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경훈(緇門警訓)

고소경덕사운법사무학십문 병서 姑蘇景德寺雲法師務學十門 並序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14:35
 

 

 

고소경덕사운법사무학십문 병서 姑蘇景德寺雲法師務學十門 並序[1]

 

玉不琢, 不成器, 人不學, 不知道.[2] 余十有五而志于學, 荏苒光景, 倏忽老至, 歲月旣深, 粗知其趣. 翻歎疇昔, 殊失斯旨, 限迫桑楡,[3] 學不可逮. 因述十門, 垂裕[4]後昆,[5] 俾務學而成功, 助弘敎而復顯云爾.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나는 열 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으나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문득 늙기에 이르니 세월이 이미 깊어서야 대강 그 취지를 알게 되었다. 예전을 돌아보며 이 취지를 아주 잃어 버렸던 것을 거듭 한탄하지만 기한은 해 저물녘에 임박하였으니 다시 배워도 미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열 가지 법문을 지어 후학들에게 드리워 줌으로써 배움에 힘써서 공을 이루도록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넓히는데 도와서 다시 밝게 드러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1】師名法雲, 字天瑞, 自稱無機子. 五歲出家, 後賜號普潤大師.

【2】二句, 出《禮記‧學記》

【3】桑楡, 晩也, 或云日入處.《淮南子》「西日垂影, 在樹端曰桑楡.」 言晩暮也.

【4】饒也, 寬也, 容也.

【5】昆亦後也.

【1】선사의 이름은 법운이요 자는 천서이며 스스로 무기자라 일컬었다. 5세에 출가하였으며, 후에 보윤대사의 법을 이었다.

【2】두 구절은《예기》의 학기편에 나온다.

【3】桑楡는 해질 무렵이며 혹은 해가 떨어지는 곳을 말한다.《회남자》에 「서쪽으로 해가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무의 끝에 있는 것을 桑楡라 한다」 하였으니 해질 무렵을 말한다.

【4】넉넉함이요, 너그러움이요, 포용력이 있음이다.

【5】昆 역시 後이다.

① 不修學, 無以成.[1]

《涅槃經》云: 「凡有心者, 皆當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何以故? 盖爲一切衆生,[2] 皆有佛性. 此性虛通, 靈明常寂, 若謂之有, 無狀無名, 若謂之無, 聖以之靈.[3] 群生無始, 不覺自迷, 煩惱[4]覆蔽, 遺此本明, 能生諸緣, 枉入六趣. 由是, 大覺憫物迷盲, 設戒‧定‧慧三學之法. 其道恢弘, 示從眞以起妄, 軌範群品, 令息妄以歸眞, 若能信受佛語, 隨順師學, 乃駕苦海之迅航, 則登聖道之梯阝登.[5]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焉![6]

① 배움을 닦지 않으면 이룰 것이 없다.

《열반경》에 이르기를 「무릇 마음이 있는 것은 모두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이룰 것이다」 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런가? 대저 일체 중생은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성품은 비어 있고 융통하여 신령스럽고 밝으며 항상하고 고요하니, 만약 그것을 일컬어 ‘있다’고 하려 하지만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으며 만약 그것을 일컬어 ‘없다’고 하려 하지만 성스러움은 이로써 나아가 신령스럽게 된다.

뭇 중생들이 무시無始 이래로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 미혹해져 번뇌로 덮이고 가리워졌기에 그 본래의 밝음을 잃었으며 모든 반연攀緣들이 생겨나서 그릇되게 육취六趣로 빠져들었다. 이로 말미암아, 크게 깨우치신 세존께서 중생들이 미혹하고 눈이 먼 것을 불쌍히 여겨 계戒‧정定‧혜慧의 세 가지 배움의 법을 베푼 것이다. 그 도는 넓고도 넓어 참된 것으로부터 허망한 것이 일어났음을 드러내 보이고는 뭇 중생들에게 궤범이 되어 허망한 것을 쉬게 함으로써 참된 것으로 돌아가게 하시니, 만일 능히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며 스승을 따르고 순종하여 배운다면 이에 고통의 바다를 운행하는 빠른 배가 될 것이요 성스러운 길에 오르는 사다리이며 계단이 될 것이다. 어느 누가 나갈 때 문을 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이 도道로 말미암지 않으리요!

【1】不修戒定慧三學, 無以成菩提, 戒定慧三, 通言學者, 所以䟽神達思, 怡情怡性, 聖人之上務也. 學猶飾也, 器不飾則無以爲美觀, 人不學則無以有懿德.

【2】「一切」二字, 六經無出.《史記》云: 「一切皆高祖功臣.」 <惠帝記>云: 「一切滿秩.」 註云: 如刀切物. 苟取外面整齊, 不稽內之長短巨細也. 佛經用此二字, 意義同此.

【3】聖通明也.

【4】憂煎爲煩, 迷亂爲惱.

【5】梯木階也, 阝登又梯也.

【6】洪氏曰: 「人知出必由戶而不知行必由道, 道非遠人, 人自遠爾.」 朱子曰: 「不合理處, 便是不由道.」

【1】계정혜의 삼학을 닦지 않으면 보리를 이룰 수가 없나니, 계정혜 세 가지를 통틀어 學이라 말한 것은 그것으로써 정신을 소탈하게 하고 생각을 활달하게 하며 감정과 성품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므로 성인이 가장 힘써야 할 바이다. 學은 장식하다는 것과도 같으니, 그릇은 장식하지 않으면 아름답게 여길 것이 없거니와 사람으로서 배우지 않으면 곧 기릴 만한 덕행이 없을 것이다.

【2】‘一切’ 두 자는 六經에 출처가 없다.《사기》에 이르기를 「一切 모두 고조의 공신이다」 하였으며,《혜제기》에 이르기를 「하나 같이 칼로 끊은 듯(一切) 질서정연하다」 하고는 주석에서, 마치 칼로 물건을 절단한 듯 하다고 하였으니, 단지 외면의 가지런함만을 취한 것이지 내면의 길고 짧음과 크고 세밀함을 헤아린 것은 아니다. 불경에서 이 두 자를 사용할 때도 그 의미가 이와 같다.

【3】聖은 사리에 통달하여 밝음을 말한다.

【4】근심으로 마음 졸이는 것을 煩이라 하고, 미혹하여 혼란스러운 것을 惱라 한다.

【5】梯는 나무 계단이며 阝登 또한 梯이다.

【6】홍씨가 이르기를 「사람들은 나갈 때 반드시 문을 통해야 한다는 것은 알면서도 반드시 도를 통해 수행해야 함은 알지 못하니, 도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멀어질 뿐입니다」 하였으며, 주자가 이르기를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곧 도를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였다.

② 不折我, 無以學.

《說文》云: 「我, 施身自謂也.」《華嚴》云: 「凡夫無智, 執着於我.」《法華》云: 「我慢自矜高, 諂曲心不實.」[1] 由執我見, 憍慢貢高, 不愧無智, 妄自尊大, 見善不從, 罔受敎誨, 於賢不親, 去道甚遠. 欲求法者, 當折我心, 恭黙思道, 屈節[2]卑禮,[3] 以敬事長, 尊師重道, 見賢思齊. 鳩摩羅什[4]初學小敎, 頂禮盤頭達多,[5] 此下敬上, 謂之貴尊; 盤頭達多晩求大法, 復禮鳩摩羅什, 此上敬下, 謂之尊賢.[6] 故,《周易》曰: 「謙, 德之柄也.」《書》云: 「汝惟不矜,[7] 天下莫與汝爭能; 汝惟不伐, 天下莫與汝爭功.」[8]晏子曰: 「夫爵[9]益高者, 意益下; 官益大者, 心益小; 祿益厚者, 施益博.」 子夏曰: 「敬而無失, 恭而有禮,[10] 四海之內, 皆兄弟也.」[11]

② 나를 굽히지 않으면 배울 만한 것이 없다.

《설문》에 말하였다. 「‘나’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베풂을 받은 몸을 스스로 일컫는 것이다.」《화엄경》에 말하였다. 「범부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나’에 집착한다.」《법화경》에 말하였다. 「아만我慢으로 스스로 높음을 자랑하여 아첨하고 굽은 마음이 진실치 못하다.」

‘나’라는 소견에 집착됨으로 말미암아 교만스럽고도 높은 채 하며, 지혜 없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망령되이 스스로 존귀하고도 위대하게 여기며, 착한 이를 보고도 따르지 않고 그 가르침을 받지도 않으며 어진 이를 가까이하지 않으니 도道와 매우 멀리 떨어져 있게 된다. 법을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의 교만한 마음을 꺾고 삼가 묵묵히 도를 생각하며, 절조를 굽히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예를 차리고 공경으로써 어른을 섬기며, 스승을 존중하고 도를 소중히 하며 현인을 보면 그와 가지런해 질 것을 생각하라.

구마라습이 처음 소승小乘의 가르침을 배울 때는 반두달다에게 정례頂禮하였으니 이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라 이를 일컬어 ‘높은 이를 귀하게 여긴다(貴尊)’라고 하며, 반두달다가 뒤에 대승大乘의 법을 구할 때 다시 구마라습에게 예를 드렸으니 이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라 이를 일컬어 ‘현명한 이를 존귀하게 여긴다(尊賢)’라고 한다. 그러므로《주역》에 이르기를 「겸양은 덕의 근본이다」 하였고,《상서》에 이르기를 「네가 오직 뽐내지 않으면 천하가 너와 더불어 능能을 다투지 않을 것이요, 네가 오직 자랑하지 않으면 천하가 너와 더불어 공功을 다투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안자가 이르기를 「무릇 작위가 높을수록 뜻을 더욱 낮추고, 관직이 클수록 마음을 더욱 작게 가지며, 녹봉이 두터울수록 베풀기를 더욱 넓게 하라」 하였으며, 자하가 이르기를 「공경함에 실수가 없고 공손함에 예의가 있으면 온 천하가 모두 형제이다」라고 하였다.

