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록(黃龍錄)

귀종사로 옮겨 살면서 남긴 어록 〔遷住歸宗語錄〕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08:53
 

 

 

 

 

귀종사로 옮겨 살면서 남긴 어록 〔遷住歸宗語錄〕

 

 1.

  스님께서 처음 절에 들어가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귀종상사(歸宗上寺)는 큰 선강[禪河]이다. 이미 선강이라면 어

찌 낚시꾼이 없으랴. 누가 질문할 사람이 없느냐?"

  한참 있어도 묻는 사람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뿔난 짐승 많아도 해태(  :성품이 충직한 외뿔 달린 전설상

의 동물)는 없고, 털난 짐승 많다 해도 원앙은 적어라. 미묘하구

나, 큰 저 법신이여. 일부러 들어도 듣지 않고 보아도 보지 않도

다. 청정하도다. 배울수 없는 지혜여! 어찌 생각해서 얻으며 어

찌 배워서 되겠느냐.

  그러나 설법이 없다면 누구라서 근본종지를 가려내며, 문답이

없다면 어떻게 삿됨과 올바름을 밝히랴.

  지금 이 장로(長老)가 상당하여 법문으로 이끌어 주는데도 대중

가운데선 질문하는 사람이 없구나. 질문하는 사람이 없으니 답변

하는 사람도 없구나.

  근본종지와 삿되고 바름을 밝히고 분별하려느냐. 삿됨과 바름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서 선상을 밀쳐 거꾸러뜨리고

소리를 쳐 대중을 해산한다 해도 그 납승에게 숨을 돌리게 해 주

겠지만, 분별해내지 못한다면 내년에 새 가지가 돋아나 쉴새없이

봄바람에 흔들리리니 기다려 볼 일이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손바닥의 마니(摩尼)구슬은 갖가지 색깔 따라 빛이 나뉘고, 하

늘에 걸린 보배달은 천강에 달그림자를 드리운다.

  여러 납자들이여! 한 번 묻고 한 번 답하며, 방망이 한 대,할

한번 하는 것이 다 빛 그림자[光影]이며, 밝고 어두우며 잡고 놓

아줌이 다 빛 그림자이며, 산하대지도 빛 그림자이며, 일월성신도

빛 그림자이며, 3세 모든 부처님과 일대장교 나아가서는 모든 큰

조사와 천하의 훌륭하신 화상과 문 두드리는 기왓쪽 따위 천차만

별까지도 모두 다 빛 그림자이다.

  말해 보라. 무엇이 마니 구슬이며 무엇이 보배달인지를. 마니구

슬과 보배달을 모르고서 말[言句]을 기억하여 빛 그림자를 그것이

라고 잘못 안다면 마치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헤아리고 벽돌을 갈

아 거울을 만들려는 격이니 그 수를 다 헤아리고 밝은 거울을 만

들려 하나 만부당한 일이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문자의 의미를 널리 찾음은 거울 속의 물

건을 구하는 것과 같고, 그렇다고 생각[念]을 쉬고 공(空)을 관

(觀)함은 물 속의 달을 붙들려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라고 한 말

을.

  납승이라면 이쯤에서 몸을 바꿀 만한 길 한 가닥[傳神一路]이

있어야만 한다. 몸을 바꿀 수만 있다면 벌여놓은 것과 모인 무더

기마다 다 대사(大事)가 나타난[現前] 것이라서 종횡으로 자유로

와 다시는 모자라거나 남는 법이 없으려니와, 몸을 바꾸지 못한다

면 푸대 속의 늙은 거위와 같아서 살아있다 해도 죽은 목숨과 같

으니라.

  나는 산에 사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본래 식견이 없다. 그러나

어제는 이 군(郡)의 전승판관비서(殿承判官秘書)에게 특별히 초청

을 받았으니 명령을 받고서 감히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런데 문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바로 귀종사(歸宗寺)를 맡아달라

는 명령이 있었다.

  나아가고 물러남을 곰곰히 살펴보았더니 염치없음만 깊이 더하

였다. 이는 전승판관이 옛날에 부처님의 수기(受記)를 받들어 왕

의 신하로 모습을 보이심이다. 항상 정사를 베푸는 여가에 부처님

의 가르침을 공경스럽게 받들어 혜풍(慧風)과 요풍(堯風)을 아우

러 선양하려 하였으며 불일(佛日)과 순일(舜日)이 함께 밝기를 기

대했으니 진실로 중생에 뜻[意]을 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처럼

마음을 극진히 할 수 있었으랴.

