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書狀)

서장대강좌39/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24. 10:15
 

 

서장 대 강좌 10 - 1강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

 

회향 법회 인만큼 그 동안의 경과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불교인재개발원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대중강좌. 이번 강좌를 무비 큰스님을 모시고, 서장 강의를 듣는 순서였습니다.

불기 2551년, 6월부터 시작해서 불기 2552년, 3월이 마지막 10번째 강의가 됩니다.

강의를 마치기 전에 저희는 3월 10일부터 중국 선적지 순례를 떠났습니다. 거기에서 무비 큰스님께서 불편하신 몸을 이끄시고, 저희들을 인도하시는 모습 속에서 이 가르침이 ‘책 속에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구나!’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대혜스님께서 15년간 주석 하셨고, 고봉스님께서 목침 떨어지는 소리에 안심입명 법 화두를 깨뜨린 경산사 선방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선방에서 무비 큰스님과 함께 20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참선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참선을 마치고 무비 큰스님께서 단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이번 순례 길에 가장 큰 선물입니다.

한 마디가 지금도 저희 가슴을 헤엄치고 있습니다.

1000년 동안 문자로서 책 속에서 잠들어 있던 서장 내용이 큰스님의 입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자후를 던져 주셨는가!

여러분들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덕 ♪높으신 ♪스승님 ♪사자좌에 ♪오르사♪

          ♪사자후를 ♪하소서 ♪감로법을 ♪주소서♪

          ♪옛 ♪인연을 ♪이어서 새 ♪인연을 ♪맺도록♪

          ♪대자비를 ♪베푸사 ♪법을 ♪설 ♪하옵소서♪

 

잠시,入定(입정)이,있겠습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불교를 말씀드린다면,  불교가 발생하고 오늘 날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간단하게나마 첫 시간에 밟아봤습니다.

그리고 선불교 중에서도 오늘 날 우리나라에서 간화선 불교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왜 지금 간화선인가?] 하는 타이틀로 간화선을 중심으로 공부를 했고, 또 간화선의 지침서의 제일교재라고 할 수 있는 서장을 가지고 지금까지 공부했습니다.

 

  하면서 비록 서장을 量적으로 3분의 1정도 공부하게 됐습니다만,

그러나 그 과정에서 화두는 어떻게 드는 것이고, 선은 어떤 것인가?

선불교는 불교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간화선” 할 때 “선은 화두를 살펴본다.”는 뜻이니만치 화두는 어떻게 살펴보는 것인가?

이런 것들도 충분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나름대로는 이야기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드렸다고 생각이 들고, 그 안에서 “화두를 지어간다.”는 표현을 우리는 합니다.

 

화두를 지어가는 길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서장을 읽으면서 강의를 들으셨다면 얼마든지 화두를 지어가는,

다시 말해서 화두를 들고 선에 임하는 길은 충분히 터득 했으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서장강의 마지막 시간으로서 그 동안 말씀드렸던 것. 대강 짚어볼 것은 짚어 보고, 그 다음 오늘도 참으로 귀한 분에게 대혜스님이 답하는 내용을 살펴보면서 미진한 부분을 좀 더 보충하는 입장으로 강의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불자들의 숫자가 남 녀 비율로 따지면, 여성 불자들이 훨씬 많지요.

그런데 다행히 이 서장강의에는 남성 불자들이 반을 차지하는 것 같아서 상당히 ‘서울은 좀 다르구나.’하는 생각도 느꼈고,

미래에 한국불교에 대해 아주 고무적인 현상을 보는 것 같아서, 여기 와서 강의를 하고, 여러 불자님들과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저도 참 보람도 있고 흐뭇하다는 말씀도 아울러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서장에서 거사님들에게 대혜스님께서 편지를 보내는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여기는 소위 우리나라에서 여성 불자를 표현하는 보살입니다.

보살님에게 편지를 보내는 내용인데요.

여기서 진은 왜 진자를 썼는지 모르겠어요.

성은 허 씨인데 국태부인이라고 하는 것은, 아들이 재상이거나 아니면 부마거나 그런 상당한 위치에 있고,

또 아들의 위치도 위치려니와 당사자가 그만치 나라에서 존경을 받을만한 인격을 갖춘 분에게 천자가 내리는 아주 영예스러운 호칭입니다.

국부인 이라고도 하고 국태부인 이라고도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마침 바로 뒤편에, 이 분에게 보내는 편지 다음에, 재상을 지낸 아들이 나옵니다.

재상을 지낸 이가 둘째아들이고, 그 다음 편지가 첫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인데 글쎄요.

