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경훈(緇門警訓)

勉 學 / 고산원법사면학편 병서 孤山圓法師勉學篇 並序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14:27
 

 

勉 學

 

고산원법사면학편 병서  孤山圓法師勉學篇 並序

 

中人之性, 知務學而或惰於學, 乃作勉學.

중간근기를 지닌 사람의 성품은 배움에 힘 쓸 줄은 알면서도 혹 배움에 게으르기 마련이니 이에 면학勉學을 짓는다.

① 勉學上

嗚呼![1] 學不可須臾怠, 道不可須臾離. 道由學而明,[2] 學可怠乎? 聖賢之域,[3] 由道而至, 道可離乎? 肆[4]凡民之學不怠, 可以至於賢, 賢人之學不怠, 可以至於聖. 冉求[5]之學, 可以至於顔淵而不逮具體者,[6] 中心怠耳. 故曰: 「非不悅子[7]之道, 力不足也.」 子曰: 「患力不足者, 中道廢, 今汝畫.」[8]顔淵之學, 可以至於夫子, 以不齊於聖師者, 短命死耳.[9] 如不死, 安知其不如[10]仲尼哉! 以其學之不怠也. 故曰: 「有顔氏子好學,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11] 或問: 「聖人學耶?」 曰: 「是何言歟? 是何言歟? 凡民與賢猶知學, 豈聖人怠於學耶? 夫天之剛也而能學柔於地故, 不干四時焉;[12] 地之柔也而能學剛於天故, 能出金石焉; 陽之發生也而亦學肅殺於陰故, 靡草死焉;[13] 陰之肅殺也而亦學發生於陽故, 薺麥生焉.[14]」 夫爲天乎‧地乎‧陽乎‧陰乎, 交相學而不怠, 所以成萬物, 天不學柔則無以覆, 地不學剛則無以載, 陽不學陰則無以啓, 陰不學陽則無以閉.[15] 聖人無他也, 則天地陰陽而行者, 四者學不怠, 聖人惡乎怠! 或者避席曰: 「予之孤陋也![16] 幸子發其蒙, 願聞聖人之學.」 中庸子曰: 「復坐! 吾語汝.《書》不云乎? ????惟狂, 剋念作聖; 惟聖, 罔念作狂.????[17] 是故, 聖人造次顚沛,[18] 未嘗不念正道而學之也. 夫子大聖人也, 拔乎其萃, 出乎其類,[19] 自生民以來, 未有如夫子者; 入太廟,[20] 每事問, 則是學於廟人也; 三人行, 擇其善者而從之,[21] 則是學於偕行也; 入周則問禮於老子, 則是學於柱史也.[22] 豈仲尼之聖, 不若廟人‧行人‧柱史也? 盖聖人懼夫不念正道而學之則至於狂也矣. 故曰 ????必有如丘之忠信焉, 不如丘之好學也.????」 曰: 「聖人生而知之, 何必學爲?」 曰: 「知而學, 聖人也; 學而知, 常人也.」 雖聖人‧常人, 莫有不由於學焉. 孔子曰: 「君子[23]不可不學.」 子路曰: 「南山有竹, 不柔[24]自直, 斬而用之, 達乎犀革.[25] 以此言之, 何學之有?」 孔子曰: 「括而羽之, 鏃而礪之, 其入之不亦深乎?」 子路再拜曰:[26] 「敬受敎矣.」 噫! 聖人之學, 無乃括羽鏃礪‧使深入乎? 豈生而知之者, 兀然不學耶!

오호라! 배움은 잠시라도 게을리 할 수 없으며 도道는 잠시라도 떼 놓을 수 없다. 도는 배움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이니 배움을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성현의 경계는 도로 말미암아 이르는 것이니 도를 떼어놓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평범한 백성이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현인에 이를 수 있고 현인이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성인에 이를 수 있다.

