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경훈(緇門警訓)

수주대홍산영봉사십방선원기 隋州大洪山靈峯寺十方禪院記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16:33
 

 

 

수주대홍산영봉사십방선원기 隋州大洪山靈峯寺十方禪院記

 

元祐[1]二年九月, 詔隋州.大洪山.靈峯寺, 革律爲禪, 紹聖[2]元年, 外臺始請移洛陽.少林寺長老報恩[3]爲住持. 崇寧[4]改元正月, 使來求《十方禪院記》, 迺書曰: 「大洪山在隋州西南, 盤基百餘里, 峯頂俯視, 漢東諸國林巒丘嶺猶平川也. 以耆舊所聞攷之, 洪或曰胡, 或曰湖, 未詳所謂. 今以地理攷之, 四山之間, 昔爲大湖, 神龍所居, 洪波洋溢, 莫測涯涘. 其後, 二龍鬪搦, 開層崖, 湖水南落. 故, 今負山之鄕, 謂之落湖管, 此大洪所以得名也. 唐.元和[5]中, 洪州.開元寺僧善信, 卽山之慈忍大師. 師從馬祖, 密傳心要, 北遊五臺山, 禮文殊師利, 瞻覩殊勝, 自慶菩薩有緣, 發願爲衆僧炊爨[6]三年, 寺僧却之, 流涕嗟慽, 有老父曰: ????子緣不在此, 往矣行焉, 逢「隨」卽止, 遇「湖」則住.???? 師卽南邁, 以寶曆二年秋七月抵隋州, 遠望高峯, 問鄕人曰: ????何山也????? 鄕人曰: ????大湖山也.???? 師黙契前語, 尋山轉麓, 至于湖側, 屬歲亢旱, 鄕人張武陵具羊豕, 將用之以祈于湖龍. 師見而悲之, 謂武陵曰: ????雨暘不時, 本因人心黑業所感, 害命濟命, 重增乃罪. 可且勿殺, 少須三日, 吾爲爾祈.???? 武陵亦異人也, 聞師之言, 敬信之. 師則披榛捫石, 得山北之巖穴, 泊然宴坐, 運誠冥禱, 雷雨大作. 霽後數日, 武陵迹而求之, 師方在定, 蛛絲冪面, 號耳挃體, 久之方覺. 武陵卽施此山, 爲師興建精舍, 以二子給侍左右, 學徒依嚮, 遂成法席. 太和[7]元年五月二十九日, 師密語龍神曰: ????吾前以身代牲, 輟汝血食, 今捨身餉汝, 汝可享吾肉.???? 卽引利刀, 截左膝, 復截右膝. 門人奔馳, 其慈忍膝不克斷, 白液[8]流出, 儼然入滅, 張氏二子, 立觀而化. 山南東道, 奏上其狀, 唐.文宗嘉之, 賜所居額, 爲幽濟禪院. 晋.天福中,[9] 改爲奇峯寺, 本朝元豊元年,[10] 又改爲靈峯寺, 皆以祈禱獲應也. 自師滅至今三百餘年而漢‧廣‧汝‧汾之間十數州之民, 尊嚴奉事, 如赴約束, 金帛粒米, 相尾於道. 貨强法弱, 僧範乃革. 前此, 山峯高峻, 堂殿樓閣, 依山製形, 後前不倫, 向背靡序. 恩老至止, 熟閱形勝, 闢道南入, 以正賓主, 鑱崖壘澗, 鏟嶬補砌, 嵯峨萬仞, 化爲平頂. 三門[11]堂殿, 翼舒繩直, 通廊大廡, 疏戶四達, 淨侶雲集, 藹爲叢林, 峨嵋[12]之寶燈瑞相, 淸凉[13]之金橋圓光, 他方詭觀, 異境同現. 方其廢故而興新也, 律之徒懷土而呶呶. 會予謫爲郡守, 舍禪律而證之曰: ????律以甲乙, 禪以十方, 而[14]所謂甲乙者, 甲從何來? 乙從何立? 而必曰「我, 慈忍之子孫也, 今取人於十方則忍後絶矣.」 乙在子孫, 甲在慈忍; 乙在慈忍, 甲在馬祖; 乙在馬祖, 甲在南嶽; 乙在南嶽, 甲在曹溪. 推而上之, 甲乙乃在乎菩提達摩‧西天四七, 所謂甲乙者, 果安在哉? 又而所謂十方者, 十從何生? 方從何起? 世間之法, 以一生二, 一二爲三, 二三爲六, 三三爲九. 九者究也, 復歸爲一, 一九爲十, 十義乃成, 不應突然無一有十. 而所謂方者, 上爲方耶? 下爲方耶? 東爲方耶? 西爲方耶? 南爲方耶? 北爲方耶? 以上爲方則諸天所居, 非而境界; 以下爲方則風輪所持, 非而居止; 以東爲方則毘提訶人, 面如半月;[15] 以北爲方則鬱單越人, 壽命久長;[16] 以西爲方則瞿耶尼洲, 滄波浩渺;[17] 以南爲方則閻浮提洲, 象馬殊國.[18] 然則, 甲乙無定, 十方無依, 競律競禪, 奚是奚非????? 律之徒曰: ????世尊嘗居給孤獨園‧竹林精舍, 必如太守言, 世尊非耶????? 余曰: ????汝豈不聞? 以大圓覺爲我伽藍, 身心安居平等性智. 此非我說, 乃是佛說.???? 於是, 律之徒黙然而去. 禪者曰: ????方外之士, 一甁一鉢, 涉世無求, 如鳥飛空, 遇枝則休, 如龜遊海, 値木則浮, 來如聚梗, 去如滅漚. 不識! 使君, 甲乙之乎? 十方之乎????? 予曰: ????善哉! 佛子. 不住內外, 不住中間, 不住四維上下虛空, 應無所住而住持, 是眞十方住持矣.???? 尙何言哉, 尙何言哉!」

