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역생사와 오탁에 대해
42-8-144 遺敎經云 縱此心者 喪人善事 制之一處 無事不是 故比丘當勤精進 折伏汝心. 故知 生死難出 應須兢愼. 且如一乘聖人及自在菩薩 俱出三界之外 尙有變易之身 四種生死 何況三界之內 現行煩惱 業繫凡夫分段死乎. 四種生死者 則是一切阿羅漢辟支佛大地菩薩 由四種障 不得如來四德 一方便生死 二因緣生死 三有有生死 四無有生死.
ꡔ유교경ꡕ에서 부처님은 “이 마음을 제멋대로 놓아두면 사람의 좋은 일을 해치지만 한 곳에 두어 잘 통제하면 하는 일마다 옳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음을 항복받아 굴복시켜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벗어나기 어려운 생사에 있는 줄을 알고, 마땅히 몸과 마음을 삼가 근신해야 한다. 만일 일승(一乘)의 성인과 자재보살이 함께 삼계를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변역하는 몸으로서 네 종류의 생사가 있는데, 하물며 삼계 속에서 현행하는 번뇌로 업에 매인 범부의 분단생사야 어찌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네 종류의 생사는 일체의 아라한과 벽지불과 대지보살이 네 종류의 장애로 말미암아 여래의 네 가지 덕인 상․락․아․정을 얻지 못함이니, 첫째는 방편생사(方便生死)요, 둘째는 인연생사(因緣生死)며, 셋째는 유유생사(有有生死)요, 넷째는 무유생사(無有生死)이다.
○ |
無上依經 云. 佛告阿難 於三界中 有四種難 一者 煩惱難 二者 業難 三者 生報難 四者 過失難. 無明住地所起 方便生死 如三界內煩惱難 無明住地所起 因緣生死 如三界內業難 無明住地所起 有有生死 如三界內生報難 無明住地所起 無有生死 如三界內過失難. 應如是知 阿難 四種生死 未除滅故 三種意生身 無有常樂我淨波羅蜜果. 唯佛法身 是常是樂是我是淨波羅蜜 汝等應知.
이것을 ꡔ무상의경ꡕ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삼계 가운데에 네 종류의 어려움이 있으니 첫째는 번뇌로 일어나는 어려움이요, 둘째는 업으로 일어나는 어려움이며, 셋째는 과보를 낳는 어려움이요, 넷째는 과실을 저지르는 어려움이다.
무명주지(無明住地)에서1) 일어나는 방편생사는 마치 삼계 속에서 번뇌로 일어나는 어려움과 같고, 무명주지에서 일어나는 인연생사는 삼계 속에서 업으로 일어나는 어려움과 같으며, 무명주지에서 일어나는 유유생사는 삼계 속에서 과보를 낳는 어려움과 같고, 무명주지에서 일어나는 무유생사는 삼계 속에서 저지르는 과실의 어려움과 같다.
아난아, 마땅히 이와 같음을 알라. 네 종류의 생사를 아직 제거하여 멸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 종류의 의생신(意生身)에2) 상․락․아․정의 바라밀(波羅蜜)에 대한 과보가 없는 것이다. 오직 부처님의 법신에만 상․락․아․정의 바라밀이 있는 것임을 너희들은 응당 알아야 한다.
○ |
愛別離苦者 大涅槃經云 因愛生憂 因愛生怖 若離於愛 何憂何怖. 法華經云 諸苦所因 貪欲爲本. 淨名經云 從癡有愛 則我病生. 怨憎會苦者 大涅槃經云 觀於五道一切受生 悉是怨憎 合會大苦. 若未了無生 於所生之處 無非是怨 無非是苦. 何者. 爲境所縛 不得自在故. 求不得苦者 有其二種 一者 所希望處 求不能得 二者 多役功力 不得果報.
좋아하나 이별해야 된다는 고통은 무엇인가. ꡔ대열반경ꡕ에서는 “애욕으로 인하여 근심이 생기고 애욕으로 인하여 두려움이 생기니, 만약 애욕을 떠난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 하겠는가”라고 하였고, ꡔ법화경ꡕ에서는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탐욕이 근본이 된다”고 하였으며, ꡔ정명경ꡕ에서는 “어리석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있어서 ‘나’라는 병통이 생긴다”고 하였다.
원한과 증오심이 있는데도 만나야만 되는 고통은 무엇인가. ꡔ대열반경ꡕ에서 “오도(五道)에 있는 일체중생을 살펴보니, 모두가 원한과 증오로서 만나 큰 괴로움을 당한다”고 하였다. 만약 무생(無生)의 이치를 요달하지 못했다면 태어나는 곳마다 원한이며 고통 아님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경계에 끄달려서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하려 하나 구할 수 없는 고통은 무엇인가. 여기에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자기가 희망하는 곳에 가고 싶으나 갈 수 없는 괴로움이며, 또 하나는 많은 공력을 들여 구하지만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 |
五陰盛苦者 生苦老苦 病苦死苦 愛別離苦 怨憎會苦 求不得苦. 是故 名爲五陰盛苦 以執陰是有 爲陰所籠 便成陰魔 衆苦所集. 五濁者 一劫濁 四濁增劇聚在. 此時 瞋恚增劇 刀兵起 貪欲增劇 飢餓起 愚癡增劇 疾疫起 三災起故 煩惱倍隆 諸見轉熾 麤弊色心 惡名穢稱 摧年減壽.
