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록(雲門錄)

2. 상당 대기 - 2

通達無我法者 2008. 3. 12. 21:26

 

 

2.
 스님께서 대중에게 법을 보이셨다.
 "나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여러분에게 말하노니, 당장에 아무 일 없어
진다 해도 벌써 서로를 매몰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을 쫓아 이해아려 하며 천차만별로 질문과 논란을 던지려 한다면
한바탕 말재주만을 늘릴 뿐, 도에서는 더더욱 멀어지리니 어느 때나
쉴 날이 있으랴.
 이 일이 말에 달렸다면 3승 12분교(三乘十二分敎)를 설해놓고도 어
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였겠으며, 무엇 때문에 교외별전을 말하였
겠는가. 배워서 이해하는 지혜로 치자면 비나 구름같이 자재하게 설
법하는 10지(十地) 보살도 견성(見性)에 있어서는 비단으로 한 겹 가
리고 보는 격이라고 꾸지람을 들었다. 그러므로 어쨌든 마음에 무엇
이라도 있으면 모두가 천지처럼 벌어진다는 것을 알겠다.
 그렇긴 하나 체득한 사람이라면 불을 말해도 입을 태우지 못하듯,
종일토록 무엇을 말해도 입을 뗀 일이나 한 글자도 말한 적이 없으며,
종일 옷 입고 밥 먹어도 쌀 한 톨 씹거나 한 오라기 실도 걸친 적이
없다. 그렇다해도 이것은 아직 가깝다 할 정도의 얘기니, 반드시 실
지로 체득해야만 하리라.
 납승 문하로 치자면 말 속에서 기미를 챈다 해도 부질없이 알음알이
를 내는 것이며, 설사 한마디 말끝에 바로 알아차린다 해도 까맣게
잠들어 있는 놈이다."
 그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그 한마디입니까?"
 "들어보이는 것이다."
 "말하면서 침묵하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맑은 기가 손바닥을 스친다."
 "무엇이 침묵하면서 말하는 것입니까?"
 "어험, 어험."
 "그렇다면 침묵하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을 땐 어떠합니까?"
 스님은 방망이로 그 스님을 쫓아버렸다.


 "무엇이 운문의 칼입니까?"
 "조사(祖師)다."


 "무엇이 모든 부처님의 해탈처입니까?"
 " 다른 질문 하나 해 보아라."


 "무엇이 큰길가의 흰 소*입니까?"
(큰길가의 흰 소:<법화경>비유품에 나오는 말로서 2승과 보살을
사슴수레 양수레에 비유하는데 비하여 큰길가의 흰 소는 일승(
一乘)을 비유한다.)
 "근기를 살펴보니 고칠 길이 없다."
 "어디에다가 놓아줍니까?"
 "두 번을 얘기를 주어도 티끌만큼도 넘어서지 못하는구나."


 "티끌마다 삼매란 무엇입니까?"
 "물통에는 물, 발우에는 밥이다."


 "무엇이 한결같고 현묘한 자체입니까?"
 "그대의 한마디 질문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이 현묘한 가운데 분명한 것입니까?"
 "안이다."
 "어떻게 해야 옳겠습니까?"
 "빨리 나가거라, 빨리 나가. 남 질문하는 데 방해될라."


 "어떤 경계가 사량하지 않는 경계입니까?"
 "알음알이로는 헤아리기 어렵지."
 

 "벽을 뚫고 빛을 훔쳐보는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좋다."


 "한마디 말을 다 했을 땐 어떻습니까?"
 "조각조각 찐어버린다."
 "그렇다면 스님께선 어떻게 손을 써서 수습하시렵니까?"
 "쓰레받기와 비를 가져 오너라."


 "어떻게 설명해 이끌어주면 찾아오는 근기를 저버리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이냐?"
 "그래도 온 마음은 알아주시려는지요?"
 "우선 서둘지 말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3승 12분교에서는 여러기지로 설명하였고, 세상의 모
든 큰스님들도 이리저리 자재하게 말해 주셨으니, 그 설
명한 도리를 바늘만큼이라도 끄집어내어 내게 가져와
보라. 내가 이렇게 말한다 해도 죽은 말이나 붙들고 고치
는 쓸데없는 짓이다. 그렇긴 하나 이 경계에 도달한 사람
이 몇이나 되는가. 그대들에게 말 속에 메아리가 있고 말
마디 속에 칼끝을 감추는 근기가 되기는 감히 바랄수도
없는 일이다. 눈깜짝할 사이에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
저 바람 잠잠하니 물결이 고요하구나. 귀신들아, 마음껏
먹어라(제가끝에 붙이는 축원)."


 "무엇이 법신을 꿰뚫는 한마디입니까?"
 "북두 속에 몸을 숨긴다."
(북두장신:<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일상을 뛰어넘은
도의 경지를 표현한 말이다.)


 "무엇이 근본 뜻입니까?"
 "묻지 않으니 답하지 않는다."


 "3계는 오직 마음이며 만법은 다 식이다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오늘은 대답하지 않겠다."
 "어째서 대답하지 않으십니까?"
 "어느 세월에 알겠느냐?"


 "무엇이 취모검(吹毛劍:모리카락을 놓고 훅 불면 베어진다는
날카로운 칼)입니까?"
 스님께서는 "깡마른 뼉다귀다"하더니 다시 "썩은 살이다" 하셨다.


 "어떤 것이 안팎으로 비추는 빛입니까?"
 "누구에게 묻는 말이냐?"
 "어떻게 해야 분명히 알 수 있을까요?"
 "홀연히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묻는다면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분명하게 안 뒤엔 어떻습니까?"
 "분명한 것은 우선 그만두고 나에게 안다는 것부터 가져와 봐라."


 "무엇이 급하고 간절한 한마디입니까?"
 "에, 에(말 더듬는 소리)"


 "무엇이 본래 마음입니까?"
 "드렁보이니 분명하다."


 "무엇이 납승의 면목입니까?"
 "한 번은 놓아준다."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소 앞에서 비파를 타는 격이다."


 "무엇이 대승의 수행입니까?"
 "손에 물통 하나를 들었다."


 "무엇을 '모든 것을 아는 청정한 지혜'라 합니까?"
 "승당(대중이 기거하는 집)에서 법당으로 들어간다."


 "무엇이 입을 떼지 않고 하는 한마디입니까?"
 "개 아가리 닥치는 게 좋겠다."


 "무엇이 해인삼매(海印三昧)입니까?"
 "그대는 절만 하다가 내가 오락가락하면 그때 가서
묻거라."
 

 "어떻게 해야 움찔했다 해도 차별에 떨어지지 않습
니까?"
 "남두성*은 일봅, 북두성(北斗星)*은 여덟이다."
(남두성:남쪽에 있는 별자리, 국자모양으로 6개로
되어있다.
 북두성:북쪽에 있는 별자리, 국자모양으로 7개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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