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록(懶翁錄)

14. 지공화상 돌아가신 날에

通達無我法者 2008. 3. 19. 15:00

 

 

 

14. 지공화상 돌아가신 날에

 1.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왔어도 온 것이 없으니 밝은 달 그림자가 강물마다 나타난 것 같고, 갔어도 간 곳 없으니 맑은 허공의 형상이 모든 세계에 나누어진 것 같다. 말해 보라. 지공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향을 사른 뒤에 다시 말씀하셨다.
"한 조각 향 연기가 손을 따라 일어나니, 그 소식을 몇 사람이나 아는가."

2.
날 때는 한 가닥 맑은 바람이 일고
죽어가매 맑은 못에 달 그림자 잠겼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중생에게 보인 몸에 참마음 있다
참마음이 있으니 묻어버리지 말아라
이때를 놓쳐버리면 또 어디 가서 찾으리.
生時一陣淸風起 滅去席潭月影沈
生滅去來無   示衆生體有眞心
有眞心休埋沒   此時蹉過更何尋

 3.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천검 (千劍) 을 모두 들고 언제나 활용하니
황제가 그를 꾸짖어 종 〔奴〕 을 만들었다
평소의 기운은 동쪽 노인을 누르더니
오늘은 무심코 한 기틀을 바꾸었다
바꾼 그 기틀은 어디 있는가.
千劍全提常活用 皇王罵動作奴之
平生氣壓東方老 今日等閑轉一機
轉一機何處在

향을 꽂고 말씀하셨다.
"지공이 간 곳을 알고 싶거든 부디 여기를 보고 다시는 의심치 말라."

4.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푸른 한 쌍 눈동자에 두 귀가 뚫렸고
수염은 모두 흰데 얼굴은 검다
그저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을 뿐
기괴한 모습이나 신통은 나타내지 않았다
혼자서 고향길 떠나겠다 미리 기약하고서
말을 전해 윤제궁 (輪帝宮) 을 알게 하였다
떠날 때가 되어 법을 보였으나 아는 이 없어
종지를 모른다고 문도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엄연히 돌아가시매 모습은 여전했으나
몸의 온기는 세상과 달랐다
이 불효자는 가진 물건이 없거니
여기 차 한 잔과 향 한 조각 드립니다.
碧雙瞳穿兩耳    須胡兮面皮黑
但恁?來恁?去 不露奇相及神通
預期獨往家鄕路 傳語令知輪帝宮
臨行垂示無人會 痛罵門徒不解宗
儼然遷化形如古  體溫和世不同
不孝子無餘物   獻茶一 香一片

그리고는 향을 꽃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