時, 崇寧元年正月上元日, 記.[19]

원우 2년 9월에 수주 대홍산 영봉사靈峯寺에 조서를 내려 율종을 혁파하여 선종으로 만들고, 소성 원년에 외대에서 비로소 낙양 소림사의 장로 보은報恩에게 청하여 옮겨가서 주지가 되게 하였다.

숭녕 원년 정월에 사자가 와서《시방선원기》를 구하기에 이에 글을 써서 말하였다.

「대홍산은 수주의 서남쪽에 있으며 자리한 기반이 백 여 리로, 산봉우리에서 굽어 살펴보면 한수 동쪽 모든 지방의 산림과 구릉이 오히려 평탄한 물줄기와 같다. 노인네들에게 들은 바로써 상고하여 보건대 ‘洪’을 ‘胡’라고도 말하며 혹은 ‘湖’라고도 말한다는데 정확히 일컫는 바는 상세하지 않다. 이제 지리적으로 상고하여 보건대, 네 봉우리의 중간이 예전에는 큰 호수여서 신룡들이 거처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거대한 파도가 출렁이고 있었기에 그 물가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 후에 두 마리의 용이 싸우며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암반을 벌려 놓으니 호수물이 남쪽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므로 지금에 그 산을 등진 고을을 ‘낙호관’이라 일컬으니, 이것이 ‘대홍’이라 이름을 얻게 된 연유이다.

당나라 원화 때에 홍주 개원사의 승려 선신이 곧 이 산의 자인대사이다. 대사가 마조선사로부터 심요心要를 은밀히 전수 받고 북쪽으로 오대산을 만행하다가 문수사리보살에게 예불함에 그 수승함을 우러러보고는 문수보살과 인연이 있음을 스스로 기쁘게 생각하여 대중 스님들을 위해 3년 동안 불때고 밥짓기를 발원하였으나 그 절의 승려들이 거절하거늘 눈물을 흘리고 탄식하며 근심하고 있었더니 한 노인이 이르기를 ????그대의 인연은 여기에 있지 않으니 떠나가되 「隨」를 만나면 곧 쉬고 「湖」를 만나면 곧 머무르라???? 하였다.