  이 날에 또 조정의 수레가 영광스럽게도 법회에 임하여 시종 성

쇠하던 중에 진실로 영광을 더하게 되었다. 옛날에 배상국(裵相

國)은 높은 벼슬 자리에 있었으나 황벽(黃檗)스님에게 인정을 받

았고, 한문공(漢文公)은 당세에 명성이 지중하였으니 태전(太賞)

스님을 모시었다. 지금의 이 일을 옛날에 비교한다면 무슨 차이가

있으랴. 할말은 많으나 보고 듣느라고 번거로울까 염려스럽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법령을 극진히 하여 기강을 잡음은 범부와 성인 양쪽에 다 통

하지는 않으며 그렇다고 한 가닥 길을 놓아주면 알음알이[商量]가

생긴다.

  곧 이어 주장자를 잡아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 주장자가 서니 시방세계가 일시에 서는구나."

  그리고는 다시 주장자를 눕히더니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 주장자를 눕히니 시방세계가 일시에 눕는다. 어째서

인가?  듣지도 못했느냐. '가장 작은 것은 가장 큰 것과 같아서

경계를 끊어 잊었고,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과 같아서 테두리

를 보지 못한다'고 한 말씀을."

  그리고는 주장자를 높이 세우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4.

  제형(提刑:지방에서 형벌이나 옥사의 일을 맡는 벼슬)이 산에

들어와 좌석에 오르자 한 스님이 청하였다.

  "제형의 수레가 멀리서 법좌에 나오셨으니 스님께서는 깨달음의

종지[向上宗乘]를 한 번 결단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자(一字) 모양 두건[ 頭]이며 챙이 뾰족한 모자로다."

그 스님이 또 말하였다.

"비단, 제형만 이 훌륭함을 받들 뿐 아니라 저도 절하며 스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눈섭을 잡아 벗기고 그대의 콧구멍을 두드려서 떨어뜨

린다면 또 어떻하겠느냐?"

  그 스님이 "허허(噓噓)"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국수를 만들려면 그 고을 밀가루로 빚어야 하고, 노래를 부르

려면 천자의 고향 사람이라야만 한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유정(有情)의 근본은 지혜 바다로 근본을 삼고, 함식(含識)의

부류는 모두 법신으로 자체를 삼는다. 다만 미혹한 생각[情]이 생

겨 지혜가 막혔기 때문에 매일 작용하면서도 모르며, 생각[想]이

바뀌는대로 몸이 달라지기 때문에 업연(業緣)을 쫓아가 되돌아올

수 없다. 아득한 예와 지금에 뉘라서 근본 원인을 확인히 아는가.

고단한 사랑과 증오는 망정의 근본으로서 허망한 것이다. 그러므

로 우선 석가모니 조어사(調御師)께서는 일찌감치 깨달음을 얻으

시고 우리가 수고로운 삶으로 생사유전을 자초함을 불쌍히 여기셨

다. 그런 뒤에 큰 지혜를 얻고 오묘한 모습으로 몸을 나투시어 49

년을 세상에 머무시면서 12분교(十二分敎)를 연설하셨다. 그리하

여 영리하고 둔한 근기에 맞추어 교화 방편을 세워 상·중·하의

근기가 각자 정도〔漸〕에 맞게 얻기를 바라셨다. 마치 큰 바다가

작은 물줄기를 사양하지 않아서, 가령 모기·등애·아수라왕이 그

물을 마시는데 모두 배부르게 되는 것과도 같았다. 그 뒤 교화할

인연이 다하여 쌍림(雙林)에서 열반을 보이려 하면서 인간·천상

의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정법안장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는데 마하대가섭

(摩訶大迦葉)에게 부촉하여 교(敎)밖에 따로 펴서 상근기들에게

전하게 하노라.'

  이 법은 조작이나 사유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신통이나

닦아서 깨달음[修證]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유심

(有心)으로써 알지도 못하며 무심(無心)으로써 체득하지도 못한

다. 이를 깨달으면 3계(三界)를 단박에 초월하려니와 이에 미혹되

면 만겁토록 생사에 빠진다.

