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書狀)

서장대강좌37/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5. 11:23
 

 

 

 

 

서장 대 강좌 9 - 3강

 

 

  서장의 대의를 논할 때, 斥邪解現正見(척사해현정견). 이런 표현을 씁니다. 삿된 견해를 물리치고 바른 견해를 드러내는 것이 서장이다 그랬습니다.

서장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경전이 인생에 대해서, 또는 세상사에 대해서, 어리석은 우리들이 잘못보고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을, 부처님의 깨달음의 밝은 눈으로 우리에게 그 실상을 보여주는 일이지요. 실상을 설명해 주고 보여주고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 실상이라고 하는 것이 물론 세상사의 실상이지만, 세상사는 제쳐두고라도, 우리들 각자의 인생사의 실상을 깨우쳐 주는 일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서장에서의 삿된 견해라고 하는 것은, 默照邪禪(묵조사선)이라고 해서 그냥 묵묵히 앉아만 있는 것이 최상의 공부다. 라고 하는 그런 한 때의 공부의 폐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배척하고, 불교라고 하는 것이, 또 부처님의 그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목석과 같이 앉아만 있는 것이 어디 꼭 불교의 바른 길이냐? 아니다 이것이지요.

  언젠가 말씀드렸지만, 이 간화선은 앉아 있는 불교에서 일으켜 세운 일상생활과 함께하는 불교. 그것이 만약 진리라면 일상생활 속에서 진리를 활용하고 수용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을 바른 견해라고 했습니다.

앉아서 공부하는 것만 제일이라는 생각은 삿된 것. 또 그것을 다른 입장으로 부연해서 말씀을 드리면, 불교가 경전이나 어록 안에만 있느냐? 아니다 이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우리일상생활 속에 더 살아있는 불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서 눈을 뜰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생명이 넘치는 불교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그런 차원으로 이해를 펼쳐나가야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p. 156. 지금 일종의 杜撰(두찬)하는 놈이 하는 이 내용은 생략하고 싶습니다. 제가 방금 요약해드린 그 내용입니다.

杜撰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것은 옳고, 남의 것은 그르다고 하는데 정말 옳은 것을 옳다고 하면 좋겠으나, 옳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옳다고 하니,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묵조사선을 비판하는 내용이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p. 159

    22. 유보학 언수 에게 답함.

  아마 이 편지는 아주 무더운 여름 날 보낸 편지 같습니다.

  날씨가 찌는 듯이 덥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일상생활이 한가하여 활달하고 태연하며 스스로 如如(여여)하여 모든 魔軍(마군)의 撓亂(요란)함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활달하고 태연하고 스스로 여여해서 魔軍의 요란함이 없습니까? 魔軍이라고 하는 것이 밖에 있는 마군은 사실 마군으로 치지 않습니다.대개 차원이 낮은 사람들은 밖에 있는 마군을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마군이지요.

“그런 것이 어떻게 당신을 흔들거나 어지럽게 하는 것이 없습니까?” 한 가지 물었고,

두 번째, 날로 하는 일상생활에 ‘개가 불성이 없다’는 말과 하나가 됩니까? 그랬습니다.

狗子無佛性(구자무불성)화두. 대혜스님께서 이 서장에서 권하는 1700공안 가운데, 제일 힘주어 권하는 것이 구자무불성화두지요.

이 분에게도 아마 평소에 이 화두 권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말과 하나 되느냐?”

  세 번째, 시끄럽고 고요함의 두 변에서 능히 분별하지 않습니까? 시끄러울 때 는 공부가 안 된다거나, 고요할 때 공부가 잘 된다거나 하는 그런 분별이 없어야 되는데, “그 쯤 되었지요?” 이런 것을 꼭 알고 싶어서 묻는다기보다는 편지의 글투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꿈꿀 때와 깨어 있을 때가 合致(합치)됩니까?

