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조 홍인(弘忍) 화상
화상은 당나라에서 5조이며, 성은 주(周)씨이고 본시 여남(汝南)에 살다가 남쪽인 기주(蘄州) 황매(黃梅)에 옮겨 살았다. 태어난 지 7년째에 출가하여 도신(道信) 대사를 섬겼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재차 묻는 법이 없었다.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때 빛이 발(發)하여 하늘을 관통했고, 항상 이상한 향내음을 맡고는 몸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이어 태어나서는 그 형색이 단엄(端嚴)하므로 관상쟁이가 보고 말하였다.
"이 아이는 일곱 가지 대인(大人)의 상(相)이 부족하여 부처님보다는 못합니다."
그 때 노 행자(盧行者)라는 이가 있었는데, 나이 32세에 영남(嶺南)으로부터 와서 조사를 친견하였다.
조사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으며 무슨 일로 왔는가?"
노 행자가 대답했다.
"신주(新州)에서 왔는데 부처 되기를 바랍니다."
조사가 말했다.
"그대는 영남 사람이라 불성이 없느니라."
노 행자가 말했다.
"사람에겐 남북이 있으나 불성엔 남북이 없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그대는 무슨 공덕을 짓겠는가?"
행자가 대답했다.
"힘껏 돌을 지고 방아를 찧어 스승과 스님들께 공양할까 합니다."
조사가 바로 허락하니 하룻밤 하루 낮에 쌀 열두 섬을 찧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봉하기 8개월에 이르러서 행자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대도(大道)의 근원입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속인이거늘 나에게 그것을 물어 무엇 하려 하는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세속제[世諦]에는 승속(僧俗)이 있으나, 도(道)에 어찌 승속이 있겠습니까?"
조사가 말했다.
"그대가 만일 그렇게 안다면 절대 남에게서 찾으려 하지 마라."
다시 말하였다.
"그렇다면 밖에서 얻을 것이 아닙니다."
조사가 대답했다.
"안에서 찾는다 해도 옳지 못하니라."
조사가 입멸하기 직전에 대중에게 고했다.
"바른 법은 듣기 어렵고, 거룩한 모임은 만나기 어려운데 여러분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으니, 만약 깨친 바가 있거든 말해 보라. 나의 말만 기억하지 말라. 내가 증명해 주리라."
그 때 대중 가운데 신수(神秀)가 있다가 조사가 누차 훈고(訓告)하는 말을 듣고 곧 붓을 들어 벽에다 다음과 같은 게송을 썼다.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밝은 거울이다.
때때로 털고 닦아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懃拂拭 莫使有塵埃
조사가 이 게송을 보고 이내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만일 이 게송에 의지해 수행하면 해탈을 얻게 되리라."
뭇 대중이 모두 이 게송을 외웠는데, 한 동자가 방앗간 곁에서 외우자 행자가 물었다.
"무엇을 외우시오?"
동자가 대답했다.
"행자님은 모르시는가요? 제1 상좌께서 게송을 지으셔서 조사께 바쳤는데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이 게송에 의지해 수행하면 해탈을 얻게 되리라' 하셨습니다."
행자가 말했다.
"동자여, 나는 문자를 알지 못하니, 그대는 나에게 한 번 더 외워 주시오. 나도 듣고서 부처님의 회상에 태어나기 소원입니다."
이 때 강주(江州) 별가(別駕)인 장일용(張日用)이란 이가 회중(會中)에 있었는데 행자를 위하여 높은 소리로 게송을 외우니, 행자는 곧 장일용에게 청했다.
"나를 대신해서 게송 하나를 받아 써 주시오. 나에게도 졸작이 하나 있습니다."
이에 장일용이 그를 위해 게송을 써 주니 다음과 같다.
몸은 보리수(菩提樹)가 아니요
마음 거울도 경대(鏡臺)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디에 먼지가 끼랴.
身非菩提樹 心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
이 때 조사가 다시 가서 보고 휘저어 지우고는 온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띄웠다. 칭찬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스스로 살피어 훌륭함을 입증하였다.
조사는 또 방앗간으로 가서 행자에게 물었다.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2 권 > 105 - 114쪽
K.1503(45-233),
"수고하는구나! 행자야, 쌀이 익었느냐?"
행자가 대답했다.
"쌀이 익은 지는 오랩니다마는 아직 아무도 까부르지 못했을 뿐입니다."
