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 제 6 권
정수선사 문등 지음
김월운 번역
투자(投子) 화상
취미(翠微)의 법을 이었고, 서주(舒州)의 상성현(相城縣)에 살았다. 그의 휘(諱)는 대동(大同)이며, 서주의 회녕현(懷寧縣) 사람으로서 성은 유씨(劉氏)였다. 동도(東都) 보당사(保唐寺) 만(滿) 선사 밑에서 처음에 소승(小乘)의 법을 배웠는데, 잘못된 줄 알고는 그것을 버리고는 삼장을 두루 궁구하여 그윽한 진리를 널리 깨달아서 곧장 취미(翠微)에게 가서 물었다.
"2조(祖)가 처음 달마(達摩)를 뵙고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취미가 대답했다.
"그대가 지금 나를 만나서는 무엇을 얻었는가?"
선사는 그의 문하에 귀의하여 마음을 쉰 뒤에 딴 곳으로 갔다.
또 하루는 취미가 법당에서 행도(行道)하는데, 선사가 그의 앞으로 다가가 절을 하고 물었다.
"서쪽에서 오신 비밀한 뜻을 화상께서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가르치십니까?"
취미가 잠시 걸음을 멈추자 선사가 다가가서 물었다.
"화상이시여, 가르쳐 주십시오."
취미가 대답했다.
"옳지 않다. 두 번째 것은 마치 더러운 흙탕물을 뿌리는 것과 같은데 얻어서 무엇하리요."
선사가 말끝에 진리를 깨달아 절을 하고 물러갔다.
취미가 말했다.
"감추지 마라[·]."1)선사가 대답했다.
선사가 대답했다.
"때가 되면 뿌리와 싹이 저절로 납니다."
다시 물었다.
"듣건대 단하(丹霞)가 목불을 태웠다는데 화상께서는 무엇으로 나한(羅漢)에게 공양하시렵니까?"
취미가 대답했다.
"태워도 태워지지 않으니 공양하려면 또한 마음대로 공양하느니라."
선사가 가르침을 받고, 진리를 깨달은 뒤에는 본성[性]에 따라 소요(逍遙)하면서 인간 세계에 거리낌 없이 다니며 좋은 경치를 구경하다가 이내 고향으로 돌아와 투자산(投子山) 밑에다 자리를 잡고, 평생을 마칠 뜻으로 암자를 지어 마음을 쉬고자 자취를 감추었더니, 건부(乾符)와 중화(中和) 연간에 이르러 난리가 일어나 물이 끓듯, 고래가 바닷물을 삼키듯 월(越)나라와 초(楚)나라와 오(吳)나라의 전쟁이 치열하며, 미친 오랑캐가 날뛰고 도적떼가 설치니, 어찌 나라만이 어지러우랴. 심지어 절까지도 파괴되었다.
이 때에 폭도들의 괴수가 칼을 들고 암자 앞에 나타나 소리를 높여 외쳤다.
"화상은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나는 여기서 마음을 전하오."
괴수가 다시 물었다.
"무슨 놈의 마음을 전한다는 것인가?"
선사가 대답했다.
"부처님의 마음이오."
1) 타(·)는 췌(揣)와 같다.
괴수는 잠시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얼굴빛을 펴고 말했다.
"화상의 가풍(家風)은 참으로 부사의하여서 우리 따위가 헤아릴 바 아닙니다."
그러고는 이내 칼을 다시 칼집에 넣고 입었던 옷과 지녔던 보배 장식품들을 풀어서 시주하고 물러갔다.
이로부터 날마다 선객들이 찾아왔는데, 어떤 사람이 물었다.
"범부와 성인의 거리가 얼마입니까?"
선사가 승상(繩床)을 내려와 서니, 다시 물었다.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거늘, 어째서 도리어 놓아두라고 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렇게 왔으니 수고했다."
"선법을 알 수 있도록 한 말씀해 주십시요."
선사가 주장자로 때리니, 다시 물었다.
"어째서 말해 주시지 않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토록 좋고 나쁨을 모르는가?"