【1】諂曲者, 罔冒於他, 曲順時宜, 矯設異議, 或藏己失.

【2】屈折肢節以服事也.

【3】卑辭敬禮

【4】此云童壽, 其祖印土人. 父以聰敏見稱, 龜玆王聞之, 以女妻之而生什. 七歲出家, 日誦千偈, 亦通義旨. 母生什後, 亦出家爲尼, 得第三果也.

【5】罽賓國人, 未詳華言.

【6】達多晩求大乘, 禮什爲師曰: 「和尙是我大乘師, 我是和尙小乘師.」

【7】自賢曰矜.

【8】舜誡禹之辭. 老子曰: 「不自伐故有功, 不自矜故爲長;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9】爵, 鳥名, 象其形爲酌器, 取其能飛而不溺於酒.《說文》「取其鳴節節, 足足也.」 陸佃云: 「一升曰爵, 亦取其鳴節節, 以誡荒淫. 大夫以上, 與燕享後賜爵, 以彰有德, 故因謂命秩, 爲爵祿爵位, 命秩曰爵, 守取曰官.」

【10】心多貌小曰敬, 貌多心小曰恭. 又形虔曰恭, 心重曰敬.

【11】《論語》司馬牛曰: 「人皆有兄弟, 我獨亡.」 子夏答之.

【1】諂曲이란, 다른 사람을 속여넘기고자 그때 그때의 적당함에 따라 간사하게 순종하며 구구한 의견만을 기만으로 늘어놓거나 혹은 자기의 실수를 숨기는 것이다.

【2】사지의 마디를 굴절시킴으로써 복종하고 섬기는 것이다.

【3】자신을 낮추고 사양함으로써 남을 공경하고 예우하는 것이다.

【4】이곳 말로 하면 童壽이니, 그의 조상은 인도 사람이다. 부친이 총명하고 민첩함으로 명성을 얻자 구자왕이 그 얘기를 듣고는 그의 여식을 그에게 시집 보내니 구마라습을 낳았다. 7세 때 출가하여 날마다 1천의 게송을 외웠으며 또한 그 올바른 뜻을 통달하였다. 모친도 구마라습을 낳은 후에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어 제 3果를 증득하였다.

【5】계빈국 사람으로, 중국말로 어떤 뜻인지 상세하지 않다.

【6】반두달다는 만년에 대승의 법을 구함에 구마라습을 스승으로 예우하며 말하기를 「스님은 대승에 있어서 나의 스승이요, 나는 소승에 있어서 스님의 스승입니다」 하였다.

【7】스스로 현명하다 생각하는 것을 일컬어 矜이라 한다.

【8】순이 우를 훈계한 말이다. 노자가 말하기를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 까닭에 공이 있게 되고 스스로 뽐내지 않는 까닭에 어른이 되는 것이니,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공이 없게 되고 스스로 뽐내는 자는 어른답지 못하다」 하였다.

【9】爵은 새 이름이니 그 모습을 본따서 술잔을 만든 까닭은, 새는 능히 날아다닌다는 뜻을 취하여 술에 빠져들지 않고자 함이다.《설문》에는 「그 울음소리가 ‘절절족족’인 것을 취한 것이다」라 하였다. 육전이 말하기를 「1되(升)를 일컬어 爵이라 하며, 또한 그 울음소리가 ‘節節’인 것을 취하여 邪淫을 경계한 것이다. 대부 이상에게 주연을 베푼 후에 잔(爵)을 줌으로써 덕이 있음을 드러낸 까닭에 그로 인해 품계나 벼슬을 일컫게 되어 爵祿 또는 爵位가 되었으니, [명예적인 벼슬로서의] 품계나 벼슬을 爵이라 하고 [실질적인 벼슬로서의] 관직을 官이라 한다」 하였다.

【10】[공손함의 정도에 있어서] 속마음에 비해 겉모습이 덜 깍듯한 것을 敬이라 하고, 속마음에 비해 겉모습이 더 깍듯한 것을 恭이라 한다. 또는 겉모습이 [더욱] 정성스러운 것을 恭이라 하고, 속마음이 [더욱] 중후한 것을 敬이라 한다.

【11】《논어》에서 사마우가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으나 나는 혼자로서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하자 자하가 그렇게 답하였다.

③ 不擇師, 無以法.

鳥之將息, 必擇其林, 人之求學, 當選於師. 師乃人之模範, 模不模‧範不範, 古今多矣.[1] 爲模範者, 世有二焉: 上則智慧博達, 行業堅貞, 猶密室燈, 光徹窓隙; 次乃解雖洞曉, 行亦藏瑕, 如犯罪人, 持燈照道. 斯二高座,[2] 皆蘊師法, 其如寡德適時, 名而不高,[3] 望風依附, 畢世荒唐.[4]東晋.安師, 十二出家, 貌黑形陋, 師輕視之, 駈役田舍. 執勞三年, 方求師敎, 授《辨意經》, 執卷入田, 因息就覽, 暮歸還師, 經已闇誦, 師方驚歎, 乃爲剃髮.[5] 至受具戒,[6] 恣其遊學, 投佛圖澄,[7] 見以奇之: 「異哉! 小童. 眞世良驥, 不遇靑眼, 困駕鹽車. 自非伯樂, 奚彰千里之駿.」[8] 故, 出家者, 愼宜詳擇, 察有匠成之能, 方具資禀之禮. 故, 南山云: 「眞誠出家者, 怖四怨[9]之多苦, 厭三界之無常, 辭六親之至愛, 捨五慾之深着.」 能如是者, 名眞出家. 則可紹隆三寶, 度脫四生, 利益甚深, 功德無量. 比, 眞敎凌遲,[10] 慧風掩扇, 俗懷侮慢, 道出非法, 並由師無率誘之心, 資缺奉行之志.[11] 二彼相捨, 妄流鄙境, 欲令道光, 焉可得乎!

③ 스승을 가리지 않으면 본받을 것이 없다.

새가 쉬고자 하면 반드시 앉을 숲을 택하고 사람이 배움을 구하고자 하면 응당 스승을 가리게 된다. 스승은 곧 사람의 모범인데 모模가 모답지 못하고 범範이 범답지 못한 이가 고금에 허다하다. 모범이 되는 자는 세상에 두 가지가 있으니, 그 중 뛰어난 자는 지혜가 넓고도 활달하며 행업行業이 굳고도 곧은 것이 마치 밀실의 등불의 빛 줄기가 창 틈을 꿰뚫고 나가는 듯 하는 자이며, 그 다음은 곧 견해는 비록 훤히 밝으나 행行에 또한 티끌을 숨기고 있으니 마치 죄를 범한 사람이 등불을 가지고 길을 비춰 주는 듯 하는 자이다. 이러한 두 어른(高座)은 모두 스승으로서의 법도를 쌓은 자이지만, 만일 부족한 덕행으로 적당한 시기를 만나 이름은 났으나 실제는 높지 못한 자를 그 소문만 바라보고 의지한다면 생을 마칠 때까지 허탕을 칠 것이다.

동진의 도안법사는 12세에 출가함에 얼굴이 검고 몸이 비루하여 스승이 그를 가벼이 보고 농막에 내몰아 일만 시켰다. 수고를 3년하고야 바야흐로 스승에게 가르침을 구하니《변의경》을 주기에 책을 가지고 밭에 들어가 쉬는 틈에 모두 살펴보고 해 저물어 돌아와서 스승에게 돌려주고는 경전을 이미 모두 암송하니 스승이 그제서야 놀라며 찬탄하고는 이에 머리를 깎아 주었다. 구족계를 받기에 이르러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배우다가 불도징에게 귀의하니 그를 보고는 기이하게 여겨 「기이하다 어린아이여! 참된 세상의 좋은 말(馬)이나 눈 푸른 자를 만나지 못하여 수고롭게 소금수레를 멍에 하였구나. 만일 백낙이 아니었다면 어찌 천리의 준마임이 드러났겠는가」 하였다.

그러므로 출가하는 자는 신중하고 자세히 알아보고 선택하되, 살펴보아 나를 다듬어 줄 능력이 있으면 그제서야 제자의 도리로써 법을 묻는 예를 갖추어라. 그러므로 남산이 이르기를 「참으로 순수하게 출가하는 자는 사원四怨의 많은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삼계三界의 무상함을 싫어하며 육친六親의 지극한 사랑을 여의고 오욕五慾의 깊은 애착을 버린다」 하였다.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이름하여 참된 출가라 할 것이다. 곧 삼보를 계승하여 융성케 하고 사생四生을 제도하여 해탈케 할 수 있으면 그 이익은 매우 깊고 공덕은 무량할 것이다.

요즈음 참된 가르침은 능멸되고 지연되며 지혜의 바람은 부채에 가려지고 속인들은 업신여기는 마음을 품으며 도道에서 그릇된 법法이 나오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스승은 이끌어 인도하는 마음이 없고 제자는 받들어 행하려는 뜻이 결핍된 때문이다. 둘 다 모두 서로를 버려 망령스레 비루한 경계로 흐르게 되니 도道로 하여금 빛이 발하도록 하고자 하나 어찌 그러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1】模範者, 以木曰模, 以竹曰範, 皆鑄器之式也. 楊子曰: 「務學不如務求師. 師者, 人之模範, 模不模‧範不範, 爲不少矣.」 模又木名, 昔模木生於周公塚上, 其葉春靑‧夏赤‧秋白‧冬黑, 以色得其正也; 楷木生於孔子塚上, 其幹枝踈以不屈, 以質得其直也. 若正與直, 可爲法則, 況在周‧孔之塚乎! 見《淮南子》.

【2】上則行解俱圓, 次則有解無行也. 尸黎密多羅, 天竺國王子, 讓位出俗, 至建康, 王導‧庾亮‧周顗等一時名公, 皆造門結友, 號爲高座, 高座之號始此.

