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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 7. 아비담마 소개글들을 올리면서 ...
어떻게하면 아비담마를 조금더 쉽게 설명해볼 수 있을까 고심하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전에 미얀마에 있을 때 아비담마 입문서를 만들어보자면서 몇 십쪽 글을 써둔 것이 떠올라 노트북의 파일들을 확인해보았는데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지금 부터 하나하나 올려보려합니다. 거칠기도하고 잘못 적은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조심스럽습니다. 읽다가 잘 못된 부분을 발견하시면 알려주시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까페 법우님들의 아비담마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각묵 합장
Δ 8. 준비운동
아비담마는 차디찬 얼음물과 같다. 여기서 차다는 말은 냉냉하다, 냉정하다, 감정이 없는 냉혈인간?과 같다, 그래서 재미없고 무미건조하다는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저 언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차다찬 얼음물을 건너가야만 한다. 다른 경치 좋고 따땃하고 사람을 끄는 물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런 물에는 반드시 악어나 상어나 뱀들이 또아리고 있어서 산천경계에 속고 따뜻함을 즐기는 사이에 저 언덕은 고사하고 그 물에서 죽임을 당하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니 이 차디찬 물을 건너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쉬운? 방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미얀마 사야도께서는 아비담마를 공부하는 것이 최신형 보잉777 비행기의 수퍼퍼스트 클라스 자리에 열반행 티켓??을 예매해 두는 것이라고 침을 튀기며 말씀하시고 나서 이것은 농담 같지만 진담이라고 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 차디찬 얼음물에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들어가면 십중팔구는 발가락정도 담그고 튀어나오기 마련이고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그 차디차고 냉엄한 맛?을 즐기기란 도저히 어려울 것이다. 아니 마음으로는 뭐 이런게 있나, 아이 골치야, 아이 재미없어, 차라리 어려운 의학서적을 읽는게 낫겠어, 옛날 남방 스님들이 날은 더워 밖에 나가기는 싫고 절간에서 밥먹고 할 일이 없어서 이런 골치 아픈 것을 만들어 사람을 괴롭히네, 이게 불교 수행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머리로 알음알이를 굴리는 짓거리지, … 등등 온갖 불선법을 다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사전 준비운동이 아주 필요하다 하겠다. 그 준비운동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리고 여기서 꼭 하고 싶은 말은 아비담마 공부를 하면서 가능한 한 많이 통밥을 굴려보라는 것이다. 한참 통밥을 굴리다가 조금 지나면 이제 통밥도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는 처음 아비담마를 접하며 수 없는 알음알이가 일어나 무수한 통밥을 굴리면서 대림스님을 괴롭혔다. 대림스님은 너무나 얼토당토않은 질문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잘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 통밥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통밥으로는 도저히 아비담마의 냉엄함은 해결이 되지 않음을 마침내 절감했다. 나로서는 아주 중대한 순간이었다. 드디어 나는 좌정하고 앉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기로 들며 아비담마의 가르침을 적용시켜 보았다. 길이 보였다.
법우님들도 좌정하고 앉아서 차근차근 아비담마의 가르침대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시라. 그러면 거기서 길이 보일 것이다. 일단 이해하고 나면 아비담마보다 쉬운 게 없다 싶을 것이다. 진리란 알고 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란 것을 나는 아비담마의 가르침을 감상(監)하고 나 자신을 닦으면서(修) 재삼 느꼈다. 어쨋던 준비운동은 많으면 많을수록 얼음장과 같은 이바담마의 차가움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가급적 감정?(=온기, 열기)을 많이 담은 준비운동을 도와주는 글을 써야겠다고 고심하다가 대화체로 적는 것이 제일 읽기 쉽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이 법우님들께 조그마한 길잡이라도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준비운동이 필요 없는 분은 곧바로 저 얼음물로 들어가서 어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시기를!
Δ 9. 아비담마와 아비달마
문: 스님, 요즘 초기불교니 근본 불교니 남방 불교니 아비담마니 위빠사나니 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알던 불교 즉 대승불교나 선불교를 위시한 북방 불교 전통과는 다른 불교 체계를 알게되면서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과연 북방에는 이때까지 전혀 소개되지 않은 것인가요?
답: 좋은 질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이런 가르침은 중국불교를 통해서 이미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초기불교는 아함경으로서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것이고 아비담마는 설일체유부라던지 특히 구사론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것이고 위빠사나는 觀이란 말로 즉 사마타-위빠사나는 止觀이란 말로 잘 알려진 것들입니다.
