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록(林間錄)

10. 황룡스님의 3관화두 / 황룡 혜남(黃龍慧南)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12. 08:45

 

 

 

혜남(慧南)스님이 적취암(積翠庵:黃檗山)에 머물 무렵 ‘부처님 손[佛手]’ ‘나귀다리[驢脚]’ ‘태어난 인연[生緣]’의 화두* 로 납자에게 묻자 많은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그저 눈을 감고 정(定)에 든 듯 하였을 뿐, 한번도 맞았다 틀렸다 하지 않았다.

납자들이 추구해 보았지만 끝까지 그 시비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세상에서는 이를 ‘3관(三關)화두’라

하게 되었다.

만년에 스님은 게송 세 수를 지었는데 여기에서는 그 중 두 수만을 기록한다.

 

   나의 손과 부처님 손을 함께 드노니

   선승들이여 곧바로 알아차리면

   무기를 쓰지 않는 곳에서

   자연히 부처와 조사를 뛰어넘으리.

 

   我手佛手齊擧    禪流直下薦取

   不動干戈道處    自然超佛越祖

 

   나의 발과 나귀 발이 가지런히 걸어가니

   걸음마다 모두가 무생(無生)에 계합하네

   구름 걷히고 태양이 나타나기만 하면

   이 도는 바야흐로 종횡무진하리라.

 

   我脚驢脚並行    步步皆契無生

   直待雲開日現    此道方得縱橫

 

   운개 지(雲蓋智)스님이 한번은 나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난날 황벽스님을 두 번째 찾아갔을때 연못가에 이르러 산에서 내려오는 어느 스님을 보고는 물었다.

   ‘3관화두*에 대하여 그대는 요즈음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 뜻을 알게 해줄 만한 매우 절묘한 말들이 있습니다.

<나의 손은 어찌하여 부처님의 손과 닮았을까>에 대하여는

<달빛아래 비파를 켜는구나[月下弄琵琶]>라고 하고,

어떤 이는 <먼길 위에 빈 바릿대를 들고 있다[遠道擎空鉢]>라고 합니다.

<나의 다리는 어찌하여 나귀다리와 닮았을까>에 대하여 어떤 이는

<백로가 눈 위에 서 있어도 같은 색이 아니다[鷺鷥立雪非同色]>라고 하며,

어떤 이는 <텅빈 산골에 떨어진 꽃잎을 밟는다[空山踏落花]>고 합니다.

<어느 곳이 너의 태어난 인연이냐>는 화두에 대하여 어떤 이는,

<나는 어느 어느 곳 사람이다[某甲某處人]>라고 합니다.’

 

   그때 나는 그를 놀려 주었다.

   ‘길을 막고 누군가 그대에게 부처님 손, 나귀 다리, 태어난 인연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대는 <먼 길 위에 빈 바릿대 들고 있다>라고 대답할 것인가?

아니면 <백로가 흰 눈 위에 서 있어도 같은 색이 아니다>라고 답할 것인가?

만일 이 두 가지로 동시에 대답한다면 이는 불법을 혼란시키는 일이며,

이 가운데에서 한 가지를 가려 대답한다면 기연을 다루는 솜씨[機事]치고는 치우치고 메마르다 하겠다.’

 

   그러자 그 스님은 나를 똑바로 쏘아본 채 말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설봉스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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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룡 혜남 스님은 이런 말로 납자를 지도하였다.

“내 손은 어째서 부처님 손과 같은가?

내 다리는 어째서 나귀다리와 같은가?

사람마다 태어난 인연처가 있는데, 어디가 그대들의 태어난 인연인가?”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총괄하여 송하였다.

 

태어난 인연처 끊길 때 나귀다리 드리우고

나귀다리 거둘 때 부처님 손 열린다

5호(五湖)에 참선하는 납자들이여

세 관문 하나하나를 통과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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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산회암(越山晦巖)스님이 편집한「인천안목(人天眼目)」에서는 「여산민고불어록(廬山旻古佛語錄)」에 있는 황룡 3관화두를 인용하여 싣고 있는데, 게송 세 수 중 여기서 빠진 한 수는 다음과 같다.

 

태어난 인연처에 길이 있는 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지만

해파리가 언제 한번 새우를 떠난 적이 있던가

동녘에 뜨는 해를 볼 수만 있다면

뉘라서 더 이상 조주(趙州)의 차를 마시리.

 

生緣有路人皆委    水母何會離得蝦

但得日頭東畔出    誰能更喫趙州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