【3】《梁高僧傳》云: 「實行潛光則高而不名, 寡德適時則名而不高.」

【4】虛而不實, 無所憑據.

【5】道安, 家世英儒, 早失覆蔭, 爲表兄所養. 七歲讀書, 一覽能記. 十二出家, 神雖聰敏, 形貌甚陋, 不爲師所重, 驅役執勞, 曾無怨色. 方啓師求經, 授《辯意長者經》一卷, 僅五千言, 入田因息而覽, 暮歸以經還師, 更求餘者, 師曰: 「昨經未讀, 今更求也?」 答: 「已暗誦.」 師雖異而未信, 復授《光明經》, 可九千言, 暮歸復還, 師執經覆之, 不差一字, 師大驚異. 以貌黑故, 時人謂之黑頭陀, 又謂漆道人.

【6】佛在羅閱城, 有群童子, 大者年十七, 小者十二, 欲出家, 比丘卽度受大戒, 不堪一食, 夜啼. 佛制年滿二十, 方受大戒, 依年受具, 是也.

【7】神異不測. 腹傍有一孔, 常以絮塞之, 夜乃拔之, 光照一室, 晝至流泉, 從孔中引出腸胃, 洗訖還內腹中.

【8】《祖庭錄》云: 「李伯樂, 字孫陽, 善相馬. 行至虞山之坂, 有一駿馬至而其人不識, 用駕塩車, 遙見伯樂乃鳴, 以坐下馬易之, 日行千里. 有人, 詩云: 花有梅花鳥有鶯, 早開先囀悅人情, 可憐孤竹塩車馬, 不遇知音負一生.」

【9】四魔也.

【10】凋敗也.

【11】老子曰: 「善人, 不善人之師, 不善人, 善人之資.」 說者曰: 「善人有不善人然後, 善救之功著, 故曰資.」

【1】模範이란, 나무로 된 것을 模라 하고 대나무로 된 것을 範이라 하는데 모두 기물을 주조하는 형틀이다. [添: 주조하는 형틀에 있어서 속틀을 模, 겉틀을 範이라고도 한다. 즉 밀랍 등으로 종모양을 만들었으면 그것은 模이며(鑄器必先用蠟爲模《洞天淸錄》), 그 밀랍에 鑄砂를 씌운 뒤 밀랍을 녹여 낸 후 쇳물을 부을 수 있게 남은 거푸집이 範이다.] 양자가 말하기를 「배움에 힘쓰는 것은 스승을 구함에 힘쓰는 것만 못하다. 스승이란 사람의 모범이지만 模로서 모답지 못하고 範으로서 범답지 못한 이가 적지 않다」 하였다. 模는 또한 나무의 이름이니, 옛날에 模나무가 주공의 무덤 위에 났는데 그 잎이 봄에는 푸른색을 여름에는 붉은 색을 가을에는 흰색을 겨울에는 검은 색을 띄었음에 色으로써 그 바름을 얻은 것이며, 楷나무가 공자의 무덤 위에 났는데 그 줄기와 가지가 성글었으나 굽지 않았음에 質로써 그 곧음을 얻은 것이다. 만약 바르거나 곧은 것이라면 가히 법칙이 될 것이거늘 하물며 주공과 공자의 무덤에 있음에랴.《회남자》를 참고하라.

【2】보다 뛰어난 것은 行과 解가 모두 원만한 것이고, 그 다음 것은 解는 있으되 行이 없는 것이다. 시려밀다라는 천축국의 왕자로써 왕위를 사양하고 출가하여 건강에 이르니 왕도와 유량 및 주의 등 한 때 이름 있는 공경대부들이 모두 몰려와 벗을 맺으며 그를 高座라 부르니, 高座라는 호칭이 여기에서 비롯하였다.

【3】《양고승전》에 말하였다. 「실다운 行이 빛을 잠재우고 있으면 곧 고귀하되 명성은 없으며, 적은 德으로 때를 만났으면 곧 명성은 얻을 것이나 고귀하지는 않다.」

【4】허망하면서도 실답지 않으니 기대어 의지할 바가 없다.

【5】도안은 그 집안이 대대로 뛰어난 유학자였는데 일찍 부모를 잃고 사촌형에 의해 양육되었다. 7살 때 책을 읽음에 한 번 훑어보고는 능히 암기하였다. 12살 때 출가하였는데, 생각은 비록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나 외모가 매우 비루하여 스승이 중히 여기는 바가 되지 못하고 노역에 내몰려 일만 하였으나 그래도 원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바야흐로 스승에게 여쭈어 경전을 구하자《변의장자경》1권을 줌에 거의 5천 자(言)가 되었는데, 밭에 들어가 쉬는 틈에 훑어보고는 저물어 돌아와서 경을 스승에게 돌려주며 다시 나머지를 구하자 스승이 「어제 준 경전을 아직 다 읽지도 않고서 지금 다시 달라느냐?」라고 하자 「이미 모두 암송하였습니다」 함에 스승이 비록 기이하게 여겼으나 믿지 않고 다시《광명경》을 줌에 거의 9천 자(言)가 되었는데, 저물어 돌아와서 다시 돌려주니 스승이 경을 덮었으나 한 자도 틀리지 않음에 스승이 크게 놀라며 기이하게 여겼다. 외모가 검은 까닭에 당시 사람들은 그를 흑두타라 일컬었고 또한 칠도인이라 일컬었다.

【6】부처님이 나열성에 계실 때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있었는데 큰아이는 17세였고 작은아이는 12세로, 출가하고자 하므로 비구가 곧 구족계를 받게 하였더니 하루 한 끼의 식사를 견디지 못하고 밤이면 울었다. 부처님께서 20세를 채워서야 구족계를 받도록 계율을 제정하시니, ‘나이에 의해 구족계를 받는다’ 함이 바로 이것이다.

【7】[불도징의] 신비와 이적은 헤아릴 수 없었으니, 배 옆구리에 구멍이 하나 나 있어서 항상 솜으로 그곳을 막고 있었는데 밤에 솜을 빼내면 빗줄기가 온 방안을 비추었으며, 낮에는 흐르는 샘물이 있는 곳에 이르러 구멍으로 창자와 위를 꺼내어 모두 씻은 후에 다시 배 안으로 넣곤 하였다.

【8】《조정록》에 말하였다. 「이백락의 자는 손양으로 말을 볼 줄 알았다. 여행을 다니다 우산의 언덕에 이르니 한 필의 준마가 있었는데 그 주인은 알아보지 못하고 소금수레를 끄는데 부리고 있는지라, 말이 멀리서 백락을 보고는 울자 [백락이] 타고 있던 말과 바꾸니 하루에 능히 천리를 달렸다. 어떤 사람이 시로써 말하였다: 꽃은 매화 새는 꾀꼬리, 일찍 피고 앞서 울어 사람 마음 기쁘나니, 가련하다 홀로 핀 대나무 소금수레 지친 말, 알아볼 이 만나지 못해 헛된 한 생을 짊어졌구나.」

【9】네 마귀이다.

【10】시들고 무너짐이다.

【11】노자가 「착한 사람은 착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요, 착하지 않은 사람은 착한 사람의 밑천이다」라고 하니 설자가 「착한 사람이란 착하지 않은 사람이 있은 연후에 착하고 구원하는 공덕이 드러나는 까닭에 ‘밑천’이라 말하는 것이다」라 하였다.

④ 不習誦, 無以記.

記諸善言,[1] 諷[2]而誦之. 迦葉‧阿難, 具足住持[3]八萬法藏, 西域‧東夏, 高德出家, 幼年始習, 皆學誦持. 竺佛圖澄, 能誦佛經數百萬言; 佛陀跋陀, 此云覺賢,[4] 同學數人, 習誦爲業, 餘人一月工誦, 覺賢一日能記, 其師歎曰: 「一日之學, 敵三十夫.」 然, 人之至愚, 豈不日記一言! 以日繫月, 以月繫年,[5] 積工必廣, 累課亦深. 其道自微而生, 何患無所立矣!

④ 익히고 소리내어 읽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

모든 착한 말들을 기록하여 읽되 소리 높여 읽어라. 가섭과 아난은 8만의 법전을 온전하게 갖추어 지녔었고, 서역과 중국(東夏)의 고승대덕들은 출가하면 어려서부터 익히기 시작하여 모두 외워 지니기를 배웠다. 축불도징은 불경의 수백만 글귀를 능히 외웠으며, 이곳 말로 각현覺賢이라 번역되는 불타발타는 몇 사람과 함께 배우면서 익혀 외우는 것을 업으로 삼음에 다른 사람은 한 달 만에야 능숙하게 외우는 것을 각현은 하루에 능히 기억하니 그의 스승이 찬탄하여 이르기를 「하루 동안 배운 것이 서른 명의 것에 필적한다」 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어찌 하루에 한 마디를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날로써 달을 잇고 달로써 해를 잇는다면 쌓여진 공부는 반드시 넓어지고 누적된 성과 역시 깊어질 것이다. 그러한 도道는 미약한 것으로부터 생겨나게 되니 어찌 이룰 바가 없을까 근심하겠는가!

【1】《祖庭》云:「《魯論》二十篇, 皆孔子弟子記諸善言也.」

【2】讀也.

【3】潛子云: 「籍人持其法, 使之永住而不泯也. 夫戒‧定‧慧, 持法之具也; 僧園物務, 持法之資也; 法者, 大聖人之道也.」

【4】此乃甘露飯王之裔, 大乘三果人. 早失怙恃, 從祖悼其孤露, 度爲沙彌. 至年十七, 與同學數人, 習誦爲業, 來神州, 與什相見, 什所有疑者, 多就咨決.

【5】《左傳》云: 「記事者, 以事繫日, 以日繫月, 以月繫時, 以時繫年, 所以記遠近‧別同異也.」 註: 時者, 三月爲一時; 繫者, 以下綴上之辭, 書其日有事, 卽以事綴於日, 紀年月之遠近, 分事物之同異.

