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祖堂集)

제 33 조 혜능(惠能) 화상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0:06
 

 

 

제 33 조 혜능(惠能) 화상

  

  화상은 당나라에서의 제6조이며, 속성은 노(盧)씨요 신주(新州) 사람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행도(行·)이니, 본래의 본적[貫鄕]은 범양(氾陽)이었으나 나중에 신주(新州)로 옮겨 왔다. 아버지는 일찍 타계하였고, 편모와 외롭고 구차하게 지내면서 혜능(惠能)이 저자에서 나무를 팔아 살림을 꾸려 

  

  나갔다.

  어느 날 나무를 팔고 있는데, 성은 안(安)씨요, 이름은 도성(道誠)이라는 손님이 우연히 찾아와서 나무를 사려고 하기에 혜능이 값을 따져 알맞기에 나무를 팔고 그의 가게에까지 배달해 주었더니, 도성이 나무 값을 주었다. 혜능이 값을 받아 가지고 막 문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도성이 외우는 『금강경(金剛經)』 소리를 듣고 바로 마음이 활짝 열려 깨달았다.

  이에 혜능이 물었다.

  "나으리, 이게 무슨 경입니까?"

  도성이 대답했다.

  "이는 『금강경』이다."

  "어디서 그 경전을 얻어 읽으시는 것입니까"

  "나는 기주(蘄州)의 황매현(黃梅縣) 동쪽에 있는 풍모산(馮母山)에 가서 제5조 홍인(弘忍) 대사께 예배하고 왔는데 아직도 그 산에서 설법하고 계시다. 문인들이 천 명이 넘는데 내가 거기서 들으니, 대사께서 승속(僧俗)에게 권하시기를 이 경을 받아 지니면 곧장 견성(見性)을 하고 성불하리라 하였다."

  혜능이 이 말을 들으니, 숙업(宿業)의 인연이 깊었는지 도성이 혜능에게 황매산에 가서 5조에게 예배하라고 권했다. 그러자 혜능이 대답했다.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는데 집이 구차하여 보양할 길이 없는데 어떻게 노모를 버리겠습니까? 더구나 아무도 도와줄 이가 없습니다."

  도성이 은전 백 냥을 주어 어머니의 의식(衣食)에 쓰게 하면서 혜능에게 빨리 5조에게 가서 예배하라 하였다.

  혜능이 그 돈을 받아 노모의 시중에 쓰도록 안배해서 부탁을 하고는 어머니에게 하직하고 한 달이 안 되서 황매현 동쪽의 풍모산에 이르러 5조에게 예배하니, 5조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무엇을 구하러 왔는가?"

  혜능이 대답했다.

  "저는 신주에서 부처가 되기 위해 왔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그대 같은 영남 사람은 불성(佛性)이 없다."

  혜능이 대답했다.

  "사람에겐 남북이 있지만 불성에는 남북이 없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신주는 사냥하는 오랑캐 땅인데 어찌 불성이 있겠는가?"

  혜능이 대답했다.

  "여래장(如來藏)의 성품은 개미에게까지 두루 하거늘 어찌 오랑캐에게만 없다 하겠습니까?"

  조사가 말했다.

  "너에게도 이미 불성이 있다면 어찌 나의 뜻을 구하는 게냐?"

  그리고는 그의 말을 기특하게 여겨 다시는 묻지 않았다. 이 일로부터 심인(心印)을 얻어 의발과 법을 받고는 스승[慈容]13)의 곁을 떠나 사회(四會)와 회집(懷集)14) 사이에 숨어살기 앞뒤로 4년을 계속하였다.

  의봉(儀鳳) 원년 정월 8일에 이르러 남해현(南海縣)의 제지사(制旨寺)에서 인종(印宗)을 만났는데, 인종이 절에서 나와 영접해서 절로 모시고 들어가 자리에 앉혔다.

  인종은 원래 경론을 강(講)하는 강사였다. 어느 날 마침 경을 강론하고 있는데 비바람이 세차게 일어 깃발이 펄럭이니, 법사가 대중에게 물었다.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

  어떤 이는 바람이 움직인다 하고, 어떤 이는 깃발이 움직인다 하여 제각기 다투다가 강주(講主)에게 와서 증명해 주기를 바랐는데, 강주가 매듭을 짓지 못하고 오히려 행자에게 매듭을 지어 주기를 청하자, 행자가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강주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움직이는가?"

  행자가 대답했다.

