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계관법(淨心誡觀法)

4. 특징

通達無我法者 2008. 3. 7. 11:12

 

 

 

4. 특징

『淨心誡觀法』의 특징은 첫째 스승이 제자를 위해 쓴 수행편지, 둘째 淨心, 셋째 修行道와 修行法 등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스승이 제자를 위해 쓴 수행 편지.

첫째, 스승이 제자를 위해 쓴 수행 편지라는 것은 제자 慈忍이 스승 道宣律師를 떠남으로 인하여 淨心誡觀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 정심계관법이 스승 도선율사의 病中에서 제자에 대한 老婆心切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淨心誡觀法 제30편에 의하면

"내가 매우 아프고 쇠약해져서 잠자리가 편안하지 못하니,
만일 이 글을 네가 받은 이후로 너를 만나보지 못한다면 이
글이 너에게 유촉하는 글이 될 것이다. 가르치고자 하는 뜻
이 은근하고 부드럽지 못하나 이 경계하는 글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가르침이다."

라고 하여 제자에 대한 스승의 심정이 매우 간절함을 알 수 있다. 이 정심계관법이 저술된 시기는 『釋門章服儀』의 末尾415)에 의하면 顯慶二年(657) 道宣의 六十二歲 때에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아마 이 시기에 저작된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이 수행 편지에는 첫째, '부모보다 스승의 은혜가 무겁고 크다'는 것과 둘째, '제자에 대한 스승의 간절함과 연민의 정', 세째, '정심계관법을 수행의 지침서로 삼을 것' 등을 설하고 있다.
첫째, '부모보다 스승의 은혜가 무겁고 크다는 것'은 정심계관법 제30편에

"慈忍에게 告한다. 부모는 7生이지만 師僧은 累劫이어서
義가 깊고 恩惠가 重하다는 것을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한
다."

"요즘 末法 중생의 마음은 엷어서 恩惠와 節義를 배반하
며, 쉽게 師僧을 싫어해 홀로 지내고 노는 것을 좋아하며
情을 따라 마음대로 하여 如法하지 못하니 惡道에 떨어질까
염려된다."

둘째, '제자에 대한 스승의 간절함과 연민의 정'은 제30편에

"너는 이제 佛道에 들어 와서 지금 다시 스승과 헤어졌다.
아침저녁으로 너를 생각하는데 너는 나를 생각하는가?"

"어찌할 수 없이 너에게 얽매이는 마음으로 이 誡를 지어
서 가깝게 할 것을 간략히 이야기하고 人事를 나타내었다."

"너의 情이 깊은 것을 憐愍히 여겨 하나 하나의 가르침으
로 가슴에 새겨 둘 요점을 잡은 것이며, 또 스승으로서
교훈을 잘못한 허물을 범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먹고 간
절히 마음에 있는 말을 보내서 마주 앉아 이야기하듯 말하
노라."

셋째, '정심계관법을 수행의 지침서로 삼을 것' 은 제30편에

"그 밖의 것은 모두가 다 아는 것이며 經論에 합당한
도리다. 너는 반드시 스스로 지녀야 한다. 大乘의 要義는 온
천하가 다 같다는 것을 재차 顯示하고자 하나 책[卷軸]이
불고 늘어날까 염려가 된다."

"바로 너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오히려 千句를 초월
하는 것이다. 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실 적에 씹지 않듯이,
고요한 곳에서 이 淨心誡觀法의 책을 펼칠지언정 어떻게
남의 見解에 번민하겠는가?"

"나의 작은 뜻도 너는 아직 알지 못하니 설사 세상 사람
들이 상세하게 다 認知하지는 못해도 오직 天眼이 있는
자만은 나의 마음을 알 것이다. 네가 依止하여 修行하는데
결코 의심이 들거나 틀리지 않을 것이다."

(2) 淨心.