대사가 곧 남쪽으로 가다 보력 2년 가을 7월에 수주에 이르러 멀리 높은 봉우리를 바라보며 고을 사람들에게 무슨 산이냐고 묻자 사람들이 대호산이라 말하였다. 대사가 예전의 말과 은연중에 합치함을 알고는 산기슭을 찾아들어 호수가에 이르니 그 해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고을 사람 장무릉이 양과 돼지를 갖추어 그것으로써 호수의 용에게 기도를 드리려고 하였다. 대사가 그것을 보고는 가련하게 여겨 무릉에게 말하기를 ????비오거나 개는 것이 제 때에 되지 않는 것은 본래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악업에 감응하는 바에 인연하는 것인데 생명을 해치고서 생명을 건지려는 것은 거듭 죄업만 증장시킬 뿐이다. 가능하면 잠시 죽이지 말고 사흘만 기다리면 내가 그대를 위해 기도를 올리겠다???? 하니 무릉 역시 비범한 사람이라 대사의 말을 듣고는 존경하여 그를 믿어 주었다. 대사는 곧 덤불을 헤치고 돌을 뒤적여서 산 북쪽의 바위혈을 발견하고 고요히 편안하게 앉아 정성을 기울여 가만히 기도하니 우뢰가 치고 비가 크게 내렸다. 비가 갠 뒤 며칠 후에 무릉이 자취를 따라 그를 찾으니 대사가 바야흐로 선정에 들어 거미줄이 얼굴을 덮고 있는지라 귀에다 소리를 지르고 몸을 흔드니 얼마만에 비로소 깨어났다. 무릉이 곧 그 산을 시주하고 대사를 위해 정사를 건축하고는 두 아들로 좌우에서 시봉을 들게 하니 배우고자 하는 무리들이 의지하고 뒤따름에 마침내 법석을 이루게 되었다.

태화 원년 5월 29일에 대사가 용의 신에게 은밀히 말하기를 ????내가 이전에 이 몸으로 희생을 대신함으로써 그대의 혈식血食을 그치게 하였음에, 이제 이 몸을 버려 그대에게 먹히고자 하니 그대는 나의 육신을 먹어라???? 하고는 곧 예리한 칼을 꺼내어 왼쪽 무릎을 끊고 다시 오른쪽 무릎을 끊었다. 문도들이 급히 달려가니 자인대사의 무릎이 완전히 끊기지 않은 채 흰 액이 흘러나오며 근엄한 자태로 입멸하였으며, 장씨의 두 아들은 선 채로 이를 보고는 감화가 되었다. 산남의 동도東道가 그 상황을 상소하여 올리니 당나라 문종이 가상히 여겨 그가 거처하던 곳에 현액을 내려 ‘유제선원’이라 하였다. 진나라 천복 연간에 ‘기봉사’라 고쳐 부르고 본조의 원풍 원년에 ‘영봉사’라 다시 고쳐 불렀으니 모두 기도로써 감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대사가 입멸하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3백 여 년 동안 한수漢水와 광수廣水 및 여수汝水와 분수汾水 사이의 10여 주 주민들이 존엄히 받들어 섬기기를 마치 약속하여 이르듯 하였으니 금과 비단이며 백미가 길에서 서로 꼬리를 이었다. 재물이 강성해지자 불법이 약해지므로 승려의 궤범이 이에 개혁되었다.

이보다 앞서서 산의 봉우리가 높고 험준함에 전당과 누각을 산에 의지하여 형상을 지었기에 뒤와 앞이 가지런하지 않았고 마주보거나 등지고 있는 모습에 질서가 없었다. 노승 보은이 머물게 되자 지세가 뛰어남을 익히 살피고는 길을 열어 남쪽으로부터 들어감으로써 주되고 부수되는 것을 바로잡았으며, 가파른 곳을 깎아내어 계곡을 메우고 높은 곳은 깎아내려 섬돌을 고이니 울쑥불쑥 솟았던 만 길의 형세가 바뀌어 평정하게 되었다. 삼문과 전당이 날개를 편 듯 먹줄을 그은 듯 하였으며 시원스레 뚫린 행랑과 커다란 헛간이 드문드문 놓인 문을 통해 사방으로 닿음에 청정한 승려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무성히 총림을 이루었으니, 아미산의 보배등불이 상서러운 형상을 드러내던 것과 청량산의 황금다리가 원만한 빛을 뿜어내던 것처럼 여러 지방의 기이한 경관들이 다른 경계에서 함께 나타났다.