  오늘은 왕의 관리가 두루 모이고 승속이 자리에 함께 하여 앉고

섬이 염연하고 보고 들음이 어둡지 않으니 이는 미혹이겠느냐, 깨

달음이겠느냐? 여기에서 체득할 수 있다면 3아승지겁[三祗劫]을

다 채우거나 만행(萬行)의 공부가 완성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일념

에 초월하여 다시는 전·후가 없으리라.

  오늘은 우리 절에 영광스럽게도 이 지반의 제형도관(提刑都官)

과 제형사인(提刑舍人)이 직접 조정의 수레로 내려오셔서 보잘 것

없는 이 절을 빛내 주시려고 하룻밤이나 걸려 찾아왔으니 나날의

기거(起居)에 만복 있으소서. 더구나 존귀한 두 분 관리는 숙세에

덕의 근본을 심어 재관(宰官)의 몸으로 시현(示現)하여 자비와 은

혜로 백성들에게 임하셨음에랴. 지금 밤낮으로 급한 천자의 일을

대신하여 스님·속인·귀인·천인들이 모조리 복과 수명의 은혜를

하사받았으니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느냐.

  이미 영광스럽게도 왕림해 주신 덕을 보았으니 우선 귀한 보살

핌을 여유있게 받으라.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설법하는 사람은 설명함도 없고 보여줌도 없으며, 법을 듣는 사

람도 들음도 없고 얻음도 없다'고 하셨던 것이다.

  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니(仲尼 : 孔子)가 온백설자(溫伯雪子)를 오랫동안 보고 싶어

하던 중, 하루는 수레를 타고 가다 길에서 만났는데 피차 말없이

각자 되돌아갔다.

  그 뒤에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온백설자를 보

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만나서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으셨으

니 무슨 뜻인지요?' 하자 중니는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군자의 만남은 눈빛이 마주치는 데에 도가 있다.'

  말해 보라. 옛사람의 만남이 눈빛 마주치는 데에 도가 있다 하

였는데 산승은 오늘 북을 울리고 법당에 올라 유난스레 말이 많았

으니 한바탕 손해를 보았노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호랑이 수염을 순조롭게 뽑으려거든 응당 자기부터 살펴야 하

며, 뱀꼬리를 거꾸로 잡으려거든 뱀이 하는대로 맡겨두어라. 오랑

캐가 오면 오랑캐가 나타나고 중국사람이 오면 중국사람이 나타나

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니 밝은 거울을 높은 경대에 걸지 말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자소봉(紫 峰) 위의 검은 구름은 아련한데 파양호( 陽湖) 속

의 흰 파도는 하늘까지 넘실거린다. 한 기운〔一氣〕은 일어남 없

이 일어나고 만법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그러하구나. 여기서 따지

고 헤아리다면 10만 8천리 밖으로 멀어지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상당하여 주장자를 잡더니 말씀하셨다.

  "옆으로 잡고 거꾸로 휘둘러 미륵의 눈동자를 열어제치고, 밝음

이 가고 어둠이 오니 조사의 콧구멍을 두드려 떨어뜨린다. 바로

이런 때라면 목건련과 사리자는 숨소리마저 죽이고 임제(臨濟)와

덕산(德山)은 하하 하고 크게 웃는다. 말해 보라. 무엇을 두고 웃

었는지를. 쯧쯧…"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목주(睦州)스님께서는 뛰어난 제자가 하나 있었는데, 언젠가 만

났을 때 목주스님이 말하였다.

  "무엇을 아는가?"

  "24가(二十四家)의 서법(書法)을 압니다."

  목주스님은 주장자로 공중에다 점 하나를 찍더니 말하였다.

  "알겠느냐?"

  제자가 어찌할 바를 모르자 목주스님이 말하였다.

  "24가의 서법을 안고서 다시 말해 보라. 영자8법(永字八法)도

모르고서는…"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목주스님의 한 점은 곧장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에 있더니

영자8법으로 글씨를 논함에 이르러선 도리어 속인에게 간파당하였

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공자 문하의 제자는 아는 사람 없었는데 눈 푸른 달마는 웃으면

서 머리를 끄덕이는구나."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9.

  엄양존자(嚴陽尊者)가 조주(趙州)스님에게 말하였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을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놓아버리게"

  "이미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놓아버리라는 말씀

입니까?"

