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祖堂集)

단하(丹霞) 화상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0:48
 

 

 

단하(丹霞) 화상

  

  

3) 선원(禪院)에서 승려들의 상좌(床座)·이부자리·음식 등을 담당하는 소임을 맡은 사람이다.

  

  석두의 법을 이었으며, 휘(諱)는 천연(天然)이었다. 어릴 적에 유교와 묵자(墨子)를 전공하여 9경(經)을 통달하였다.

  처음으로 방(龐) 거사와 함께 서울에 가서 과거에 응하려고 한남도(漢南道) 거리의 주막에서 묵는데, 어느 날 꿈에 흰 광명이 방안에 가득함을 보았다.

  해몽하는 이가 이에 대해 말했다.

  "이는 공(空)의 이치를 잘 알게 될 징조입니다."

  또 행각(行脚)하는 스님을 만나 차를 마시는데 스님이 물었다.

  "수재(秀才)4)는 어디로 가시오."

  "과거를 보러 갑니다."

  "공부가 아깝구나, 어째서 부처를 뽑는 곳엔 가지 않는가?"

  "부처를 어디서 뽑는가요?"

  이에 그 스님이 차종지를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알겠소?"

  "높은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강서에 마조께서 지금 생존하셔서 설법하시는데 도를 깨친 이가 이루 헤아릴 수 없소. 거기가 참으로 부처를 고르는 곳이오."

  두 사람은 전세부터 근기가 날카로운 이들인지라, 곧 길을 떠나 큰스님에게 가서 절을 하니, 마조가 말했다.

  "이 사람들 무엇 하러 왔는가?"

  수재가 북두건을 벗어 보이니, 마조가 근기를 살피고는 웃으며 말했다.

  수재가 말했다.

  

  

4) 수(隋)나라 때부터 수재(秀才)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말했는데, 수나라 38년 간 수재는 도합 천 명 정도에 불과했으므로 확실히 뛰어난 인재임에는 틀림없겠다. 그 뒤 당(唐)나라 때에는 아예 과거에다 수재과(秀才科)를 설치했는데, 워낙 어려워 응시생이 없자 폐지하고 말았다. 그 결과 이 때부터는 오히려 급제 여부와 관계없이 과거에 응시한 사람이면 모두 수재(秀才)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송(宋)나라 이후부터는 아예 공부하는 사람이면 모두 수재라고 불렀다. 지금의 학생에 해당된다. 

  "그러시다면 석두께서 계신 곳을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여기서부터 남악으로 7백 리를 가면 희천(希遷) 장로가 돌 끝에 앉아 계신다. 그대는 그리로 가서 출가하라."

  수재가 그 날로 길을 떠나 석두에게 가서 화상(석두)을 뵈니, 화상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예, 아무 곳에서 왔습니다."

  "무엇 하러 왔는가?"

  수재가 전의 마조와 같이 대답하니, 석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부엌으로 보내라."

  이로부터 불 피우고, 밥 짓기로 2년을 보내니, 석두 화상이 생각하기를 '내일 아침에는 수재(秀才)의 머리를 깎아 주리라' 하였다. 그날 저녁 동자들이 저녁 문안을 들어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

  "불전 앞의 한 무더기 우거진 풀을 내일 아침 죽 공양을 마치고는 깎아 버려라." 

  이튿날 새벽에 동자들은 제각기 낫과 괭이를 들고 나왔는데, 수재만은 삭도와 물을 가지고 화상 앞에 와서 꿇어앉아 머리를 감으니, 화상이 웃으면서 머리를 깎아 주었다.

  선사(수재)의 정수리에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데 화상이 이를 만지면서 "천연(天然)스럽구나" 했다. 머리를 다 깎고 나서 화상에게 절을 하면서 머리를 깎아 주신 것과 이름을 지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였다.

  이에 화상이 물었다.

  "내가 그대에게는 무슨 이름을 지어 주었는가?"

  "화상께서 '천연'이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석두 화상이 몹시 신기하게 여겨 설법을 해주니, 선사는 귀를 가리고 외쳤다.

"너무 많습니다."

  "그러면 그대가 활용해 보라."

  이에 선사가 성승(聖僧)의 머리에 올라타니, 화상이 말했다.