 

  鄕堂莫如齒(향당막여치). 朝廷莫如爵(조정막여작)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어머니가 있고, 둘째아들 이지만, 작위로 봐서 재상이니까 편지순서는 먼저 놓고, 맏아들이지만 재상을 지낸 둘째아들 다음으로 편지순서를 배열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을 괜히 저의 속된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편집자는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했는가?

그것은 알 길이 없으나 어쨌든 저의 속된 마음으로는 어머니 다음에 그래도 조정엔 막여작이라.

벼슬이 최고니까요.

재상을 지낸 둘째아들을 놓고 그 다음에 맏아들이지만 맏아들의 지위가 동생보다 낮으니까 맏아들 편지를 뒤에 놨는가?

이런 것들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매일 도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이런 속된 생각. 또 사사로운 생각도 간혹 끼어드는 것이 도를 공부하는데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무튼 허 보살님은 그 밑에 주해에 자세히 설명이 있습니다만,

아주 일찍이 30대에 과부가 돼서 불교에 신심이 아주 장해서 염불을 하고 예불을 하고,

경을 독송하고 일반적인 불교신행을 열심히 하시는데,

마침 대혜스님과 인연이 되어서 편지와, 대혜스님의 도겸이라는 상좌가 심부름을 하는 것을 통해서 다른 어떤 문제들을 다 철폐를 하고,

화두만 들라고 가르쳤어요.

 

그래서 경 읽는 것도 철폐 하고, 예불하는 것도 철폐 하고, 염불하는 것. 절하는 것. 모든 것을 다 철폐해 버리고, 화두만 든지 얼마 아니 되어,

一念相應(일념상응)이 돼서 본명원심을 깨닫고, 대혜스님으로 부터 점검을 받은 그야말로 깨달은 사람의 반열에 오른 그런 서장에서는 유일한 보살님이십니다.

  일반 여성보살님 뿐만이 아니고, 또 비구니스님들도 훌륭한 도인이 역사상으로는 사실은 많았습니다.

 

그 숫자가 아무래도 남자 쪽이 더 많고, 또 스님들 쪽이 좀 더 많아서 역사적으로 기록한 것이 스님들 중심으로 기록이 된 것 같이 보입니다만,

보살님들이나 비구니스님들 쪽에서도 도를 크게 이루신 분들이 적지가 않다는 것들도 이 기회에 생각할 수 있는 여념이 되겠습니다.

아무튼 이와 같이 선불교는 불교의 완성이라고 저는 그렇게 표현합니다.

  앞으로 또 어떤 불교가 또 등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까지의 불교역사로서 볼 때,

‘선불교는 불교의 완성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이러한 최고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결국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 최고의 가치를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지고한 가치를 우리가 깨달아  아는 것이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일러서 “부처다.” 또는 “조사다.” 이렇게 아주 높이 명칭을 높여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처니 보살이니 조사니 이런 표현이 있게 된 것입니다.

 

  “禪”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인간 최고의 가치를 알게 되면 우리 삶은 무엇인가?

‘매일매일 축제의 연속이다.’

‘매일매일 축제의 연속이다.’

정말 우리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보면, 우리 삶이 보통 소중하고 값지고 정말 행복하고 즐겁고, 이런 모든 것들을 포함해서 저는 그렇게 표현합니다.

 

“인간본래의 지고한 가치를 우리가 제대로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은 매일매일 축제의 연속이다.”

속된 표현으로 하면 “수백억짜리 로또 복권이 매일 한 번씩 터지는 것과 같은 삶이다.” 이렇게 감히 표현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는 표현이 아닐까?’ ‘지나치지 않는 표현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p. 185.

   25. 진국태부인 에게 답함

  道謙禪師(도겸선사)가 돌아와서 준 편지와 아울러 친히 쓴 몇 수의 게송을 받고 처음에는 심히 의심했는데, 도겸에게 자세히 물어 보고서야 바야흐로 스스로 속이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도겸이라고 하는 이는 대혜스님의 제자이고, 대혜스님의 편지를 신도들에게 전하고, 그들의 편지를 받아오고, 그들이 공부하는 것을 대혜스님을 대신해서 지시를 하고, 공부의 상태를 알아서 대혜스님에게 아주 자세히 알려주기도 하는 그런 도 심부름꾼이 도겸 이라고 하는 상좌입니다.

 

그래서

편지하고 시 몇 수를 보고는 약간 의심했는데, 제자 도겸에게 자세히 물어보니까 이것이 결코 남의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자신의 살림살이가 그 쯤 됐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曠劫(광겁)에 밝히지 못한 일이 시원하게 앞에 나타났으나 남을 따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제가 늘 처음부터 말씀드리기를 여기에 남을 따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본래의 것. 우리가 이미 있는 억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무한 가치.

