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어록(達磨語錄)

혈맥론(血脈論)-4. 부처는 부처를 구원하지 않는다

通達無我法者 2008. 8. 15. 15:26

 

 

 

부처는 부처를 구원하지 않는다.

이 말은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각자가 한 사람의 부처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잠들어 있어 그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다. 또 어떤 이들은 잠에서 깨어나 자기가 누구인지 안다. 거기에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거기에는 누가 누구를 구원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잠을 계속 잘 뜻이 있다면 그는 잠잘 권리가 있다. 그대는 그를 강제로 깨울 수 없다. 아무도 그의 자유를 간섭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알라하바드에서 갠지스강 강기슭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알라하바드의 신학대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그 신학 대학이 있는 곳은 갠지스강이 내려다보이는 매우 아름다운 장소였으며 그 근처에는 철교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철교에서 강으로 뛰어내렸다.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멱을 감으려는 줄로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살려 달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했다. '무슨 일인가? 만약 그가 도움을 청하고자 할 지경이었다면 왜 뛰어들었을까?' 어쨌든 먼저 그를 물에서 끌어내고 봐야 할 일이었다. 만약 내가 그 문제를 앉아서 생각하고 있다가는 시간이 지나서 그는 죽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강에 뛰어들었다. 그는 매우 무거웠다. 아무튼 힘들게 그를 구하려고 하는데, 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말로는 계속 "살려 주세요. 나는 물에 빠졌어요."라고 외치면서도 내가 그를 구하려고 하자 오히려 나에게 저항을 했다. 그는 내 도움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당신은 미친 것 같은데…… 도대체 도움을 받고 싶은 거야? 말고 싶은 거야?"

그러자 그가 말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그래서 나는 그를 물에서 끄집어냈다. 하지만 그가 물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상황을 보면 모르겠어요? 나는 지금 자살하려는 중이란 말이에요."

내가 말했다.
"조금 전에 나보고 살려 달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자살하려 했다면 왜 그런 말을 했지?"

그가 대답했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죠. 나는 자살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내 무의식에서 살고 싶은 욕망이 생겨났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살려 달라고 말한 것이죠." 그래서 나는 그를 물 속으로 떠밀면서 말했다.

"좋아, 이번에는 당신의 뜻에 반대하지 않겠다."

그러자 그는 또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당신 정말 미쳤군요. 지금 나를 죽이려고 합니까?"

내가 말했다.
"나는 당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단지 당신을 구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것뿐이다. 이제 나는 여기서 가만히 보고만 있겠다."

어떤 사람이 달려와서 그를 구해내었다. 이번에는 그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물 밖으로 나와서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무슨 문제가 있는가? 어디로 갈 텐가?"

그가 말했다.
"아니다. 나는 그대에게 자살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자살하려 했던 사람은 바로 그대이다. 잊어버렸는가?"

그가 말했다.
"당신은 매우 이상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살을 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그를 말립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만약 그대가 물 밖으로 나오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대를 물 밖으로 건져낼 것이다. 혹시 그대가 물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대가 물 속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나는 그대가 어떤 식으로 살든지 간섭하고 싶지 않다."

그가 말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것 또한 좋은 일이다. 그대는 가도 좋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여기에 다시 올지도 모르니까."

그가 말했다.
"나는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것은 그대에게 달렸다. 만약 자살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거든 오늘 같은 날이 자살하는 데는 매우 좋은 기회임을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켜주려 할 뿐이다. 오늘 같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 보통 이 강둑에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오늘처럼 사람이 없는 가운데, 나처럼 어떤 식으로도 그대를 도와주려는 사람만 있는 기회란 쉽게 오지 않을 테니까."

그가 말했다.
"당신이 여기 있는 한 나는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오."

내가 말했다.
"그것도 그대에게 달려 있다. 내가 없다면 아마 여기서 자살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달마는 말하고 있다. 부처는 부처를 구원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부처는 그저 사람들의 자신의 본성을 깨우치도록만 도울 뿐이다. 그것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부처이다.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이것이 불교와 자이나교가 인류의 정신에 끼친 가장 큰 공헌이다. 만약 그대가 그대의 무심을 사용해서 부처를 찾는다면 그대는 부처를 볼 수 없다. 그대가 무심 외에 다른 곳에서 부처를 찾는다면 그대는 자신의 무심이 부처라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어록에는 마음이라고 씌어 있지만 나는 무심으로 읽겠다.


부처를 섬기는 데 부처를 이용하지 말라.


이 말은 절대적으로 달마에게 나온 말이다. 부처가 다른 부처를 섬기는 것은 정말 우스꽝스런 일이다. 그래서 불교는 숭배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 나의 사원도 짓지 말라. 나는 전생애를 통틀어 그대가 바로 부처이며, 다른 부처를 섬기지 말라고 가르쳐 왔다."