  


  "저 중이 뒷날 불상과 탁자를 모두 부술 것이니라."

  선사가 계를 받고 나니, 대적(大寂)이 강서에서 마니(摩尼) 구슬을 한창 빛내고 있었다.

  선사가 남악을 내려와 다시 강서로 가서 대적을 뵈니, 대적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석두에서 옵니다."

  "석두의 길이 미끄러운데 미끄러져 넘어지지나 않았는가?"

  "넘어졌으면 여기 오지 못했습니다."

  대적이 몹시 기특하게 여겼다.

  이로부터 선사는 생각을 활짝 풀어놓고, 순(順)과 역(逆)의 경계를 초월하여 운수(雲水)에 노닐기를 좋아하고 가고 옴에 자유자재하였다. 

  

  낙경(洛京)5)에 이르러 혜충(慧忠) 국사를 뵙고자 찾아가서 먼저 시자를 보고 물었다.

  "화상께서 계시는가?"

  시자가 대답했다.

  "계시기는 하는데 객을 만나지는 않습니다."

  "퍽이나 멀리 계시는구나."

  "불안(佛眼)으로 봐도 볼 수 없습니다."

  "용은 용의 새끼를 낳고, 봉은 봉의 새끼를 낳는구나."

  시자가 이 일을 국사에게 말하니, 국사가 시자를 때려 주었다.

  

  선사가 얼마 지나지 않아 등주(鄧州)의 단하산으로 올라갔는데 격조가 높고 험준하여 찾아오는 이가 별로 없었다.

  이에 어떤 선덕(禪德)이 단하를 찾아오다가 산밑에서 선사를 보자 얼른 물었다.

  "단하산이 어디에 있습니까?"

  

  

5) 낙양(洛陽)의 옛 이름.

  선사가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푸른 듯 검은 듯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선덕이 다시 물었다.

  "단지 이것뿐만은 아니겠지요."

  선사가 대답했다.

  "참 사자는 한 번 튀기면 이내 뛰느니라."

  

  다음에 천태산 화정봉(花頂峯)에서 3년을 지내고는 다시 국일(國一) 선사를 뵙고, 원화(元和) 연간 초에 용문(龍門)의 향산(香山)에 올라 복우(伏牛) 선사와 절친한 도반이 되었다.

  그 뒤 혜림사(惠林寺)에서 추운 날씨를 만나 목불(木佛)을 태워 추위를 막는데 주인이 와서 꾸짖으니, 선사가 말했다.

  "다비(茶毘)를 해서 사리(舍利)를 얻으려던 참이었소."

  "나무토막에서 무슨 사리가 나오겠소?"

  "그렇다면 어찌 나를 꾸짖으시오."

  주인은 이로 인해 앞 눈썹이 몽땅 빠져 버렸다.

  

  어떤 사람이 진각(眞覺) 대사에게 물었다.

  "단하가 목불을 태웠는데 주인에게 무슨 허물이 있었습니까?"

  "주인은 부처만을 보았느니라."

  "단하는 어떻습니까?"

  "단하는 나무토막만을 태웠느니라."

  

  선사가 한번은 어떤 토굴에서 묵게 되었는데, 노장이 행자와 자리를 같이하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선사가 곧 짐을 내려놓고 두 사람 곁으로 가서 문안을 했더니, 두 사람은 전혀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행자가 한 냄비의 밥을 가지고 와서 방바닥에 놓고 노장과 둘이 먹으면서 역시 선사를 보지도 않고 부르지도 않았다.

  

  이에 선사도 스스로 다가가서 같이 먹으려 하니, 행자가 노장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첫새벽에 일어났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노장에게 말했다.

  "저 행자는 어찌 가르치지 않아서 저토록 무례한가?"

  노장이 대답했다. 

  "멀쩡한 남의 아들딸들에게 무슨 허물이 있단 말이오? 남을 몹쓸 놈으로 만들어서 무엇하리요."

  이에 선사가 말했다.

  "아까부터 하마터면 몰라볼 뻔하였구려."

  

  선사가 고적음(孤寂吟)을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내가 고적을 즐기는 것을 보고 

  한평생 아무런 이익도 없으리라 하지만 

  나는 고적음을 한가히 읊고 있노라면 

  세월을 헛 보내지 않았음을 아노라.

