

-한 번 죽으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한다. 슬프고 마음 아프다. 통곡하는 울음 속에 더더욱 원한이 서려 있다.


(평창)

“스님은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니, 설두스님은 이 죄상에 의거하여 판결을 한 것이다. 이는 옳기는 옳지만 황금빛털 사자가 땅에 쭈그리고 앉아 있지 않는데야 이를 어찌하랴.  사자가 동물을 나꿔챌 때는 이빨과 발톱을 숨기고 땅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잽싸게 몸을 날리는데 크고 작은 동물들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모든 위엄을 다하고 갖은 공을 다 들인다.

운암스님이 “스님은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한 말은 옛길로 가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설두스님은 “백장스님이 대웅산 아래에서 부질없이 손가락을 튕긴다”고 말하였다.

1)제72칙에는〔수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