염구의 학문이 가히 안연에 이르렀다 할 것이나 그 실체를 갖춤에는 미치지 못한 것은 속마음이 게을렀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스승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할 뿐입니다」라 하니 공자께서 이르기를 「힘이 부족한 것을 근심하는 자는 중도에 [힘이 다하면 자연스레] 그만 둘 것인데 지금의 너는 선을 긋고 말았구나」 하였다. 안연의 학문은 가히 공자에 이르렀다 할 것이나 성현 조사들과 나란히 자리하지 못하는 것은 단명으로 죽었기 때문일 뿐이다. 만일 죽지 않았다면 그가 중니와 같이 되었을지 어찌 알겠는가? 그가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안씨의 아들이 있어 배우기를 좋아하더니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으니 이제는 그만이구나」 하였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성인도 배웁니까?」 하니 이르기를 「이 무슨 말인가! 이 무슨 말인가! 평범한 백성과 현인도 오히려 배움을 알거늘 어찌 성인이 배움에 게으르겠느냐. 무릇 하늘은 강하지만 땅에게서 능히 부드러움을 배우는 까닭에 사시四時의 차례를 범하지 않는 것이며, 땅은 부드러우나 하늘로부터 능히 강함을 배우는 까닭에 금석金石을 내는 것이며, 양陽은 생명을 피우는 것이지만 또한 음陰에게서 숙살肅殺을 배우는 까닭에 가는 잎의 풀들이 죽는 것이며, 음은 숙살하는 것이지만 또한 양으로부터 생명을 피우는 것을 배우는 까닭에 냉이와 보리가 나는 것이다」 하였다. 무릇 하늘과 땅과 양과 음은 사귀어 서로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므로 만물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하늘이 부드러움을 배우지 않으면 곧 덮어 줄 수가 없고, 땅이 굳셈을 배우지 않으면 곧 실어 줄 수가 없으며, 양이 음을 배우지 않으면 곧 열 수가 없고, 음이 양을 배우지 않으면 곧 닫을 수가 없다. 성인도 별다름이 없는지라 하늘과 땅과 양과 음을 본받아 행하는 분이시니, 이 네 가지가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 성인이 어떻게 게을리 하리요.

어떤 사람이 자리를 피하며 이르기를 「나의 고루함이여! 다행히 그대께서 그 몽매함을 열어 주셨으니, 바라건대 성인의 학문을 듣기 원합니다」 하니 중용자가 말하였다. 「다시 앉으라, 내가 너에게 말하리다.《상서》에서 말하지 않았더냐? ????오직 미치광이라도 생각을 이겨내면 성인이 되고, 오직 성인이라도 생각을 잊어버리면 미치광이가 된다???? 하였으니, 이러한 까닭에 성인은 창졸간에도 바른 도를 생각하여 배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공자는 큰 성인으로 그 무리 가운데 빼어났으며 그 부류 가운데 출중하였으니 백성이 생긴 이래로 공자와 같은 자가 없었으나, 태묘에 들어가서는 모든 일을 물어 행하였다 하였으니 곧 이는 묘지기에게 배운 것이며, 세 사람이 길을 감에 착한 사람을 가려서 그를 좇았다 하였으니 곧 이는 동행자에게 배운 것이며, 주나라에 들어가서는 예禮를 노자에게 물었다 하였으니 곧 이는 도서관지기에게 배운 것이다. 어찌 중니와 같은 성인이 묘지기나 행인이나 도서관지기만 못하겠는가? 대개 성인은 바른 도를 생각하여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곧 미치광이에 이르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반드시 나(孔子)와 같이 충실하고 믿음 있는 자는 있을 수 있을지언정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라 하였다.」

말하기를 「성인은 나면서부터 안다 하였는데 어찌 배울 필요가 있습니까?」 하니 말하기를 「알고도 배우는 것이 성인이며 배워서 아는 것이 보통 사람이다」 하였으니, 비록 성인이나 보통 사람이라 할지라도 배움으로 말미암지 않은 자는 없다.

공자가 이르기를 「군자는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하니 자로가 이르기를 「남산에 대나무가 있음에 바로잡지 않아도 스스로 곧으니 베어서 사용하면 무소의 가죽을 꿰뚫는다 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말하건대 무슨 배울 것이 있겠습니까?」 하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흠줄을 내어 깃털을 달고 촉을 박아서 숫돌에 갈면 그 들어가는 깊이가 또한 깊지 않겠느냐?」 하니 자로가 재차 절을 올리며 이르기를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하였다. 오호라, 성인의 배움이 흠줄을 내어 깃털을 달고 촉을 박아 숫돌에 갊으로써 더욱 깊게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 나면서부터 안다고 하여 말뚝처럼 배우지 않을 것인가!

