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결제에 상당하여 설법하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 불자를 세우고 말씀하셨다.
"대중스님네여, 자리를 걷어가지고 그냥 해산한다 해도 그것은 일 없는 데서 일을 만들고,
바람 없는 데서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법에는 일정한 것이 없고 일에는 한결같음
이 없으니, 이 산승의 잔소리를 들으라.
담담하여 본래부터 변하는 일이 없고, 확 트여 스스로 신령히 통하며, 묘함을 다해 공 (功)
을 잊은 공 (空) 한 곳에서, 적조 (寂照) 의 가운데로 돌아가는 이 하나는 말 있기 전에 완
전히 드러나, 하늘과 땅을 덮고 소리와 빛깔을 덮고 있었다. 서천의 28조사도 여기서 활동을
잊어버렸고 중국의 여섯 조사도 여기서 말을 잃어버렸다. 몹시 어수선한 곳에서는 환히 밝
고, 환히 밝은 곳에서는 몹시 어수선하니 왕의 보검과 같고 또 취모검 (吹毛劍) 에 비길 만
하여 송장이 만 리에 질펀하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땅이 산을 만들고 있으나 산의 높음을 모르는 것과 같고, 돌이 옥을 간
직했으나 옥의 티없음을 모르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큰 코끼리 〔香象〕 가 강
을 건널 때, 철저히 물결을 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3현·3요·4료
간·4빈주로서 완전히 죽이고 완전히 살리며, 완전히 밝게 하고 완전히 어둡게 하며, 한꺼번
에 놓고 한꺼번에 거두며, 하면서 하지 않고 하지 않으면서 하며, 진실이면서 거짓을 덮지
않고 굽으면서 곧음을 감추지 않소."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알겠는가. 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니 어디로 가나 티끌이 아니다."
주장자를 내던지고, "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라 한다면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하
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말씀하셨다.
"범이 걸터앉고 용이 서린 형세요, 산의 얼굴에 구름의 그림자로다. 방 (龐) 거사가 딸 영조
(靈照) 에게,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라 하였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물었을 때, 영조는 `이 늙은이가 머리는 희고 이는 누르면서 이따위 견해를 가졌구나'
하였다. 다시 거사가 `너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하니 영조는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
사의 뜻입니다' 하였다.
거사는 말은 지극하나 뜻이 지극하지 못하고, 영조는 뜻은 지극하나 말이 지극하지 못하였
다. 아무리 말과 뜻이 지극하더라도 나옹의 문하에서는 하나의 무덤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말해 보라. 그 허물은 어느 쪽에 있는가."
한참 있다가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오.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
려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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