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祖堂集)

삼평(三平) 화상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1:10
 

 

 

삼평(三平) 화상

  

  태전(太顚) 선사의 법을 이었고, 장주(漳州)에 살았다. 휘(諱)는 의충(義忠)이요 성은 양씨(楊氏)이며, 복주(福州)의 복당현(福唐縣) 사람이었다. 태전 선사에게 입실하여 깊은 계합을 얻은 뒤에 무종(武宗)의 사태(沙汰)를 만나 삼평산에 은닉해 있었다.

  나중에 선종(宣宗)이 다시 불법을 드높이는 때를 만났으나 그 바다 어귀에 찾아오는 도반은 아주 끊어졌다.

  나중에 서원(西院)의 대위(大潙)가 세상에 나오자 대중 가운데 일을 좋아하는 열 몇 사람이 가서 굳이 청하니, 비로소 현묘한 관문을 열게 되었다. 이 때 특별히 황대구(黃大口)라 불리는 어떤 스님에게 선사가 물었다.

  "대구(大口 : 입이 크다는 뜻) 화상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래인데 스님이시오?"

  그 스님이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선사가 말했다.

  "입이 얼마나 큽니까?"

  "온몸이 입입니다."

  "그러면 똥은 어디로 누시오?"

  그 당시 스님이 대답을 못 하자 이로부터 선사의 명성이 천하에 퍼져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무리들이 질병과 노고를 꺼리지 않고 멀리서 모여들었다.

  

  선사가 대중에게 이렇게 설법하였다.

  "요즘 출가한 이들은 모두가 널리 구하는 재주만을 배워서 자기의 안목으로 삼으니, 상응(相應)할 시기가 어디 있겠는가? 그대들이 현묘한 진리를 배우고자 한다면 여러분 각자에게 본분의 일이 있으니, 직접 체험해 얻지 않

  

  고 무엇을 하는가? 마음을 분주히 하거나 입을 중얼거린다고 거기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분명히 말하나니, 만일 수행하는 방법이나, 여러 성인들이 교화를 펴시던 길을 알고자 한다면 물론 대장경의 가르침에 그것이 있지만 종문의 일이라면 그대들 마음을 잘못 쓰지 말아야 한다."

  이 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배울 길이 있습니까?"

  "미끄럽기가 이끼와 같은 길이 한 가닥 있기는 하다."

  "학인(學人)도 밟을 수 있습니까?"

  "마음을 움직이려 하지 말고 그대 스스로 보라."

  다시 물었다.

  "3승의 12분교는 학인이 의심하지 않거니와 화상께서는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바로 보여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대덕아, 거북 털의 불자(拂子)와 토끼 뿔의 지팡이는 어디에다 숨겨 두었는가?"

  "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이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나무랐다.

  "살덩이는 천 근이나 되지만 지혜는 한 푼의 무게도 안 되는구나."

  이에 하옥(荷玉)이 송했다.

  

  거북 털의 불자와 토끼 뿔의 지팡이를 

  들고 와서 아무 데나 둔다.

  옛사람의 일을 말끝에 알아들으면 

  유(有)뿐만 아니라 무(無)까지도 없어진다.

  龜毛拂兎角杖 拈將來隨處放 

  古人事言下當 非但有無亦喪

  

  왕(王) 시랑(侍郞)이 선사에게 물었다.

  "검정콩이 싹이 트지 않을 땐 어떠합니까?"

  

  "부처님들도 모르신다."

  선사가 이에 대해 송했다.

  

  보리 지혜의 해는 아침마다 비치고 

  반야의 시원한 바람, 저녁마다 분다.

  여기에는 잡된 나무는 나지 않나니

  산에 가득한 밝은 달이 선법(禪法)의 나무라네.

  菩提慧日朝朝照 般若涼風夜夜吹

  此處不生聚雜樹 滿山明月是禪枝

  

  선사가 또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아직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다면 안 될 일이고, 만일 이미 만났다면 의당 조금이라도 그 의도를 알아차려 깊은 골짜기 우아한 봉우리 바위 밑에서 외로이 잠을 자고, 나무 뿌리를 먹고 풀 옷을 지어 입나니, 그렇게 해야만 조금 상응(相應)할 수 있으리라. 만일 여전히 설치면서 알음알이로 뜻과 말만 구한다면 만리 밖에서 고향을 바라보는 격이리라. 진중(珍重)하라!"

  선사가 게송 세 수를 남겼다.

  

  이 견문이 견문이 아니고

  그대에게 바칠 빛과 소리도 없다네.

  그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소식 분명히 안다면 

  체와 용이 나뉘든, 나뉘지 않든 무방하리라.

  卽此見聞非見聞 無餘聲色可呈君

  个中若了全無事 體用無妨分不分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 본래 티끌 아니나 

  심식(心識)의 바다에 파도가 일면 절로 자신을 잊나니

  그 형상은 푸른 못이 얼음과 거품에 덮인 것 같고 

  

  영특한 왕이 도리어 나그네 신세된 것과도 같네.

  見聞覺知本非塵 識悔波生自昧身

  狀似碧潭氷沫覆 靈王飜作客中賓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 본디 요인이 아니니

  그 자리는 비고 깊어서 망(妄)도 진(眞)도 끊겼네.

  성품 보아 어리석은 업 짓지 않으면

  훤하게 밝고 희어서 자기의 소중한 보배이리라.

  晃聞覺知本非因 當處虛玄絶妄眞

  見性不生癡愛業 洞然明日自家珍

  

  선사가 함통(咸通) 13년 11월 6일에 입적하니, 춘추(春秋)는 92세였다. 이부시랑(吏部侍郞) 왕풍(王諷)이 탑명(塔銘)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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