【1】烏見異則噪, 故以爲烏呼, 歎所異也. 本作烏, 後人加口於傍, 非也.

【2】在天者, 莫明於日月, 故以日月作明字.

【3】靈明洞鑑曰聖. 又聖猶正也, 以正敎誨人也. 超凡亞聖曰賢.

【4】承上起下之辭, 猶言遂也. 又故令也. 見《詩》注.

【5】孔子弟子, 字子有, 以政事著名.

【6】《傳》曰: 「具體而微.」 注云: 具有聖人之全體, 但未若聖人之大而化之無限量, 故云微.

【7】謂夫子也.

【8】如劃地以自限, 謂自足而止也. 又截止也.

【9】顔回, 字子淵, 孔夫子稱其好學. 二十九髮白, 三十二夭.

【10】《詩》註: 不如者, 如也.

【11】季康子問: 「弟子中, 孰爲好學?」 子曰「有顔氏子」云云, 顔輅之子.

【12】《左傳》「天爲剛德, 猶不干時.」 注云: 寒暑相順也, 猶不干犯四時之序.

【13】草之枝葉靡細者屬陰, 陽盛則死. 秋者, 百穀成熟之期, 於此時, 雖夏, 麥卽秋, 故云麥秋. 註曰: 凡物盛陰而生者, 柔而靡, 謂之靡草, 卽至陰之所生, 故不勝陽而死焉. 又所謂夏枯草也, 其形類水荏蕙子, 好生平原砂土.

【14】薺, 甘草.《詩》「其甘如薺.」《淮南子》「薺, 水菜. 冬水而生, 夏土而死.」 麥, 秋種夏熟, 繼絶續乏之穀也.《春秋》「於他穀則不書, 至無麥則書之.」

【15】《左傳》云: 「凡分至啓閉, 必書雲物.」 註云: 分, 春分‧秋分也; 至, 冬至‧夏至也; 啓, 立春‧立夏; 閉, 立秋‧立冬也. 雲物, 氣色以大變也.

【16】《學記》云: 「獨學而無友則孤陋而寡聞.」

【17】剋念者, 改過遷善之謂也, 聖, 通明之稱, 言「狂愚, 剋念則爲聖, 雖聖, 而罔念則爲狂矣」.

【18】造次, 急遽苟且之時; 顚沛, 傾覆流離之際.

【19】如草木拔出乎叢林之萃, 聖人特立乎衆庶之類.

【20】魯.周公廟也.

【21】《論語》「三人行, 必有我師, 擇其善者而從之, 不善者而改之.」

【22】老子, 姓李名耳, 字伯陽. 鶴髮龍顔, 又長耳, 故立諡曰聃. 其母夢見日精落入口, 因以有娠, 七十二歲而生, 或曰八十載而生, 故號老子. 嘗爲柱下史, 守藏書之官. 孔子, 諱丘, 字仲尼. 周.靈王庚戌二十一年十二月初四日, 生於魯國.兗州.鄒邑.平昌闕里. 父先娶施氏, 生子孟皮, 後娶顔氏女, 生孔子. 爲字言仲者, 次於孟皮也, 禱尼丘山而生, 故名丘字尼也.

【23】上敬尊長, 如臣事君, 下恤萬民, 如父育子, 故曰君子.

【24】與揉同

【25】古者, 以犀革爲甲, 取堅而箭難穿破, 故謂兵甲爲兵革也.

【26】《荀子》曰: 「平衡曰拜.」 註: 平衡, 謂磬折而首與腰平也.

【1】까마귀는 이상한 것을 보면 곧 지저귀는 까닭에 烏呼라 하니, 이상함을 찬탄하는 것이다. 본래 烏가 되어야 하거늘, 뒷사람들이 口를 곁에 덧붙인 것은 틀린 것이다.

【2】하늘에 있는 것은 해와 달보다 밝은 것이 없는 까닭에 日과 月로써 明 자를 지은 것이다.

【3】밝은 신령스러움으로 환하게 내다보는 것을 일컬어 聖이라 한다. 또 聖은 正과도 같은데, 正敎로써 사람들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범부를 초월하고 성인에 버금가는 자를 현인이라 한다.

【4】윗문장을 이어받아 아래문장을 일으키는 말이니 ‘마침내(遂)’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또는 예전의 영令이다.《시경》의 주석에 보인다.