  時人見余守孤寂 爲言一生無所益

  余則閑吟孤寂章 始知光陰不虛擲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노력하란 말, 

  누구나 이 말을 하지만 알지는 못한다.

  알았다면 모두가 길동무가 되거늘, 

  그 어찌 가시덤불에 빠져들 수 있으랴.

  不尋光陰須努力 此言雖說人不識

  識者同爲一路行 豈可顚墜緣榛棘

  

  가시덤불 무성하니 어디가 끝인가?

  그저 온 대중이 종일토록 떠드는구나.

  

  무리들 소음을 알지 못함이 끝없으니 

  가엾다, 진실은 공연(空然)히 전하지 않으리.

  봉극恾恾何是邊 只爲終朝盡衆喧

  衆喧不覺無涯際 哀哉眞實不虛傅

  

  전하는 것, 메아리치는 것, 모두 듣지 못하니 

  마치 촛불과 등잔을 동이 안에 켠 것 같다.

  모두가 빛나는 줄은 다 알지만 

  볼 때는 어두컴컴 면할 수 없네.

  傅之響之只不聞 猶如燈燭合盂盆

  共知總有光明在 看時未免暗昏昏

  

  어두컴컴 깨닫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니 

  이런 무리, 티끌이나 모래와 비교해도 적지가 않네.

  마치 낚시에 걸린 고기와 같고 

  그물에 걸려드는 새와 무엇이 다르리.

  昏昏不覺一生了 斯類塵沙比不少

  直似潭中呑鉤魚 何異空中盪羅鳥

  

  이 걱정의 유래는 참으로 오래되었으니

  사방과 상하 끝없이 멀어도

  잠깐 사이에 미혹하여 병들고 죽으면 

  번뇌를 벗어나지 못한 채 곡소리만 애절하다.

  此患由來實是長 四維上下遠湛湛

  倏忽之間迷病死 塵勞難脫哭愴愴 

  

  애달프게 서러워해도 끝내 이익은 없고 

  다만 이 몸을 고통의 옥에 가둘 뿐이다.

  이럴 때에 이르러 후회한들 무엇하랴.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4 권 > 200 - 209쪽

K.1503(45-233), 

  하늘과 땅 어디서도 고적은 못 찾는다.

  愴愴哀怨終無益 只爲將身居痛室

  到此之時悔何及 雲泥未可訪孤寂

  

  고적은 우주(宇宙)에서 가장 좋은 경지(境地)이니 

  늘 읊으면서 한가한 방에 누웠노라면 

  찬바람이 낙엽을 휘몰아도 걱정 없거늘 

  그 어찌 잡초들이 서리 만남을 근심하랴.

  孤寂宇宙窮爲良 長吟高臥一閑堂

  不慮寒風吹落葉 豈愁桑草遍遭霜

  

  송죽(松竹)이 추위를 이기는 뜻만을 지켜보나니 

  사시(四時)에 변함 없이 맑은 바람 뿜어낸다.

  봄과 여름은 잠시 동안 뭇 나무에 가리워지나

  가을과 겨울에야 비로소 울창한 숲 이룬다.

  但看松竹歲寒心 四時不變流淸音

  春夏暫爲群木映 秋冬方見鬱高林

  

  그러므로 세상일엔 강유(剛柔)가 있음을 알겠느니 

  무엇 하러 마음을 맑거나 탁한 흐름에 따르게 하리. 

  두 끼니의 거친 음식으로 인연 따라 지내니 

  한 몸 가리는 것은 베옷과 솜옷이라.

  故知世相有剛柔 何必將心淸濁流

  二時麤糖隨緣過 一身遮莫布毛裘 

  

  바람과 물결 따라 마음대로 동서에 머무르니 

  그 어찌 땅 좁음과 하늘 낮음을 근심하랴. 

  사람들은 알지 못하여 틀렸다 하거니와 

  나는 분명히 알아 미혹하지 않는다.

  

  隨風逐浪住東西 豈愁地迮與天低 

  時人未解將爲錯 余則了然自不迷

  

  미혹하지 않으려면 미혹하지 않는 맘 있어야 하니 

  볼 때는 얕게 하고 쓸 때는 깊이 하라.