『淨心誡觀法』은 道宣스님의 末年 저술로서 上下의 두 권의 三十편으로 되어 있다. 제목에서 시사되듯이 처음 佛門에 입문한 초발심자에게 수행의 출발과 수행해 가는 과정 三十篇 전체가 淨心으로 귀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 淨心의 목적은 출가자에게 출가란 무엇인가? 무엇이 출가수행을 장애하는가? 라고 반조하는 거울이며 수행의 전반적인 조건이다.
정심에는 세가지의 의미가 들어있다. 첫째는 向上一路하는 지혜의 작용으로써 '오염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뜻'이다. 수행의 첫 출발은 信心이고 이 신심이 정각에까지 이끄는 引導者이다. 이 信心이 發菩提心의 내용이자 원동력이다. 이 신심과 발심을 증장하고 실행하는 방법에는 戒定慧三學으로 八正道, 육바라밀, 五停心觀, 七方便 등 갖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행방편을 사용하여 正覺에 나아가면 신심과 발심이 정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심심과 발심이 바로 淨心인 것이다. 이러한 정심은 첫 신심과 발심이 최종 정각까지 이르도록 나아가는 성격을 가진다. 이것이 '向上一路의 작용'이다. 이 淨心誡觀法에서는 淨心하는 수행의 첫 출발인 五停心觀의 自利行에서 거칠게 오염된 마음을 닦아 가면서 미세한 망념을 淨化하는 대승보살의 利他行에 이르고 佛果를 성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이 첫째, '오염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뜻'으로써의 정심의 의미이다.
둘째는 '청정한 마음'이다. 즉 '오염된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정심의 첫째의 의미이지만 이는 오염된 마음을 정화하는 過程에서 向上一路의 작용으로써의 정심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행한 만큼 오염된 마음이 청정해졌다면 그것은 수행의 결과로서의 청정한 마음이다. 즉 수행하여 체험하는 경지가 높고 깊어질수록 그에 상응하는 오염된 마음은 그 만큼 정화되었으므로 청정한 마음이 회복된 것이다. 이때 이 청정한 마음은 淨心이고 또한 공덕을 말한다. 즉 功德의 功은 이 청정한 마음에서 위로 向上하고자 하는 修行心이고 德은 이때까지 수행하여 마음을 정화한 결과로서의 깨침의 경지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淨心의 두 번째 뜻으로 '청정한 마음'이 바로 '功德'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셋째는 '본래 마음이 청정하다'는 뜻으로 佛性을 말한다. 불성은 자성청정심이다. 이 자성청정심의 본질은 涅槃이며 不生不滅이다. 정심이 바로 불성이고 涅槃이며 불생불멸인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無上 正覺의 본질이 바로 불성이고 자성청정심이며 불생불멸이다.
만일 중생에게 불성이 없다면 아무리 수행하여도 깨달음은 불가능하다. 자성청정의 불성이 있기 때문에 신심과 깨달으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나 국가가 겪고 있는 괴로움,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이 自性淸淨의 佛性이 있으므로 가능하다. 괴로움은 佛性이 不生不滅하는 法界가 하나임을 모르는 데서 생기는 현상이다.
정심계관법의 淨心이 佛性이고 涅槃이고 不生滅의 뜻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든 존재의 본질이고 생명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因果의 고통을 아는 신심이 일어나고 깨달으려는 菩提心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심이 바로 신심과 발심의 근원이고 출가자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고 출가수행의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다. 그러므로 정심계관법의 30편이 모두 淨心으로 정화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正覺이 不生滅의 佛性이라면 수행의 첫걸음으로 시작하는 마음이 불생멸이 아니라면 불생멸의 정각에 이를 수 없다. 왜냐하면 수행하는 마음이 生滅한다면 지속성이 없어서 신심과 발심을 유지시킬 수 없고 중간에 퇴굴하여 물러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정심계관법은 정심은 계로 관함을 설하고 있는데 과연 계로 관하는 수행법이 불생멸의 정각과 상응하는 수행자의 마음일까? 觀은 生滅하는 생각과 다르다. 생각은 그 자체에 과거나 미래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지나간 과거의 일이나 미래에 대한 일들을 記憶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생각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實際와 다르다. 그러므로 생멸하는 생각으로는 정각을 이룰 수 없다. 단지 움직이는 생각을 부동하게 하면 가능하다. 부동의 생각이란 現前 一念을 말한다. 현전 일념은 움직임이 없는 마음 즉 觀하는 마음에 의하여 조성된다. 그러므로 정심계관법의 30편을 정심하는데는 관으로 하는 것이고 그것도 誡로서 觀하는 誡觀이라는 수행법이다. 이것이 정심의 세 번째의 뜻이다. 이처럼 정심의 세 가지의 뜻이 淨心誡觀法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3) 修行道와 修行法

『淨心誡觀法』은 출가자에게 출가란 무엇인가? 무엇이 출가수행을 장애하는가?라고 반조하게 한다. 출가자에게 上求菩提 下化衆生의 發願을 장애하고 타락하게 하는 주범으로 재물과 색임을 천명하고 있다. 재물과 색을 경계하여 행위를 規制하는 것이 계율인데 정심계관법은 계율을 지킴으로서 財色의 장애를 벗어날 수 있다고만 하지 않는다. 계율의 功能을 구체화하여 재색을 벗어나 깨닫는 구체적 방법으로 수행할 것을 제자에게 당부하고 있다.
정심계관법의 修行道와 修行法이 세 번째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達磨禪法이 달마대사(?∼535)가 중국에 들어와 달마선법이 세상에 퍼지기 전에 불교 전통의 수행법이 소개되어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자료이다. 즉 달마선법이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한 시기를 慧能 대사(638--713) 때부터라고 보더라도 道宣 律師(596∼667)보다 46년 후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도선율사는 律師이기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볼 수 있다. 즉 정심계관법의 내용이 재물과 색에 대하여 경계해야 함을 서술하기 때문에 계율만을 강조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문제의 해결은 수행을 통하여만 가능함을 말한다. 수행을 하지않고 단지 佛法의 이치를 토론한다든지 학술을 강의하는 등의 講論은 언어문자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질타하시며 실천 수행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됨을 역설하신다. 실천 수행을 바탕으로한 계율과 경론을 공부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정심계관법의 수행은 淨心이 되지 않으면 수행의 출발과 수행해 가는 모든 과정이 잘못되고 궁극에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초심자가 소홀히 하고 범하기 쉬운 가장 기초적인 문제를 경계하고 있다. 때문에 수행도의 구조는 戒를 바탕으로 한 고통의 因果와 고통에서 벗어나는 修行道의 因果를 설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수행도의 구조는


