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祖堂集)

제 29 조 혜가(慧可) 선사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09:59
 

 

 

제 29 조 혜가(慧可) 선사

  

  선사는 무로(武牢) 사람이며, 성은 희(姬)씨였다. 아버지 적(寂)은 당초 아들이 없어서 그 부인과 생각하기를 '우리는 지극히 선한 가문인데도 자식이 없으니 매우 한탄스럽다. 어느 성현께서 굽어 보살펴 주시려나' 했는데, 후위의 여섯째 왕인 효문제(孝文帝) 영의(永宜) 15년 정월 초하루 저녁에 광명이 온 집안에 두루하는 상서가 나타난 뒤로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아 이름을 광광(光光)이라 하였다. 나이 15세에 9경(經)을 통달해 외웠고, 30세가 되자 용문(龍門)의 향산사(香山寺)로 가서 보정(寶靜) 선사를 섬기면서 항상 정(定)과 혜(慧)를 닦았다. 출가한 후에는 동경(東京)의 영화사(永和寺)로 가서 구족계를 받았고, 32세가 되자 다시 향산사로 돌아와서 스승을 섬겼는데, 다시 또 8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고요한 밤에 한 신인(神人)을 보았는데, 그가 광에게 말했다.

  "과위를 받으려 하면서 어찌 여기에 머물러 있는가? 남쪽으로 가야 도(道)를 가까이하느니라." 

  본래의 이름은 광광인데, 신인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았으므로 신광(神光)이라 했다. 

  이튿날이 되자 갑자기 머리가 찢어지는 듯이 아파서 그 스승이 뜸을 뜨려 했는데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이는 뼈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 예사 고통이 아니니라." 

  스승이 곧 그만두었다. 마침내 전의 이상한 신을 본 사실을 스승인 보정에게 이야기하니, 보정이 말했다.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2 권 > 95 - 104쪽

K.1503(45-233), 

  "반드시 좋은 상서(祥瑞)일 것이다. 그대의 정수리가 달라졌으니 옛날의 머리가 아니로다. 5봉이 옥수레에 내려앉은 듯 그 모습이 기이하구나." 

  그리하여 스승을 하직하고 남쪽으로 가서 달마를 만나 상승(上乘)의 법을 활짝 깨달으니, 달마가 말했다. 

  "일진(一眞)의 법을 모두 가졌으니 잘 지키어 끊이지 않게 하라. 그대에게 신의(信衣 : 가사)를 전하나니 각기 표시하는 바가 있느니라."

  혜가가 말했다. 

  "무엇을 표시합니까?" 

  달마가 대답했다. 

  "안으로는 심인(心印)을 전하여 마음을 깨쳤음을 증명하고, 겉으로는 가사를 받아서 종지를 확정하나니 착오가 없기 위한 것이다. 내가 입적한 뒤 2백 년 중엔 이 가사를 전하지 않아도 법이 온 누리에 퍼지리니, 도에 밝은 이는 많아도 도를 행하는 이는 적을 것이며, 이치를 말하는 이는 많아도 진리를 통한 이는 적을 것이다. 그 뒤로는 도를 얻은 이가 천만 명이 가까울 것이다. 그대가 도를 펼 때에 늦게 배우기 시작한 이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이 사람이 뜻을 돌리면 반드시 보리를 얻을 것이니, 초심(初心) 보살도 부처님의 공덕과 동등하리라."

  이 때 혜가 대사가 법을 부촉 받고서 널리 선전하고 유포하여 뭇 유정(有情)들을 제도하였다. 천평(天平) 연간에 이르러 후주(後周)의 제2주(主)인 효민왕(孝閔王) 기묘(己卯) 해에 한 거사가 나이를 말하지 않았지만 14세 정도로 보였는데, 조사(혜가)에게 와서 절을 하고 성명도 밝히지 않은 채 말했다. 

  "제자는 풍병[風疾]을 앓고 있으니 화상께서 제자를 위하여 참회해 주십 시오."

  조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죄를 가지고 오너라. 그대를 위해 죄를 참회해 주리라." 

  거사가 말했다. 