【1】《조정》에 말하였다.「《노론》20편은 모두 공자의 제자가 모든 좋은 말들을 기록한 것이다.」

【2】읽는 것이다.

【3】잠자가 말하였다. 「籍人이 그 법을 유지하여 보존함으로써 그 법이 영원히 머물러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무릇 계정혜는 법을 유지 보존하는 도구이며, 승려와 사원 및 상주물과 힘써 노력함은 법을 유지 보존하는 밑천이며, 법이란 큰 성인의 도이다.」

【4】그는 곧 감로반왕의 후손으로 대승의 三果를 증득한 사람이다. 일찍이 믿고 의지할 곳을 잃자 종조부가 그의 외롭고도 고달픔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출가시켜 사미가 되게 하였다. 17세에 이르러 같이 공부하는 몇 사람과 경전을 익히고 외우는 일에 전념하다가 신주에 와서 구마라습과 더불어 서로 만나게 되자 구마라습이 의심스러웠던 바를 가지고 나아가 많은 자문을 구하여 해결하였다.

【5】《좌전》에 이르기를 「일을 기록한다는 것은, 사건을 날에 잇고 날을 달에 잇고 달을 절기에 잇고 절기를 해에 이음으로써 멀고 가까움을 기록하고 같고 틀림을 구별짓는 것이다」 하고는 주석에서, 절기(時)라는 것은 3개월을 한 절기로 삼으며 잇는다(繫)는 것은 아래의 것으로써 위의 것에 연잇는다는 말이니 어느 날에 어떤 일이 있으면 기록하고 그 일을 그 날에 연결 지음으로써 연월의 멀고 가까움을 계통을 세워 기록하고 사건의 같고 다름을 분별하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⑤ 不工書, 無以傳.

書者, 如也, 叙事如人之意.[1] 防現生之忘失, 須繕寫而編錄,[2] 欲後代以流傳, 宜躬書以成集, 則使敎風不墜, 道久彌芳. 故, 釋氏經律, 結集貝多,[3]孔子詩書, 刪定竹簡,[4] 若不工書, 事難成就. 翻思智者無礙之辯,[5] 但益時機, 自非章安[6]秉筆之力, 豈流今日! 故, 罽賓高德槃頭達多, 從旦至中, 手寫千偈, 從中至暮, 口誦千偈. 但當遵佛, 能寫名字, 愼勿傚世, 精草隸焉.[7]

⑤ 글쓰는 법을 공부하지 않으면 전할 도리가 없다.

글(書)이란 같다(如)는 것이니, 사람의 뜻과 똑같이 어떤 일을 서술함을 말한다. 현생에 잊어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정갈하게 엮어 베끼고 순서대로 엮어 기록할 것이요 후대에 전해지도록 하려면 마땅히 몸소 글을 써서 집성할 것이니, 그렇게 한다면 가르침의 기풍은 떨어지지 않게 되고 도道는 오랠수록 더욱 꽃답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의 경전과 율법은 패다라 잎에 결집結集되었고 공자의 시詩와 서書는 대나무 줄기에 산정刪定되었으니, 만약 글쓰는 일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일은 성취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건대 지자대사의 걸림 없는 변설은 단지 그 때의 근기根機에 유익하였으니, 만일 장안의 집필력이 아니었으면 어찌 오늘에까지 유포되었겠는가. 그러므로 계빈국의 고승대덕인 반두달다는 새벽부터 낮까지 손수 1천 편의 게송을 쓰고 낮부터 저녁까지 입으로 1천 편의 게송을 외웠다. 다만 응당 부처님을 좇아 능히 이름자를 쓸 수 있게 할 뿐, 세상을 본받아 초서와 예서를 정교하게 하는 것은 삼가하여 하지 않도록 하라.

【1】書者, 亦庶也, 記庶物也. 又如也, 寫其言如其意也.

【2】繕, 補也緝也. 綴緝文字, 謂之繕寫也.

【3】貝多羅, 此云岸形.《西域記》南印度.建那國北有多羅樹, 距三十里, 其葉長廣, 其色光潤, 諸國書寫, 莫不採用. 故, 阿難等, 結集三藏, 皆書此葉也.

【4】簡, 竹片也. 古者無紙, 有事, 書之於簡. 單執一札曰簡, 連編諸簡曰策. 謂刪詩書, 定禮樂, 書之於簡策也.

【5】師諱智顗, 字德安, 華容.陳氏子. 七歲入寺, 聞僧誦《法華》, 忽自憶七卷之文, 宛如夙習, 位居十信前五品弟子位. 辯才無礙, 隋.文帝賜智者之號.

【6】灌頂法師, 字法雲, 章安人. 慧解天縱, 智者命爲侍者, 記其所說, 垂之未來, 殆與慶喜結集, 同功而比德, 微章安, 智者之道, 將絶聞於今日也.

【7】吳郡.張芝, 字伯英, 善草書, 氣脈通連, 隔行不斷, 謂之一草書. 周太史籒始制大篆, 秦.李斯又爲小篆. 秦.下邽人程邈爲獄吏, 得罪繫獄, 覃思十年, 易小篆爲隸書三千字, 秦始皇喜而免其罪, 用爲御使, 謂徒隸所造也.

【1】書는 많다(庶)는 것이니, 여러가지 사물에 대해 기록하기 때문이다. 또는 같다(如)는 것이니, 말을 글로 쓸 때는 그 뜻과 같게 하기 때문이다.

【2】繕은 깁거나 꿰매는 것이다. 문자를 꿰매어 모으는 것을 일컬어 繕寫라 한다.

【3】패다라는 이곳 말로 하면 ‘언덕 모양’이다.《서유기》에서, 남인도 건나국의 북쪽에 多羅나무가 있으니 크기가 30리로 그 잎이 길고도 넓은데 그 색이 빛나고도 윤기가 있어 모든 나라에서 글을 쓸 때는 그것을 가져다 쓰지 않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난 등이 三藏을 결집할 때 모두 이 잎에다 글을 썼다.

【4】簡은 대나무 조각이다. 옛날에는 종이가 없었기에 일이 있으면 죽간에다 글을 썼다. 하나의 대나무 조각을 홑으로 놓아둔 것을 簡이라 하고, 여러 개의 簡을 연결 지어 엮은 것을 策이라 한다. 詩와 書를 추리고 禮와 樂을 정리하여 簡策에 기록했음을 말한다.

【5】선사의 휘는 지의, 자는 덕안이며 화용 진씨의 아들이다. 7세 때 절에 들어와 스님이《법화경》외는 것을 듣고는 문득 7권의 글귀를 스스로 기억하였는데, 그 완연함이 마치 옛날부터 익혔던 것 같았기에 十信의 앞인 五品弟子의 지위에 자리하게 되었다. 말솜씨에 재주가 있어 걸림이 없음에 수문제가 ‘智者’라는 호를 하사하였다.

【6】관정법사의 자는 법운으로 장안 사람이다. 하늘이 내린 지혜와 이해력을 가졌기에 지자대사가 명하여 시자로 삼자 그가 얘기한 바를 기록하였다가 뒷날까지 전해 주었으므로 경희가 결집한 것과 더불어 그 공덕을 견줄 수 있을 것이니, 장안이 아니었다면 지자대사의 도는 아마도 오늘날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7】오군의 장지는 자가 백영으로 초서에 뛰어났는데, 기맥이 연이어 통함에 [붓끝이] 멈추는 듯 나아감이 끊이지 않았으니 이를 일컬어 一草書라 하였다. 주나라 태사 주가 처음으로 大篆을 만들었고, 진나라 이사가 또 小篆을 만들었다. 진나라 하규사람 정막이 옥사의 관리가 되었다가 죄를 받아 옥에 갇혀 생각에 잠겨 있기를 10년, 小篆을 바꿔 隸書 3천자를 만드니 진시황이 기뻐하여 그의 죄를 면하게 해주고 등용하여 御使로 임명하였는데, 죄수가 만든 것이라 [하여 隸書라] 하였다.



⑥ 不學詩, 無以言.

言善, 則千里之外應之; 言不善, 則千里之外違之.[1]《詩》陳褒貶,[2] 語順聲律,[3]《國風》敦厚,[4]《雅‧頌》溫柔,[5] 才華氣淸, 詞富彬蔚.[6] 久習卽語論[7]自秀, 纔誦乃含吐不俗. 彼稱「四海, 習鑿齒」, 此對「彌天, 釋道安」.[8]陳留.阮瞻, 時忽嘲曰: 「大晋龍興, 天下爲家, 沙門何不全髮膚‧去袈裟‧釋梵服被綾紗?」 孝龍[9]對曰: 「抱一逍遙, 唯寂以致誠. 剪髮毁容, 改服變形, 彼謂我辱, 我棄彼榮. 故, 無心於貴而愈貴, 無心於足而愈足.」 此乃氣蘊蘭芳,[10] 言吐風采,[11] 雖不近乎聾俗, 而可接於淸才.[12] 佛法旣委王臣,[13] 弘道須習文翰.[14]支遁投書北闕,[15]道安方逸東山,[16] 自非高才, 豈感君主![17] 宜省狂簡之言, 徒虛語耳.[18]

⑥ 시詩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잘 할 수 없다.

말을 올곧게 잘하면 곧 천리 밖에서도 그 말에 호응하고, 말을 올곧게 잘하지 못하면 곧 천리 밖에서도 그 말을 어기려 든다.《시경》은 칭찬하여 말하는 법과 비평하여 말하는 법을 갖추어 진술하였고 그 언어는 성조聲調와 운율韻律을 따랐으니,《국풍》은 도탑고도 중후하고《아‧송》은 온화하고도 부드러우며, 재치가 빛나고 기개가 청아하며 어휘가 풍부하고도 밝게 빛난다. 오래 익히면 곧 말과 논리가 저절로 빼어나고 가까스로 외우더라도 [말을] 머금고 내뱉음에 있어 속되지 않는다.