이것이 夢中 一如(몽중일여)라는 말을 잘 쓰지요.

대개 그 일여라고 하는 말을 쓰면 처음에 靜中一如(정중일여). 좌선한다고 앉아 있을 때 한결같이 잘 되느냐?

그 다음에 動靜一如(동정일여). 그러면 고요하게 앉아 있을 때나 움직일 때나 한결같이 잘 되느냐?

그것 상당히 어려운 단계거든요. 그 다음에 몽중일여입니다.

꿈꿀 때와 깨어 있을 때가 합치되느냐? 하는 것이요.

“꿈속에서도 疑團(의단)이 獨露(독로)하느냐?”이 말입니다.

화두 드는 꿈을 꾼다고 하는 그것은 아닙니다.

  화두 드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니고, 꿈속에서도 의단이 독로. 오롯이 그 의심이 홀로 드러나 있어야 되는 것이지, 꿈꾸는 것. 화두 드는 것을 꿈꾸는 것이야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특히 잠 잘 때 화두를 들려고 씨름을 한참 하다가 그냥 그 길로 잠이 들면 꿈속에서 화두 드는 꿈을 꿉니다.

그것은 화두 드는 꿈을 꾼 것이지, 화두하고 일여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합치합니까? 하는 것은 “일여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연하면 몽중에 일여가 되면 病中一如(병중일여)가 된다고 그랬습니다.

아무리 고통이 심하더라도 화두를 놓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쯤 되어야 꿈속에서도 한결같은 것이지요.

  또 理(이)와 事(사)가 會通(회통)됩니까?

우리가 이판사판이라는 말도 하고, 이치는 되는데 사적으로는 안 된다. 표면상으로는 그것이 도대체가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되지 않는다. ←이런 표현을 쓰는데 이것이 그 말이거든요.

이와 사가 회통이 됩니까? “하나로 통하느냐?”이 말이지요.

  마음이 경계와 더불어 여여 합니까?

“내 마음하고 경계하고 같으냐?”이 말이지요.

이런 것들을 점검삼아 공부 인을 점검하는데 점검삼아 이렇게 편지를 하면서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유보학이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하지만,

사실은 유보학이라고 하는 그 사람의 동생. 뒤에도 나오지만 언충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교화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바른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대혜스님과 유보학이라고 하는 사람이 같이 노력하자 하는 입장으로 편지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나중에 보면요. 

  방거사가 이르기를 “마음이 여여하면 경계도 또한 여여하여, 실제도 아니고 또한 빈 것도 아니다.”꽉 찬 것도 아니고 또한 빈 것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있어도 간섭받지 않고 없어도 또한 구속되지 않으면, 이것은 성현이 아니라 일 마친 범부입니다.

了事凡夫(요사범부)라고 해서굳이 성인이라고 할 것이 뭐 있느냐?

요사범부입니다. 일 다 끝낸 범부다. 그냥 편안하고 좋지요.

聖人(성인). 賢人(현인). 그래놓으면 괜히 부담스럽잖아요.

일 마친 범부입니다. 일 없는 범부입니다. 일 없는 중생입니다.

부담도 없고 책임감도 없고 아주 편안하지요.

  만약 참으로 일 마친 범부가 되었다면, 석가와 달마는 이 무엇입니까? 일 마친 사람에게, 진흙덩어리이고 흙덩어리입니다.

泥團土塊(니단토괴). 그렇게 되어있는데, 진흙덩어리입니다.

석가와 달마가 진흙덩어리로 조각해 놨으니까 별 수 있나요? 그 쯤 된다 이겁니다. 실지로 살아있는 석가 달마가 내 앞에 온다 하더라도, 내가 일 마쳤는데 그 사람들에게 내 볼일 없다 이겁니다. 다른 집에 가 봐라 이겁니다.

“나 하고는 관계없으니까 다른 집에 가 봐라.” 그 쯤 된다고요.