증도가로 유명한 영가 현각스님의 영가집에서 이런 사마타와 비파사나와 우필차(upekkhaa, 捨)라는 말이 4장과 5장과 6장의 제목으로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불교가 국교였던 신라와 고려를 지나서 조선조 오 백년간 엄청난 탄압을 받으며 선불교만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해오다 보니 우리나라 지성인들이 천년 이상을 깊이 사유해오던 이런 불교 용어들이 그만 우리에게 낯설게 여겨지는 슬픈 현상이 발생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전통이 아직 살아있는 남방에서 생생하게 전승되어오다보니 남방불교라 이름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미 우리 선조들께서는 천년이상을 심도 깊게 사유하고 생활 속에서 실현하려하시던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물론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문: 그렇군요. 그런데 스님께서는 줄곧 아비담마란 용어를 쓰시는데 한문권인 우리 나라에서는 아비달마(阿毗達摩)란 용어를 쓰지 않았습니까. 또 아비다르마란 용어도 쓰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남방 불교 국가에서 수행하신 분들은 스님처럼 아비담마란 용어를 사용하시는 것 같고요. 그런데 이들 단어들이 차이가 있습니까?
답: 아닙니다. 차이가 없습니다. 한문 아비달마(阿毗達摩)는 산스끄리뜨 Abhidharma(아비다르마)를 음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사용하는 아비담마는 빠알리 Abhidhamma를 한글로 적은 것입니다. 그러니 원 의미에서는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굳이 아비담마란 빠알리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제가 지금 설명하고자하는 체계가 남방불교 즉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에서 특히 미얀마에서 전승되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구사론을 번역하게 된다면 그때는 아비다르마 꼬샤(Abhidharmakos#a)나 아비다르마 구사론 혹은 아비달마 구사론이라 표기하겠지요. 구사론은 북방에 전승된 부파 불교 소전의 산스끄리뜨로 표기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방 소전의 아비담마를 소개할때는 아비담마라는 용어를 사용해야하고 북방소전의 아비다르마를 소개할때는 아비다르마란 용어를 사용해야만 오해의 소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남방 아비담마와 북방 아비다르마가 큰 줄거리는 같지만 용어의 정의나 제법(諸法, dhammaa)을 분류하고 그들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데는 견해의 차이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설명하는 체계는 남방 아비담마(Abhidhamma)이기 대문에 아비담마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Δ 10. 아비담마는 초기불교인가? (1)
문: 그러면 아비담마 불교가 초기불교나 근본불교입니까? 요즘 남방불교를 근본불교라 소개하고 위빠사나 수행법을 부처님이 직접 가르치신 수행법이라고 아주 강한 톤으로 주장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은데요.
답: 너무 중요한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자면 ‘아니다’입니다. 우리가 초기불교나 근본불교 혹은 원시불교 기본불교 등의 용어를 사용할 때는 현존해 있는 남방의 4부 니까야 즉 디가니까야(장부), 맛지마니까야(중부) 상윳따니까야(상응부) 앙굿따라니까야(증지부), 숫따니빠따, 담마빠다, 우다나, 이띠웃따까와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북전의 4 아함 즉 장아함, 중아함, 잡아함, 증일아함과 의족경, 법구경 등과 남북전 율장중 초기 전승 등에 제한되어야 합니다.
아비담마는 분명 불멸후에 발전되어 오다가 남방불교 국가에서 전승 발전되어온 체계입니다. 그러니 남방불교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남방 상좌부 불교의 이론적이 토대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이론체계를 갈고 닦아서 이를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하고 전승해온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법도 분명히 후대에 발달한 기법입니다. 물론 위빠사나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빠알리어 이고 그 용어들은 대부분 초기 경들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법 자체를 부처님의 직접 가르치신 수행법이라 하는 것은 무리가 큽니다.
부처님 당시를 포함해서 B.C. 3 세기경에 불교가 스리랑카로 전래되어 남방에서 역사적으로 전해내려 오던 수행 기법은 청정도론의 정품에서 40가지 명상주제로 체계화되고 혜품에서 10가지 혹은 14/16가지 위빳사나냐나로 철저하게 이론화되어 있습니다. 지금 남방에서 위빳사나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는 몇 가지 기법들 즉 마하시 사야도께서 주창하신 기법이나 레디 사야도께서 체계화한 기법이 우바킨 거사님에게로 전해지고 그것을 인도의 고엥카 거사님이 전 세계적으로 유통시킨 수행기법 등은 모두 청정도론에는 나타나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한 설명을 토대로 해서 더 후대에 미얀마에서 완성된 기법입니다.
청정도론이야말로 아비담마 교학체계에 입각해서 경장을, 그 중에서도 4부니까야를 중점적으로 주석한 주석서이니 남방불교의 실체가 아닙니까. 여기에 뿌리를 두고 더 후대에 발전되어온 수행 기법을 부처님이 직접 가르치신 수행법이라 한다면 너무 무리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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