  이러한 보물을 얻기만 하면 

  그 어찌 나무꾼이 황금을 얻은 것에 비기랴.

  不迷須有不迷心 看時淺淺用時深

  此个眞珠若採得 豈同樵夫負黃金

  

  황금은 담금질할수록 진금이 되고

  맑은 구슬은 광채를 머금고도 남에게 보이지 않네.

  깨치면 털끝의 방울물에 바다를 넣는다니 

  땅덩이가 하나의 먼지임을 알겠네.

  黃金亨練轉爲眞 明珠含光未示人 

  了卽毛端滴巨海 始知大地一微塵

  

  먼지와 물방울이란 생각 있으면 허물을 면치 못하나니 

  이것을 버리고 저것에 머물려 하지 말라.

  바로 먼 하늘에서 새 발자국을 찾는 것 같아야 

  현묘한 가운데서도 더욱 현묘하리라.

  塵滴存乎未免愆 莫葉這邊留那邊

  直似長空搜鳥跡 始得玄中又更玄

  

  하나를 들어 모든 것에 비기면 족히 알 것이어늘 

  무엇 하러 중언부언 설명을 하겠는가. 

  주린 이가 와서 배 채우는 것은 보았으나 

  간장이 목마른 이를 쫓아가 죽였다는 말 못 들었네. 

  擧一例諸足可知 何用諵諵說引詞

  

  只見餓夫來取飽 未聞漿逐渴人死 

  

  여러 사람, 도를 말하나 도를 행하지 않으니 

  그들은 깨닫지 못하여 거짓으로 밝은 체한다.

  세 치의 날카로운 칼로 넓은 길을 개척하나 

  만 그루의 가시나무 몸을 둘러싸고 자라난다. 

  多人說道道不行 他家未悟詐頭明

  三寸利刀開曠路 万株棒棘擁身生

  

  티끌과 찌꺼기 많아도 전혀 알지 못하고 

  공연히 입으로만 현묘함을 쏟아내니 

  이런 이가 그 어찌 크게 쓰일까. 

  천생 만겁에 거지꼴을 못 면한다.

  塵滓湛湛都不知 空將辯口瀉玄微

  此物那堪爲大用 千生万劫作貧兒 

  

  애오라지 고적음을 쓰는 뜻, 깊고도 머니 

  종자기(鐘子期)가 백아(伯牙)의 거문고를 듣는다. 

  도 있는 이라야 그 뜻을 알기를 손바닥 가리키듯 하여 

  귀중하게 여기겠기에 고적음이라 부르노라.

  聊書孤寂事還深 鍾期能聽白牙琴

  道者知音指其掌 方貴名爲孤寂吟

  

  선사가 또 완주음(翫珠吟)을 읊었으니, 다음과 같다.

  

  옷 속의 보배를 알아내면 

  무명의 취기가 저절로 깬다.

  백 토막의 뼈는 무너져 없어지나 

  한 물건은 영원히 신령하도다.

  

  識得衣中寶 無明醉自惺

  百骸俱潰散 一物鎭長靈

  

  경계를 알아도 모두가 본체 아니요 

  구슬은 찾아도 형체를 보지 못하네.

  깨달으면 3신(身)의 부처요 

  미혹하면 만 권의 경전이로다.

  知境渾非體 尋珠不見形

  悟卽三身佛 迷疑万卷經

  

  마음에 있다지만 마음으로 어찌 헤아리fi.

  귀에 있으나 귀로는 들을 수 없나니 

  형상이 없어 천지(天地)보다 앞에 있고 

  깊고 깊어서 묘명(杳冥)을 벗어났네. 

  在心心豈測 居耳耳難聽

  罔像先天地 淵玄出杳冥

  

  본래 견고하여 단련한 것이 아니요 

  원래 맑아서 맑힌 것 아니다.

  뚜렷하기는 아침해보다 더하고 

  영롱하기는 샛별보다 빛난다네.

  本剛非鍛鍊 元淨莫澄停

  盤泊逾朝日 玲曨暵曉星

  

  서광(瑞光)이 흘러 꺼지지 않고 

  참 밝음은 흐린 것도 맑힌다.