【5】공자의 제자로서 자는 자유이며 정치로써 저명하였다.

【6】《전》에 이르기를 「실체를 갖추었으나 미약하다」라 하고는 주석에 이르기를, 성인의 전반적인 실체를 갖추어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다만 아직까지 성인의 위대함이나 덕화의 무한함과 같지 않은 까닭에 미약하다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

【7】공자(孔夫子)를 일컬은 것이다.

【8】마치 땅에 선을 그어 스스로 제한하는 것과 같이 스스로 만족하여 그침을 일컫는다. 또는 차단하여 그만 둠을 말한다.

【9】안회의 자는 자연이며, 공자는 그가 배우기를 좋아함을 칭찬하였다. 29세 때 백발이 되었으며, 32세 때 요절하였다.

【10】《시경》의 주석에, 不如란 如라고 하였다.

【11】계강자가 묻기를 「제자 가운데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안씨의 아들이 있는데…」 운운하였으니, 안로의 아들이다.

【12】《좌전》에 「하늘은 강한 덕이 되지만 오히려 때를 범하지 않는다」 하고는 주석에 이르기를, 추위와 더위가 서로 따름이니 사시의 순서를 범하지 않음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13】풀 가운데 가지와 잎이 미세한 것은 陰에 속하므로 陽이 치성해지면 곧 죽는다. 秋란 모든 곡식이 성숙하는 시기인데, 때가 비록 여름이라도 보리는 곧 성숙기인 까닭에 ‘麥秋(보리가 익는 시절)’라 말한다. 주석에 말하기를, 무릇 사물 가운데 음이 치성하여 생겨난 것은 부드럽고도 枝葉이 가늘기에 靡草라 일컫는데, 즉 지극한 음기의 소생인 까닭에 양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또는 夏枯草라 일컫는 것이니, 그 형태가 들깨 또는 蕙草와 비슷하며 평원의 모래땅 위에 잘 자란다.

【14】薺는 단 맛이 나는 풀이다.《시경》에 「달기가 마치 냉이와 같다」 하였고,《회남자》에 「냉이는 물에서 자라는 나물이다. 찬물에서 자라며 열기가 있는 땅에서는 죽는다」 하였다. 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렸다가 여름에 익으니 다른 곡식이 끊어져 먹거리가 궁핍할 때 이어가는 곡식이다.《춘추》에 「다른 곡식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지만 보리가 흉년이 들면 곧 그 일을 기록하였다」라 하였다.

【15】《좌전》에 이르기를 「무릇 나누고 이르고 열고 닫음에 받듯이 천기의 길흉을 기록하였다」라 하고는 그 주석에 이르기를, 分은 春分과 秋分이요, 至는 冬至와 夏至요, 啓는 立春과 立夏요, 閉는 立秋와 立冬이라 하였다. 雲物은 天氣와 物色이 크게 변화함을 말한다.

【16】《학기》에 말하였다. 「홀로 배우며 친구가 없으면 곧 고루해지고 또한 듣는 바가 적다.」

【17】생각을 이긴다 함은 허물을 고쳐 선한 것으로 옮겨감을 말하는 것이요, 聖은 사리에 통달하여 밝음을 일컫는 것이니, 지극히 어리석더라도 생각을 이겨내면 곧 성인이 되고 비록 성인이라도 생각을 잃게 되면 곧 미치광이가 된다는 말이다.

【18】造次는 갑작스럽고도 잠깐인 시간을 말하고, 顚沛는 기울어 뒤집혀지며 떨어져 나가는 때를 말한다.

【19】마치 풀이나 나무가 숲으로 우거진 가운데에서 특출 나게 드러나 있는 것처럼 성인이 평범한 대중의 무리 가운데 특별히 우뚝함을 말한다.

【20】노나라 주공의 묘당이다.

