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위빠사나

2-3.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지도 및 저술 활동

通達無我法者 2008. 4. 2. 16:06
 

 

 

2-3.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지도 및 저술 활동

 

1938년, 마하시 사야도는 잠시 몰민을 떠나 고향인 세익쿤(Seikkhun)으로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촌형제 3명을 위시로 해서 50명의 수행자에게 7개월 동안 사띠팟타나 위빠사나를 가르치게 되었고,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위빠사나 지혜의 높은 단계에 도달하였다.

교육을 해야 하는 의무 때문에 다시 몰민으로 돌아온 마하시 사야도는 교학 뿐만 아니라 수행도 지도하게 되었다.

교학 이론(pariyatti)과 수행실천(patipatti)의 두 가지 법을 결합한 것이다.

1941년, 처음으로 실시된 법사시험에 통과한 마하시 사야도는 위빠사나 수행을 본격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위빠사나 수행을 처음 지도했던 고향 마을 세이쿤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해는 2차 세계대전의 전화가 미얀마에 퍼지게 된 때이며, 전쟁 기간 미얀마는 많은 고통에 빠지게 되었고, 불교 활동은 중단되었다.

다행스럽게 세이쿤 마을은 전쟁의 피해를 많이 보지 않은 마을 가운데 하나여서 마하시 사야도는 위빠사나와 법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었다.

수행을 통해 많은 이익을 얻은 재가자들의 요청에 의해 마하시 사야도는 위빠사나 수행법에 대한 저술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7 개월 만에 팔리 경전, 주석서, 복주에 대한 자세한 언급과 함께 실제적인 수행법을 포함하고 있는 ꡔ위빠사나 수행법ꡕ 2권 (Vipassanā shu nyi gyan, 로얄판으로 950쪽)을 1944년에 탈고한다.

이 책의 본격적인 출판은 전쟁이 끝난 후에 이루어졌고, 2권에서 실제적인 수행법을 다루고 있는 제 5장이 영어로 번역되어 위빠사나 수행을 외국에 소개하는 중요한 자료로 알려지게 되었다.

1945년에 전쟁은 끝났고, 마하시 사야도는 몰민과 세이쿤을 오고 가며 교학과 수행을 지도하였다.

1947년에 세워진 랑군의 수행센터(Thāthana Yeikthā)에 마하시 사야도는 1949년에 우연히 방문한 적이 있었으나, 이 때만 해도 이곳이 자신이 지도하는 수행센터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세이쿤으로 돌아온 마하시 사야도는 ꡔ대념처경ꡕ에 대한 미얀마어 해설서(Nissaya)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경전 구절에 대한 자세한 해설과 함께 위빠사나 수행 과정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1947년 11월 13일, 랑군에 붓다 사사나 누가하 협회(Buddha Sasanā Nuggaha Organization)를 세우고 초대회장이 된 우 트윈(Sir U Thwin)의 마음에는 교학은 물론 수행법을 진흥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미얀마의 상황에서 불법을 진흥하기 위한 일을 생각할 때, 교학을 진흥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행을 지도할만한 스승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 협회에서 수행을 지도할 스승을 찾으면서 초대 수상인 우 누(U Nu, 1907-1995, 1948-62 재임)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우 트윈은 1947년에 북부 미얀마를 방문하여, 마하시 사야도의 명성을 접하였고, 직접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5일간 마하시 사야도의 지도 하에 300명의 수행자들과 함께 위빠사나 수행을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는 마하시 사야도가 자신이 세운 랑군의 수행센터를 이끌어줄 적임자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으며, 랑군으로 돌아와서 붓다 사사나 누가하 협회의 운영위원들에게 이러한 입장을 밝혔다. 우 트윈의 의사는 운영위원 전원ϼːꘘ

1949년, 마하시 사야도는 수웨보(Shwebo)마을에서 교학과 수행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우 누 수상이 이 마을을 방문하였을 때, 마하시 사야도에게 랑군의 수행센터에 오셔서 수행을 지도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 요청을 받아들인 마하시 사야도는 아직 건물이 그리 많지 않았던 랑군의 수행센터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마하시 사야도가 수행지도를 시작하자 이 수행센터는 마하시 수행센터라고 불리게 되었다.

1949년 12월 19일 시작된 마하시 수행센터에서의 첫 수행에는 25명이 참가했으며, 그 수는 점점 늘어났다.

새로 오는 수행자의 수가 많아지자, 수행법에 대한 법문을 모든 수행자에게 매번 해줄 수 없게 되었고, 1951년에 수행 법문이 녹음되어 새로 수행에 참여하는 수행자들이 듣고 수행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법문은 1954년에 Satipaṭṭhāna Vipassanā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지금까지 수행 입문서로서 활용되고 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동안에 수행자들은 자신이 수행도중에 경험한 일들을 매일 마하시 사야도에게 보고하여 점검을 받아야 했다.