  공동산(崆峒山)의 적막함을 거울같이 비추고

  노롱(勞籠)은 법계를 밝힌다네.

  瑞光流不滅 眞證濁還淸 

  

  鑑照崆峒寂 勞龍法界明

  

  범부를 꺾으니 공이 없어지지 않고

  성인을 초월하나 과(果)가 채워진 것은 아니네. 

  용녀는 마음껏 몸소 바쳤고 

  뱀이 직접 입으로 토해내기도 했다네.

  到凡功不滅 起聖果非盈 

  龍女心親獻 蛇王口自傾

  

  거위를 두둔하니 사람까지 살았고 

  참새의 의리는 오히려 가볍다.

  말뜻을 아나 입을 열지 않고 

  말할 수 있으되 소리가 아니다.

  護鵝人却活 黃雀義猶輕

  解語非開舌 能言不是聲

  

  끝이 없으니 누리에 가득하고 

  3세가 평등함이 공(空)하도다.

  교법을 펴나 교법이라 여기지 않고 

  이름을 드날리나 그 명성 인정치 않는다.

  絶邊彌瀚漫 三際等空平

  演敎非爲敎 聞名不認名

  

  양쪽의 어디에도 서지 않고 

  중도(中道)도 행하지 않는다.

  달을 보되 손가락은 보지 말고 

  집에 돌아왔거든 길을 묻지 말라.

  二邊俱不立 中道不須行

  見月休看指 歸家罷問程

  

  알음알이로 어찌 부처를 헤아리며

  어떤 부처를 이룰 수 있단 말인가.

  識心豈測佛 何佛更堪成

  

  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단하에게 한 보배가 있으니 

  간직한 지 많은 세월 지났다.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니

  나 혼자 깊이 간직하였다.

  丹霞有一寶 藏之歲月久

  從來人不識 余自獨防守

  

  산하에 걸림이 없고

  광명이 곳곳으로 뻗는다.

  본체가 고요하여 항상 맑으니 

  맑게 사무쳐 티가 없도다.

  山河無隔碍 光明處處透

  軆寂常湛然 瑩徹無塵垢

  

  세간에서 이를 구하려는 이 

  미친 듯이 먼 길로 달리나 

  나는 그에게 말하나니

  손뼉을 치면서 깔깔 웃으리라고.

  世閒採取人 顚狂逐路走

  余則爲渠說 撫掌笑破口

  

  홀연히 공(空)을 아는 이를 만나면 

  숲 속에서 자유자재하리라.

  


  서로 만나 아무런 표현 않아도 

  뜻을 내비치면 즉시 알아듣는다.

  忽遇解空人 放曠在林藪

  相逢不擎出 擧意便知有

  

  선사가 또 이룡주음(驪龍珠吟)을 읊었으니, 다음과 같다.

  

  이룡주(驪龍珠), 이룡주여, 

  광명이 찬란하니 세간 것과 다르다.

  시방 세계에서 구할 곳 없고 

  구해서 얻는다 해도 이 구슬은 아니다.

  驪龍珠驪龍珠 光明燦爛與人殊 

  十方世界無求處 縱求得亦非珠 

  

  구슬은 본래 뜨고 잠김 없나니 

  사람들 알지 못하고 밖에서 찾는다. 

  하늘 끝까지 다 다니어 스스로 피곤만 더할 뿐

  자기의 마음에서 찾는 것만 못하네. 

  珠本有不昇沈 時人不識外追尋

  行盡天涯白疲極 不如體取自家心

  

  찾기 위해서 헛수고를 말라.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숨으리라.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 쫓듯 하고 

  미친 사람 길거리를 헤매듯 하네.

  莫求覓損功夫 轉求轉覓轉元無

  恰始渴鹿趁陽燄 又似狂人在道途

  

  모름지기 스스로 분명히 체험하라.

  

  분명히 체험하면 더 이상 연마할 필요 없다.

  인간 세계에서 얻어질 것 아님을 깊이 아나니

  6류(類)와 생령들은 말할 것도 없다.

  須自體了分明 了得不用更磨瑩

  深知不是人閒得 非論六類及生靈

  

  헛되이 신경을 쓰면 정신을 소모하니 

  한가한 곳에서 번뇌를 쉼만 못하리.