몸이 있음으로 해서 받아야만 하는 고통은 무엇인가. 몸 때문에 받아야만 하는 생․로․병․사의 고통이며, 좋아하나 이별해야 하는 고통과 원한과 증오로서 만나야만 하는 고통, 구하려고 하나 구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래서 오음성고(五陰盛苦)라고 한다. 이 몸이 있다고 집착하니 몸에 구속되고, 문득 이 몸이 마구니가 되어 온갖 고통이 여기에 모이는 것이다.
다섯 가지 탁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세월이 탁하다는 겁탁(劫濁)이니, 오탁 가운데의 나머지 네 종류의 탁이 점점 불어나서 극에 달한 시점을 말한다. 이 때 성내는 마음이 극에 달하여 칼을 잡은 병사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탐욕이 극에 달하여 배고픈 굶주림이 생겨나며, 어리석음이 극에 달하여 질병이 일어나고, 전쟁과 굶주림과 질병의 세 가지 재난이 일어나기 때문에 번뇌가 더욱더 많아지며, 삿된 견해가 점점 치열해져 몸과 마음을 거칠게 하고, 악명과 더러운 이름으로 세월을 재촉하여 수명이 줄어드는 것이다.
○ |
衆濁交湊 如水奔昏 風波鼓怒 魚龍攪擾 無一聊賴 時使之然. 如劫初光音天墮地 地使有欲 如忉利天入麤澀園 園生鬪心 是名劫濁相. 煩惱濁者 貪海納流 未曾飽足 瞋虺吸毒 燒諸世間 癡闇頑嚚 過於漆墨 慢高下視 陵忽無度 疑網無信 不可告實 是爲煩惱濁相.
온갖 탁한 더러움이 모여들어 마치 흘러가는 물이 소용돌이로 흙탕물을 일으키고, 파도와 바람이 휘몰아치며, 고기와 용들이 물 속을 휘젓는 것과 같아서 잠시라도 쉬고 의지할 곳이 없으니, 시절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세상이 생길 때 광음천이3) 세상에 떨어지면서 세간의 흐름이 그에게 애욕이 있도록 한 것과 같고, 도리천의 사람들이 추삽원에4) 들어가면서 싸우려는 마음이 생긴 것과도 같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겁탁의 모습이라 한다.
둘째 번뇌탁(煩惱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탐욕의 바다가 모든 욕망의 흐름을 받아들이면서도 일찍이 조금도 만족할 줄 모르고, 성난 독사가 독을 빨아들여 홧김에 모든 세간을 불태우며,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음이 칠흙보다 더하고, 자기를 높이고 남을 얕잡아서 낮추어 능멸하고 홀대함에 법도가 없으며, 의심투성이에 믿음이 없어 진실을 말할 수 없으니, 이것이 번뇌탁의 모습이 된다.
○ |
見濁者 無人謂有人 有道謂無道 十六知見 六十二見等5) 猶如羅網 又似稠林 纏縛屈曲 不能得出 是見濁相. 衆生濁者 攬於色心 立一宰主 譬如黐膠 無物不著 流浪六道 處處受生 如貧如痤 名長名富 是爲衆生濁相. 命濁者 朝生暮殞 晝出夕沒 波轉煙迴 眴息不住 是命濁相.
셋째 견탁(見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없는데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도가 있는데 도가 없다고 말하며, 외도의 십육지견(十六知見)과6) 육십이견(六十二見) 등이 마치 펼쳐 놓은 그물과 같고, 또 우거진 숲 속과 같아 꽁꽁 얽히고 결박되어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으니, 이것이 견탁의 모습이다.
넷째 중생탁(衆生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몸과 마음을 움켜쥐어서 ‘나’라는 주재자를 세우는 것이니, 비유하면 끈끈이나 아교풀과 같아서 어떠한 사물에도 달라붙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육도에 윤회하며 처처에 중생의 몸을 받는 것이니, 가난뱅이나 병자 같은 이가 장자나 부자처럼 뽐내기도 하는, 이것이 중생탁의 모습이다.
다섯째 명탁(命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죽거나 낮에 나왔다가 저녁에 사라짐이 파도와 안개가 휘몰아치듯 잠시도 머물 수 없으니, 이것이 명탁의 모습이다.
○ |
居此濁亂之時 遮障增劇 境飄識燄 燒盡善根 業動心風 吹殘白法. 著瞋魑魅之鬼趣 墮癡羅刹之網中 爲貪愛王之拘留 被魔怨主之驅役 孰能頓省 傚此圓修.
이 탁하고 어지러운 시대에는 부정적인 장애가 극에 달하니, 경계의 소용돌이에서 불타는 마음이 세간의 선근을 다 태워 버리며, 업으로 움직이는 마음의 바람으로 청정한 법을 다 쓸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성난 도깨비와 귀신에게 달라붙고, 어리석은 나찰의 그물에 떨어지며, 탐욕과 애욕에 사로잡힘이 되고, 마구니나 원수가 주인이 되어 그들의 노리개가 되니, 누가 자신의 순간을 돌이켜서 이 원만한 수행을 본받을 수 있겠는가.
'명추회요(冥樞會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6. 목숨을 보는 방법 (0) | 2008.03.05 |
---|---|
145. 허공을 의지한다 (0) | 2008.03.05 |
140. 선지식 만나기 어렵다 (0) | 2008.03.05 |
143. 법성은 깊어 무량 (0) | 2008.03.05 |
142. 참회할지어다 (0) | 2008.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