저쪽에서 「이 세상(四海)의 습착치입니다」라고 일컫자 이쪽에서 「온 천하(彌天)의 석도안입니다」라고 대꾸하였다. 진류의 완첨이 한 때 문득 조롱하여 이르기를 「대진이 크게 일어나 천하로 집을 삼았거늘 사문沙門은 어찌 터럭과 피부를 온전히 하고 가사를 버리며 승복을 벗고 비단옷을 입지 않는가?」 하니 효룡이 대답하기를 「참된 도(一)를 안고서 자유로이 노닐며 오직 고요하게 정성을 다할 뿐입니다. 머리를 깎아 얼굴을 헐고 의복을 고쳐 모습을 변화시키니 저네들은 내가 욕되다 일컫지만 나는 그들의 영욕을 버렸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부귀에 무심하니 더욱 존귀하게 되고 만족에 무심하니 더욱 풍족하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곧 기개는 난초의 향기로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말은 풍류로운 문채를 내뱉으니, 비록 귀먹고 속된 이들과는 친근할 수 없으나 맑고도 재주로운 이들과 교제할 수 있다 할 것이다. 불법을 이미 왕과 신하에게 맡기셨으니 도를 넓히고자 하면 모름지기 글월을 익힐 것이다. 지둔은 북궐에 글을 올리고 도안은 동산에 숨었으니, 스스로 뛰어난 재주를 가지지 못했다면 어찌 군주를 감동시켰겠는가. 마땅히 사리 분별에 벗어나는 말을 살펴라, 단지 헛된 말일 뿐이다.

【1】《易‧繫辭》「君子居其室, 出其言善, 則千里之外應之, 况其邇者乎! 君子居其室, 出其言不善, 則千里之外違之, 况其邇者乎!」

【2】褒, 揚美也; 貶, 抑挫也. 善者可以感發人之善心, 惡者可以懲創人之逸志也. 創, 亦懲也. 詩三百, 褒揚其善, 貶抑其惡也.

【3】聲, 五音也; 律, 六律也. 叶於聲律故, 歌詩以鼓琴瑟. 聲屬陽, 律屬陰. 楊子曰: 「聲生於日, 律生於辰也.」

【4】十五國風俗歌謠, 敦大而重厚也. 風是民庶之作也.《詩》序云: 「上以風化下, 下以風刺上.」 刺, 譏切也. 又如物因風之動以有聲, 而其聲又足以動物也.

【5】《雅》, 大小二《雅》;《頌》, 周‧商‧魯三《頌》.《雅》是朝延之詩,《頌》是宗廟之詩, 皆溫和而柔順也.

【6】彬, 文采炳朗也; 蔚, 文華深密貌.《易》曰: 「其文蔚也.」

【7】以言告人曰語, 對人難辨曰論.

【8】襄陽高士習鑿齒先聞安重名, 致書通好, 安自陸渾山至壇溪寺. 習聞安至, 詣安, 旣坐自稱「四海習鑿齒」, 安曰「彌天釋道安」. 時人, 以爲名對.

【9】《高僧傳》云: 「沙門支孝龍, 淮陽人. 少以風姿見重, 加以高論適時, 陳留‧阮瞻等, 並結知音之交, 時人號爲八達.」

【10】蘭生幽谷, 淸香遠聞. 黃山谷曰: 「一榦一花而香有餘者, 蘭; 一榦數花而香不足者, 蕙也.」 蕙亦蘭屬也.

【11】風流文采.

【12】雖見棄於聾瞽無知之俗, 可以敵對於淸新才藝之士.

【13】佛於靈山付囑國王‧大臣, 使其外護也.

【14】翰, 文詞也.

【15】晋.哀帝時, 竺潛辭闕而歸剡, 詔支遁繼講於禁中, 遁乃抗表還山. 北闕卽玄武門也. 未央殿前雖南向, 而上書奏事謁見之徒, 皆詣北闕, 然則北闕爲正門.

【16】東晋.孝武聞安高名, 有詔曰: 「法師以道德照臨天下, 使大法流行, 蒼生依賴. 故, 宜日食王公祿.」 以時資給, 安因不受, 遂隱東山, 山在魯境. 逸, 逃遁也.

【17】二師非有盛德高才, 豈帝王之所感動哉!

【18】子曰: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適時狂簡, 志大而略於事也. 志大, 狂也; 略於事, 簡也. 斐然, 文貌; 成章, 言其文理成就有可觀者. 須省察而勿聽乎文章, 是狂簡之說, 非其實言也. 欲弘斯道, 可以傍閱詩編耳也.

【1】《역경》의 계사편에 말하였다. 「군자가 집안에 앉아 있더라도 내뱉는 그 말을 올곧게 잘하면 곧 천리 밖에서도 호응할 것이니 하물며 가까이 있는 자들이랴! 군자가 집안에 앉아 있더라도 내뱉는 그 말을 올곧게 잘하지 못하면 곧 천리 밖에서도 그 말을 어기려 들것이니 하물며 가까이 있는 자들이랴!」

【2】褒는 아름다운 것을 선양하는 것이요, 貶은 [추악한 것을] 억눌러 꺾는 것이다. 선한 것은 사람들을 감응시켜 착한 마음을 일으키게 할 수 있으며, 악한 것은 사람들을 징계하여 해이한 뜻을 혼내 줄 수 있다. 創 역시 징계한다는 뜻이다.《시경》의 시 3백편은 선한 것을 칭찬하여 선양하고 악한 것을 내쳐서 억눌렀다.

【3】聲은 다섯 가지 音階를 말하며, 律은 여섯 가지 音律을 말한다. 성조와 운률에 화합하는 까닭에 시를 노래하는 것으로써 금슬을 탈 수가 있다. 聲은 陽에 속하며 律은 陰에 속한다. 양자가 말하기를 「聲은 해로부터 생겨났고 律은 별로부터 생겨났다」고 하였다.

【4】열 다섯 나라의 풍속과 가요는 크게 도타우면서도 중후하다. 風은 서민들이 지은 것이다.《시경》의 서문에 이르기를 「윗사람은 風으로써 아랫사람을 교화하고 아랫사람은 風으로써 윗사람을 풍자한다」 하였다. 刺는 나무라거나 충고함이 절실함을 말한다. 또한 사물은 風으로 인하여 움직이게 됨으로써 소리가 있게 되고 그 소리가 또한 사물을 움직이게 하기에 넉넉함과 같다.

【5】雅에는 대아와 소아의 두 가지가 있으며, 頌에는 주송과 상송과 노송의 세 가지가 있다. 雅는 조정의 詩이며 頌은 종묘의 詩이니 [그 성격이] 모두 온화하고 유순하다.

【6】彬은 문장이 두드러지게 밝은 것이요, 蔚은 문장이 화려하고도 깊이가 있는 모습이다.《주역》에 말하기를 「그 문장은 화려하고도 깊이가 있다」라고 하였다.

【7】말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을 語라 하고, 다른 사람과 상대하여 분별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論이라 한다.

【8】양양의 덕 높은 선비인 습착지가 먼저 도안의 높은 이름을 듣고는 글을 보내 호의를 알리자 도안이 육혼산을 내려와 단계사에 이르렀다. 습착지가 도안이 도착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도안에게 가서 이윽고 앉으며 스스로 일컫기를 「이 세상의 습착지입니다」라 하자 도안이 「온 천하의 석도안입니다」라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그것을 유명한 댓구로 여겼다.

【9】《고승전》에 말하였다. 「사문 지효룡은 회양인이다. 젊어서 기풍 있는 모습으로 중시를 받았으며 더욱이 탁월한 논변으로 때의 흐름을 좇아가니 진류와 완첨 등이 더불어 知音의 교제를 맺음에 당시 사람들이 八達이라 불렀다.

【10】蘭은 깊은 계곡에서 자라나 맑은 향기가 멀리까지 퍼진다. 황산곡이 말하기를 「한 줄기에 한 송이의 꽃이더라도 향기가 넉넉한 것을 蘭이라 하고, 한 줄기에 몇몇 송이 꽃이더라도 향기가 부족한 것을 蕙라 한다」 하였다. 蕙 역시 蘭에 속한다.

【11】풍류가 있는 문채.

【12】비록 귀먹고 눈먼 무지한 속인들에게는 버림을 받을 지라도 청신하고도 재주로운 선비들과는 맞서서 상대할 수 있다.

【13】부처님이 영취산에서 국왕과 대신들에게 부촉하여 그들로 하여금 불법을 외호하도록 하였다.

【14】翰은 문헌의 글귀이다.

【15】진나라 애제 때 축잠이 대궐을 하직하고 염으로 돌아가자 지둔에게 조서를 내려 대궐에서 계속 강설하게 하니 지둔이 이에 表를 올려 항명하고 산으로 돌아갔다. 북궐은 곧 현무문이다. 미앙전의 앞쪽이 비록 남향을 하고 있으나 글을 올리거나 일을 아뢰는 이 또는 알현하는 무리들이 모두 북궐에 이르므로, 그러한 즉 북궐이 정문이 되었다.

【16】동진의 효무제가 도안의 덕 높은 이름을 듣고는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법사께서 도덕으로써 천하에 임하여 밝은 빛을 비추어 큰 법을 유행하게 하니 창생들이 의지하고 힘입게 되었다. 그러므로 응당 왕공의 녹봉을 먹어야 할 것이다」 하고는 절기에 맞추어 재물을 대주었으나 도안이 받지 않고 마침내 동산에 은둔하였으니, 그 산은 노나라의 경계에 있다. 逸은 도망하여 은둔함이다.

【17】두 선사에게 치성한 덕과 높은 재주가 없었다면 어찌 제왕이 감동할 바가 되었겠는가.