彼旣丈夫我亦爾(피기장부아역이)라. 그대도 장부고 나도 또한 장부다.

不向如來行處行(불향여래행처행)이라. 부처, 당신 간곳으로 나는 안 간다 이겁니다. 나는 내 길을 갈 뿐이지 부처, 당신 간곳으로 나는 안 간다. ←이런 표현들이 있거든요. 사실 그렇습니다. “부처님”하니까 표본은 됩니다만,

箇箇(개개)가 丈夫(장부)인데, 석가모니 간 길을 우리가 꼭 가야만 잘한 겁니까? 그것은 亞流(아류)지요.

석가모니의 아류에 불과한 것이지, 나의 진정한 가치를 십분 구현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입니다.

  三乘(삼승)의 十二分敎(십이분교)는 이 무엇입니까?

석가모니가 평생 동안 설하신 경전이 三乘 十二分敎그러지 않습니까?

그것은 뭐냐? 8만대장경은 뭐냐?

뜨거운 주발이 울리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괜히 시끄러운 소리에 불과하다 이겁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고름 닦은 종이. 휴지라는 표현도 있고요.

경전을 통해서 눈을 뜬 사람들이. 또는 마음을 깨달은 사람들이. 도를 깨달은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데, 그런데 그 사람들이 경전을 그렇게까지 보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쯤 되어야 불교 공부한 보람이 있고, 선불교 공부한 보람이 있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왜 도인스님은 자꾸 경을 봅니까?

자네는 경을 볼 때 경이 뚫어지게 쳐다보지만, 나는 눈가리개다. 눈가리개.

  다른 것으로 눈 가리는 것 보다, 꽃을 보거나 청산을 보거나 구름을 보고 눈을 가리는 것도 좋지만, 경을 가지고 눈을 가리면 더 좋지 않으냐? 이것이지요.참 이런 것들도 깨달은 선사 입에서나 나올 법 하지, 우리 같은 사람이야 어디 일부로 머리를 짜낸다고 그것이 나올 소리 입니까?

그런 소리 안 나오지요. 짜낸다고 나올 소리가 아닙니다.

뜨거운 주발이 울리는 소리입니다. 당신이 이미 이 문중에 스스로 믿고 의심하지 않으니, 적은 일이 아닙니다.

모름지기 생소한 곳은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곳은 생소하게 해야 비로소 이 일로 더불어 조금 상응함이 있을 뿐입니다. 서장에 자주 나오는 소리.

生處(생처)란 放敎熟(방교숙)하고, 熟處(숙처)란 放敎生(방교생). 우리가 서툰 것. 반야. 도 공부. ←여기에는 서툴지요. 그것은 익숙하게 하라 이겁니다.

그런데 익숙한 세상사. 그것은 서툴게 하라. 이것이 공부지, 공부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대혜스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멋진 말씀이지요.

한문이 밑에서 두 번째 줄에 있네요.

  公(공)이 旣於此箇門中(기어차개문중)에 自信不疑(자신불의)하니

不是少事(불시소사)라. 이 작은 일이 아니다.

要須生處(요수생처)란 放敎熟(방교숙)하고, 선 곳은 놓아서 익숙하게 하고,

熟處(숙처)란 放敎生(방교생)하야사 익숙한 곳은 놓아서 설게 하야사

始與此事(시여차사)로 少分相應耳(소분상응이)이니라 비로소 이일. 이 공부하는 일로 더불어 조금 서로 맞아 들어갈 것이다.

뭐 한 가지 좀 하려면 다른데 잡다한데 고개 돌리지 말아야 됩니다.

한 우물만파세요 한 우물만. 그렇게 해야 좀 진보가 있지, 少分相應耳라 그랬잖아요. 그렇게 해야 비로소 조금 맞아 들어간다 이것이지요.