매일 수행자들을 점검하는 이 방법은 마하시 사야도에 의해서 채택되고 시행되었으며, 실제적인 수행체계에서 수행을 지도하는데 가장 만족스러운 방식의 하나였다.

그리고 이러한 좋은 수행지도법 때문에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법은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마하시 수행센터에서 수행한 수행자들 가운데 자질 있는 제자들에 의해 위빠사나의 씨앗은 미얀마 각지에 뿌려지게 되었고, 마하시 사야도는 이들이 수행을 잘 지도할 수 있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으며 지도를 해주었다.

따라서 마하시 사야도의 도움으로 미얀마 각지에서 마하시 수행센터의 분원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미얀마를 벗어나 태국과 스리랑카 등지에도 분원이 생겼다.

마하시 센터 설립 23주년이 되던 1973년, 랑군의 센터에서 수행한 수행자는 60만명에 이르렀고, 태국에서, 스리랑카, 캄보디아, 인도 등지에서 수행한 수행자의 수를 모두 합하면, 70만명에 이르렀다. 

이후, 마하시 사야도는 태국, 스리랑카, 캄보디아,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유럽, 미국 등지에 위빠사나를 전하였으며, 1938년에 처음 위빠사나를 지도하신 이래 1982년 8월 14일, 78세를 일기로 입적하실 때까지, 44년간 위빠사나 지도는 물론 저술���ʗ���ʗ���ʗ

마하시 사야도 생존시부터 많은 제자들이 마하시 센터와 분원에서 수행자들을 지도해 왔으며, 현재에도 마하시 사야도의 제자들에 의해서 수행 지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마하시 사사나 예이타 수행 센터(Mahasi Sāsana Yeiktha Meditation Center)

일명 마하시 수행 센터(Mahasi Meditation Center)로 불린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47년 자산가 우 틴(U Thwin)씨를 초대 회장으로 하여 붓다 사사나 눅가하 협회(Buddha Sāsana Nuggaha Organization, 이하 BSNO)가 창립되어, 1949년에 수행 지도자로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가 초빙되어 마하시 수행 센터가 탄생하게 된다.

마하시 수행 센터의 탄생은 일반화 되지 않았던 위빠사나 수행법이 승려는 물론 일반 재가 신자 그리고 구미에까지 널리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법은 이 마하시 수행 센터를 중심으로 미얀마 국내는 물론 태국, 스리랑카 등의 남방 상좌부 불교 국가 및 구미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1996년 1월 3일, 필자가 조사차 방문했을 때, 마하시 수행 센터의 미얀마 국내 분원은 327개에 이르며 양곤 시내에만도 12개의 수행 센터가 있다고, 당시의 BSNO의 회장인 우 라 창(U Hla Kyaing)씨가 설명해 주었다.

외국에는 미국(5개), 영국(2개), 네덜란드(2개), 프랑스, 스위스, 일본, 스리랑카, 네팔, 태국 등지에 분원이 있다.

1996년 1월 3일 당시의 수행자의 수를 보면, 미얀마의 승려가 154명, 일반 재가 신자가 246명(男 ; 23명, 女 ; 223명), 외국인 승려 및 일반 수행자가 32명(이 가운데 한국인 수행자가 10명)이었다. 즉 수행자가 모두 432명이 있었으며, 수행을 지도하는 지도 법사 스님은 10명 이상이 있었다.

1949년 개원 이래 1995년에 이르는 46년 동안 마하시 수행 센터와 미얀마 국내의 분원에서 수행한 수행자의 수는 모두 1,181,034명에 이른다.

마하시 계열의 수행 센터를 포함한 대부분의 미얀마의 수행 도량에서는 교학에 대한 연구나 교육 과정은 없으며, 오직 수행만을 지도한다.

특별한 기간 동안의 수행 기간은 없으며, 1년 365일 모든 이들에게 열려져 있는 수행 센터이다.

이곳은 약 3,00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미얀마를 대표하는 수행 센터라고 할 수 있다.

마하시 수행 센터에서의 수행 지도 법사(Kammaṭṭhānācariya)가 되는 자격 조건에 대해서 묻자, 우 라 창씨는 수행의 자격 조건으로는 마하시 전통에 따라서 3년 이상의 수행 경력이 있어야 하며, 교학의 자격 조건으로는 최소한 팔리 국가시험의 고급 과정(Pathamagyi)을 통과해야 하며, 법사 시험의 합격자가 보다 자질을 인정받는다고 답한다.

이러한 조건에 의해서 마하시 계통의 수행 지도 법사들이 배출된다면, 교학과 수행을 함께 갖춘 수행 지도자가 배출되는 것이며, 이러한 전통은 마하시 사야도가 교학과 수행 양면에 탁월했던 것에 기인하며, 미얀마 불교가 단단한 교학적 전통 위에서 수행전통을 확립시킨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