【18】공자가 말하기를 「나의 문중 어린 선비들이 사리분별을 벗어남에 오락가락 그렇게 문장을 이루고는 그것을 마름질 할 줄을 알지 못하는구나」 하였다. 適時狂簡은 뜻은 크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대충대충 하는 것을 말한다. 뜻이 크니 狂이요, 일을 대충대충 처리하니 簡이다. 斐然은 문장의 모양이요, 成章은 문장의 이치가 성취되어 볼 만한 것이 있음을 말한다. 모름지기 살펴서 알기는 하되 문장을 자세히 받아들이지는 말지니, 이 狂簡의 얘기는 그 참된 말이 아니다. 불도를 넓히고자 한다면 시편들을 그저 두루 살펴보면 될 따름이다.

⑦ 不博覽, 無以據.[1]

《高僧傳》云: 「非博則語無所據.」 當知今古之興亡, 須識華‧梵之名義.[2] 游三藏之敎海, 玩六經之詞林,[3] 言不妄談, 語有典據. 故, 習鑿齒讚安師曰: 「理懷簡衷,[4] 多所博涉, 內外群書,[5] 略皆遍覩, 陰陽算數, 悉亦能通, 佛經妙義, 故所游刃.」[6]眞宗皇帝詔李侍讀飮,[7]仲容起固辭曰: 「告官家, 徹巨器.」 上問: 「何故, 謂天子爲官家?」 對曰: 「臣嘗記蔣濟《萬機論》言????三皇官天下, 五帝家天下????,[8] 兼三五之德, 故曰官家.」 上喜曰: 「眞所謂君臣千載一遇.」 此由學問藏身, 多識[9]前言, 無所累矣.[10]

⑦ 널리 살펴보지 않으면 근거할 것이 없다.

《고승전》에 이르기를 「널리 살펴보지 않으면 말함에 근거할 바가 없다」라 하였으니, 응당 고금의 흥망을 알아야 하고 모름지기 한문과 범문의 명의名義에 자세해야 한다. 삼장三藏이라는 가르침의 바다를 여행하고 육경六經이라는 어휘의 숲을 노닒으로써 말을 하면 허망한 얘기가 되지 않고 그 언어에는 전거典據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습착치는 도안법사를 찬양하여 「속마음을 다스려 간결하고도 바르게 지니며 널리 섭렵한 바가 많아 안팎의 뭇 서적들을 대략 모두 훑어보았고 음양과 산술 또한 능통하였으니, 불경의 오묘한 이치는 본래 칼날 놀리듯 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진종황제가 시독 이중용을 불러들여 술을 마시는데 중용이 일어나 굳이 사양하며 이르기를 「관가官家에게 아뢰나니 큰그릇은 거두소서」 하니 천자가 묻기를 「어인 까닭으로 천자를 일컬어 ‘관가’라 하는가?」 하기에 대답하기를 「신이 일찍이 장제의《만기론》에 쓰여진 ????삼황은 천하를 벼슬아치가 관청 다스리듯 하였고, 오제는 천하를 가장이 집안 다스리듯 하였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음에 삼황과 오제의 덕을 겸비하셨기에 ‘관가’라 말씀드린 것입니다」 하니 천자가 기뻐하며 이르기를 「참으로 이른바 임금과 신하가 천 년에 한 번 만났음이로다」 하였다. 이는 학문을 몸에 갈무리하여 두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앞사람들의 말을 많이 익혀 두어서 누累가 될 바는 없다.

【1】《高僧傳》云: 「唱導所貴有四: 非聲則無以警衆, 非才則無以適時, 非辯則無言可採, 非博則語無依據.」《事鈔》云「博學爲濟貧」, 謂濟識見之貧也.

【2】法雲法師之自述名義集云: 「名義者, 能詮曰名, 所詮曰義.」

【3】六經:《詩》,《書》,《易》,《春秋》,《周禮》,《禮記》.

【4】理, 治也; 懷, 中也; 簡, 不煩也; 衷, 正也. 言自治其心情, 不煩而且正也.

【5】儒以九經爲內, 以諸家雜書爲外.

【6】習與謝安書云: 「來此見釋道安, 無變化伎術可以惑常人之耳目, 無重威大勢可以整群小之參差, 而師徒肅肅, 自相尊敬, 乃是吾由來素未見其人. 若安者, 非常勝士, 恨公不一見.」 庖丁解牛, 恢恢乎其游刃有餘地矣.

【7】宋侍讀李仲容善飮, 號李萬回, 眞宗飮無敵, 飮則必召仲容.

【8】《史》「五帝官天下, 三皇家天下, 官以傳聖賢, 家以傳子孫也.」

【9】音志記也.

【10】《易》曰: 「君子多識前言往行, 以蓄其德.」 符堅於藍田得一古鼎, 容二十七斛. 朝士皆無知者, 以問安, 安曰: 「魯.襄公所鑄也.」 腹有篆文, 果信. 堅勅諸學士, 皆師於安, 國人語曰: 「學不師安, 義不禁難.」

【1】《고승전》에 이르기를 「불도를 제창하여 대중을 이끌어 감에 있어서 소중하게 여겨야 할 바가 네 가지 있으니, 소리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면 곧 대중을 경책할 수 없으며, 재주롭지 못하면 곧 時宜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으며, 말을 잘하지 못하면 곧 채택할 만한 얘기가 없으며, 널리 섭렵하지 않으면 곧 말을 하여도 근거하는 바가 없다」라고 하였다.《사초》에 이르기를 「널리 배우는 것은 빈곤을 구제하는 것이 된다」라 하였으니, 식견의 빈곤을 구제하는 것을 일컫는다.

【2】법운법사가 자신이 서술한 名義集에서 말하였다. 「名義라는 것은 능동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名이라 하고 설명되어지는 바를 義라 한다.」

【3】6경은《시》,《서》,《역》,《춘추》,《주례》,《예기》이다.

【4】理는 다스림이요, 懷는 가운데(속마음)이며, 簡은 번뇌스럽지 않음이요, 衷은 바름이다. 스스로 그 마음의 정서를 다스려 번뇌하지 않고 또한 바르게 됨을 말한다.

【5】유가에서는 아홉 종의 경전을 內典으로 삼고 諸家의 잡서를 外典으로 삼는다.

【6】습착지가 사안에게 준 글에서 말하기를 「이곳에 와서 석도안을 보니 변화무쌍한 재주와 꾀로써 보통사람들의 이목을 유혹할 만한 바가 없으며 중후하고 위엄있는 큰 위세로써 뭇 소인배들의 들쭉날쭉한 바를 정돈할 만한 바는 없으나 선사의 무리들이 엄숙하면서도 스스로 서로를 존경하니 곧 이점이 내가 원래 평소에 보지 못했던 그의 사람됨입니다. 도안과 같은 이는 비상하고도 뛰어난 선비이니 공께서 한 차례 만나보지 못했음이 한스럽습니다」 하였다. 포정이 소를 해체함에 칼날을 놀리는 것이 여유로워 오히려 餘地가 있는 듯 하였다.

【7】송나라 시독 이중용은 술을 잘 마셔 호가 이만회였는데, 진종이 술을 마시면 대적하는 이가 없음에 마실 때는 반드시 중용을 불렀다.

【8】《사기》에 말하였다. 「오제는 천하를 벼슬아치가 관청 다스리듯 하였고 삼황은 천하를 가장이 집안 다스리듯 하였으니, 관청은 성현에게 전해지고 집안은 자손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9】[識의] 음은 지(志) 또는 기(記)이다.

【10】《주역》에 말하기를 「군자는 예전에 있었던 말과 행위 등을 많이 기억하여 그 덕을 기른다」 하였다. 부견이 남전에서 오래된 솥 하나를 얻게 되었는데 용량이 27곡이나 되었다. 조정의 선비들이 모두 아는 자가 없기에 도안에게 물으니 도안이 말하기를 「노나라 양공이 주조한 것입니다」 하였는데, 솥의 배 부분에 篆文이 있는지라 과연 믿을 수 있었다. 부견이 뭇 학사들에게 조칙을 내려 모두 도안에 대해 스승의 예를 취하게 하니 나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배움에 있어 도안을 스승으로 삼지 않으면 도의 이치에 있어 어려움을 금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⑧ 不歷事, 無以識.

子曰: 「吾非聖人, 經事久矣.」 洎入太廟, 每事問者, 儆戒無虞, 罔失法度.[1] 羅漢雖聖, 赤鹽不知,[2]方朔雖賢, 刦灰罔辨,[3] 多見而識之, 未見而昧矣. 李後主得畵牛一軸, 晝則出於欄外,[4] 夜乃歸於欄中,[5] 持貢闕下, 太宗張後苑, 以示群臣, 俱無知者, 惟僧錄贊寧曰: 「南倭海水或減則灘磧微露, 倭人拾方諸,[6] 蚌蜡中有餘淚數滴者得之, 和色着物則晝隱而夜顯; 沃焦山,[7] 時或風燒[8]飄擊, 忽有石落海岸, 得之, 滴水磨色染物則晝顯而夜晦.」 諸學士皆以爲無稽,[9]寧曰: 「見張騫《海外異記》.」[10] 後, 杜鎬檢三舘書目,[11] 果見於六朝[12]舊本書中. 此乃博聞强識, 見幾而作也.

⑧ 일을 겪지 않으면 익히 아는 것이 없다.

공자가 이르기를 「나는 성인이 아니라 일을 경험한 지 오래 되었을 뿐이다」 하였으니, 태묘에 들어가자 모든 일을 [묘지기에게] 물은 것은 우려하는 마음이 없어서 법도를 잊을 것을 경계하셨기 때문이다. 나한이 비록 성인이나 붉은 소금을 알지 못하였고 동방삭이 비록 현인이나 겁회刦灰를 분별하지 못하였으니, 견문이 많으면 그것을 익히 알았겠지만 보고 듣지 않았기에 어두웠던 것이다.

