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록(林間錄)

24. 도오스님의 종파에 대한 시비 / 천황 도오(天皇道悟)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12. 10:30

   형주(荊州) 천황사(天皇寺)의 도오(道悟: 748~807)스님에 대한 「전등록」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도오는 석두 희천(石頭希遷: 700~790)스님의 법을 이어 천황사(天皇寺)에 주지하였으며,

무주(婺州) 동양(東陽) 사람으로 속성은 장씨(張氏)이다.   

14세에 출가하여 명주(明州)의 큰스님에게서 삭발하였고,

25세에 항주(杭州) 죽림사(竹林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그리고는 처음 경산 국일(徑山國一)스님을 찾아 5년 동안 시봉하다가 대력(大歷) 연간(766~779)에 종릉(鍾陵)에 가서 마조(馬祖)스님을 찾아 뵙고, 3년 후 석두 희천의 문하에 이르렀다.  

원화(元和) 정해(807) 4월에 입적하니, 향년 60세 법랍은 35세이다.”

 

   그러나 달관(達觀: 989~1060, 임제종, 曇穎스님의 호)스님의 「오가종파집(五家宗派集)」에서는,

‘도오는 마조스님의 법을 계승하였다’고 하면서 당(唐) 구현소(丘玄素)가 지은 비문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였다.

   “스님의 호는 도오이며, 자궁(渚宮)의 사람으로 속성은 최씨(崔氏)이니, 바로 최자옥(崔子玉)의 후손이다.  

15세에 장사사(長沙寺) 담저(曇翥)율사에게 출가하여 23세에 숭산(崇山)의 율덕(律德)스님을 찾아 계를 받았으며,

석두 희천스님을 참방, 2년 동안 수업 정진하였으나 깨달은 바 없어 장안으로 들어가 남양 혜충(南陽慧忠: ?~775)국사를 시봉하였다.  

 

그러다가 34세에 시자 응진(應眞)스님과 함께 강남 지방으로 돌아와 마조스님을 뵙고 한 마디 말에 크게 깨치자 마조스님은 축하하며 ‘뒤에 지난날 살던 곳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이 말씀대로 다시 자궁으로 돌아왔으며, 원화(元和) 13년(818) 무술 4월 초에 병세가 악화되어 13일에 입적하니, 향년 82세 법랍은 63세이다.”

 

   이 두 전기를 살펴보면 전혀 다른 두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현소의 비문에는, ‘스님의 전법제자 숭신(崇信)은 예주(澧州) 용담사(龍潭寺)의 주지이다’ 하였고,

남악 회양(南嶽懷讓: 677~744)스님의 비문은 당(唐)대의 저명인사 귀등(歸登)이 지은 것인데,

그 말미에 몇몇의 법손(法孫)을 나열하고 있는 중에 스님의 이름이 끼어 있다.  

또 규봉(圭峯)스님이 재상 배휴(裵休)에게 불법의 뜻을 대답하는 편지에서 마조스님의 전법제자 여섯 사람을 열거하였는데,

맨 처음 ‘강릉 도오(江陵道悟)’라 하고 그 아래 붙여서 ‘경산스님에게 도를 얻었다[兼稟徑山]’고 한다.   그러니 요즈음 운문종과 임제종에서 부질없이 자기네 조사라 우기는 것은 웃기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