  

  

13) 스승의 자비스러운 얼굴을 뜻하는 말로 스승을 의미한다.

14) 사회(四會)는 지금의 광서성에 속하는 지명이고, 회집(懷集)은 광동성(廣東省)에 속하는 현(縣)이다.

  "그대들의 마음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인종이 상석을 피해 자리에 앉았다.

  정월 15일에 머리를 깎고, 2월 8일 법성사(法性寺)에서 지광(智光)에게 부탁하여 비구계를 받으니, 그 계단(戒壇)은 원래 송 때의 구나발마(求那跋摩) 삼장이 세운 것인데, 그가 일찍이 말하기를 "후일 육신(肉身) 보살이 여기서 계를 받을 것이다" 한 곳이다. 양(梁)나라 말기에 진제(眞諦) 삼장이 계단 옆에다 보리수(菩提樹) 한 그루를 심고 말하기를 "120년 후에 육신 보살이 이 나무 밑에서 설법을 하리라" 하였는데, 과연 스님이 이 나무 밑에서 무상승(無上乘)의 법을 연설하게 되었다.

  이듬해 2월 3일에 제지사를 떠나 조계(曹溪)의 보림사(寶林寺)로 가서 설법하고 도를 펴서 한량없는 대중을 제도하되, 한맛의 법비[法雨]로써 학도(學徒)들을 두루 적셔 주었다. 신표(信表)의 가사는 전하지 않았으나 마음의 구슬을 분명하게 전해 주니, 도를 얻은 이가 항하의 모래 같아서 온 제방에 의젓하게 별같이 퍼져 있었다.

  그 때 신룡(神龍) 원년 정월 15일에 측천효화(則天孝和)황제가 대사에게 칙명으로 말하였다.

  "짐이 성심으로 도를 흠모하고 간절히 선문(禪門)을 사모하므로 여러 산문의 여러 선사들을 궁중의 도량에 모으니, 수(秀)와 안(安),15) 두 대덕이 좌중에서 으뜸이었소. 짐이 매양 법을 물으면 재차 사양하여 말하기를 '남방에 능(能) 화상이라는 이가 있는데 홍인(弘忍) 대사의 수기(授記)를 받고, 달마(達摩)의 의발을 신표(信表)로 받았으며, 최상승의 법을 모두 깨달았고, 불성(佛性)을 분명하게 보았는데, 이제 소주(韶州)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중생들에게 마음이 곧 부처라는 법을 보여 깨우치고 있습니다' 하였다.

  짐이 듣건대 여래께서 마음의 법을 마하가섭에게 전하셨고, 그렇게 다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하여 달마에게 이르러 그 가르침이 동토(東土)에 전해져서 대대로 이어져 지금껏 끊이지 않고 있다 하였소. 대사께서 이미 법을 받으셨고 또 믿음을 상징하는 가사가 있다 하시니, 서울로 오셔서 교화를 베

  

  

15) 신수(神秀) 대사와 혜안(慧安) 국사를 말한다.

  풀어 승속(僧俗)이 귀의케 하고, 천상과 인간이 우러러보게 하시오. 그러므로 이제 중사(中使)인 설간(薛簡)을 보내어 영접하니, 바라건대 대사께서는 빨리 왕림하여 주시기를 바라오."

  조사가 다음과 같이 표를 올렸다.

  "사문 혜능은 변방(邊方)에서 태어나 성장해서 도를 흠모하다가 과분하게도 홍인 대사에게 여래의 심인(心印)과 서국의 의발을 전해 받고, 동산(東山)의 불심을 이었습니다.

  이에 또 천은(天恩)16)을 엎드려 받자와 중사인 설간을 보내시어 저를 대궐로 들라 하시나 혜능은 오래 산 속에서 살다가 나이도 많고 풍질을 앓게 되었습니다.

  폐하께서는 덕으로 만물을 감싸시고, 도(道)로 온 나라에 꿰고 있으며, 창생(蒼生)을 양육하시고, 백성들을 인자하게 어루만져 주시니, 은혜가 하늘 밑에 가득하시고, 불문[釋門]을 흠모하신다 하니, 혜능으로 하여금 산에 살면서 병을 고치고 도업(道業)을 닦아 위로 황제 폐하의 은혜와 여러 왕태자의 은혜를 갚도록 용서해 주시기 바라와 삼가 표를 올리나이다. 석혜능(釋慧能)은 머리를 조아려 아룁니다."