이후주가 소 그림 한 폭을 얻었는데 낮이면 난간 밖으로 나왔다가 밤이면 이내 난간 안으로 돌아가는지라 가져다가 대궐에 바치니 태종이 후원에 펼쳐놓고 뭇 신하들에게 보였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는데, 오직 승록 찬녕이 이르기를 「남쪽 왜倭 지방에 바닷물이 간혹 줄어들면 물 속의 자갈밭이 약간 드러나게 되는데, 왜인들이 반듯한 돌이나 진주를 줍다가 큰 조개 안에 남아 있는 눈물 몇 방울을 얻어 물감에 타서 칠하면 곧 낮이면 숨었다가 밤이면 드러난다고 하며, 옥초산이 때때로 간혹 바람에 휩쓸리거나 회오리와 부딪치면 어쩌다 해안으로 잔돌이 떨어지는데 그것을 주워다 몇 방울의 물에 갈아서 색을 낸 뒤에 물건에 바르면 곧 낮에는 드러났다가 밤이면 숨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뭇 선비들이 모두 근거 없는 것으로 여기기에 찬녕이 「장건의《해외이기》에서 보았습니다」 하였다. 후에 두호가 삼관三舘의 책 목록을 검열하던 중에 과연 육조六朝의 옛 서적 가운데에서 보게 되었다. 이것은 곧 널리 듣고 잘 익혀 두었다가 기회를 보아 지식을 드러낸 것이다.

【1】儆, 與警同; 虞, 度也; 罔, 勿也; 法度, 法則制度也. 言當無可虞度之時, 法度易至廢弛故, 戒其失墮也.

【2】法預婆羅門, 將赤塩問羅漢, 不知.《山海經》「大州南極有七大井, 晝夜煮而爲塩, 其色赤. 此, 天下之毒物, 塗之門則諸鬼不能入, 塗之木則諸禽不能止.」

【3】東方朔, 生三日父母俱亡, 後遊澤中, 黃眉翁指朔曰: 「此, 吾兒也. 服氣三千年一返髓, 三千年一剝皮伐毛也. 吾生已三洗髓‧三伐毛.」 從知朔是非常人也. 漢.武帝欲伐昆明國, 其國在水中, 鑿池終南山下三百里, 敎水戰, 號昆明池. 池低得異灰, 問朔, 朔曰: 「非臣所知.」 後人問胡僧, 曰: 「世界壞時, 劫火燒盡器界, 此刦燒之灰也.」

【4】中圈曰欄.

【5】江南徐知諤得之, 與南唐主李煜, 獻太宗.

【6】方石諸珠也.

【7】《山海經》有沃焦山, 沃焦者, 謂隨沃隨焦也.

【8】他本作撓.

【9】考也.

【10】《異記》者, 漢.武帝令張騫尋黃河水源, 乘槎而直上崑崙山, 復上至銀河, 得天女支機石而來, 其往來時, 所記者也.

【11】宋.太宗於龍門東北刱立三舘, 至太平興國三年三舘成, 賜名崇文院, 遷西舘書貯焉, 凡八萬卷. 三舘, 昭文舘‧集賢舘‧史舘, 總名崇文院.

【12】晋‧宋‧齊‧梁‧陳‧隋也.

【1】儆은 警(경계하다)과 같으며, 虞는 헤아림(度)이며, 罔은 하지 말라(勿)는 것이요, 法度는 법칙과 제도이다. 우려하고 헤아리는 일이 없게 되는 지경이 되면 법도는 쉽사리 피폐하고 느슨해짐에 이르는 까닭에 잘못하여 무너지게 됨을 경계하는 것을 말한다.

【2】법예 바라문이 붉은 소금을 가져다 나한에게 물었으나 알지 못하였다.《산해경》에 「대주의 남쪽 끝에 일곱 개의 큰 우물이 있음에 밤낮으로 [그 우물의 물을] 달이면 소금이 되는데 그 빛깔이 붉다. 이것은 천하의 독극물로서 문에 바르면 모든 귀신들이 능히 들어오지 못하고 나무에 바르면 모든 날짐승이 능히 앉지를 못한다」 하였다.

【3】동방삭은 태어난 지 사흘만에 부모가 모두 죽었으며, 후에 택중을 유력할 새 눈썹이 누른 늙은이가 동방삭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는 나의 아들이다. 기운을 입은 지 3천년에 한 차례 골수가 새롭게 바뀌고 3천년에 한 차례 가죽이 벗겨지고 털을 갈게 된다. 나는 태어나서 이미 세 차례 골수를 씻어 내렸고 세 차례 털을 갈았다」 하므로 이로써 동방삭이 비상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한나라 무제가 곤명국을 치려고 함에 그 나라가 물 가운데 있으므로 종남산 아래 3백 리 되는 못을 파서 수전을 교육시키며 그 못을 곤명호라 하였다. 못 바닥에서 이상한 재를 얻자 동방삭에게 물었더니 동방삭이 「신이 아는 바가 아닙니다」 하였는데, 뒤에 사람들이 오랑캐 승려에게 물으니 말하기를 「세계가 무너질 때 劫火가 일체 세간을 모조리 태우는데 이것은 겁화가 세간을 태운 재입니다」 하였다.

【4】중간 크기의 우리를 欄이라 한다.

【5】강남의 서지악이 이것을 얻어 남당의 군주인 이욱에게 주니 [이욱이] 태종에게 바쳤다.

【6】반듯한 돌과 진주이다.

【7】《산해경》에 옥초산이 있으니, 沃焦란 물을 갖다 부으면 붓는 대로 마르는 것을 말한다.

【8】다른 판본에는 撓로 되어 있다.

【9】참고함이다.

【10】《異記》는, 한나라 무제가 장건에게 명하여 황하 물줄기의 근원을 찾도록 하자 뗏목을 타고 곧장 곤륜산에 오르고 다시 위로 은하에 이르러 천녀의 지기석을 얻어 돌아왔는데, 그가 왕래 할 때 기록하였던 것이다.

【11】송나라 태종이 용문 동북쪽에 삼관을 처음 세웠는데, 태평흥국 3년에 이르러 삼관이 낙성되자 숭문원이란 이름을 하사하고 서관의 서적을 옮겨 갈무리해 두게 하였는데 무릇 8만권이나 되었다. 삼관은 소문관과 집현관 및 사관으로 총명이 숭문원이다.

【12】진, 송, 제, 양, 진, 수나라이다.

⑨ 不求友, 無以成.

生我者父母, 成我者朋友. 故, 君子以朋友講習, 以文會友, 以友輔仁.[1] 品藻人物,[2] 商搉同異,[3] 如切如磋, 如琢如磨.[4]劉孝標[5]云: 「組織仁義,[6] 琢磨道德, 歡其愉樂,[7] 恤其陵夷,[8] 寄通靈臺之下,[9] 遺跡江湖之上,[10] 風雨急而不輟其音, 雪霜零而不渝其色.[11]」 斯乃賢達之素交, 歷萬古而一遇. 東晋.道安未受戒時, 會沙彌僧光於逆旅,[12] 共陳志慕, 神氣慷慨, 臨別相謂曰: 「若俱長大, 勿忘同遊.」 後, 光學通經論, 隱飛龍山,[13]安後復從之, 相會所喜, 謂昔誓始從. 因共披文屬思, 新悟尤多. 安曰: 「先舊格義, 於理多違.」 光曰: 「且當分析逍遙, 何容是非先達?」 安曰: 「弘贊理敎, 宜令允愜, 法鼓競鳴, 何先何後!」 時僧道護亦隱飛龍,[14] 乃共言曰: 「居靜離俗, 每欲匡正大法, 豈可獨步山門, 使法輪輟軫![15] 宜各隨力所被, 以報佛恩.」 衆僉[16]曰:「善!」 遂各行化.

⑨ 벗을 구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고 나를 이루어 주는 자는 벗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벗으로써 배우고 익힘에 글로써 벗을 모으고 모인 벗으로써 어질고자 하는 마음을 돕는다. 인품을 차츰차츰 다듬어 나가며 같고 다름을 헤아리고 들추어내되 톱으로 끊는 듯이 하고 돌로 가는 듯이 하고 정으로 쫓은 듯이 하고 줄로 가는 듯이 할지니라.

유효표가 이르기를 「인의仁義로서 조직하고 도덕道德으로 탁마함에 그가 기뻐하고 즐거워함을 기뻐하고 그가 침체하고 쇠퇴함을 근심하며 신통의 경계는 신령스러운 누각 아래로 붙여 둔 채 그 자취를 강호 위에 남기니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 소리는 그치지 않고 눈서리가 떨어져도 그 색깔은 바래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는 곧 현명하고 활달한 이의 근본 교제로서 만고에 있어 겨우 한 차례나 마주치는 일이다.

동진 때 도안법사가 아직 계를 받지 않았을 때 사미 승광을 객점에서 만나 함께 포부를 펴니 정신과 의기가 강개하여짐에 헤어지며 서로 일컫기를 「만약 함께 크게 되거든 함께 노닐던 것을 잊지 말자」라고 하였다. 후에 승광이 경론을 배워 통달하고는 비룡산에 은거하자 도안이 뒤에 다시 그를 쫓아가 서로 만나 기뻐하며 예전에 서약하였던 것을 비로소 따르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로 인하여 함께 글을 펴 보고 생각을 붙여가니 새로 깨달은 것이 더욱 많았다. 도안이 이르기를 「옛 어른들의 격의格義에도 이치에 어긋남이 제법 많다」 하자 승광이 이르기를 「우선 마땅히 [그 이치를] 분석하고 [그 도리에] 소요逍遙해야 할 것이거늘 어찌 앞선 어른들을 옳고 그르다 할 수 있겠는가?」 하므로 도안이 「진리의 교법을 넓히고 찬양하고자 하면 마땅히 진실과 합당하게 해야 할 것이니, 법고가 다투어 울림에 어찌 먼저와 뒤가 있겠는가?」 하였다. 이 때 승려 도호 역시 비룡산에 은거하여 있다가 이에 함께 얘기하며 일컫기를 「고요한 곳에 거처하며 속세와 떨어져 있는 것은 언제라도 큰 법을 곧게 바로잡고자 함인데 어찌 홀로 산문을 거닐며 법의 수레로 하여금 구르는 것을 그만두게 하겠는가! 마땅히 각자 힘이 미치는 바에 따라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하니 대중이 모두 「좋다!」라 말하고는 마침내 각자 교화를 행하였다.