바야흐로 낡은 것을 폐하고 새로운 것을 일으키려 할 때 율종의 무리들이 자리를 잡고서 왁자지껄 떠들었다. 마침 내가 좌천되어 군수가 되었기에 선과 율을 버리고 증명하여 이르기를 ????율律은 갑을甲乙로써 하고 선禪은 시방十方으로써 하니 그대가 말하는 갑을이라는 것은 갑이 어디로부터 온 것이며 을은 어디를 좇아 세워진 것인가? 그대는 필시 「나는 자인慈忍의 자손인데 이제 사람들을 시방에서 취하면 곧 자인의 후손은 끊어질 것이다」 할 것이나, 을이 자손에게 있으면 갑은 자인에 있을 것이고, 을이 자인에 있으면 갑이 마조에 있을 것이고, 을이 마조에 있으면 갑이 남악에 있을 것이고, 을이 남악에 있으면 갑이 조계에 있을 것이다. 미루어 올라가면 갑을이 보리달마와 서천의 28대 존자들에게 있을 것이니 이른 바 갑을이란 것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또 그대가 말한 시방이란 것은 십十이 어디로부터 생겨났으며 방方은 어디로부터 일어난 것인가? 세간의 법은 하나로써 둘이 생겨나고, 하나와 둘이 셋이 되고, 둘과 셋이 여섯이 되고, 셋과 셋이 아홉이 된다. 아홉이란 끝점이니 다시 돌아가 하나가 되며 하나와 아홉이 열이 됨에 열의 뜻이 이에 이뤄지니 응당 하나가 없이 돌연 열이 있게 되지는 않는다. 그대가 말한 방方이란 것은 위가 네모나다는 것인가, 아래가 네모나다는 것인가, 동쪽이 네모나다는 것인가, 서쪽이 네모나다는 것인가, 남쪽이 네모나다는 것인가, 북쪽이 네모나다는 것인가? 위쪽을 네모난 것으로 삼는다면 곧 제천諸天이 거처하는 바이니 그대의 경계가 아니요, 아래쪽을 네모난 것으로 삼는다면 곧 풍륜風輪이 지탱되는 바이니 그대가 차지하여 머물 곳이 아니요, 동쪽을 네모난 것으로 삼는다면 곧 비제하의 사람이니 얼굴이 반달 같을 것이며, 북쪽을 네모난 것으로 삼는다면 울단월의 사람이니 수명이 장구할 것이며, 서쪽을 네모난 것으로 삼는다면 곧 구야니주이니 큰 바다의 물결이 크고도 아득할 것이며, 남쪽을 네모난 것으로 삼는다면 곧 염부제주이니 코끼리와 말이 나라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한 즉 갑을은 정해진 것이 없으며 시방은 의지할 바가 없으니 율을 다투고 선을 다툼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겠는가???? 하였다.

율의 무리들이 말하기를 ????세존께서 일찍이 급고독원과 죽림정사에 거처하셨는데, 필시 태수의 말과 같다면 세존이 그르다는 것인가?????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대들은 어찌 듣지 못했는가? 크고도 원만히 깨달음으로써 나의 가람을 삼으니 몸과 마음이 편안히 평등성지에 머물게 된다 하였다. 이는 나의 말이 아니라 곧 부처님의 말씀이다????라 하였더니 율의 무리가 묵묵히 가버렸다.

참선을 하는 자가 이르기를 ????네모난 곳 바깥의 선비가 하나의 호리병과 하나의 발우로 세간을 섭렵함에 구하는 바가 없으니, 마치 새처럼 허공을 날다가 나뭇가지를 만나면 곧 쉬고 마치 거북이처럼 바다를 노닐다가 나무토막을 만나면 곧 떠오르며, 올 때는 마치 가시나무가 모이듯 하고 갈 때는 마치 거품이 꺼지듯 합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군께서는 갑을을 하시겠습니까? 시방을 하시겠습니까????? 하므로 내가 이르기를 ????옳도다 불자여. 안팎에 머무르지 않고 중간에 머무르지 않고 사유四維나 상하나 허공에 머무르지 않은 채 응당 머무는 바가 없이 머물러 지탱한다면 이것이 참으로 시방에 머무르며 지탱하는 것이리다???? 하였다. 무슨 말을 바랄 것이며 무슨 말을 바라겠는가.」

때는 숭녕 원년 정월 십오일에 쓰다.

【1】宋.哲宗年號.

【2】又哲宗年號.

