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록
황룡 4가어록 서 (黃龍四家語錄序)
말로써 충분하다면 종일 말해서 도를 다 말하겠으나, 말로는 부
족하니 종일 말해도 사물을 다 말할 뿐이다. 그러므로 충분하다
부족하다 함은 둘 다 틀리는 것인데 세상사람이 어찌 그런 줄 알
겠는가.
황룡스님의 4세 법손인 혜천(惠泉)스님이 적취(積翠), 회당(晦
堂), 사심(死心), 초종(超宗)의 4가어록을 손수 써 놓고 내게 서
문을 쓰라 하였다.
저 네 분 대사(大士)는 강서(江西)에서 선종의 불꽃같은 분이니
혹은 마조(馬祖)스님의 후신이라 전하고 혹은 대위(大 )스님의
법석을 지켰다고 하며 혹은 번개에 천둥소리 따르듯 하고, 혹은 6
근이 훌륭하게 익어져[熱] 무너지지 않았다 하니 그 참되고 명예
로운 도풍을 천하 사람들이 우러러보았다. 기봉을 한번 건드리면
만 게송이 병에서 물쏟듯 하여 마치 커다란 빈 골짜기가 소리에
남김없이 반응하고 커다란 둥근 거울이 모습을 남김없이 비추는
것과 같다. 구슬꾸러미 돈꾸러미 같은 말씀을 인간세상에 뿌려놓
으니 달빛어린 창가, 구름 도는 집집마다 만 입으로 불러 외워 적
으면 적은대로 크면 큰대로 모두 얻는 바가 있었다.
말로 치자면 가히 사물을 극진히 설명했다고 할 수 있으나 요컨
대 사물도 극진히 하고 도(道)도 극진히 하는 것으로는 듣는 자
스스로가 알아차려야 할 일이다. 그 가운데 소위 '종일 말하나 말
한바가 없다' 함은 가죽을 벗겨내고 뼈를 부러뜨리는 것으로도 써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혜천스님이 문답을 편집한 일이 옳은가, 그른가? 옳다
고 한다면 대장경[毘盧藏]속의 방대한 경전에서도 본래 문자를 인
정하지 않았고, 그르다고 한다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용이 뇌성을
감추고 묵묵히 있다 해도 본래 그 소리의 위용은 없는 것이 아니
다. 그러므로 옳다 그르다 함이 반드시 정해진 것이 아니다. 이
도리를 알기만 하면 말이 있건 없건 모두 진여이겠으나 이 도리를
알지 못하면 말이 있건 없건 모두 사견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혜
천스님의 마음이 바로 네 분 조사의 마음이며, 혜천스님의 견해가
바로 네 분 조사의 견해임을 알겠다.
(스님께서는) 그 내용의 우열을 가려 정도(正道)를 보임으로써
네 스님이 중생을 이롭게 하신 자비심을 널리 드러내고 음성의 세
계로 들어가 한 몸 아끼지 않음으로써 네 스님이 도를 실천하시던
은혜를 전하였으니 진실로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본 뜻이다. 이
도에 앉아서 수행하는 사람은 이 글로써 한번 평가해 보라.
소흥 11년(紹興 11年 : 1141) 3월 5일,
수인전밀(秀人錢密)이 서(序)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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