무한한 보물. 이것이 인간의 본래의 모습이고, 인간의 아주 지극히 고귀한 가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결국 이 문제를 드러내는 것을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하고, 수행이니 무슨 기도니 참선이니 하는 그런 어떤 수행 방편은 결국은 이 문제에 대해서 확연히 내가 알고,

확연히 내가 깨닫자고 하는 것이지 그 외에 다른 것이 아니지요.

우리는 역사적인 부처님. 이미 2600여 년 전에 살다 가셨고, 그 분의 가르침만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불상을 아무리 조성을 잘 해 놨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아주 유명한 석굴암 불상.

더 이상 웃을 줄도 모르고, 더 이상 울 줄도 모릅니다. 화도 낼 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중생이라고 하든지, 사람이라고 하든지, 부처라고 하든지 관계없이 바로 웃을 줄 알고, 바로 화낼 줄 알고, 좋은 것 보면 욕심낼 줄 알고, 슬픈 일 보면 슬퍼할 줄 아는 이 기가 막힌 부처가 우리들의 진실한 모습이라고 하는 것. 우리의 실상이라고 하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 불교지요.

그런데 우리는 설명하는 것 가지고는 도저히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설명이 안 되니까 이것은 정말 100% 자기 것이 되기까지는 이것은 모두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그저 이 선불교가 됐든 화엄불교. 법화불교가 됐든, 무슨 불교가 됐든 그것은 일종의 안내서에 불과한 것이지요.

안내서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기 대혜스님의 말씀 속에서도 남을 따라 얻은 것이 아니다 그랬습니다.

法喜(법희)와 禪悅(선열)의 즐거움이 세간의 즐거움에 견줄 것이 아님을 비로소 알았다고 하니,

제가 당신을 위하여 여러 날 기뻐하여 침식을 다 잊었습니다.

진국태부인이 불교의 진정한 의미를 맛보고,

그것을 소위 “법희 선열”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가 서장을 보든지 기타 기도를 하든지 아니면,

경전을 좀 읽든지 이런 데에 맛을 들이고 그 이치에 눈을 좀 뜨게 되면요?

세속적인 즐거움하고 비교가 안 되지요.

이 보살님은 정말 마음을 밝혔습니다.

광겁에 밝히지 못한 일이 시원하게 앞에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조금만 불교에 취미를 가지고 맛을 들여도 이것이 보통 맛이

아닌데,

이 보살님 같이 이렇게 깨달음을 얻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아들은 재상이 되고 본인은 국부인이 된 것이 족히 귀한 것은 아닙니다. 세속적으로 보면 대단한 일이지요.

아들이 재상이 되고 자기는 나라로 부터 국태부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는데,

그것이 귀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뭐냐?

거름 무더기에서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를 거두어 백겁 천생에 받아쓰되 다함이 없어야 바야흐로 참으로 귀한 것이 될 뿐입니다.

거름 무더기가 뭡니까?

우리 씨앗 되어있는 육신이지요.

정말 별 가치 없는 육신을 흔히 거름 무더기라고 표현을 합니다.

거름 무더기에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배를 거두었다.

그러니까 우리 육신 속에서 무한한 생명의 가치. 그야말로 내 생명이 부처님의 진실 생명이라는 가치를 거기서 발견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는 것이고, 귀한 것이다.

다음은 대혜스님께서 깨달은 사람. 또는 불교를 많이 공부하신 분에게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간절히 이 귀함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만약 귀함에 집착하면 존귀하다고 하는 데에 떨어져서 다시는 자비를

일으키고 지혜를 일으켜서 有情(유정)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기억하고 기억하십시오.

부디 기억하라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면 잘 써야겠지요. 잘 써야 됩니다.

자신을 위해서 쓰든지 아니면, 사업을 더 번창 하게 하든지 아니면, 자선사업에 쓰든지 무엇에 쓰든지 간에 잘 쓰는 것이 목적입니다.

 

  대혜스님이 깨달은 사람들에게 늘 부탁하기는 “당신이 그 만치 공부가 되었으면 그것을 가지고 사람을 교화하는 데에 진력하라.”이런 당부입니다.

만약에 그것을 하지 아니하면 자기 혼자 돈을 벌어서 혼자 쓴다거나,

깨달음을 이뤄서 자기 혼자 누리다가 그만 둔다거나 하면 이것은 附 佛法外道(부불법외도)라.

불법에 붙어사는 외도.

마구니라고 표현했습니다.

불교는 예를 들어서 1을 알면 1을 전하는데 있습니다.

100을 알면 100을 남에게 가르쳐주는데 있습니다.

세속 돈이야 그것 좀 인색해도 상관없습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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