【3】黎陽.劉氏子, 未冠擧方略, 擢上第. 後, 厭塵, 乞謝簪纓, 爲僧, 嗣投子.義靑禪師.

【4】徽宗年號.

【5】憲宗年號.

【6】取其進火謂之爨, 取其氣上謂之炊.

【7】文宗年號.

【8】《四諦論》云: 「菩薩行慈, 血變成乳, 如慈母育子, 以慈愛心故, 生子有乳, 自然流出.」

【9】後晋.高祖年號.

【10】宋.神宗年號.

【11】梵刹, 外建三門, 夫三者, 乃空無相無作三法, 謂之三解脫門. 令一入此門, 卽當達此三法, 今之人, 入是門者, 果能達此否? 愼毋口則談空, 行則着有, 故曰: 「君子以空進其德, 小人以空肆其欲.」 入空門者, 須諦審焉. 見《天樂鳴空集》.

【12】山名, 在蜀, 眞普賢住處.

【13】山名, 在北五臺山是也, 眞文殊住處.

【14】汝也, 下同.

【15】東毘提訶, 亦曰弗派提. 此云勝身, 形如半月, 壽五百歲.

【16】北鬱單越, 亦曰拘盧洲. 此云勝洲, 形如方座, 壽一千歲.

【17】西瞿耶尼, 亦曰瞿陀尼. 此云牛貨, 形如滿月, 壽二百五十歲.

【18】南閻浮提, 亦曰贍部洲. 此云勝金, 形如車箱, 壽一百歲.

【19】正月十五日, 上元; 七月十五日, 中元; 十月十五日, 下元.

【1】송나라 철종의 연호이다.

【2】이 또한 철종의 연호이다.

【3】여양 유씨의 아들로서 성인의 관례를 아직 올리지도 않아서 方略을 올렸다가 上第로 발탁되었다. 후에 세속에 염증을 느끼고 관직을 물러나 승려가 되어 투자 의청선사의 법을 이었다.

【4】휘종의 연호이다.

【5】헌종의 연호이다.

【6】위로 솟구치는 불기운을 취하는 것을 일컬어 爨이라 하고, 위로 솟구치는 기운을 취하는 것을 炊라 한다.

【7】문종의 연호이다.

【8】《사제론》에서 말하였다. 「보살의 행이 자애로움에 피가 변하여 젖이 되었으니,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자애심으로 자식을 기르는 까닭에 자식을 낳으면 젖이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과 같다.」

【9】후진의 고조 연호이다.

【10】송나라 신종의 연호이다.

【11】인도의 사찰에는 바깥으로 문 3개를 세우는데, 무릇 셋이란 곧 空과 無相과 無作의 세 가지 법이니 이것을 일컬어 三해탈문이라 한다. 이 문에 한 번 들어서기만 하면 곧 응당 이 三法에 통달해야 하나니, 지금의 사람으로서 이 문에 들어서는 자가 과연 이것을 능히 통달해 내는가? 삼가 입으로는 空을 이야기하지 말고 행위는 有에 집착되지 말 것이라, 그러므로 이르기를 「군자는 空으로써 그 덕을 향상시키고 소인은 空으로써 그 욕심을 방자하게 한다」 하였으니 空門에 들어선 자는 모름지기 살피고 또 살필지라.《천락명공집》에 [이 내용이] 보인다.

【12】산 이름으로 촉 지방에 있으며 보현보살이 항상 거주하는 곳이다.

【13】산 이름으로 북쪽에 있는 오대산이 그것이며 문수보살이 항상 거주하는 곳이다.

【14】‘그대(汝)’이다. 아래도 같다.

【15】동비제가 또는 불파제라 한다. 이곳 말로는 승신인데 모습이 반달 같으며 수명이 5백세이다.

【16】북울단월 또는 구노주라 한다. 이곳 말로는 승주인데 모습이 사방 네모진 자리 같으며 수명이 1천세이다.

【17】서구야니 또는 구타니라 한다. 이곳 말로는 우화인데 모습이 보름달 같으며 수명이 2백50세이다.

【18】남염부제 또는 섬부주라 한다. 이곳 말로는 승금인데 모습이 수레상자 같으며 수명이 1백세이다.

【19】정월 15일이 상원이며, 7월 15일이 중원이며, 10월 15일이 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