  "죄를 찾아보아도 볼 수가 없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내 이제 그대를 위해 참회를 마쳤으니, 그대는 그저 불·법·승 3보에 의지하기만 하라." 

  거사가 다시 말했다. 

  "화상만 뵈오면 승보임을 알겠으나 세간에서 어떤 것이 부처이며, 무엇을 법이라 합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마음이 부처요, 이 마음이 곧 법이니,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니라. 그대는 알겠는가?" 

  거사가 말했다.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이 안과 밖과 중간에 있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마음이 그렇듯이 법과 부처가 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조사는 그가 법기(法器)인 줄을 알고 곧 머리를 깎아 주면서 말했다. 

  "그대는 승보이니 승찬(僧璨)이라는 이름이 적합하구나." 

  그리고 구족계를 받게 하고서 일러 말했다.

  "여래께서 대법안을 가섭에게 주셨고, 그렇게 점차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하여 나에게 이르렀는데, 내가 이제 이 법안을 그대에게 주고 아울러 가사를 주어서 법의 신표로 삼노라. 나의 게송을 들으라.

  

  본래 땅이 있었기에

  그 땅을 인해 종자와 꽃이 생기지만

  본래 종자도 있는 것 아니며

  꽃 또한 피는 것 아니다."

  本來緣有地 因地種花生

  本來無有種 花亦不能生

  

  이 게송을 다 말하고는 승찬에게 말하였다.

  "나는 업도(鄴都)로 가서 묵은 빚을 갚으리라."

  그리고는 훌쩍 떠나서 중생을 교화하기 34년 동안 혹은 저잣거리 어디서나 인연에 따르고, 혹은 남의 심부름을 하되 일이 끝나면 곧 그곳으로 돌아가니, 지혜 있는 이들이 매양 권했다. 

  "화상은 덕이 높으신 분이시니 남의 심부름을 하지 마세요." 

  조사가 말했다.

  "내 스스로 마음을 조복시키기 위한 것이니 남의 일과는 상관이 없소."

  이 때 변화(辯和) 법사라는 이가 업도(鄴都) 관할에 있는 성(城)인 안현(安縣)의 광구사(匡救寺)에서 『열반경』을 강하고 있었는데, 그 때 조사가 그 절에 이르러 설법하니, 조사가 설법하는 곳엔 모인 대중은 많았으나 법사의 강석에는 사람이 적었다. 그러자 변화 법사가 조사를 수상히 여겨 현령인 적중간(翟仲侃)에게 가서 "사견(邪見)을 가진 저 사람이 나의 강석을 무너뜨렸습니다" 하고 모함하자, 적중간은 사실을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이치에 어긋나게 손상을 입혀 죽게 하여 자주(磁州) 도양현(塗陽縣) 동북쪽으로 70리쯤에 장사지내니, 세수 107세였다. 

  이렇게 멸도함을 보인 때는 수(隋)의 첫째 임금인 문제(文帝)의 개황(開皇) 13년 계축(癸丑) 해였다. 

  당(唐)의 내공봉(內供奉) 사문인 법림(法琳)이 비문을 지었고, 덕종(德宗) 황제가 대홍(大弘) 선사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탑호를 대화(大和)라 하였다. 수(隋)의 계축(癸丑)에 입적함으로부터 지금 당(唐)의 보대(保大) 10년 임자(壬子)에 이르기까지 359년이 된다. 정수 선사가 찬탄하였다.

  

  2대 조사인11) 큰 학자님이

  지조가 굳은 주추같이 굳건하였다.

  마음은 3승(乘)을 꿰뚫고

  정수리엔 다섯 봉우리가 기이하다. 

  二祖碩學 操爲堅礭

  心貫三乘 頂奇五岳

  

  천하에 하나뿐인 기린(麒麟)이요

  

  

11) 혜가를 일컫는다. 달마를 초조라 하고, 혜가를 2조라 한다.

  인간 세상의 붕새로다.

  팔을 끊고 눈 위에 섰으니

  혼연히 하나되어 외롭지 않다.

  天上麒麟 人間鸑鷟

  斷臂立雪 混而不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