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冥樞會要)

131. 눈에 보이는 일체가 도

通達無我法者 2008. 3. 5. 14:49
 

눈에 보이는 일체가 도

 

40-1-131 問 有何勝義 廣集一心正宗 於末學進修 得疾入道不.1) 答 若以宗鏡示人 直至道場 疾證菩提 更無迂曲. 法華經 偈云 演暢實相義 開闡一乘法 廣導諸衆生 令速成菩提. 此是千聖入道之門 諸佛證眞之路. 若有入者 一入全眞 博地凡夫 位齊諸佛.



문 : 널리 일심(一心)의 바른 종지를 모아 놓은 것에 어떤 수승한 이치가 있어 말세 학인들이 닦아 나감에 빠르게 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답 : 만약 종경의 바른 뜻을 학인에게 보여 준다면 곧바로 부처님의 도량에 도달하여 빠르게 보리를 증득할 것이니, 여기에 다시 더 돌아갈 것이 없다. 이것을 ꡔ법화경ꡕ의 게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실상의 이치를 노래 부르니

   최고의 가르침을 드러내도다

   일체중생 불법으로 인도하여서

   빠르게 보리를 이루게 하네.


이것이 모든 성인의 도에 들어가는 문이며, 모든 부처님께서 진리를 증득하는 길이다. 만약 여기에 들어가는 자가 있다면 한번 들어감에 전체가 진여이니, 하열한 범부의 위상도 모든 부처님과 같아지는 것이다.

法華經云 乘此寶乘 直至道場. 可謂頓入頓超 諸乘匪及. 以三乘之人 不知諸塵唯是識 故執心外實有境界. 凡夫二乘 雖有發心 趣向解脫 而猶計有 生死可厭 涅槃可欣 不了唯心道理. 若知一切法 唯是識量 捨彼事識外計分別. 旣了唯心 趣理速疾 異前漸悟. 故論云 速趣涅槃. 又 凡夫二乘 不覺賴耶. 但依分別事識資持力故 而發心修行 以不達本故 向大菩提 疎而且遠 故云 漸也.



그러므로 ꡔ법화경ꡕ에서는 “이 보배 같은 가르침을 배우면 바로 부처님의 도량에 나아간다”고 하였다. 가히 단번에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 중생계를 초월함이라고 할 수 있으니, 나머지 다른 방편은 여기에 미칠 바가 아니다. 방편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든 번뇌가 오직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 이외에 실재의 경계가 있다고 집착한다. 범부와 이승은 비록 발심하여 해탈을 추구하더라도 아직 싫어할 만한 생사와 좋아할 만한 열반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직 마음뿐이라는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일체 모든 법이 오직 알음알이란 사실을 안다면 분별사식(分別事識)으로 바깥 경계를 계교 사량하고 분별하는 것을 버릴 것이다. 이미 일체가 오직 마음 뿐이라는 사실을 알면 진리에 나아감에 신속하리니, 이전의 점오(漸悟)와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논에서는 이것을 “신속하게 열반에 나아간다”고 말한다.

또 범부와 이승은 아뢰야식을 깨닫지 못한다. 다만 분별사식이 도와주고 붙들어 주는 힘을 의지함으로 발심 수행하여 근본을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커다란 깨달음을 향해 나아감이 소원해지고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점오(漸悟)’라고 한다.


菩薩旣了賴耶本識 則依此識資持力故 而發心修行. 以了本故 向大菩提 親而且近. 故云 速也. 此宗鏡中 開示大意 唯論自心妙達 何待他文. 爲未薦者 假以文言 示令親悟 纔聞便入 目擊道存. 故止觀云 直聞其言 病卽除愈.



보살은 이미 아뢰야 근본식을 요지하였으니 아뢰야식이 도와주고 붙들어 주는 힘을 의지하여 발심 수행한다. 근본을 요지하였기 때문에 커다란 깨달음을 향하여 나아감이 친근하고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보살의 공부길은 ‘빠르다’고 하였다.

이 종경 가운데에 대의를 드러내 보임은 오직 자기 마음으로 신묘하게 통달함을 논한 것이니, 여기에 어찌 다른 이야기를 기다리겠는가. 깨닫지 못한 자를 위하여 방편으로 언어와 문자의 힘을 빌려 친히 깨닫도록 보여 주는 것이니, 이 법문을 듣고서 문득 종경에 들어가면 눈에 뜨이는 모든 것이 도()로서 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ꡔ지관ꡕ에서는 “말하는 뜻을 바로 알면 병이 곧 사라져 치유된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