【1】講學以會友, 則其道益明; 取善以輔仁, 則其德日進.

【2】《漢書》註云: 品其差次, 藻飾文質也.

【3】商量搉擧乎人物之同異也, 又搜求義理之當否也.

【4】治骨角者, 旣切而復磋之, 治玉石者, 旣琢而復磨之, 言其治之有緖而益致其精也. 朋友之道, 亦如是也.

【5】名峻.

【6】組亦織也. 組織作布帛之總名, 行仁喩義, 如織布帛之有經緯也.

【7】愉亦樂也, 顔色和悅之貌.

【8】夷平也, 言人之頹替不振, 如丘陵之漸平.

【9】靈臺, 心也. 莊周曰: 「萬惡不可內於靈臺.」 司馬彪曰: 「心爲神靈之臺.」 選註云: 「寄神通於心府之下.」

【10】嚴子陵隱富春江, 有嚴陵釣臺.

【11】輟‧止也, 渝‧變也.《詩》云「風雨如晦, 鷄鳴不已.」 言不失時也. 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言不變色也. 君子之交, 以貴賤得失, 不易時改節也.

【12】客店.

【13】僧光, 冀州人, 常山淵公弟子. 後, 受戒勵行, 値石氏之亂, 隱飛龍山.

【14】護亦冀州人, 貞節有慧解, 又隱飛龍.

【15】軫, 車後橫木, 又動也.

【16】亦衆也, 又皆也.

【1】학문을 강론함으로써 벗을 모으면 곧 그 도는 더욱 밝아지고, 착함을 취함으로써 어짊을 도우면 곧 그 덕이 날로 전진하게 된다.

【2】《한서》의 주석에 말하기를, 그 상이한 차례를 품별하고 문채와 실질을 수식한다 하였다.

【3】인물의 같고 다름을 헤아리고 들추어봄이며, 또한 義理의 정당성 여부를 찾아 구해봄이다.

【4】뼈나 뿔을 마름질하는 자는 먼저 톱으로 자른 다음에 다시 그것을 돌로 갈며, 옥이나 돌을 마름질하는 자는 먼저 정으로 쪼은 다음에 다시 그것을 줄로 가는 것이니, 그 마름질에 계통이 있어서 정교함이 더욱 더함을 말한다. 친구의 도리도 역시 이와 같다.

【5】이름은 峻이다.

【6】組 역시 織이다. 組織은 베나 비단을 짜는 총명이니, 어짊을 행하고 정의를 깨우쳐 줌이 마치 베나 비단을 짜는 데 경선과 위선이 있는 것과 같다.

【7】愉 역시 즐거움이니 안색이 평화롭게 기뻐하는 모습이다.

【8】夷는 평평해 지는 것이니, 사람이 무너져 쇠퇴해 감이 마치 언덕이 점차 평평해져 가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9】영대는 마음이다. 장주가 말하기를 「만 가지 악은 영대 안으로 들일 수 없다」 하였고, 사마표가 말하기를 「마음은 신령한 돈대가 된다」 하였으며, 선주에 이르기를 「신통의 경계를 심장 아래에 붙여 둔다」고 하였다.

【10】엄자릉이 부춘강에 은거하니 엄릉조대가 있게 되었다.

【11】輟은 그침이요, 渝는 변화함이다.《시경》에 「몰아치는 비바람 그믐 저녁 같으나 닭 울음 소리 그치지 않는다」 하였으니 시기를 잃지 않음이요, 공자가 말하기를 「세월이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에 시듦을 안다」 하였으니 색이 변치않음을 말함이다. 군자의 교류는 귀하거나 천하거나 이해득실로써 때를 바꾸거나 절개를 고치지 않는다.

【12】객점이다.

【13】승광은 기주 사람으로 상산 연공의 제자이다. 후에 계를 받고는 만행을 다니다 석씨의 난을 만나 비룡산에 은거하였다.

【14】호 역시 기주 사람으로 정절에 지혜와 이해가 있었으니, 또한 비룡산에 은거하였다.

【15】軫은 수레 뒤편의 가로목이며, 또한 움직임을 말한다.

【16】[僉] 역시 대중(衆)이며 또한 모두(皆)이다.

不觀心, 無以通.

《維摩》云: 「諸佛解脫, 當依衆生心行中求.」 何以故? 晋《華嚴》[1]云: 「心如工畵師, 造種種五陰, 一切世間中, 無不從心造. 如心, 佛亦爾,[2] 如佛, 衆生然.[3]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旣爲生佛之母, 亦爲依正之源. 故,《楞嚴》云: 「諸法所生, 唯心所現, 一切因果[4]‧世界微塵,[5] 因心成體.」 欲言心有, 如空篌聲, 求不可見; 欲言其無, 如空篌聲, 彈之亦響.[6] 不有不無, 妙在其中. 故,《般舟》[7]云: 「諸佛從心得解脫, 心者淸淨名無垢, 五道鮮潔不受色,[8] 有解此者大道成.」

마음을 관조하지 못하면 통할 것이 없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의 해탈은 마땅히 중생들의 마음의 움직임에 의지하는 가운데에서 구하라」 하시거늘 어인 까닭인가? 진나라 판본인《화엄경》에 이르기를 「마음은 마치 뛰어난 화가와 같아서 가지가지의 오음五陰을 짓는 것이니 일체의 세간世間 가운데 마음으로 인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마치 마음처럼 부처님 역시 그러할 뿐이며, 마치 부처님처럼 중생도 그러하다. 마음과 부처 그리고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 하였으니 [마음은] 중생과 부처의 어머니가 되며 또한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능엄경》에 이르기를 「모든 법이 생겨난 바는 오직 마음이 드러난 바이니 일체의 인과와 세상의 작은 티끌은 마음으로 인하여 그 실체(體)가 이루어진다」 하였다. 마음은 있다고 말하고자 하나 마치 공후의 소리와도 같아서 구하여도 가히 볼 수가 없고, 마음은 없다고 말하고자 하나 마치 공후의 소리와도 같아서 그것을 퉁기면 또한 울림이 있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니 오묘함이 그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반주삼매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은 마음을 좇아 해탈을 얻으니, 마음이란 청정하여 무구無垢라 이름하며 오도五道에 [헤매더라도] 선명하고 깨끗하여 색色을 받지 않으므로 이것을 해득하는 자는 큰 도를 이룰 것이다」 하였다.

【1】佛陀跋多所譯, 六十卷經.

【2】以心例佛也, 謂如世五蘊從心而造, 諸佛五蘊亦然.

【3】如佛五蘊, 餘一切衆生亦然, 皆從心造也.

【4】正報.

【5】依報.

【6】空篌者, 盖空國之侯所作也. 師涓爲晋.平公鼓焉, 桓譚曰: 「鄙人謂狐爲狸, 以瑟爲空篌. 此, 非徒不知狐與瑟, 乃不知狸與空篌也.」

【7】《般舟三昧經》, 一切十方現在佛悉在前立定經, 此經三卷.

【8】五色譬五道: 黑喩地獄, 由黑業所感故; 靑喩餓鬼, 鬼面靑故; 赤喩畜生, 由噉血故; 黃喩人道, 居天獄之中故; 白喩天道, 純善業所感故. 言五道空則五色亦不有也.

【1】불타발다가 번역한 것으로 60권《화엄경》이다.

【2】心으로써 佛에 예시한 것이다. 말하자면, 세간의 오온이 마음을 좇아 만들어진 것처럼 모든 부처님의 오온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3】부처님의 오온 처럼 나머지 일체 중생도 그러하니, 모두 마음을 좇아 만들어진 것이다.

【4】正報(과거세에 지은 業因에 의해 그 갚음으로 얻어진 有情의 몸)

【5】依報(正報의 그 몸이 의지하고 있는 환경, 곧 國土 또는 器世間)

【6】공후는 아마도 공국의 제후가 만든 것일 것이다. 사연이 진나라 평공을 위해 연주하자 환담이 말하기를 「천박한 이들은 여우를 일컬어 너구리라 하고 거문고를 공후로 여기나니, 이는 단지 여우와 거문고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너구리와 공후도 알지 못함을 말한다」 하였다.

【7】《반주삼매경》은 일체 시방 현재불이 모두 바로 앞에서 立定하여 나타나는 경이며, 이 경은 3권이다.

【8】다섯 가지 색을 五道에 비유하면, 검은 색은 지옥에 비유되니 黑業으로 말미암아 감응 받는 바인 까닭이며, 푸른색은 아귀에 비유되니 귀신이 얼굴이 푸른 까닭이며, 붉은 색은 축생에 비유되니 피를 먹음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며, 황색은 인도에 비유되니 하늘과 지옥의 중간에 거처하는 까닭이며, 흰색은 천도에 비유되니 순수한 선업에 감응 받는 바인 까닭이다. 五道가 공허함은 곧 五色 역시 존재하지 않음을 말한다.

遵此十門, 上行下效, 不倦終之, 則吾佛之敎可延于後世, 苟謂不然, 祖道必喪. 傾望後裔, 覽而警焉.

이 열 가지 문을 준수하여 윗사람은 행하고 아랫사람은 본받아서 게으르지 않고 그것을 마치면 곧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 후세에까지 이어질 것이나, 진실로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조사들의 도는 반드시 상하게 될 것이다. 뒤를 잇는 이들에게 바라나니 살펴보고 경계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