【21】《논어》에서 말하였다.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을지니, 선한 자는 가려서 그를 본받아 좇고 선하지 않은 자는 그를 본받아 고칠 것이다.」

【22】노자는 이씨 성에 이름이 耳이며 자는 백양이다. 머리털은 닭과 같고 얼굴은 용을 닮았으며 또 긴 귀를 가졌기에 시호를 聃이라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日精이 입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는 그로 인해 태기가 있다가 72년 뒤에 낳았는데 혹은 80년 뒤에 낳았다고 하니, 그 까닭에 老子라 부르게 되었다. 일찍이 柱下史로 서고를 지키는 관직을 지냈다. 공자의 휘는 丘이며 자는 중니이다. 주나라 영왕 경술 21년 12월 4일 노나라 연주의 추읍 평창궐리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앞서 시씨에게 장가들어 아들 맹피를 낳고, 뒤에 안씨의 여식에게 장가들어 공자를 낳았다. 자를 仲이라 하게 된 것은 맹피 다음인 때문이요, 니구산에 기도하여 낳았기에 이름을 丘라 하고 자를 尼라 한 것이다.

【23】위로 어른을 존경하여 받들기를 마치 신하가 임금 섬기듯 하고, 아래로 만백성을 긍휼히 여기기를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기르는 듯 하는 까닭에 君子라 한다.

【24】揉(주무르다, 손질하다)와 같다.

【25】옛사람들은 무소의 가죽으로 갑옷을 만든 것은 견고함을 취하여 화살이 뚫고 나가기 어렵게 하기 위한 것이니, 그러므로 兵甲을 일컬어 兵革이라 하였다.

【26】《순자》에 이르기를 「평형을 拜라 한다」 하고는 주석에서, 평형은 경쇠가 꺾여져 있듯이 머리가 허리와 평평해진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② 勉學下

夫聖且賢, 必務於學, 聖賢以下, 安有不學而成人哉. 學猶飮食‧衣服也. 人有聖乎‧賢乎‧衆庶乎, 雖三者異而飢索食‧渴索飮‧寒索衣則不異矣, 學也豈得異乎! 惟禽獸土木, 不必學也. 嗚呼! 愚夫嗜飮食而不怠, 冒[1]貨利而不休, 及就于學, 朝學而夕怠者有矣夫, 有春學而冬怠者有矣夫. 苟如嗜飮食‧冒貨利之不知怠者, 何患於不爲博聞乎‧不爲君子乎! 曰: 「世有至愚者, 不辨菽麥之異,[2] 不知寒暑之變, 豈令學耶? 豈可敎耶?」 曰: 「至愚, 由不敎也, 由不學也. 苟師敎之不倦, 彼心之不怠者, 聖域可躋而陞乎! 何憂菽麥之不辨乎? 且愚者, 渴而知飮, 飢而知食, 寒而知衣, 旣知斯三者. 則與草木殊矣, 惡乎不可學也‧不可敎也! 人之至愚, 豈不能日記一言耶? 積日至月則記三十言矣, 積月至年則記三百六十言矣, 積之數年而不怠者, 亦幾於博聞乎? 又日取一小善而學行之, 積日至月則身有三十善矣, 積月至年則身有三百六十善矣, 積之數年而不怠者, 不亦幾於君子乎? 爲愚爲小人而不變者, 由不學耳.」 中庸子喟然嘆曰: 「吾嘗見恥智之不逮‧才之不敏而輟於學者, 未見恥飮食不如他人之多而輟飮食者. 輟飮食則殞其命, 何必恥於不多耶; 輟學問則同夫禽獸土木, 何必恥才智之不如他人耶! 苟恥才智不如而不學, 則亦應恥飮食不如他人則廢飮食. 以是觀之, 豈不大誤乎! 吾亦至愚也, 每揣才與智, 不逮他人者遠矣, 由知飮食之不可輟而不敢怠於學也. 行年四十有四矣, 雖病且困而手未嘗釋卷,[3] 所以懼同於土木禽獸耳, 非敢求臻聖域也, 亦非求乎聞達也. 雖或彷徉[4]戶庭, 夷猶[5]原野, 以暫頤養,[6] 目觀心思, 亦未嘗敢廢於學也. 由是, 登山則思學其高, 臨水則思學其淸, 坐石則思學其堅, 看松則思學其貞, 對月則思學其明. 萬境森列, 各有所長, 吾悉得師而學之.[7] 萬境無言而尙可學, 况人之能言! 雖萬惡, 必有一善也, 師一善而學之, 其誰曰不然乎!」 中庸子曰: 「世有求之而或不得者也, 世有求之而必得者也. 求之而或不得者, 利也; 求之而必得者, 道也. 小人之於利也, 雖或萬求而萬不得, 而求之彌勇; 君子之於道也, 求之必得, 而望途懷㤼, 自念力不足者, 此求利小人之罪耳.[8]」 仲尼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言求之而必得也.

