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禪風)

祖敎(조교)

通達無我法者 2008. 3. 26. 09:49
 

 

 

祖敎(조교)


학인이 祖師(조사)의 意(의)에 入門(입문)하지 못하는 까닭은 오랫동안 論理(논리)나 合理(합리)에 習(습)이 들었기 때문이며, 스스로를 가두고, 撞着(당착)하여 상자 속에 들어가 그 상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演繹(연역) 및 歸納(귀납)의 數學的(수학적) 理解(이해)와 科學(과학)의 合理性(합리성) 및 當爲性(당위성) 등이 入門(입문)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소위 思考(사고)하여 理解(이해)할 수 있는 혹은 생각할 수 있는 등등의 觀念(관념)들이 祖意(조의)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하는 까닭들인 것이다.

心地(심지)를 떠난 心相(심상)으로서의 學(학)인 宗敎(종교), 哲學(철학), 藝術(예술), 科學(과학) 등의 發展(발전)이라는 것도 어떤 固定(고정)된 觀念(관념)을 넘어서지 못하면 새로운 境地(경지)에로의 進入(진입)이 어려워지는 것인데 하물며 祖意(조의)를 말하겠는가.

心地(심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祖敎(조교)에 있어서의 고정된 관념이란 것은 눈, 귀, 코, 혀, 몸, 생각[意]이라는 假我(가아)인데 이 假我(가아)를 넘어 眞我(진아)를 찾는 것 혹은 마음외의 마음을 찾는 것을 祖敎(조교)라고 할 것이다.

祖敎(조교)는 足跡(족적)마다 淸風(청풍)이라서 눈앞의 깃대라고 하며, 계란 속의 발가락 두개라고 하는 것이다. 休休了了(휴휴요요)하는 것이라서 묵을 들고 도토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기히 佛敎(불교)라 하지 않는 까닭은 佛敎(불교)란 문자가 觀念(관념)으로 轉落(전락)하여 理解化(이해화)하였기 때문이고 굳이 宗敎(종교)라 하지 않는 까닭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특히 宗敎(종교)라 하지 않는 까닭은 일반에서 宗敎(종교)라 함은 내세에 대한 무턱된 신앙심으로 몸밖을 뛰쳐난 假像(가상)에 대해 나를 맡겨버려, 노예가 되는 것으로 本(본)을 삼기 때문이다.

祖意(조의)라고 하는 것은 세존의 三處傳心(삼처전심)이고 前佛後佛(전불후불)하여온 永遠(영원)한 것이며 絶對的(절대적)인 것이다. 모든 文字(문자)와 斷截(단절)되나 모든 文字(문자)를 干涉(간섭)하는 것이며 想像不可(상상불가)이며 理解(이해)不可(불가)인 것이다.

비록 理(이)나 氣(기)라 하고 心(심)이나 性(성)이라고 하며, 理一元(이일원) 혹은 理氣二元(이기이원)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適當(적당)하나, 理(이)라 하여도 心地(심지)를 떠난 것이며 心(심)이라 하여도 心地(심지)를 떠난 것이다. 망녕되이 記憶(기억)하고 追憶(추억)하여 心性(심성)이라고 하며, 理氣(이기)라고 하나 心地(심지)를 떠난 心相(심상)으로서의 學文(학문)밖에 아니된다.

이미 心地(심지)를 떠난 空花(공화)로서 다시 一元(일원), 二元(이원)을 논하여 다툴 바 없으며, 宗敎(종교)니 哲學(철학)이니 하여 다툴 바 없다. 끊임없이 다투는 이 놈을 알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동그라미


동그라미를 거꾸로 세우면

모난 돌이 떨어진다

동그라미는

슬쩍

모난 돌로 바뀌고

다시 모난 돌이

동그라미를 찾고 있다



뭉개구름


이렇게

내집이언만

문득 돌아가고 싶어라

할미꽃 지고

아지랭이 놀뜨는

고개너머로

한빛 뭉개구름에

언뜻 뼈마디가 드러난다



꼭두새


꼭두새가 춤을 춘다

꼭두 꼭두 껑꺼-둥둥

그림자는

꼭두새를 닮아 같이 놀아난다

껑꺼-둥둥 꼭두 꼭두

꼭두새가 그림자인지

그림자가 꼭두새인지

다함없이 다함없이 꼭둥거린다


슬픈부처


저 고개를 넘으면 내집이 있다.

그곳에는 剝製(박제)당한 슬픈 부처가 섰고

한때

閃光(섬광)같은 西北(서북)風(풍)이 일어

虛空(허공)꽃을 싣고 오기도 한다

그때는 저 가없는 툇마루에도

如來香(여래향) 피어나는 까닭을

누가 알겠는가


하루


해가 지는 어스름한 무렵에는

내 窓(창)빛은 연푸름의 그것이다

하루종일

窓幕(창막)을 통해 비쳐 오는 세계는

거치름과 황홀함과 포근함이며

검푸름과 황금빛 붉음과

그리고

어둠과 여명뿐이다

石馬(석마)는 끊임없이 太陽(태양)속을 헤매이고

나는 눈가린 愚花(우화)를 보듬고 있다


달마


오는 듯 가는 듯

끊어진 곳에

둥근 한빛 達磨(달마)이어라

眼光(안광)은 줄기줄기

靑山(청산)은 金(금)빛이라

오는 듯 가는 듯

끊어진 곳에


五關門(오관문)


是非空無是(시비공무시)

非空無是非(비공무시비)

空無是非空(공무시비공)

無是非空無(무시비공무)

是非空無是(시비공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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