조사가 말했다.
"3경이 되거든 오거라."
행자가 대답을 하고, 3경이 되자 조사의 처소로 가니, 조사가 그의 이름을 혜능(慧能)으로 바꾸어 주고, 그날 바로 가사를 전하여 법의 신표(信表)로 삼게 하니, 마치 석가모니불께서 미륵에게 수기(授記)를 주시는 것과 같았다.
조사가 게송을 말했다.
유정이 와서 씨를 뿌리니
땅으로 인해 결과가 저절로 난다.
무정(無情)이면 종자도 없고
성품이 없으니 남[生]도 없구나.
有情來下種 因地果還生
無情旣無種 無性亦無生
행자는 게송을 듣고 기뻐하면서 가르침을 받아 지니고 행하였다. 조사가 다시 말했다.
"내가 3년 뒤엔 열반에 들 것이다. 그대는 당분간 법을 펴지 말라. 그대에게 손상이 있을 것이다."
행자가 여쭈었다.
"어디로 가야 환난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회(懷)를 만나면 멈추고 회(會)를 만나면 숨어라."[회(懷)는 주(州)요, 회(會)는 현(縣)이다.]
행자가 다시 물었다.
"이 가사는 계속 전하리까?"
조사가 대답했다.
"후대에는 도를 얻는 이가 항하의 모래 같으리라. 이제 이 신표(信表)의 옷은 그대에게서 멈추라. 왜냐 하면 달마(達摩) 대사께서 이 옷을 전하신 뜻은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해서 신표로 삼으신 것이니, 법을 듣는 일이 어찌 옷에 달렸겠는가? 만일 이 옷을 계속 전하면 생명을 해치게 될까 걱정이다. 이 옷을 받은 이는 목숨이 한낱 실 끝에 매달린 것 같을 것이다. 더구나 달마대사께서도 말씀하시기를 '한 꽃에 다섯 잎이 퍼져 열매가 저절로 맺으리라' 하셨으니, 이는 이 땅에서 그대까지가 다섯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인가하신 말씀이다. 또 반야다라(般若多羅)께서 말씀하시기를 '열매가 가득하니 보리가 원만하고, 꽃이 피니 세계가 일어난다' 하셨으니, 이 두 구절도 역시 지금의 법의(法衣)가 그대에게 이르러서는 남에게 전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인가하신 것이니라."
행자가 분부를 받들고 곧 조사를 하직하니, 조사가 곧장 강가로 가서 조그마한 나룻배에 올라 손수 노를 잡았다. 행자가 말했다.
"제가 노를 잡겠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그대는 날 귀찮게 하지 마라. 내가 만일 버티지 못하면 내가 그대에게 부탁하면 되고, 그대가 만일 버티지 못하면 그대가 나에게 부탁하면 된다."
강을 다 건너고서 행자에게 말했다.
"잘 가거라."
행자는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조사는 절로 돌아와 사흘이 지나도록 설법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흘째 되는 날 대중이 물었다.
"스승의 법을 누가 전해 받았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나의 법은 이미 영남(嶺南)으로 떠났다."
신수(神秀)가 물었다.
"누가 법을 얻었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능(能)이란 자가 얻었다."
대중이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보니, 행자가 보이지 않자 생각했다.
'아마도 그가 법을 전해 받아 갔을 것이다.'
그 때 7백 명 대중이 함께 노 행자의 뒤를 쫓았는데, 대중 가운데 혜명(慧明)이라는 한 스님이 맨 먼저 대유령(大庾嶺)까지 쫓아갔다. 가서 보니 의발은 있는데 행자가 그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 손으로 의발을 들려 하였으나 의발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자기의 힘이 부족함을 깨닫고 바로 산으로 들어가서 행자를 찾아다녔는데 높은 곳에서 멀리 행자가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행자 역시 멀리서 혜명 상좌를 보고, 이내 자기의 의발을 빼앗으러 온 줄을 알고 말했다.
"화상께서 지금 나에게 의발을 주셨는데 내가 굳이 사양했으나 두세 번 거듭 받으라 하시기에 받지 않을 수 없어서 가지고 오기는 했으나 지금 저 고갯마루에 있으니, 상좌가 원한다면 가져가시오."
혜명 상좌가 말했다.
"의발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다만 불법을 위해 왔습니다. 행자께서 5조를 하직할 때 5조께서 어떤 밀어(密語)나 밀의(密意)가 계셨는지요?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행자가 상좌의 마음이 간절함을 보고 곧 그에게 말했다.
