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제(招提) 화상
석두(石頭)의 법을 이었다. 휘(諱)는 혜랑(惠朗)이요 성은 구양(歐陽)이며, 소주(韶州)의 곡강(曲江) 사람이다. 13세에 등림사(鄧林寺)의 모(模) 선사에 의해 출가하고, 17세에 형악(衡岳)을 유람하고, 20세에 계를 받고, 건주(虔州) 공공산(龔公山)으로 가서 대적을 뵈니, 대적이 물었다.
"무엇을 얻으러 왔는가?"
"부처의 지견(知見)을 얻으러 왔습니다."
"부처는 지견이 없나니, 지견은 마의 경계니라. 그대가 남악에서 왔다고는 하나 석두의 조계심요(曹溪心要)6)를 보지 못한 것 같으니, 다시 석두로 돌아가라."
초제 선사가 말씀에 따라 곧 석두에게로 돌아가니, 과연 대적의 말과 같이 인연이 부합하여 깨달았다. 이로부터 초제산(招提山)을 20년 동안 떠나지 않으니, 이 까닭에 초제 혜랑이라 부르게 되었다.
원화(元和) 15년 경자(庚子) 정월 22일에 입적하기까지 춘추(春秋)는 83세요, 승랍(僧臘)은 6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