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德山) 화상
용담(龍潭)의 법을 이었고, 낭주(郎州)에 살았다. 휘(諱)는 선감(宣鑒)이요, 성은 주씨(周氏)이며, 검남(釰南) 서천(西天) 사람이다.
날 때부터 훈채(葷菜)를 먹지 않았고, 어릴 때부터 매우 영리하였다. 20세가 되자 스승을 맞이하여 그 해 구족계를 받고 율장을 정교하게 연구하였으며, 또한 해탈의 상종(相宗)에 있어서는 단연코 독보적이었다. 그는 항상 이런 말을 했다.
"한 터럭이 큰 바다를 삼키되 바다의 성품은 줄지 않고, 작은 겨자씨를 칼날에 던지되 칼날은 까딱도 않는다. 그러나 배울 것과 배우지 않을 것은 오직 자신만이 알 뿐이다."
마침내 천하에 행각(行脚) 길을 떠나 제방의 종사를 찾았으나 이르는 곳마다 제접하는 방법이 모두 변변치 못했다. 나중에 용담이 석두(石頭)의 두 잎사귀 중 하나라는 것을 듣고, 옷깃을 여미고 찾아갔다. 처음 뵈니 단칸방에 문도(門徒)도 없이 혼자 지내기에 며칠 동안 시봉을 드렸다.
어느 날 밤, 참문한 끝에 용담이 말했다.
"어째서 돌아가지 않는가?"
선사(덕산)가 대답했다.
"어둡습니다."
용담이 촛불을 켜서 선사에게 주자 선사가 받으려는데 용담이 불어 확 꺼 버렸다. 이에 선사가 절을 하니, 용담이 물었다.
"무슨 도리를 보았는가?"
"지금부터는 절대로 천하 노화상들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이렇게 물었다.
"용담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래인데 막상 와서 보니, 못도 보이지 않고 용도 보이지 않을 때엔 어찌합니까?"
용담이 대답했다.
"그대가 몸소 용담에 왔느니라."
선사가 이 순수한 말씀을 듣자 기쁨에 넘쳐 찬탄하였다.
"설사 온갖 현묘한 변재를 다한다 하여도 한 터럭으로 허공을 재는 것 같고, 세상의 중요한 기틀을 다한다 하여도 한 방울을 큰 바다에 던진 것 같도다."
그리고는 마침내 금아의 용적[金牙之勇敵]7)을 거두고, 경덕의 웅정을 간직하며[藏敬德之雄征]8) 눈[雪] 위에 섰던 현묘한 무리를 뒤따르고, 의발을 전하는 비밀한 뜻을 이으며, 시중을 들면서 날마다 묻고 배우기를 더욱 정미롭게 하여 다시는 딴 곳으로 가지 않았으니, 예원(澧源)에 30여 년간 머물렀다.
사태가 가라앉은 뒤, 함통 원년에 무릉(武陵) 태수 살정망(薩廷望)의 청원으로 비로소 덕산(德山)에 살게 되니, 이로부터 천하의 납자들이 모여들어 여름 겨울 없이 항상 5백 명이 넘었다.
선사가 언젠가 대중에게 이렇게 설법하였다.
"여러분, 누가 능히 내 얼굴9)을 그리겠는가? 있거든 나오라. 내가 그를 알고자 하노라."
이 말을 들은 이는 모두가 겁에 질려 아무도 대꾸하는 이가 없었다.
선사가 또 말했다.
"그대들이 마음에 아무 일 없이 하고 일에 무심하기만 하면 그제야 비로소 묘하게 되리라. 만일 털끝만치라도 생각에 매이면 모두가 스스로 속이는 것이요, 잠깐이라도 망정을 일으키면 만 겁에 얽매이리라."
선사가 유나(維那)에게 물었다.
"오늘 새로 온 이가 몇인가?"
7) 금아는 부처님의 말씀을 일컫고, 용적의 적(敵)은 육사외도(六師外道)를 의미한다. 따라서 위 글의 번역은 "육사외도를 용맹하게 논파한 부처님의 말씀을 섭렵하고"란 번역이 아닌가 싶다.
8) "웅대하게 정벌되듯이 중국에 전해진 경전을 갈무리하고"의 뜻인 것 같다.
9) 용모를 말한다.
"여덟 사람이 왔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함께 오라고 해라. 단안을 내어 처리하리라."
어떤 스님이 화산(禾山)에게 물었다.
"'함께 오라고 해라. 단안을 내어 처리하리라' 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화산이 대답했다.
"문 밖에 나서자마자 이내 허름한 나그네임을 아느니라."
"어찌하여야 그런 허물을 면합니까?"
"만리 길을 오지 않아야 도리어 그를 인정하는 것이리라."