"조용히 생각하고 조용히 생각하되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라. 바로 그렇게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 나에게 명 상좌의 본래의 면목을 돌려주오."
혜명 상좌가 다시 물었다.
"밀어와 밀의가 위에서 말씀하신 그것뿐입니까? 아니면 그 밖에 다른 뜻이 있습니까?"
"내가 이제 그대에게 분명하게 말했으니 비밀이 아니다. 만일 그대가 자기의 면목을 스스로 얻으면 비밀은 도리어 그대에게 있느니라."
상좌가 행자에게 황매(黃梅) 화상의 회상에 있던 뜻이 무엇인지를 묻자, 행자가 대답했다.
"화상께서 내가 신수(神秀) 상좌의 게송에 대(對)한 것을 보시고서 내가
문안에 들었음을 아셨고, 그래서 곧 혜능(惠能)이라 인가하시되 '신수(神秀)는 문 밖에 있으나 너는 문안에 들어와 앉아서 옷을 입었다. 후일 스스로 알게 되겠지만 이 의발은 예전부터 반드시 적합한 사람을 만나야 전하는 것이다. 내가 이제 너에게 전하나니, 너는 힘써 필히 노력하되 앞으로 10여 년은 이 교법을 펴지 말라. 난리가 일어날 것이다. 이것이 지난 뒤에 어리석은 사람들을 잘 교화하라' 하셨느니라. 내 다시 묻기를 '어디로 가야 그 난리를 피하겠습니까?' 하니, 대답하시되 '회(懷)를 만나면 멈추고 회(會)를 만나면 숨으라' 하셨느니라."
혜명이 다시 말했다.
"제가 비록 황매(黃梅)에서 머리는 깎았으나 실로 종승(宗乘)의 면목은 얻지 못했었는데, 이제 행자께서 지시해 주심의 덕을 입어 들어갈 곳을 알았사오니,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매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행자께서 이 혜명의 스승이십니다."
그리고는 곧 도명(道明)이라 이름을 고치니, 행자가 말했다.
"그대가 그렇듯이 나도 그렇다. 그대와 함께 황매에 있었으니, 다를 것이 없다. 이로부터 잘 지켜서 지니라."
도명(道明)이 말했다.
"행자께서는 속히 영남을 향해 떠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뒤에는 많은 스님들이 행자의 뒤를 쫓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명이 다시 물었다.
"저는 마땅히 어디로 가오리까?"
행자가 말했다.
"몽(蒙)을 만나거든 살고[住], 원(袁)을 만나거든 멈추라."
도명이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행자를 하직하고, 곧 북쪽으로 길을 돌려 건주(虔州)에 이르렀다. 그 때에 과연 50여 명의 스님들이 행자를 찾아오고 있기에 도명이 보고 그들에게 말했다.
"대유령(大庾嶺) 마루, 회화진(懷化鎭)에서 5, 6일 동안 기다렸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또 여러 성문들과 나루터에서 북쪽을 향해 행자의 행방을 찾았으나 모두들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되돌아갔고 도명만은 혼자서 여산(廬山)의 포수대(布水臺)로 갔다. 3년 뒤에 다시 몽산(蒙山)으로 가서 수행하는데, 무릇 납자가 찾아오면 모두를 영남의 6조에게 보냈다. 지금도 몽산에는 영탑(靈塔)이 남아 있다.
조사가 법을 전한 뒤 고종(高宗) 24년 임신(壬申) 2월 16일에 입적하니, 춘추(春秋) 74세요, 대종(代宗)이 대만(大滿) 선사라 시호하고, 탑은 법우(法雨)라 하였다. 상원(上元)의 임신(壬申)에 입적한 뒤로 지금의 당 보대(保大) 10년 임자(壬子)까지는 280년이 된다. 정수 선사가 찬탄하였다.
5조는 7세 때부터
언어 이전의 소식을 깨쳤네.
돌 소가 안개를 토하고
나무 말이 연기를 머금는다.
五祖七歲 洞達言前
石牛吐霧 木馬含煙
몸과 마음, 언제나 고요하고
이(理)와 사(事)가 모두 현묘하다.
정(情)도 없고 종자(種子)도 없으니
천년 만년 영원하도다.
身心恒寂 理事俱玄
無情無種 千年萬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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