세상사도 그렇지만 도 닦는 일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p. 160 ~ 161

  가끔 대장부가 많이 뜻대로 되지 않는 가운데서 엿보는 곳을 얻다가,

도리어 뜻대로 되는 가운데서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니, 대개 뜻대로 되지 않는 가운데서 엿보는 곳을 얻다가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니, 제대로 안 되는 역 경계 속에서,

대개 시끄럽고 어려움이 닥치고, 난관이 닥치고 그럴 때는 잘 헤쳐 나갑니다.

그런 것은 잘 헤쳐 나간다고요.

I M F도 아주 바짝 긴장을 하니까 잘 견뎌내요.

그런데 세월이 잘 돌아가고 풀리고 그러면 마음이 헤이 해져가지고, 좋은 경계. 순 경계. 고급스러운 것 먹고 마시고 하는 데는 그만 흔들려버리는 겁니다. 당장에 흔들려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그 애기입니다.

  飢寒(기한)에 발도심(發道心)이라고 배고프고 춥고 할 때 공부가 잘 되었고, 그때 수행자가 많았고 도인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생활이 풍요로워지니까 도인이 도대체 하도 안 나오는 겁니다.

도리어 뜻대로 되는 가운데서 잃어버립니다. 그랬잖아요.

뜻대로 되는 가운데서 는 것이 그런 겁니다.

시간 없어서 공부 못 한다는 것도 말하자면 거짓말입니다. 그것은 핑계고요.

  그래서 당신으로 하여금 알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아야 된다 이것이지요. 이 정도야 알만한 분이지만, 한 번 더 주의를 주는 것이지요.

뜻대로 되는 데서 모름지기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를 생각하여 간절히 잠깐도 잊지 마십시오.

이런 것은 세속에 사시는 여러 불자님들이 서로 잘 맞추어 보면 얼마든지 좋은 해석이 나올 겁니다. 정말 그럴 겁니다.

자녀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라든지, 자기 자신을 좀 각성하는 일이라든지, 이런 가르침을 가지고 맞추어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제가 해석하는 것 보다 몇 배 더 좋은 해석이 나오지 않겠나? 그렇습니다.

  다만 根本(근본)을 얻어야지 枝末(지말)을 근심하지 말며 중요하지요.

다만 부처가 될 줄 알아야지 부처가 말할 줄 모를까 근심하지 마십시오. 부처가 될 줄 아는 것. 부처 될 것을 생각해야지 부처가 되고 나서 말할 줄 모를까봐,

  옛날에 일본에 어떤 스님이 자기는 나중에 법사가 될 거라고, 한 500년 전 책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자기는 법사가 될 거라고, 그 때 일본의 법사들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내용인데요. 법사가 되면 말을 타고, 교통수단이 그 때는 말 뿐이니까 말도 타야 되고, 또 법회를 마치고 나면, (아주 인기 있는 법사가 되면) 법회를 마치고 나면 잔치를 잘 벌이는데 거기서 노래도 한 곡 잘 불러야 되겠기에, 이런 예능도 반드시 필요하다. 큰 스님들이 보니까 그러거든요.

자기도 법사가 되면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야 되는데 그것을 생각을 하고, 이 사람은 법사 되는 것은 연구하지 않고, 말 타는 것 배우고, 노래하는 것 배우고, 춤추는 것 배우고, 이러다 보니까 세월이 다 가버렸어요.

법문은 한 마디도 못하고요. 하하하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한 때 제일 좋아하던 “徒然草(도연초)”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책 사주기를 좋아하는데, 그 책을 50권정도 사서 돌린 적이 있는데요. 그것이 스님이 쓴 책입니다. 일본 교과서에도 나오는 책인데, 거기 보면 그런 말이 있습니다.참 재미있지요. 여기 있는 말을 그렇게 해석할 줄 아는 겁니다.

부처되는 것을 근심할지언정 부처되어서 설법할 줄 모를까봐 근심하지 말라.根本이 중요하지 枝末적인 것을 염하지 말라. 이 겁니다.

