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73칙 마조의 백가지 모두 틀림〔馬祖百非〕

通達無我法者 2008. 3. 3. 11:14
 

 

 

제73칙 마조의 백가지 모두 틀림〔馬祖百非〕


(수시)

설법하는 자는 말도 없고 보여줌도 없으며, 법을 듣는 자는 들음도 없고 얻음도 없다. 설법을 함에 말함도 없고 보여줌도 없으나 어찌 설법하지 않은 것과 같겠으며, 법문을 들음에 들음도 없고 얻음도 없으나 어찌 듣지 않은 것과 같겠는가? 말함도 없고 들음도 없으니 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다.

지금 여러분의 경우는 산승이 여기에서 말하는 것을 듣고 어떻게 하여야 이 허물을 면할 수 있을까? 관문을 뚫을 수 있는 안목을 갖춘 자는 거량해보아라.


(본착)

어떤 스님이 마조스님에게 물었다.

“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떠나서, 스님께서는 저에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곧바로 가르쳐주십시오.”

-어디에서 이 화두를 얻어왔으며 어디에서 이런 말을 들었을까?


“내, 오늘 피곤하여 그대에게 말해줄 수 없으니, 지장(智藏)스님에게 물어보게나.”

-뒤로 세 걸음 물러서야지. 빗나간 줄도 모르는구나. 몸은 숨겼지만 그림자가 노출되었다. 이 늙은이가 남에게 잘도 떠맡겨버렸구나.

스님이 지장스님에게 물으니,

-저놈을 한 번 내질러야 한다. 빗나간 줄도 모른다.


지장스님은 말하였다.

“왜 큰스님에게 묻지 않았느냐?”

-풀 속에 꼬리를 태운 (사람으로 둔갑한 신통력이 있는) 호랑이가 나왔구나. 무슨 말하느냐. 자승자박이군. 죽기가 십상이군.

“스님에게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처분을 받는군.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볍지만 뒤에 쏜 화살은 깊이 박혔다.

“나는 오늘 골머리가 아파서 그대에게 말할 수 없으니 회해(懷海) 사형에게 묻도록 하게.”

-84명의 선지식답다. 하나같이 같은 병을 앓는구나.

스님이 화해스님에게 여쭙자,

- 다른 사람에게 떠맡겨버렸구나. 도적의 장물(贓物)을 껴안고 억울하다고 울부짖는다.


회해스님은 말하였다.

“나도 그것은 모른다.”

-마음으로 헤아리려 하질 않는구나. 따라서 천고 만고에 캄캄케 되었구나.


스님이 이를 마조스님에게 말씀드리자

-스님이 그래도 조금은 눈이 트였구나.

마조스님은 말하였다.

“지장스님의 머리는 희고, 회해스님의 머리는 검다.”

-나라 안에서는 천자의 칙령이며, 변방 밖에서는 장수의 명령이다.


(평창)

이 공안은 산승이 지난날 성도(成都) 에 있으면서 진각(眞覺)스님을 참방하여 물었던 것이다. 진각스님은 “마조스님이 처음한 대답만 보아도 자연히 단박에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말해보라, 저 스님은 알고서 물었을까 모르고서 물었을까? 이 물음이 심오하다 하겠다.

“사구(四句)를 여읜다”는 것은 ‘유’, ‘무’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님(非有非無)’과 ‘유도 아님마저도 아니다〔非非有〕’는 것이다. 이 사구를 여의면 오만가지의 잘못된 생각〔百非〕이 끊긴다. 그저 말로써 이러쿵저러쿵 하면 화두(話頭)를 모르고 핵심을 찾아볼 수 없다. 만일 산승이었다면 마조스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좌구(坐具)를 펴고 세 번 절하고서 어떻게 말하는가를 보았을 것이다. 만일 내가 당시에 마조스님이었다면 스님이 찾아와 “사구를 여의고 백비를 끊고서, 스님께서는 저에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곧바로 가르쳐주십시오”라고 물었을 때, 등줄기를 방망이로 갈겨 내쫓아내고서 깨달았는가 않았는가를 살펴봤을 것이다.

마조스님은 오로지 그에게 말을 해 주었기 때문에, 이 스님이 서로 마주하고도 몰라보고 다시 지장스님에게 물었던 것이다. 이는 마조스님이 찾아온 자를 잘 분별할 줄 몰랐기 때문이라 하겠다. 스님이 어리석게도 지장스님에게 달려가자, 지장스님은 말하였다.