무릇 성인과 현인도 반드시 배움에 힘쓰거늘 성현도 못되는 자가 어찌 배우지 않고도 사람다운 사람을 이룰 수가 있겠는가. 배움이란 음식이나 의복과 같다. 사람에게는 성인이 있고 현인이 있고 서민이 있어서 비록 이 셋이 다르지만 주리면 음식을 찾고 목마르면 마실 것을 찾으며 추우면 옷을 찾는 것은 다르지 않으니, 배움 또한 어찌 다를 바가 있겠는가. 오직 날짐승과 들짐승이나 흙과 나무만이 배울 필요가 없을 뿐이다. 오호라! 어리석은 사람은 먹고 마시기를 즐겨함에 게으르지 않으며 재물과 이익을 탐냄에 쉬지 않으나 배움에 나아가기에 이르러서는 아침에 배우다가 저녁에 게을리 하는 자가 있으며 봄에 배우다가 겨울에 게을리 하는 자가 있다. 진실로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고 재물과 이익을 탐하는 것과 같이 게으름을 모르는 자라면 어찌 널리 얻어듣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며 군자가 되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이르기를 「세상에 지극히 어리석은 자가 있어 콩과 보리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추위와 더위의 변화를 알지 못하면 어찌 그로 하여금 배우게 할 수 있으며 어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이르기를 「지극히 어리석은 것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로 스승이 그를 가르침에 쉬지 않고 그의 마음이 게으르지 않다면 성인의 경지라도 가히 밟아 올라 설 것인데 어찌 콩과 보리를 분별하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또한 어리석은 자라도 목마르면 마실 줄 알고 주리면 먹을 줄 알며 추우면 입을 줄 안다. 이미 이 세 가지를 안다면 곧 초목과 다르니 어찌 배우지 않을 것이며 어찌 가르치지 않겠는가. 사람이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어찌 하루에 한 마디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날이 쌓여 달이 되면 곧 서른 마디의 말을 기억할 것이며 달이 쌓여 해가 되면 곧 3백6십 가지의 말을 기억할 것이니, 그렇게 쌓기를 몇 년 동안하며 게으르지 않는다면 그 또한 박문博聞함에 가까운 것이 아니겠는가? 또 하루에 한 가지의 작은 선행을 취하여 그것을 배우고 행한다면 날이 쌓여 달이 되면 곧 몸에는 서른 가지의 선행이 있게 될 것이며 달이 쌓여 해가 되면 곧 몸에는 3백6십 가지의 선행이 있게 될 것이니, 그렇게 쌓기를 몇 년 동안하며 게으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에 가까운 것이 아니겠는가? 어리석은 이가 되고 소인이 되어 변화하지 않는 자는 배우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하였다.

중용자가 탄식하며 이르기를 「내 일찍이 지혜가 미치지 못하고 재주가 민첩하지 못함을 수치스러워 하여 배움을 걷어치우는 자는 보았지만, 음식이 다른 사람처럼 많지 않음을 수치스러워 하여 음식을 걷어치우는 자는 보지 못했다. 음식을 걷어치우면 곧 생명을 잃을 것인데 어찌 반드시 많지 않다고 부끄러워 할 것이며, 학문을 걷어치우면 곧 금수나 토목과 같아질 것인데 어찌 반드시 재주나 지혜가 다른 사람만 못하다고 부끄러워하겠는가. 진실로 재주와 지혜가 남만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배우지 않는다면 또한 마땅히 음식이 다른 사람만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음식을 폐해야 할 것이다. 이로써 살펴 보건대 어찌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지극히 어리석음에 매번 재주와 지혜를 헤아려 보건대 다른 사람에게 미치려면 아직 멀었으나 음식은 가히 걷어치우지 못함을 앎으로 말미암아 감히 배움에 게으르지 않는 것이다. 내 나이 마흔 넷, 비록 병들고 고달프더라도 일찍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음은 토목이나 금수와 같이 될까 두려웠을 뿐이니, 감히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고 또한 입신출세를 추구한 것도 아니었다. 비록 간혹 뜰 앞을 배회하고 들녘을 거닐더라도 잠시나마 품성을 기르고자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생각하며 또한 감히 배움을 폐한 적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산을 오르면 곧 그 높음을 생각하여 배웠으며, 물에 다다르면 곧 그 맑음을 생각하여 배웠으며, 돌에 앉으면 곧 그 견고함을 생각하여 배웠으며, 소나무를 보면 곧 그 절개를 생각하여 배웠으며, 달을 대하면 곧 그 밝음을 생각하여 배웠다. 만 가지 경계가 빽빽이 늘어서 있음에 각기 뛰어난 바가 있으니 내가 그 모든 것을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만 가지 경계는 말이 없으나 그래도 배울 만 한데 하물며 사람은 능히 말을 할 수 있음에야! 비록 1만 가지 악을 지녔다 하더라도 반드시 한 가지 선은 있을 것이니 한 가지 선을 스승으로 삼아 그것을 배운다면 그 누가 옳지 않다 하겠는가」 하였다.