흠산(欽山)이 선사에게 물었다.
"천황(天皇) 또한 그러하였는데 화상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천황과 용담의 이야기를 해 보라."
흠산이 절을 하자 선사가 때리니, 운(雲) 대사가 대신 말했다.
"'그렇게 하시면 헛소리하시어 실수한 것을 스스로 헤아리는 꼴이 됩니다' 해야 하느니라."
선사가 또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물으면 허물이 있고 묻지 않아도 어긋난다."
이에 어떤 스님이 얼른 절을 하자 선사가 때렸다. 이에 스님이 말했다.
"제가 막 절을 하려고 하는데 어째서 때리십니까?"
"그대 입 열기를 기다려서 무엇을 하겠는가?"
선사가 스님이 오는 것을 보자, 얼른 문을 닫아 버렸다. 스님이 와서 문을 두드리니, 선사가 물었다.
"누구냐?"
"사자 새끼올시다."
이에 선사가 문을 여니, 그 스님이 절을 했다. 이에 선사가 그의 목덜미에 올라타고 외쳤다.
"이 짐승아, 어디를 갔다 오는가?"
선사가 병환으로 누웠는데 누군가가 물었다.
"화상께서 병이 드셨는데 병이 들지 않는 이도 있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병이 들지 않는 자입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아야, 아야니라."
용아(龍牙)가 물었다.
"학인(學人)이 막야검(鏌鎁劍)을 짚고 와서 스님의 목을 베려 하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대는 어떻게 손을 쓰려 하는가?"
"그러시면 스님의 머리가 땅에 떨어집니다."
선사가 대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용아가 동산(洞山)에게 가서 위의 일을 자세히 진술하니, 동산이 말했다.
"떨어진 덕산(德山)의 머리를 가져오너라."
용아가 대답이 없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보리(菩提)입니까?"
선사가 꾸짖으며 말했다.
"가거라. 여기에다 똥을 싸지 말라."
암두(岩頭)가 선사에게 물었다.
"범부와 성인의 거리가 얼마입니까?"
선사가 외마디 할을 하였다.
남전(南泉) 화상의 제1좌가 고양이를 길렀는데 옆자리의 스님이 그의 다
리를 부러뜨렸다. 이로 인해 싸움이 났는데 누군가가 화상에게 아뢰니, 화상이 당장 내려와서 고양이를 번쩍 들고 외쳤다.
"누군가가 말할 수 있겠는가? 만일 누군가가 말할 수 있다면 이 고양이의 목숨을 구제할 것이다."
대중에서 대답하는 이가 없자 화상이 칼을 들어 고양이를 두 토막으로 끊어 버렸는데, 설봉(雪峰)이 이 일을 들어 선사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고양이를 벤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갑자기 설봉을 때리니, 설봉이 달아났다.
이에 선사가 다시 설봉을 불러 세우고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대를 위해 그토록 애쓰는데 그대는 모르는구나."
선사가 암두에게 물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것을 잘 지니는 것이 좋겠도다."
"모르는데 무엇을 잘 지닙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마치 무쇠 말뚝 같구나."
설봉이 덕산(德山)에 있을 때, 법당에 올라갔다가 화상을 뵙고는 이내 뒤돌아섰다. 이를 본 선사가 말했다.
"이 사람은 짝하기 어렵겠구나."
장경(長慶)이 이 일을 들어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가 설봉과 덕산이 만나던 곳인가?"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장경이 대신 말했다.
"'그래도 옳은 것입니까?' 했어야 한다."
그 밖에 긴요한 일이 있으니, 광회(廣誨)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함통(咸通) 6년 을유 12월 3일에 갑자기 문인들에게 고했다.
"허공을 더듬고 메아리를 뒤쫓으면서 그대들의 심신만 괴롭히누나. 꿈을 깨면 잘못을 깨달으리니, 깨달은 뒤에는 무슨 일이 있겠는가?"
이렇게 말씀을 마치고는 단정히 앉아 조용히 열반에 드니, 춘추(春秋)는 84세요, 승랍(僧臘)은 65세였다. 시호는 견성(見性) 대사요, 사문 원회(元會)가 비문을 지었다.
정수(淨修) 대사가 찬(讚)했다.
덕산(德山)은 낭주 사람,
굳센 뼈대, 짝할 이 없다.
조사도 부처도 물리쳤거늘
어찌 닦아 증득함을 세우랴.
불법의 하늘에 밝은 해요
괴로운 바다의 자애로운 배라.
누가 그 참된 발자취를 따라 오르리.
설봉과 암두로다.
德山朗州 剛骨無儔
尙袪祖佛 豈立證修
釋天杲日 苦海慈舟
誰攀眞躅 雪峰巖頭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6 권 > 281 - 290쪽
K.1503(45-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