  이 때 중사 설간이 조사에게 말했다.

  "서울에 계신 여러 대덕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좌선(坐禪)을 통해야만이 비로소 도를 얻는다 합니다."

  조사가 대답했다.

  "마음에 의해서 도를 깨닫는 것이지 어찌 앉는 데 국집하랴. 그러므로 경17)에서 말씀하시기를 '누군가가 말하되 여래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 하면, 그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자로서 내가 말한 뜻을 알지 못한 것이다'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여래라 함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기 때문에 여래라 하느니라'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공하므로 여래라 하니, 필경에는 얻을 수 없고 증득할 수도 없다' 하셨거늘, 하물며 앉는 것이겠는가?"

  

  

16) 황제의 은덕을 말한다.

17) 『금강반야바라밀경』 대정장 8권 p. 7526 참조.

  설간이 말했다.

  "제자가 대궐에 가면 성상께서 반드시 하문하실 터이니, 바라건대 화상께서 마음의 요체(要體)를 일러 주시어 성상과 서울의 여러 도를 배우는 이들에게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마치 한 등불이 백천 등불을 비추면 어둡던 곳이 모두 밝아서 밝음과 밝음이 다함이 없는 것 같게 하소서."

  조사가 말했다.

  "도는 밝음과 어두움이 없다. 밝음과 어두움이란 대신하여 사그라진다는 의미이다. 밝고 밝음이 다함이 없다는 것 또한 다함이 있는 것이니, 상대해서 이루어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법은 견줄 곳이 없나니,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하셨느니라."

  설간이 다시 말했다.

  "밝음은 지혜에 견주고, 어두움은 번뇌에 견줄 수 있으니, 도를 배우는 사람이 지혜로써 생사의 번뇌를 비추지 않으면 어찌 벗어날 수 있으리까?"

  조사가 대답했다.

  "번뇌가 곧 보리이니 둘도 아니고 다름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혜로써 번뇌를 비춘다는 것은 2승(乘)들의 견해다. 지혜가 있는 이는 애초부터 그리하지 않느니라."

  설간이 물었다.

  "어떤 것이 대승인의 견해입니까?"

  조사가 말했다.

  "『열반경(涅槃經)』18)에서 말씀하시기를 '밝음과 어두움을 범부는 둘이라 보지만 지혜로운 이는 그 성품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다르지 않은 성품이 바로 참된 성품이니, 범부에게 있어서도 줄지 않고, 성인에게 있어서도 늘지 않고, 번뇌에 머물면서도 어지럽지 않고 선정에 있어서도 고요하지 않다. 단절하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으며, 감도 아니고 옴도 아니요, 중간과 안팎에 있지도 않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성상(性相)이 항상 머물러 영원히 변하지 않으므로 도라 한다' 하셨느니라."

  

  

18)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2권 p. 6 참조.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2 권 > 115 - 120쪽

K.1503(45-233), 

  설간이 말했다.

  "조사께서도 불생불멸(不生不滅)을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외도(外道)가 말하는 불생불멸과 어떻게 다릅니까?"

  "외도가 말하는 불생불멸은 생으로써 멸을 멈추려 하니, 멸해도 여전히 멸함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불생불멸은 본래부터 나지 않아서 지금 멸하는 것이 아니니, 그러기에 외도와 같지 않다. 중사(中使)가 마음 자리를 깨치고자 하면 모든 선과 악을 모두 생각하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 바탕이 조용해지고 항상 고요하며 묘한 작용이 항하사 같으리라."

  이 때 설간이 조사의 설법을 듣고 활짝 깨닫고는 몇 번 거듭거듭 조사에게 절을 한 뒤에 말했다.

  "제자가 오늘에야 비로소 불성(佛性)은 본래부터 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지난날에는 퍽이나 멀다고 여겼었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지극한 도는 멀지 않아서 행(志公)하는 것 바로 그것임을 알았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열반은 멀지 않아서 눈에 띄는 것이 모두가 보리임을 알았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불성은 선과 악을 생각지 않으며, 생각도 없고 분별도 없고, 짓지도 않고 만들지도 않으며, 머물지도 않고 함도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불성은 항상하여 변치 않고 모든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중사가 조사에게 예를 다해 하직하고 표를 가지고 서울로 가니 신룡(神龍) 원년 5월 8일이었다. 나중에 9월 3일에 이르러 회답으로 조서가 내려졌다.