만약 돌로 만들어진 부처의 형상이 살아 있는 부처에 의해 숭배 받는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부처를 불러내는 데 마음을 사용하지 말라. 부처는 경전을 암송하지도 않는다. 부처는 어떤 가르침도 추종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지도 않는다. 부처는 어떤 것도 마음에 담고 있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부처는 선도 행하지 않고 악도 행하지 않는다.

이 말 역시 달마에게서 나온 말이다. 그의 제자는 이런 위대한 가르침을 말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달마는 모든 부처들이 자신의 깨어있음 외에 어떤 다른 수행법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빛말고는 어떤 경전도 따르지 않는다. 어떤 것을 따르거나 반대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행동할 뿐 선이나 악을 정해놓고 그것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부처는 청교도나 도덕론자가 아니다. 그들은 순수한 의식에서 나오는 대로 행동할 뿐이다. 그들의 행동은 어떤 사상이나 개념이나 경전을 따라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경전도 외우고 있지 않다. 그들은 '거룩한 경전'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깨어 있음 속에서 길을 알고, 그들의 궁극적인 운명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대는 자신의 본성을 보아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의 본성을 보는 사람이 바로 부처이다. 만약 그대가 자신의 본성을 보지 않고 부처를 생각하고 경전을 외우며 예물을 바치고 마음에 금언을 새긴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 말들은 깨어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 말들이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제자들에게는 뭔가 흡족하지 않다. 그들은 여기서 뭔가 이해되지 않는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전을 외우고 예물을 바치며 좋은 말을 금언으로 명심하는 것이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라니……. 그들은 틀림없이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말들은 분명 비종교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어떤 평범한 종교도 이런 생각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제자는 즉시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었다.

물론 부처를 섬기는 것은 좋은 업을 쌓는 것이며 경전을 외우는 것도 좋은 기억을 갖는 것이다. 마음에 금언을 새기는 것도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해주며 예물을 드리는 것도 장래에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부처는 없다.

이 말들은 그저 제자가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그는 '아무 소용없다'는 말에 당혹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제자는 달마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기록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마음대로 그것을 바꿀 수 있다. 사실 그는 전체적인 느낌을 바꾸어 버렸다.

물론 그 제자는 달마의 말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달마가 한 말은 오직 깨달음의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 제자는 틀림없이 땀 깨나 흘렸을 것이다. 그 말들은 보통 사람의 마음을 가진 자가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모든 종교와 예언자들과 소위 신들의 사자라고 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경전의 생각에 모두 위배되는 것들이었다.

그는 당혹감을 느꼈고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뒤에다 덧붙였다. 이제 명상의 참 맛을 보지 못한 사람이 이 어록을 읽게 되면 그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마지막에 덧붙여진 이 말들만 이해하고 그는 잘못된 길로 들어설 것이다. 달마로부터 나온 수정같이 맑은 물이 오염되었다. 그 제자는 그런 맑은 물에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서 그 물을 흐려 놓았다.

석가모니 부처의 계열에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달마가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선불교의 창시자는 아니다. 선불교의 창시자는 마하가섭(摩訶迦葉)이다. 그러나 달마 앞에서는 마하가섭마저 빛을 바랠 정도이다. 달마는 그의 과격함과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 대문에 석가모니 부처 이후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어떤 사람의 마음도 위로해 줄 뜻이 없었다. 그는 단지 진리만을 말했다. 그의 말이 그대를 상하게 하든 그대의 상처를 감사 주든 그것은 그대에게 달렸다. 그는 그대를 위로할 말은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는다. 모든 위로의 말은 아편의 일종인 것이다.

달마는 절대적으로 강직한 사람이다. 그의 초상화가 사람을 험악하게 노려보는 듯한 표정으로 그려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왕자 출신이다. 그의 실물 사진이 있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만일 부드러운 위로의 말을 했던 사람이라면, 그는 그렇게 그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진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놓았다. 어떤 부드러운 표현도 덧붙이지 않은 채 말이다. 그 때문에 그대가 상처를 받는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대가 깨어나기 위해서는 상처를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대에게는 더 이상 위로가 필요 없다. 위로의 말은 그대로 하여금 더 깊은 잠 속에 빠져들게 할뿐이다.

달마는 독특한 사람이다 .왜 그의 제자들이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는지를 나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누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질문을 던졌다. 그 숫자는 단지 네 명의 제자들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한 사람밖에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는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마 세상에 알려진 스승 중에서 가장 엄격하고 강직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그는 가장 자비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엄격함은 바로 그의 자비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