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法語)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대화

通達無我法者 2008. 5. 14. 11:07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대화

 

만공스님은 오랜만에 만난 스승으로부터 법문을 하나 듣고 싶어 거나하게 술기운이 올라있는 스승경허를 보자 옳지, 이때다, 하고 바짝 다가앉아 다음과 같이 물어 말하였다
'스님, 스님께오서 곡차를 드셨으니 그 옛날 천장사에서 법문은 술기운에나 하는 법이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금 마침 스님께오서 곡차를 드시고 얼굴까지 단청불사 하셨으니 한 가지 묻겠습니다.
스님, 스님께오서는 이처럼 곡차를 마시지만 저는 술이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안 마십니다.

굳이 있고 없음을 따지지 않습니다.'
만공는 다시 상 위에 올려져 있는 파와 밀가루를 버무려 지진 파전 안주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이 파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님, 저는 굳이 파전을 먹으려 하지도 않고, 또 생기면 굳이 안먹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스님께오서는 어떻습니까.'
난데없는 질문에 경허는 대답 대신 사발에 한가득 들어 있는 곡차를 단숨에 들이켜더니 빈 잔을 만공에게 건네주어 술을 따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위대한 대사님, 곡차 한잔 받으십시오. 나는 그대가 그동안 그처럼 위대한 도인 되었는지는 전혀 몰랐네, 그려.'


경허는 일어서서 제자 만공 앞에 갑자기 엎드려 절을 올리려 하였다.
당황해진 만공이 얼른 일어서서 스승을 만류하여 다시 자리에 앉히자 경허는 껄껄 웃으면서 말하였다.
'자네가 벌써 그런 무애(無碍) 경지에 이르렀는지 내가 전혀 몰랐었네 그려.
나는 자네와는 다르네. 자네는 술이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안 마시고, 이 파전이 생기면 굳이 안 먹으려 하지 않고 없으면 굳이 먹으려고도 하지 않지만 나는 자네와는 다르네.

나는 술이 먹고 싶으면 제일 좋은 밀씨를 구해 밭을 갈아 씨 뿌려 김매고 추수하고, 밀을 베어 떨어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고 걸러 이와 같은 술을 만들어 이렇게 마실 것이네.'
경허는 잠시 말을 마치고 다시 술잔에 가득 따라 단숨에 이를 들이켜고 수염에 묻은 술을 손등으로 닦아낸 후 파전 안주를 집어먹으면서 말하였다.
' 난 또 파전이 먹고 싶으면 파씨를 구해 밭을 일구어 파를 심고 거름을 주어 알뜰히 가꾸어서 이처럼 파를 밀가루와 버무려 기름에 부쳐가지고 꼭 먹어야만 하겠네.'


이때의 심정을 만공은 훗날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나는 그때 스승 경허의 말을 듣는 순간에 등에서 땀이 흐르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내 견해가 너무 얕고 스승의 경지는 하늘과 같아서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