  마음 멈추고 뜻 쉬면 구슬 항상 있나니 

  길거리에 나서서 딴사람에게 묻지 말라.

  虛用意損精神 不如閑處絶纖塵

  停心息意珠常在 莫向途中別問人

  

  스스로가 미혹했을 뿐 구슬은 원래 있나니 

  이 이룡(驪龍)은 시종 변함이 없다네.

  비록 오음산(五陰山)에 묻혔으나 

  사람들 스스로가 게으름을 피워

  自迷失珠元在 此个驪龍終不改

  雖然埋在五陰山 自是時人生懈怠

  

  구슬을 알지 못해 매양 던져 버리니 

  도리어 이룡(驪龍) 앞에서 나그네가 되노라. 

  이 몸이 주인공인 줄 알지 못하고 

  이룡을 버리고 딴 곳에서 찾으려 하네.

  不識珠每抛擲 却向驪龍前作客

  不知身是主人公 棄却驪龍別處覓 

  

  보물을 알아 보라. 자기의 보물이니 

  이 구슬 원래 본래인(本來人)이라. 

  

  들어서 희롱하기 다함 없나니 

  이룡(驪龍)을 아는 그 순간부터 가난치 않으리.

  認取寶自家珍 此珠元是本來人

  拈得翫弄無窮盡 始覺驪龍本不貧

  

  만일에 이룡주를 분명히 알면 

  그 뒤에는 그 구슬이 나에게만 있으리.

  若能曉了驪珠後 只這驪珠在我身

  선사는 또 농주음(弄珠吟)을 읊었으니, 다음과 같다.

  

  반야 구슬 신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운데

  법성(法性)의 바다에서 친히 알아내었네. 

  숨었다 나타났다 오온산(五蘊山)에 노닐면서

  안팎으로 광명 놓아 큰 신력을 가졌다네.

  般若神珠妙難測 法性海中親認得

  隱現時遊五蘊山 內外光明大神力 

  

  이 구슬은 형상도 없고 크지도 작지도 않으니 

  밤낮으로 원만히 밝아 모두에게 비친다.

  활용할 땐 장소 없고, 자취마저 없으나 

  다니거나 머무를 때, 항상 따라 분명하다.

  此珠無狀非大小 晝夜圓明悉能照

  用時無處復無蹤 行住相隨常了了

  

  옛 성인들 서로 전해 일러 주었으나 

  이 구슬을 믿는 이 세상에는 드물다.

  지혜로운 이는 밝은 줄 알아 항상 여의지 않지만 

  미혹한 이는 구슬을 가지고도 알지 못해 헤맨다.

  先聖相傳相指授 信此珠人世希有

  

  智者号明不離珠 迷人將珠不識走 

  

  우리 스승, 방편으로 마니(摩尼)에다 견줬는데 

  캐려는 이, 무수하여 봄 못으로 뛰어드네. 

  앞다퉈 기와 조각을 보배라 하였으나 

  약은 이는 편안하게 그것을 얻어낸다.

  吾師權指喩摩尼 採人無數入春池 

  爭拈瓦礫將爲寶 智者安然而得之

  

  말 끝 있는지라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으니 

  체(體)와 용(用)이 여여하여 굴려도 구르지 않네.

  만 가지 형태의 구슬, 마음속에 달렸으니 

  어느 때나 교묘한 방편을 일으킨다.

  言下非近亦非遠 體用如如轉無轉

  万機珠對寸心中 一切時中巧方便 

  

  황제께서 일찍이 적수(赤水)에 노니셨으나 

  보거나 들음으론 전혀 얻지 못했네. 

  망상(罔像)은 무심하여 구슬을 얻었으나 

  본다거나 듣는다는 것 모두가 거짓이라.

  皇帝曾遊於赤水 視聽爭求都不遂

  罔像無心却得珠 能見能聞是虛僞

  

  자기 맘도 아니요 인연도 아니니 

  묘한 중에도 묘하고 현현한 중에도 현현하다.

  삼라만상이 광명 속에 나타나나 

  찾으면 그의 근원 찾을 수 없다.

