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空卽是色
구사론의 물질관과 색즉시공
구사론俱舍論은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을 줄여서 부르는 부파불교部派佛敎(소승불교)의 대표적 논서로 인도의 세친(世親:4~5세기)이라는 인물이 썼습니다. 이 세친은 거의 보살의 지위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로 불교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마음의 세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유식학唯識學도 이 분의 걸작입니다.
이 구사론과 유식학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습니다. 한국불교 역시 세친의 사상을 절대적으로 신봉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위대한 세친이 이제부터 성법이란 중의 당돌한 논리에 망가지는 모습을 보시게 될 겁니다.
유식학은 반야심경의'의식'意識에 대해 설명을 할 때 거론할 예정이고, 지금은 물질을 논한 구사론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세친은 구사론에서 물질을'색법'色法에 속한다 설명하며 그 성질은'질애'質碍라고 하였습니다. 질애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고(質), 공간을 점유하고 있어 서로 장애(碍)가 된다는 말입니다. 부연하면 한 공간을 점유하는 물체는 상호 포개어 존재할 수 없다고, 서로의 자리를 침범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책장을 들여놓은 자리에 텔레비전을 동시에 설치할 수 없다는 아주 당연해 보이는 이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반야심경에서 물질은 공하다(색즉시공)고 한 진정한 의미는 물질의 실체에 장애를 일으킬 만한 요소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럼 왜 물질을 포개놓을 수 없느냐? 물질이 스스로 자성이 공하다는 것을'깨닫지 못했기'때문이란 것이 저의 대견한 이론입니다. 인간이 만약 물질의 공성空性을 깨달으면 걸림이 없게 되어 물질인 내 몸이 역시 물질인 벽도 그대로 거침없이'그냥'지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깨달음의 단계에 이르면 아주 하찮은'재주'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세친의 생각이 저보다 부족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제가 우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친은 1,500여 년 전의 인물로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후 200년쯤 지난 시기의 대 학자입니다. 그 시대에는 반야심경은커녕 대승불교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입니다.
저는 수 십 년간 반야심경을 아마 수천 번은 독송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깨달음은커녕 그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반야심경을 설명한답시고 책을 내며 주절대는 것은 사실 '내 생각은 이런데 동의를 구해본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그러나 만약 세친이 이 반야심경을 한 번만이라도 들었다면 그는 틀림없이'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큰 깨달음을 즉시 얻었을 것입니다 .
※ 성법스님 저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