“왜 마조스님에게 묻질 않았더냐?”

“스님이 당신을 찾아가서 물으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조금만 살펴보고 내질러 몸을 비꼈더라면 결코 부질없는 짓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장스님이 “나는 오늘 머리가 아파서 그대에게 말할 수 없으니, 회해 사형에게 가서 묻도록 하게”라고 하니, 스님은 또다시 회해 사형을 찾아가 물었고, 회해사형은 “그것은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말해보라, 무엇 때문에 한 사람은 머리가 아프다 하였고, 한 사람은 모른다고 말하였을까? 결국은 무엇일까? 스님이 다시 되돌아와 이 일을 마조스님에게 말씀드리자, 마조스님은 “지장의 머리는 희고, 회해의 머리는 검다네”라고 하였다. 이를 알음알이로 헤아린다면 이는 돌아가면서 그 스님을 속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는 서로가 떠맡겨버렸다”하고, 어떤 사람은 “세 사람 모두가 그의 물음을 알았었기에 답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이는 모두 눈먼 것이다. 이는 일시에 옛사람의 으뜸가는 제호에다가 독약을 부어넣은 격이다. 그러므로 마조스님은  “그대가 한입으로 서강의 물〔西江水〕을 다 마실 때 말해주리다”고 하였는데, 이 공안과 한가지이다. 따라서 “지장스님의 머리는 희고, 회해스님의 머리는 검다”는 말을 알 수 있다면 바로 ‘서강의 물’의 화두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은 한 짐 가득한 어리석음을 짊어지고 편안하지 못한 데다가 세 큰스님까지 괴롭히면서 진흙과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했지만 끝내 스님은 깨닫지 못하였다. 비록 한결같이 이와 같이 하였지만 세 종사는 이 외통수〔擔板漌〕에게 감파를 당한 것이다.

요즈음 사람은 오로지 말만 가지고 따지며 “희다는 것은 밝음에 일치하고 검다는 것은 어둠에 일치한다”고 하여 천착하여 헤아릴 뿐, 옛사람의 한 구절이란 알음알이〔意根〕를 끊는 것임을 몰랐다. 이는 반드시 핵심〔正脈〕을 꿰뚫어야만이 온당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맨 끝의 한 구절이 비로서 견고한 관문에 이르렀다”고 하였는데, 이는 요새가 되는 나루터를 꽉 틀어막아 성인도 범부도 지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일을 논한다면 문 앞에서 한 자루 칼을 어루만지는 것과 같아서 머뭇거리기만 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또한 “비유하면 칼을 빼어 허공을 휘두르는 것과 같으니, 됐는지 안됐는지를 말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팔면이 영롱한 곳에서 알아야 할 것이다.

듣지 못하였느냐, 옛사람의 말을,

“이 깜깜한 먹통아!”

“여우 같은 정령아!”

“장님아!”

말해보라, 이는 일방 일갈(一棒一喝)과 같은 것일까, 아니면 다른 것일까? 천차만별이라 하나 한가지임을 알면 자연히 팔방에서 대적할 수 있게 된다. “지장스님의 머리는 희고, 회해스님의 머리는 검다”는 말을 알고 싶은가? 나의 은사 오조(五祖)스님께서는 “봉후선생(封后先生 : 백성을 잘 다스리는 어르신네, 封은 風과 음이 통함)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지장스님의 머리는 희고 회해스님의 머리는 검음이여,

-반절은 닫히고 반절은 열렸구나. 한 번은 칭찬했다 한 번은 꾸짖었다 하는군. 금악기가  울리고 옥경쇠가 끝마무리를 짓는다.


눈 밝은 납승도 알 길이 없네.

-다시 30년을 더 수행하라. 끝내 남에게 콧구멍을 뚫려버렸군. 산승(원오스님)은 턱이 떨어져 말을 못 하겠다.


망아지〔馬駒〕가 천하 사람을 짓밟으니

-총림 가운데 이 늙은이만이 이처럼 할 수 있다. 이 늙은이를 풀어줬다.


임제는 날강도가 아니었구나.

-문둥이가 짝을 이끌고 간다. 설령 뛰어난 솜씨가 있다 해도 사람에게 붙잡힐 것이다.


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끊음이여.

