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고 공중무색 是故空中無色
텅 비어 있으면서 가득 찬 공
혹시 반물질(反物質, antimatter)이라고 들어 보셨는지요?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의 모든 물질은 전자 양성자 중성자를 구성요소로 하여 만들어졌는데, 반물질은 이에 대응되는 말입니다.
반물질은 일반 소립자와 같은데 전하電荷만 반대인 입자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전하가 +인 전자, 전하가 -인 양성자 등을 말하는 것 이지요. 이 반물질이 존재한다면 그 물성物性은 물질의 물성과 같으며,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함께 소멸하여 에너지로 전환됩니다. 즉, 물질을 이루고 있는 두 개가 만나 눈앞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반야심경의 '그러므로 공한 것이란 물질도 없는 것이고(是故空中無色)'라는 말이 물리적으로도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주가 탄생될 때 물질과 같은 양의 반물질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고, 또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디엔가 반물질로만 이루어진 전혀 다른 우주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주와 우리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반물질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우리가 반물질의 우주를 발견했다 해도 그곳을 탐사하려고 발을 디디는 순간 물질로 이루어진 우리의 몸은 즉시 반물질과 쌍소멸 되어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SF소설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과학자들은 1998년부터 반물질인 반수소(antihydrogen) 원자를 극히 제한적이긴 해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반야심경의 '공중무색'空中無色을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 쌍소멸한 후 에너지로 전환(空)--물리학에서는 신통하게도 이 쌍소멸을 양자론 적 진공眞空이라합니다-- 이런 식으로 설명드릴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유력한 방법이 있습니다. 즉, 블랙 홀(black hole)의 개념을 도입하는 방법입니다. 블랙홀은 이론 물리학에서 도출된 개념을 천체 물리학에서 증명한, 물질의 성질과 변화에 대한 거시적 관찰의 개가입니다.
태양 질량의 13배가 넘는 항성恒星이 적색거성赤色巨星단계를 거쳐 그 일생을 다하고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 대폭발을 일으켜 표층을 우주공간에 날려버린 다음에는 남은 중심부가 급속히 수축합니다. 계속 수축을 하여 지름이 3㎞정도가 되면 그 자체의 압력이 가로 세로 1센티미터당 무려 수십억 톤 이상에 이르게 됩니다.
이 상태에 이르면 엄청난 중력으로 그 별은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해 버리는데, 빛도 빨려 들어가기만 했지 빠져나오질 못합니다. 빛이 빠져나오질 못하니 당연히 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블랙홀(Black hole)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인데, 이 블랙 홀 안은 시공간時空間이 혼재하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원리에서 주장했듯이 이 블랙홀 주변은 빛이 휘는 중력렌즈 효과가 일어나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우리의 은하계 중심 등 우주에 아주 큰 블랙홀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물질과 시간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전혀 볼 수도 감지하기도 어려운 이 블랙홀의 실체를 공空이라 생각하고 반야심경의 '공중무색'空中無色으로 돌아오면 이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이 결코 없음(無)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너무나 넘치고 넘쳐 모든 것이 그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불교의 공空인 것입니다.
※ 성법스님 저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