"고인이 말하되, '죽은 뒤엔 산밑에 가서 한 마리의 물소가 되리라' 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고삐가 항상 있느니라."
"고삐가 항상 있지 않을 때엔 어떻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또다시 속인을 끄느니라."
"대유령(大庾嶺)까지 따라갔건만 어째서 발우를 들지 못했습니까?"
선사가 누더기를 들어 올리니,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것을 물은 것이 아닙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들지 못하는 꼴을 봐라."
"부처님들과 조사들이 대대로 전했다 하는데 전한 것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늙은이가 어찌 그런 헛소리를 다 들어주리."
"목구멍 입술을 떠나서 한 말씀 일러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내가 말이 막히기만을 바라는구나."
"달마(達摩)께서 오시기 전엔 어떠하였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온 하늘과 땅에 두루 하였느니라."
"온 뒤엔 어떠합니까?"
"덮거나 가릴 수 없었느니라."
"여러 성인들은 무엇으로 인해서 깨달았습니까?"
"병이 있어도 약을 먹을 필요가 없느니라."
"그렇다면 닦고 증득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영원히 기뻐할 수도 없고, 영원히 성낼 수도 없느니라."
"요긴한 곳에도 소식이 통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나에게 그렇게 물은 것이구나."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없느니라."
"끝내 어찌하여야 됩니까?"
"그것이 바로 긴요한 곳이니라."
"어찌하여야 눈앞의 사물에 걸리지 않겠습니까?"
"벌써 범했느니라."
"어디가 범한 곳입니까?"
"아까 무어라 했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빨리 상응(相應)하려면 다만 불이(不二)만을 말하라' 하였는데, 화상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네가 물으니 내 다시 말해 주리라."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불이(不二)만을 말하느니라."
선사가 언젠가 말했다.
"제방에서는 일체의 구절을 한 구절로 다 말하는데 노승은 그렇지 않아서 한 구절로써 일체 구절을 다 말하노라."
어떤 스님이 나서서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께서 한 구절로써 일체 구절을 다 말해 버리는 구절입니까?"
"오늘 식당에서 볶은 밥을 먹었느니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말을 하되 혀에 관계치 않고, 이야기를 하되 소리가 아니니라' 했는데, 어떤 것이 말할 줄 아는 것입니까?"
"모든 것을 몽땅 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혀에 관계치 않는 것입니까?"
"소리를 들을 귀가 없느니라."
"옛사람이 '눈앞에 법이 없으나 뜻이 눈앞에 있다' 했는데, 어떤 것이 눈앞에 뜻을 둔 것입니까?"
"미치지 않는 것이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것은 눈앞의 법이 아니니 귀와 눈으로 미칠 바가 아니니라."
조주(趙州)가 투자산(投子山) 밑에 이르니, 가게가 있기에 사람에게 물었다.
"투자산이 어디인가?"
가게를 보던 속인이 대답했다.
"왜 물으시오?"
조주가 대답했다.
"화상의 성화를 오래 전부터 들었기에 뵙고 예배하려는 것이오."
속인이 말했다.
"가깝기는 하나 산에 오를 필요가 없소. 내일 아침에 돈을 얻으러 올 터이니 그 때 만나시오."
조주가 말했다.
"그렇다면 화상께서 오실 때에 어떤 납자가 여기에 와 있다고 말하지 마시오."
속인이 승낙하였다.
이튿날 과연 내려와서 돈을 얻으니, 조주가 나서서 붙들고 말하였다.
"투자의 성화를 들은 지 오래인데 요것뿐인가?"
투자가 이 말을 듣자마자 이내 몸을 숙이고 물러갔다. 그리고 다시 조리(笊籬)를 들어 올리고 말했다.
"소금 값 조금 주시오."
조주가 곧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니 투자는 그대로 돌아갔다.
조주가 좀 뒤떨어져 가면서 투자에게 물었다.
"죽음 속에서 살아날 길을 얻을 때가 어떠합니까?"
투자가 대답했다.