-무슨 말 하느냐. 반드시 스스로 살펴보아라. 아버지〔阿爺〕와 애비〔阿爹〕는 같은 뜻이다.

천상 인간에 오직 나만이 아노라.

-‘나’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주장자를 빼앗아버렸다. 만일 사람이 없고 내가 없고 얻음도 없고 잃음도 없다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평창)

“지장스님의 머리는 희고, 회해스님의 머리는 검다”고 하였는데, 말해보라, 무슨 뜻인가를. 천하의 납승들이 이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살펴보면 설두스님의 송은 매우 훌륭함을 알 수 있다. “설령 이는 눈 밝은 납승이라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이 이치는 “신선비결(神仙秘訣)”로서, 부자 사이에도 서로 전수하지 못한다. 석가부처님이 일대시교(一代時敎)를 말씀하시고, 최후에 오직 심인(心印)을 전수하셨는데, 이를 금강왕 보검(金剛王寶劍), 또는 정위(正位)라고 한다. 그러나 이같은 말도 벌써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옛사람이 그 칼끝을 다소 노출시켜 버린 것이다. 이를 투철하게 체득한 자라면 종횡무진 관통하여 큰자재를 얻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여전히 깨치지 못한다면 말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지기만 한다.

“망아지〔馬駒〕가 천하 사람을 짓밟으니”라는 것은 서천(西天)의 반야다라(般若多羅)존자가 달마에게 예언한 말이다.

중국이 넓기는 하지만 따로이 길 없나니,

아손의 다리를 빌려가도록 하라.

금계(金鷄)가 한 알의 곡식을 머금고서

시방의 나한승에게 공양할 것이다.


또한 육조(六祖)스님은 회양스님에게 말하였다.

“이후 불법이 너에게 갈 것이며, 그 뒤에 한 망아지〔馬駒〕가 나와 천하 사람을 짓밟을 것이다.”

그후 강서(江西 : 馬祖)의 법제자〔法嗣〕들이 천하에 널리 퍼졌는데, 당시 그를 마조(馬祖)라 일컬었다. 이는 달마대사와 육조대사가 모두 일찍이 마조를 예언했던 바이며 그의 지략을 살펴보면 과연 남달랐다. “지장스님의 머리는 희고 회해스님의 머리는 검다”고 말했을 뿐이지만 여기에서 천하 사람을 짓밟은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이 한 구절의 검다, 희다는 말은 모든 사람들이 되씹어도 부수지 못한다.

“임제는 날강도가 아니었다”는 것은, 임제스님이 하루는 대중법문을 하였다.

“붉은 고깃덩이(심장)에 한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있어, 항상 그대의 얼굴에서 출입한다. 이를 아직 깨닫지 못한 자는 살펴보고 살펴보라.”

때에 어떤 스님이 앞으로 나와 물었다.

“어떤 것이 무위진인입니까?”

임제스님이 선상(禪牀)에서 내려와 멱살을 잡고〔搊〕말하였다.

“말해보라, 말해보라.”

스님이 아무 대답이 없자, 임제스님이 밀어제치면서 말하였다.

“무위진인이 무슨 마른 똥막대기냐!”

설봉스님이 그 뒤 이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임제스님은 참으로 날강도와 같구나.”

설두스님이 임제스님이 한 행동을 마조스님의 기봉과 비교해 보았더니, 그는 임제스님보다도 더욱 심했으므로 그가 바로 날강도이며, 임제스님은 아직 날강도가 못 된다는 것이었다.

설두스님은 일시에 이(마조스님과 임제스님의 기봉)를 꿰뚫어 버리고 이 스님을 노래하여 말하였다. “사구를 여의고 백비를 끊임이여, 천상 인간에 오직 나만이 아노라.” 귀신 굴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지 말라. 옛사람은 “물음은 대답에 있고, 답변은 물음에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 기특한 말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사구를 여의고 백비를 끊을 수 있을까?

설두스님은 말하였다. “이 일은 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설령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알려고 해도 알지 못한다. 이미 혼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면 그대들이 다시 와서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대위 진여(大潙眞如)는 이를 들어 말하였다. “이 스님은 이처럼 묻고, 마조스님은 이처럼 답하였다. 사구를 여의고 백비가 끊겼는데, 지장스님과 회해 사형 모두가 몰랐었다. 알고 싶은가? “망아지가 천하 사람을 짓밟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