  "대사께서 늙음과 병을 핑계로 짐을 위해 도를 닦겠다 하니 나라의 복전[福田]이로다. 대사는 마치 정명(淨名)19)이 병을 핑계하여 금속(金粟)20) 여래의 후신으로서 거룩한 가르침을 펴고, 모든 부처님들의 마음을 전하여 불이법(不二法)을 말하되, 비야리[毘耶]에서 입을 다무니, 성문은 꾸지람을 듣고 보살은 하직하고 물러난 것과 같소이다. 대사께서도 그러하셔서 설간이

  

  

19) 유마거사.

20) 유마거사가 과거세에 이미 성불하여 금속여래라는 부처님이었다고 한다. 『벽암록』 4권 참조.

  대사의 가르침을 전해 줌으로 여래의 지견(知見)을 받들게 되어 온갖 선과 악을 모두 생각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의 본체에 들어 적적하고 항상 조용하며, 묘한 작용이 항하사 같음을 알게 하셨소이다.

  짐이 전세에 선(善)을 쌓아 경사가 있음이던가, 숙세에 복된 인연을 심은 공덕인가. 대사께서 세상에 나심을 만나 최상의 불심을 활짝 깨치게 되니, 짐은 첫째로 대사의 은혜에 감사하여 받들어 수행해서 영원히 쇠퇴하는 일이 없게 하리라. 삼가 마납(磨納) 가사 한 벌과 금 발우 한 벌로써 대사께 공양하오."

  그 뒤에 사액을 중흥사(重興寺)라 칙명으로 하사하고, 또 신주(新州)의 옛 집을 국은사(國恩寺)로 다시 짓게 하였다.

  조사가 매양 여러 선지식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의 자심(自心)이 부처이니, 더 이상 의심치 말라. 밖에서는 한 물건도 따로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두가 근본 마음에서 만 가지 모든 법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멸하므로 갖가지 법이 멸한다' 하셨으나, 그대들은 모름지기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알아야 한다. 일상삼매란 것은 모든 곳에서 형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 형상에 대하여 미움도 사랑도 없으며,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으며, 이익도 생각지 않고 무너뜨리겠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저절로 안락하기 때문에 일상삼매라 한다.

  일행삼매라 함은 모든 곳에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눕는 것 모두가 하나의 직심(直心)이고, 바로 그대로가 도량(道場)이며, 그대로가 정토(淨土)인 것이다. 이것을 일행삼매라 한다.

  마치 땅의 종자가 모든 것을 함장(含藏)하는 것과 같이 마음의 삼매도 그러하다. 내가 설법하는 때는 마치 비를 내리는 것 같고, 그대들에게 불성(佛性)이 있는 것은 땅 속에 씨앗이 있는 것 같으니, 만일 법비를 만나면 제각기 자랄 것이다.

  나의 말을 믿는 이는 결정코 보리를 이룰 것이요, 나를 의지해서 수행하는 이는 결정코 거룩한 과위를 얻을 것이다. 내가 이제 이 의발을 전하지 않으려는 것은 대중이 믿어 마음에 의혹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음의 요법을 두

  

  루 전하나니, 제각기 힘에 따라 교화를 펴라.

  옛날에 나의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뒤로부터는 이 가사를 받은 이는 생명이 위태로우리라' 하셨으니, 나는 도로써 교화할지언정 그대들에게 손상이 되는 일은 않겠다. 그대들은 나의 게송을 들으라.

  

  심지(心地)에 모든 종자를 머금었다가

  단비에 모두 싹이 돋는다.

  꽃의 마음을 갑자기 깨닫고 나면

  보리의 열매는 자연히 맺으리."

  心地含諸種 普雨悉皆生

  頓悟花情已 菩提果自成

  

  조사는 게송을 읊고 대중들에게 말했다.

  "그 성품은 둘이 없고 그 마음도 그렇다. 그 도는 청정하고 여러 형상 또한 없다. 그대들은 그 마음이 깨끗하다거나 텅 비었다고도 보지 말라. 이 마음은 본래 깨끗하지만 가질 수도 없다. 그대들은 제각기 노력하되 인연을 따라 잘들 가거라."

  어떤 사람이 물었다.

  "황매(黃梅)의 뜻을 누가 얻었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불법을 아는 이가 얻었느니라."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얻으셨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나는 얻지 않는다."

  "화상께선 어째서 얻지 않으십니까?"

  조사가 말했다.

  "나는 불법을 알지 못하느니라."