공부만 제대로 해놓으면 포교는 저절로 됩니다.

뭘 포교부터 한다고 야단법석입니다. 공부는 아니 하고, 허허허허허허허~~~ 아, 이렇게 좋은 말이 그냥, 그야말로 주옥같은 가르침들이 서장 안에 꽉 차 있습니다.

  아까 사회하시는 분이 말씀하셨지만, 제가 읽으라 아니해도 다 철드신 분들이니까 10번 20번씩 다 읽고, 곱씹고 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또 세상에서 살면서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뭔가 그런 인생의 눈을 한 번, 불교적인 차원으로 눈을 떠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저는 늘 비유를 하기를 “출가해서 도 닦는 것은 아스팔트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고, 세속에서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은 자갈밭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도는 자갈밭에서 훨씬 더 잘 닦인다.” 그 잘 닦인 아스팔트 길 걸어가 봐야 무슨 크게 운동이 되나요? 그냥 움푹 질퍽 하는 그런 자갈밭을 뛰어야 그것이 운동이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니냐? 사실 그런 면이 있습니다.

또 반대로 생각하실 겁니다. 보나마나 분명히...

  ‘뭘 출가한 사람이 도 더 닦지 어찌 우리 세속에 있는 사람이 도 더 닦겠습니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집에 가면 자식들이 도 닦게 만들어 주지, 하하하하하하~~~

아내가 도 닦게 만들어 주지, 남편이 도 닦게 만들어 주지, 회사에 가면 상사가 도 닦게 만들어 주지, 하하하하하하 하사가 도 닦게 만들지, 차 몰고 나가면 옆의 차 끼어들어서 도 닦게 만들지, 전부 도 닦을 것 투성입니다.

그것이 자갈밭에서 도 닦는 것이 아닙니까? 도 잘 닦아진다고요.

한 생각만 탁 관점을 달리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한 물건은 얻기는 쉽고 지키기는 어려우니, 절대로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런 말도 그냥 갖다가 세속에서 뭐라고 바꾸지요?

“성공은 쉽지만 수성은 어렵다.”하하하 그런 식으로 바꾸잖아요?

사실 뭐든지 그렇습니다.

얻기는 쉽지만 지키기는 어렵다. 수성이 훨씬 어렵지요.

제일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들보면 이런 말씀들이 아주 실감이 나지요? 올라오기는 어찌어찌해서 재수 있어서 올라왔는데 아직 올라가기도 전에 마구 흔들어 대는데 감당을 할 수가 있습니까?

  모름지기 머리를 바르게 하고 꼬리를 바르게 하여 넓히고 채운 뒤에 자기의 남은 것을 미루어 남에게 영향을 미치십시오. 바로 이 것입니다.

머리를 바르게 하고 꼬리를 바르게 하여 시종일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게 잘해 나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넓히고 채운다. 擴而充之(확이충지)라고 다 유교의 용어입니다.

이 분이 워낙 유교에 박통한 사람이니까 그 사람에게 맞는 용어를 쓰는 겁니다. 확이충지라고 이것이 일상용어입니다.

채운 뒤에 자기의 남은 것을 미루어 남에게 영향을 미치십시오. 그렇지요. 자기가 충분히 아까도 제가 이야기했듯이, 자기 공부 열심히 해놓으면 그냥 포교는 저절로 된다 이것이지요.

  자기의 남은 것을 미루어 남에게 영향을 미치십시오.

당신은 얻은 것이 이미 한 모퉁이에 막혀 있지 않아서, 한 모퉁이에 막혀 있지 않다 이겁니다. 상당한 분이다 이것이지요.

아마 일용하는 가운데 마음을 일으켜 지속하며 마음을 없애고 생각을 끊는 데에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남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하십시오. 하는 말은 뒤에 나오지만, 이 사람의 동생. 언충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둘 다 아주 뛰어난 선비입니다.