"밤중에 다니지 말고 날이 밝거든 가라."
조주는 그만 내려와서 곧장 달아나 버렸다.
투자가 사미(沙彌)를 시켜 "내 뜻이 무엇인가?" 하고 묻게 하였다.
사미가 가서 조주를 불러 세웠다. 조주가 고개를 돌리자 사미가 물었다.
"화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태백(太伯)을 만났구나."
사미가 돌아가서 투자에게 이야기를 하니, 투자가 크게 웃었다.
어떤 스님이 설봉(雪峰)에게 가서 이 일을 들어 물었다.
"옛사람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설봉이 대답하였다.
"내가 호백(胡伯)이라 여겼더니, 다른 호백이 여기 있었구나."
어떤 스님이 황룡(黃龍)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밤중에 다니지 말고 날이 밝거든 가라' 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황룡이 대답하였다.
"떡을 씹고 노백(魯伯)을 맛보느니라."
다시 물었다.
"4조(祖)를 보기 전에는 어떠하였습니까?"
황룡이 대답하였다.
"있느니라."
"4조를 본 뒤엔 어떠합니까?"
황룡이 답하였다.
"있느니라."
황룡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운거(雲居)에서 옵니다."
"여기와 비교하니 어떠하던가?"
스님이 대답을 못 하고, 운거에게 돌아가서 고하니, 운거가 말하였다.
"남쪽에는 설봉(雪峰)이 있고, 북쪽에는 조주가 있구나."
투자가 잠시 문을 열고 동쪽 서쪽을 두루 살피니, 대중이 함께 몰려서 올라오자 투자가 얼른 문을 닫았다.
이에 어떤 스님이 석문(石門)에게 물었다.
"투자가 문을 연 뜻이 무엇입니까?"
투자가 대답하였다.
"문을 닫는 것이야 그만두더라도 문을 닫지 않을 때 그대는 어디서 알아차리겠는가?"
선사가 어느 때 이렇게 말했다.2)"그대들이 □□ 한가한 데서 벗어나 상응하지 못할 때 무량겁으로부터 모든 곳에서 마음을 다급히 써서 자신의 대사(大事)를 오히려 부질없는 일로 만들어 서로 상응하기 어렵게 한다. 닦아서 각자의 일을 마치려 하지 말아라. 옷을 □할 때 비로소 □□하면 서둘러도 소용이 없게 된다.
"그대들이 □□ 한가한 데서 벗어나 상응하지 못할 때 무량겁으로부터 모든 곳에서 마음을 다급히 써서 자신의 대사(大事)를 오히려 부질없는 일로 만들어 서로 상응하기 어렵게 한다. 닦아서 각자의 일을 마치려 하지 말아라. 옷을 □할 때 비로소 □□하면 서둘러도 소용이 없게 된다.
노승이 이곳엔 교묘한 말이 없으니 마치 □□□한 사람이 음식을 씹는 것
2) 이하의 □ 부분들은 고려대장경 원문에서 글자 식별을 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처럼 오직 그대들의 물음에 따라 대답할 뿐이다. 그대들이 만약 □□□□□하지 않는다면 어느 곳을 향해 얻을 수 있겠는가?
만약 또다시 그대들에게 향상(向上)한 것을 말해 주어 □□□ 향해 아무 일 없게 한다 해도 모두가 치달려 짓는 것이니, 그대들에겐 깨달을 때가 없느니라. 너희들은 이름을 쫓아 □□□ 치달려 짓지 마라. 그리하면 깨달음의 일 또한 그대들이 관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니 모두가 허물이로다. 비록 그렇다 하나 천지를 감싸 □□□□□□□□□□□□□□한 법에로 의지 □□□□□□ "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이여, 바로 가르쳐 주십시오."
선사가 "와!" 하니, 스님이 물었다.
"이것뿐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도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부질없는 말을 하지 마라."
선사는 갑술년 4월 6일에 가부좌를 하고 단정히 앉아서 초연히 세상을 떴으니, 춘추(春秋)는 96세요, 승랍(僧臘)은 7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