"財物과 色의 끊음으로부터 5停觀이 生하고 5停觀이 생긴
이후로 諸行의 次例와 지금의 佛地에 이르기까지가 곧 이
誡의 처음 모양과 끝 모양을 설명한 것이며, 보살의 別行과
前後의 階位는 華嚴의 說과 같다."

라고 하여 초기경전인 阿含經, 小乘論書 등에서 설하는 五停觀과 대승의 화엄경의 설과 같다고 도선율사는 정심계관법 제29편에서 설하고 있다.
구체적인 수행법은 정심계관법 제3편에 七方便法이 소개되어 있는데 즉

"五停觀으로 成就하는 것을 「第一方便」이라 하고, 그 밖 에는 別相念處·總相念處·煖法·頂法·忍法·世第一法으로
모두 「7方便」이라고 한다. 觀行을 성취함으로 須陀洹果
를 얻는다. 처음 道에 들어가는 大·小乘의 사람이라면 모
두 이 觀을 닦아야 한다."

라고 하여 대소승의 수행자는 반드시 이 칠방편법을 修觀해야함을 설하고 있다. 修行階位에 小乘五位 은 ①資糧位 ②加行位 ③見道位 ④修道位 ⑤無學位이며, 大乘唯識五位은 ①資糧位 ②加行位 ③通達位 ④修習位 ⑤究竟位이다. 通達位는 見道位라고도 한다. 정심계관법의 제삼 편에 나타난 칠방편법 중 제일 방편이 五停心觀이고 別相念處는 第二方便, 總相念處는 第三方便이 된다. 차례로 이 三方便을 성취하면 三賢의 地位에 이르는 것이다. 이 삼방편은 대소승 모두 수행오위중 자량위에 속한다. 煖法·頂法·忍法·世第一法은 제사 제오 제육 제칠방편법으로 대소승 모두 오위중 가행위에 속한다.
그러면 제일방편법인 五停心觀은 무엇일까? 즉 그것은 不淨觀, 慈悲觀, 緣起觀, 界分別觀, 數息觀이다. 이 중 界分別觀은 假緣生觀이라고도 하고 數息觀은 假相觀이라고도 한다. 제이방편법과 제삼 방편의 별상념처와 총상염처는 모두 四念處의 수행법이다. 나머지 가행위의 수행법은 생략한다. 이 밖에 정심계관법 제9편에는 空·無相·無願의 三解脫觀을 소개하고 있고 五蘊空觀도 있다. 이 정도는 모두 自利行의 修行法이라면 정심계관법 제26품부터는 利他行의 菩薩修行法을 설하고 있다.
이처럼 정심계관법에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인 수행법이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심계관법의 수행법은 經·律·論 三藏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초기경전으로 수타니파타나 아함부 경전, 華嚴經, 般若系統의 경전, 唯識계통의 경전과 논서, 佛性계통의 경전, 그밖에 아비달마의 논서의 인용도 보인다.
經論을 단순히 敎理를 理解하는 수준의 것으로 간주하기 쉽다. 그러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宗鏡錄』卷二에서도 經을 四諦 중에 「道諦」라고 기술하고 있듯이,416) 經論 그대로 修行道이자 修行指針書라는 점에서 보아야지 敎理解說書로서만 볼 때는 나뭇잎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때문에 수행도나 수행법 그대로 경론이고 또한 이러한 경론을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정심계관법은 禪敎에 바탕을 둔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정심계관법 제일편에

"마음을 깨끗[淨心]하게 한다는 것은, 너에게 現行하는
번뇌의 모든 허물을 敎·修로 다스려서 너로 하여금 곧
바로 능력에 따라 해탈케 하는 것이니라."

라고 하였다. 그러나 敎修의 대치는 현행번뇌이고 현행의 번뇌는 모두 財物과 異性[色]에서 비롯됨을 정심계관법의 序宗篇第二에서 설하듯이 財色의 警戒는 戒律이다. 그러므로 敎와 修의 대치는 또한 계율을 바탕이 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상과 같이 정심계관법의 세 가지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외에 늦게 출가한 이의 열 가지 허물이라든지 승려의 破戒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것도 특징에 넣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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