그리고 벼슬도 다 높고요. 그런데 그 언충이라는 사람이 불교적인 소견이 잘못 되었다 이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잘 가르치면 큰 재목이 될 사람이다. ←이런 뜻이 담겨있습니다.

  근년 이래에 禪道(선도)와 佛法(불법)이 심히 衰頹(쇠퇴)하고 疲弊(피폐)해졌습니다. 일반 杜撰(두찬)하는 장로는 근본에 스스로 깨달은 바가 없고 業識(업식)이 아득하여 가히 근거할 근본이 없습니다.

杜撰이라고 하는 말은 杜  막는다.

남의 것은 틀렸다 하고, 자기 것은 덮어놓고 칭찬하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선지식들이 그렇게 하니 참 난감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실제 기량이 없으면서 배우는 사람을 거두어 포섭하여 일체 사람들로 하여금 저들과 비슷하게 칠흑같이 어둡게 눈을 굳게 감게 하면서 묵묵히 항상 비춤이라 부릅니다. 이것이 묵조선을 그대로 표현해 놨지요.

그러니까 어쩌다보니 선이 유행을 해서 선 배우러 오는 사람은 많은데, 선을 제대로 알지를 못하니까 잘못 가르친다 이겁니다.

지기가 아는 만치만 가르치니까 이것이 엉터리라 이것이지요.

이것을 참선하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이것을 우리 입장으로 이끌어다가 살펴보면, 그냥 보통 불교라고 하는 것도 그래요.

불교라고 하는 것도 얼마나 엉터리불교. 사이비불교. 거품불교. 비불교적인 불교. 얼마나 많습니까? 참선이니 하는 이런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아니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정상적인 불교사상 하고는 전혀 거리가 먼 그런 불교들이 너무 많다고요.

그래서 순수한 불교. 정상적인 불교. 정법불교. 이것을 우리가 제대로 공부를 하고, 또 제대로 그것을 전파를 해야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을 다 하는 것인데, 참 이 시대의 어떤 불교 상황을 굽어보면 너무 잡다한 일들도 많은데,

특히 총무원 같은데서 정말 정법불교를 선양하려면 1에서 100까지 온 능력을 다 동원해서 그 일에 힘 써야 되지 않을까? 저는 저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것 무슨 정치적으로. 세속적인 것. 밑도 끝도 없이 밀려오지요.

백날 그 일 처리해봤자 처리가 제대로 된 것도 아니고, 남는 것도 없고 그래요.

그러느니 딱 접어버리고, 일체 영향력을 다 정법 선양하는 데에 기울여가지고, 첫째 정법을 공부하고, 여기에 있는 직원들이 다 같이 정법 공부하는 데에 매진하고, 그걸 로서 널리 펴는데 주력한다면, 불교가 좀 달라지고 그것이 불교가 세상에 끼치는 이익이 제일 클 것입니다.

다른 무엇 가지고도 왜 우리는 떡 하나 더 안 주느냐? 하고 안달, 안달 해봐야 그것은 추태만 부리는 것이지, 졸라 가지고 떡 한 개 더 먹어 봤자입니다.

다음 사람들이 또 떡 안 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정부 하는 일이 그렇게 되어 있다고요. 여기가 종회. 회의실입니다.

宗會(종회)입니다. 여기서 이런 소리를 해야지요.

  사람들 안 키워놓고, 어린이포교. 학생포교. 군 포교 아니 해놓고는 무슨 정부의 요직들 조각하는데 불자가 있느니 없느니, 그런 소리는 창피한 것인데 창피한 줄도 모르고 그냥 조르는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못 키웠다는 것밖에 더 됩니까?

그럼 지금부터라도 모든 힘을 다 기울여서 어린이포교 학생포교 군 포교 열심히 해야지요. 그것이 급선무입니다.

뭘 항의하고 조르고 건의하고, 사실 그렇게 할 일이 아니라고요.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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