중용자가 이르기를 「세상에서 구하여도 간혹 얻지 못하는 것이 있으며, 세상에서 구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구하고자 하나 간혹 얻지 못하는 것은 이익이며, 구하면 반드시 얻는 것은 도道다. 소인은 이익에 대해서 비록 1만 번을 구하여 1만 번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구함에 더욱 용맹스레 할뿐인데, 군자로서 도道에 대해 구하면 반드시 얻을 것임에도 앞길을 바라보고 겁을 먹어 스스로 힘이 부족하다 생각하는 것은 이익을 구하는 소인에게 죄스러울 뿐이다」 하였다.

중니가 이르기를 「어짊이 멀리 있느냐? 내가 어질고자 하면 이곳으로 어짊이 이를 것이다」 하였으니, 그것을 구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1】貪也, 干也.

【2】《左傳》「周公有兄而不慧, 不能辨菽麥, 故不可立.」 註: 菽, 大豆也. 豆麥殊形易別, 以爲癡者之候. 不慧, 世所謂白癡也.

【3】師早嬰痾瘵, 而講道撰述, 未嘗休息, 傍助法化焉.

【4】《楚辭》「聊彷徉而逍遙.」 註: 徙倚貌, 又徘徊也.

【5】盤桓也.

【6】頤神養性也. 頤亦養也, 動於下, 應於上, 上下咀物, 以養人者也. 禪家齋後, 有小時經行, 以頤養精性也.

【7】若志存學道, 則觸目萬物, 無非所學也.

【8】君子怠於求道, 小人勤於求利, 以勤怠言之, 則君子而不如小人矣. 是, 君子得罪於小人矣, 如所謂五伯三王之罪人也.

【1】탐함(貪)이요 범함(干)이다.

【2】《좌전》에 「주공에게 형이 있었으나 지혜롭지 못하여 콩과 보리도 분별하지 못하였기에 보위에 오르지 못하였다」 하고는 주석에, 菽은 콩이니 콩과 보리는 모양이 틀려 쉽게 분별할 수 있으므로 어리석은 자의 징후로 여긴 것이며, 不慧는 세속에서 소위 백치라는 것이라 하였다.

【3】선사가 일찍이 과로로 인해 앓는 병에 걸렸으나 도를 익히고 찬술하는 일은 그래도 쉬지 않은 채 교법의 교화를 곁에서 돕곤 하였다.

【4】《초사》에 「즐겨 배회하며 노닐다」 하고는 주석에, 한가하게 다니는 모양이며 또한 배회하는 것이라 하였다.

【5】머뭇거리듯 슬슬 거니는 모양이다.

【6】정신과 성품을 기르는 것이다. 頤 역시 養이니, 아래턱(이빨)을 움직여 위턱(이빨)에 부딪치게 함으로써 위아래로 물건을 씹어 사람을 양육하기 때문이다. 선가에서는 공양 후에 잠시 동안 가벼이 거닒으로써 정신을 양성한다.

【7】만약 도를 배우고자 함에 뜻을 둔다면 곧 눈에 부딪치는 모든 사물들이 배울 바가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8】군자는 도를 구함에 태만하고 소인은 이익을 구함에 부지런하니 부지런하고 태만한 것을 들어 말하자면 곧 군자이면서 소인만 못한 이가 된다. 이것이 군자로서 소인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 소위 五伯이 三王의 죄인이라 하는 것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