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바탕[心體]의 신령한 지각[靈知]은 어둡지 않아서,
투명하고 맑으며 전혀 차별된 상(相)이 없는 보배구슬과도 같다.
이렇듯 그 체(體)가 밝은 까닭에 사물을 대하면 모든 색상(色相)이 그대로 나타나며 색상은 갖가지로 다르나 구슬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러므로 까만 구슬을 보고 구슬이 까맣다고 말하는 것은 구슬을 바르게 본 사람이 아니며,
그렇다고 까만 색상을 떠나서 구슬을 찾는 것 또한 구슬을 바르게 본 사람이 아니다.
또한 구슬이란 밝은 빛도 까만 빛도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한
구슬을 바르게 본 사람이 아니다.
마조스님께서 ‘거짓으로 참을 밝힌다[卽妄明眞]’하심은 바로 까만 것을 구슬이라 생각하는 것과 같으며,
북종 신수(北宗神秀: ?~706)스님께서 ‘거짓된 것을 모두 없애야 바야흐로 각성(覺性)을 볼 수 있다’하심은 망령을 떠나서 참을 추구하는 것이니,
이는 까만 색을 떠나서 구슬을 찾는 것이며,
우두(牛頭)스님께서 ‘모든 것은 꿈과 같아서 본래 아무 일 없으니 참이니 망령이니 하는 것은 모두 없는 것이다’ 함은 바로 밝은 빛도 까만 빛도 아무 빛도 없는 그것이 구슬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유독 하택 신회(荷澤神會: 670~762)스님만은 ‘공한 모습[空相處]에서 알고 보고 하는 것[知見]을 가리켜 완전한 앎[常知]’이라 하니 이야말로 구슬의 본체를 바로 보고 갖가지 색을 돌아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종밀(宗密)스님이 마조스님의 가르침을 까만 구슬에 비유한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마조스님이 ‘거짓으로 참을 밝힌다’ 하신 말씀이 방편설이라는 점은 불법이 무엇인가를 조그만큼만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다.
마조스님은 성사(聖師: 반야다라)의 예언대로 태어나 중국의 법왕이 되었고*
그의 문하에서는 남전(南泉), 백장(百丈), 대달(大達: 汾州無業 하권 21번 참조), 귀종(歸宗)스님과 같은 큰스님들이 배출되었는데,
그들은 삼장(三藏)을 널리 섭렵하여 참과 거짓[眞妄]에 대한 말씀을 깊이 깨달았다.
그런 분들이 마조스님을 스승으로 높이 모셨는데 그의 도가 어떻게 검은 구슬에 불과하겠는가?
또한, 우두스님의 “모든 것은 꿈과 같아서 참과 거짓이 모두 없다”는 말도 매우 잘못된 것이다.
우두스님의 심왕명(心王銘)을 살펴보면,
앞 생각이란 허공과 같아
안다 하면 종지를 잃고
분명히 경계를 비추면
비추는 족족 어두워지니
이리저리 비춤이 없어야
가장 미묘한 깨달음이다
법을 안다 하나 알 것이 없고
알음알이가 없어야 요체(要諦)를 알게 되리라.
前際如空 知處迷宗
分明照境 隨照冥濛
縱橫無照 最微最妙
知法無知 無知知要
라고 하여 알고 보는 [知見] 병폐를 낱낱이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하택 신회스님은 공공연히 알고 보고 하는 것을 인정하니,
두 스님의 우열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두스님을 ‘마치 밝음도 어둠도 모두 없는 것을 구슬이라 생각하는 자’라 평가하니,
이는 우리를 거듭 속이는 말이 아니겠는가?
북종 신수스님의 이론이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논하려면 마땅히 그가 무슨 마음에서 이런 말을 하게 되었는가를 논하여야 한다.
신수스님은 오조 홍인(弘忍)스님의 으뜸가는 수좌로서 돈종(頓宗: 돈오의 종지)을 곧바로 가리킨 일이 있다.
비록 그의 근기가 오조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견문과 참선(參禪)을 매우 열심히 닦았던 그가 점수(漸修)의 종도(宗徒)가 되는 것을 어찌 달갑게 여겼겠는가?
당시 세상에는 조사들의 도에 대하여 의심과 확신이 반반이었다.
그리하여 ‘점수’를 하지 않고서 어떻게 단박에 깨칠 수 있을까?
하면서 시끄럽게 싸웠는데,
그런 자들은, 모두가 두 종파의 아류들이었지 신수스님의 본 마음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의 도를 그런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올바른 공론이랄 수 없다.
훌륭한 성인이 세상 인연을 따라서 불법을 성취시키는 방편은 한 가지가 아니라 한다.
드러나는 방편[顯權]이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방편[冥權]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방편은 외도[異道]나 그릇된 도라 하고,
보이는 방편은 친우(親友)이며 선지식이라고들 하니,
신수스님이 보이지 않는 방편을 쓰지 않았음을 그들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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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조스님이 남양 회양스님에게 말하였다. “인도 반야다라(般若多羅) 삼장이 예언하기를 ‘그대(회양)의 제자 중에 망아지 하나가 나와 세상사람들을 다 밟아 죽일 것이다'하였으니, 자네는 속으로 유념해 두고 성급하게 발설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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