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祖堂集)

제 31 조 도신(道信) 대사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0:01
 

 

 

제 31 조 도신(道信) 대사

  

  화상은 당(唐)나라에서 4조가 되며, 성은 사마(司馬)씨이다. 본시 하내(河內)에 살다가 기주(蘄州)의 광제(廣濟)로 옮겨서 키워졌다. 승찬 대사의 법을 이어받은 뒤에 갑자기 황매(黃梅)의 길에서 한 어린이를 만났는데, 나이는 일곱 살 정도로서 말하는 것이 특이하였다.

  조사가 물었다.

  "네 성이 무엇인가?"

  동자가 대답했다.

  "성(姓)은 있으나 예사로운 성이 아닙니다."

  조사가 말했다.

  "그게 무슨 성이더냐?"

  동자가 대답했다.

  "불성(佛性)입니다."

  조사가 말했다.

  "그대는 성이 없단 말인가?"

  동자가 대답했다.

  "그 성은 공(空)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조사가 좌우의 사람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예사롭지 않으니, 내가 멸도한 지 20년 뒤에는 크게 불사를 이루리라."

  동자가 물었다.

  "여러 성인들은 어디서부터 증득합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텅 비고도 텅 비었느니라."

  "그러면 성이랄 것이 없겠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여전히 사람의 티가 남았구나."

  

  조사가 이어 법을 전해 주고, 다음의 게송을 주었다.

  

  꽃과 종자는 나는 성품이 있으니

  땅으로 인해 꽃의 성품이 나거니와

  큰 연이 이 성품에 계합하면

  나되 난다는 생각이 없다.

  花種有生性 因地花性生

  大緣與性合 當生不生生

  

  조사가 법을 다 전한 때가 고종(高宗)의 영휘(永徽) 2년 경술(庚戌)의 윤 9월 4일이었는데, 조용히 열반에 드니 세수 72세였다. 장사 지낸 지 3년 되는 해의 4월 8일에 탑문이 까닭 없이 저절로 열렸는데, 용모 단정함이 생존시와 조금도 다름없었다. 이로부터 문인들이 다시는 탑을 닫지 않았다.

  대력(大歷) 연간에 이르러 대종(代宗)이 대의(大醫) 선사라 시호를 내렸고, 탑호를 자운(慈雲)이라 하였다. 중서령(中書令)12)이고 태자 빈객인 양양공(襄陽公) 두정륜(杜正倫)이 비문을 지었다. 정수 선사가 찬탄하였다.

  4조는 14세에

  스승에 의해 해탈을 얻었다.

  세간에 있으면서 도와 함께하니 

  자비를 일으킴 넓고 깊었다.

  四祖十四 因師解脫

  處世道流 興慈量闊

  

  영화와 쇠퇴가 영원히 끊겼고

  시작과 마지막이 아득히 사라졌다.

  열매는 적은데 꽃이 많았으니

  

  

12) 당(唐)·송(宋) 시대의 기무(機務), 조서(詔書), 민정(民政)을 맡은 중앙 관청인 중서성(中書省)의 장관.

  홍인이 그의 의발 전해 받았다. 

  永絶彫榮 逈祛始末

  菓少花多 忍傳衣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