  非自心非因緣 妙中之妙玄中玄

  森蘿万像光中現 尋之不見有根源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4 권 > 210 - 219쪽

K.1503(45-233), 

  여섯 도적 불태우고, 네 마군[四魔]을 무너뜨리니 

  아만의 산 꺾고 애욕의 강 말린다.

  용녀는 영산(靈山)에서 부처님께 바쳤고 

  거지 아인 옷 속에 품고 미쳐 헤매 다녔네.

  燒六賊爍四魔 能摧我山竭愛河 

  龍女靈山親獻佛 貧兒衣裡狂蹉跎

  

  성품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니 

  성품도 마음도 아니어서 고금을 초월했다네.

  본체에 이름을 끊었으니 이름을 붙일 수 없어 

  방편으로 농주음(弄珠吟)이라 제목하노라.

  亦非性亦非心 非性非心超古今

  體絶名言名不得 權時題作弄珠吟

  

  선사가 마곡(麻谷)과 산 구경을 하다가 개울가에 이르러 이야기를 하던 끝에 마곡(麻谷)이 물었다.

  "어떤 것이 큰 열반입니까?"

  선사가 고개를 돌리면서 대답했다.

  "급하다."

  "무엇이 급합니까?"

  "개울물이니라."

  선사가 처음으로 개당(開堂)했을 때에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여야 문풍(門風)을 추락시키지 않겠습니까?"

  "마음대로 이야기해도 문풍을 추락시키지 않느니라."

  "화상께서 말씀해 보여 주소서."

  "청산(靑山)과 녹수(綠水)는 닮지 않았느니라."

  선사가 어떤 스님을 시험하기 위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산밑에서 옵니다."

  

  "밥은 먹었는가?"

  "먹었습니다."

  "그대에게 밥을 먹으라고 준 이도 눈이 있던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어떤 스님이 이 이야기를 위산(潙山)에게 하니, 위산이 그 스님을 대신하여 말했다.

  "있습니다."

  스님이 거듭 물었다.

  "눈이 어디에 있습니까?"

  "눈은 정수리에 있느니라."

  어떤 스님이 또 이 이야기를 동산(洞山)에게 하니, 동산이 말했다.

  "만일 위산이 아니었다면 어찌 그렇게 말할 줄을 알겠는가?"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정수리에 있는 눈입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위로 향하는 길을 잘 아는 것이다."

  초경(招慶)이 이 이야기를 들어 보복(保福)에게 물었다.

  "밥을 주어서 먹게 한 이는 사례를 받아야 마땅하겠거늘 어째서 안목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까?"

  보복이 대답했다.

  "준 이나 받은 이가 모두가 눈먼 놈이기 때문이니라."

  "갑자기 어떤 사람이 그의 기봉을 다한다 해도 여전히 눈먼 놈이겠습니까?"

  보복이 말하였다.

  "화상께선 그러면서도 사람을 위한다 합니까?"

  "저더러 누구랑 의논하라 하십니까?"

  며칠 뒤에 보복(保福)이 말했다.

  "내가 눈먼 놈인가?"

  

  선사가 여의송(如意頌)을 읊었으니, 다음과 같다.

  

  진여(眞如)는 여의보(如意寶)요 

  여의보는 진여이니 

  삼라(森羅)와 만상(萬像)이 

  한 법이요 더 이상은 없다.

  眞如如意寶 如意寶眞如

  森蘿及万像 一法更無餘 

  

  바다가 밝아 외로운 달 비추니 

  하늘과 땅 사이가 훤하게 비었다.

  적적하니 빈 형체와 그림자요 

  명명하니 한 가닥의 진여로다.

  海澄孤月照 天地洞然虛

  寂寂空形影 明明一道如 

  

  선사는 장경(長慶) 3년 계묘(癸卯) 6월 23일에 문인들에게 목욕물을 준비하라 하여 목욕을 마치고 말했다.

  "나는 길을 떠나야 되겠다."

  그리고는 삿갓을 쓰고 주장자를 짚고 신을 신으려 한 발을 드리워 그 발이 땅에 닿기 전에 떠나니, 춘추(春秋)는 86세요, 시호는 지통(智通) 대사이며, 탑호(塔號)는 묘각(妙覺)이다. 유가(劉軻)가 비문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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