  "그렇다면 걸머지게" 

  존자는 이 말끝에 깨달았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게송으로 말씀하셨

다.

    한 물건도 가져 온 것 없건만

    어깨에 짐을 지고 일어나지 못했었네

    말 끝에 홀연히 잘못임을 알아

    마음 속은 무한히 기쁘고

    나쁜 독을 마음에서 잊었으니

    뱀과 호랑이도 친구라네

    몇백 년 세월 흘렀건만

    맑은 바람 그치질 않네

    一物不將來  肩頭擔不起

    言下忽知非  心中武限喜

    毒惡旣忘懷  蛇處爲知己

    光陰幾百年  淸風物未己

  주장자를 선상에 세우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0.

  임제스님이 감원(監院:원주)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고을에서 쌀을 사옵니다."

  임제스님은 주장자로 그 앞에서 한 획을 긋더니 말씀하셨다.

  "이것도 살 수 있겠느냐?"

  감원이 별안간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은 바로 후려쳤다.

전좌(典座:선방에서 좌구나 의복 생활용품을 담당하는 소임)가 찾

아오자 임제스님이 앞의 대화를 말하였더니 전좌가 말하였다.

  "원주(院主)는 스님의 의도를 몰랐군요."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전좌가 절을 하자 임제스님은 역시 후려쳤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할을 해도 후려치고 절을 해도 후려쳤다. 여기에 가까이함과

멀리함이 있겠느냐? 가까이함과 멀리함이 없었다면 임제스님은 옳

지 않으니 맹목적으로 묶어놓고 방망이질을 한 것이다. 나라면 그

렇게 하지 않겠다. 원주가 할을 할 때 놓아주어선 안되며, 전좌가

절을 할 때 놓아주어서도 안된다."

  다시 말씀하셨다.

  "임제스님은 법령을 행하였고, 나는 놓아주었다. 30년 뒤에 설

명해 줄 사람이 있으리라."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한 스님이 남원(南院)스님에게 물었다.

  "해와 달은 번갈아 옮겨가고 추위와 더위는 차례차례 뒤바뀝니

다. 추위와 더위를 겪지 않는 수도 있습니까?"

  "자줏빛 비단으로 이마를 문지르고 속곳 허리에 수를 놓는다."

  "가장 뛰어난 근기라면 여기서 이미 깨달았겠지만 중하(中下)의

부류는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잿더미 속에 몸을 숨겨라."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남원은 한 번에 상대를 이롭게 하였지만 병에 맞게 약을 쓴다

는 면에서 보면 잘못 되었다. 납승의 문하라면 천지처럼 현격하게

다르다. 말해 보라. 납승에겐 더 나은 점이 무엇이겠느냐?"

  "쯧쯧" 하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망정이 다하면 진

상(眞常)이 그대로 드러나고, 허망한 인연을 여의기만 하면 그대

로가 여여(如如)한 부처이니라' 하였는데, 쯧쯧! 이 무슨 말인

가?"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3.

  상당하자 한 스님이 여쭈었다.

  "우두(牛頭)스님이 사조(四祖)스님을 뵙기 전에는 무엇 때문에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다 바쳤습니까?"

  "뽕나무 뿌리는 못[釘] 같으며 물소뿔은 넓다."

  "뵌 뒤엔 무엇 때문에 꽃을 물어다가 바치지 않았을까요?"

  "잠방이에는 배자( :덧조끼)가 없고 홑바지엔 바지 구멍이 없

다."

  그 스님이 또다시 여쭈었다.

  "뵙지 않았을 땐 어떻습니까?"

  "나라가 맑으면 인재가 존경을 받고, 집이 넉넉하면 어린 아이

가 버릇없다." 

  "뵌 뒤엔 어떻습니까?"

  "세상의 인정은 차고 따뜻함을 살피며, 사람의 얼굴은 높고 낮

음을 좇는다."

  스님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학륵나(鶴勒那) 존자는 저 공중(空中)에서 갖가지 모습을 나투

고 만나라(蔓拏羅) 존자는 땅을 가리키니 샘이 되었다. 덕산(德

山)의 회상은 전후가 끊어졌고[光前絶後]임제의 문전에선 한 쪽만

을 얻을 뿐이다."

  한참 잠자코 있더니 "무엇이 그 한 쪽이겠느냐?" 하고는 법좌에

서 내려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