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제 희운(斷際希運:?~856년경)스님은 지난날 낯선 스님[異僧]과 함께 천태산(天台山)을 구경하며 며칠을 다닌 적이 있다. 그때 강물이 넘쳐 건너지 못하고 지팡이를 꼽아 둔 채 우두커니 있노라니, 그 스님이 삿갓을 배로 삼아 올라타고 건너 버렸다. 이에 단제스님은 큰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내 진작 네가 이런 줄 알았더라면 다리를 동강 부러뜨려 놓았어야 마음이 후련했을텐데...”
그러자, 그 스님은 “도인의 날카로움을 저로서는 따라갈 수 없겠습니다” 하고 감탄하였다.
설봉(雪峯). 암두(巖頭). 흠산(欽山) 세 스님이 상중(湘中)지방에서 강남으로 들어와 신오산(新吳山) 아래에 이르렀을 무렵 흠산스님이 시냇물가에서 발을 씻다가 물 위에 떠내려 오는 나물을 보고서 기뻐하여 그것을 가리키며 두 스님에게 말하였다.
“이 산에는 반드시 도인이 살고 있다. 이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설봉스님은 발끈 화를 내며 말하였다.
“그대는 지혜의 눈이 너무나 혼탁하구나! 뒷날 어떻게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그대가 이토록 복을 아끼지 않으니, 산에 산다 한들 무슨 일을 하겠는가?”
예전 사람들은 스승을 가리고 벗을 사귐이 이토록 분명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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