  법운(法雲) 대사가 이 이야기를 들어서 용화(龍花)에게 물었다.

  

  "불법이 무슨 허물이 있기에 조사께서 알려고 하지 않으시는가?"

  용화가 되물었다.

  "위로 향하는 사람의 몫으로 무슨 일을 해야 마땅하겠습니까?"

  다시 물었다.

  "위로 향하는 사람의 일이란 어떤 것인가?"

  용화 선사가 대답했다.

  "뒤죽박죽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용화가 법운 대사에게 되물었더니, 법운이 대답했다.

  "눈에 낀 백태 하나 없애지 못하면 몸을 뺄 길이 없느니라."

  용화가 다시 물었다.

  "백태를 없앤 사람은 위로 향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으리까?"

  법운 대사가 말했다.

  "옆으로 자건 바로 자건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조사가 어떤 스님을 보자 불자를 들어 세우고 말했다.

  "아직도 보이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보입니다."

  조사가 뒤로 던지고 말했다.

  "보이는가?"

  대답하였다.

  "보입니다."

  조사가 말했다.

  "몸 앞에서 보이는가, 몸 뒤에서 보이는가?"

  대답하였다.

  "볼 때엔 앞뒤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에 조사가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이것이 묘공삼매(妙空三昧)니라."

  어떤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들어 초경(招慶)에게 물었다.

  "조계(曹溪)가 불자를 들어 세운 뜻이 무엇입니까?"

  

  초경이 대답했다.

  "누군가가 갑자기 표주박 자루를 돌려 들고 온다면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그 스님이 귀를 가리고 "화상이시여" 하니, 초경이 때렸다.

  그 때 조사가 세상에 머물면서 설법한 지 40년 선천(先天) 원년 7월 6일에 갑자기 제자들에게 분부하여 신주(新州)의 옛 집에 탑을 하나 세우게 하더니, 2년 7월 1일에 문인들에게 하직을 고하였다.

  "나는 신주로 떠나가리라."

  대중들이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슬피 울면서 조사를 만류했으나, 조사가 받아들이지 않고 말했다.

  "모든 부처님들도 세상에 나오셨다가 열반에 드시는 모습을 나타내시는 일 조차 어기지 않으셨는데, 하물며 나는 분단(分段) 생사의 과보를 바꿔 놓지 못했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문인들이 물었다.

  "스님께서 신주로 돌아가시면 언제 돌아오시겠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잎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니, 돌아올 때엔 말이 없느니라."

  다시 물었다.

  "법은 누구에게 전하십니까?"

  조사가 말했다.

  "도가 있는 이가 얻고, 마음이 없는 이가 얻느니라."

  그리고 또 말했다.

  "내가 열반에 든 지 70년쯤 뒤에 두 보살이 동쪽으로부터 올 터인데 하나는 재가(在家) 보살로서 같이 세상에 나타나 교화를 펴다가 나의 가람(伽藍)을 중수(重修)하고 나의 종지(宗旨)를 다듬으리라."

  이 말을 마치고 바로 신주의 국은사(國恩寺)로 가서 공양을 들고 가사를 입자, 곧 이상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고 흰 무지개가 땅에 박히더니, 갑자기 천화(遷化)하였다.

  때는 8월 3일, 춘추(春秋)는 76세이니, 선천(先天) 2년이었다. 달마(達摩) 대사가 전한 가사 한 벌은 7조(條)의 굴순포(屈眴布)로서 푸르고 검은 

  

  빛이었고, 푸른 비단으로 안을 받친 것이었으며, 또 발우 한 벌이 있었다.

  중종(中宗)이 대감(大鑑) 선사라 시호를 내렸고, 탑호(塔號)를 원화영조(元和靈照)라 하였다.

  계축(癸丑)에 천화한 뒤로 지금의 당 보대(保大) 10년 임자(壬子)까지는 239년이다. 정수 선사가 찬탄하였다.

  

  조사가 황매산에 가서

  바른 뜻을 받아 남으로 왔다.

  깃발이 흔들리는 이치로 인해

  법의 우레를 크게 떨쳤다.

  師造黃梅 得旨南來

  奚因幡義 大震法雷

  

  도명(道明)을 만났고

  신수(神秀)가 한 걸음 늦게 돌아왔다.

  의발은 전하지 않았지만

  천하에는 꽃이 난만했다.

  道明遭遇 神秀遲廻

  衣雖不付 天下花開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3 권 > 121 - 130쪽

K.1503(4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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