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43. 지혜양가(智慧良可)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18:41

 

 

지혜양가(智慧良可)

“이제부터 그대를 ‘혜가’라고 부르겠노라”

문파 만들어 세상 속이면
그 죄가 막대하니
원 세운대로 수행하라



신광이 하늘을 우러러 두 손 모아 다짐하는 모습은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부모가 낳아 길러 주신 큰 은혜를 생각하면 이 몸은 죽어도 보답할 수가 없나이다. 하늘이 살펴 주시고 땅이 살려 주는 은혜를 입고, 해와 달의 빛을 받으며 나라님과 수토(水土)의 혜택을 받고 있나니. 사존(師尊)의 높은 가르침과 깊은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나이까. 만일 성심으로 참된 도(道)를 구하지 않아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면 어찌 오은(五恩)에 보답할 수 있겠으며, 어찌 한평생을 헛되이 산 것이 아니라 할 수 있겠나이까. 육도사생(六道四生)에 빠지면 어찌 또 다시 기연(奇緣)을 만날 수 있겠나이까. 비옵니다. 하느님께서는 굽어 살피소서. 제자가 구도(求道)한 후 만일 두 마음을 품어 스승을 속이고 조사(祖師)를 멸시하면 영원히 지옥에 떨어져 초생(超生)을 얻지 못하리이다.”달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광에게 말했다.

구도후 두마음 품으면…
“옳도다. 선재(善哉)로다. 그대가 바른 도를 배우고자 하면 우선 좌도방문(左道旁門)에서 떠나야 하느니라. 내가 그대에게 좌방(左旁)을 버리라고 한 것은 그런 뜻에서 한 말이니라. 그런데 그대는 그것을 좌방(左膀) 곧 왼쪽 팔로 착각하여 스스로 왼팔을 베어버림으로써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에 빠지지 않았더냐. 내가 한 말 가운데 홍설(紅雪)이 허리에 차면 법을 전수한다고 한 것도 그대가 크게 착각한 것이니라. 나는 홍설이라는 말을 결코 ‘피로 붉게 물든 눈’을 뜻하는 것으로 쓰지 않았느니라. 옛말에 정성스런 마음을 시험하는 일을 일컬어 홍설이라고 했던 것도 몰랐단 말이더냐. 그러나 그대의 피 묻은 붉은 가사는 후세까지 길이 전하여 널리 사람들을 깨우치도록 할 것이니라.”이어서 달마는 장중한 목소리로 게송을 읊었다.

“내가 이 땅에 온 까닭은 진법을 전하여 미망(迷妄)을 구하고자 함이니라. 일화오엽(一花五葉) 즉 꽃 한 송이에 다섯 잎(五宗 선가)이 열리니 결과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리라.”달마는 신광을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대는 그야말로 지혜양가(智慧良可)로다. 이제부터 그대를 혜가(慧可)라고 부르도록 하겠노라.”‘혜가’라는 이름을 받은 신광은 달마에게 큰절을 올리고 정식 제자가 되었다. 달마는 혜가에게 여래(如來)의 정법안장(正法眼藏)과 미묘법문(微妙法門), 실상무상(實相無相)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의 법(法)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가르쳤다. 득도한 혜가에게 달마는 또 다시 게송을 들려 주었다.

“정(情)이 있으면 절로 씨가 뿌려지고 땅으로 말미암아 열매가 저절로 생기나니, 정이 없으면 반드시 씨가 없을 것이고 땅이 없으면 또한 생기는 것도 없느니라.”말을 마친 달마는 입을 꾹 다문 채 좌행(坐行)에 들어 갔다. 혜가는 달마의 말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비로소 성(性)은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고, 명(命)은 전수받아야만 하는 것임을 알았다. 혜가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상승묘법(上乘妙法)임을 절감하고 그 자리에서 머리가 땅에 닿도록 큰절로 스승에게 예를 갖추었다. 삼배(三拜)를 마친 혜가는 간곡하게 스승에게 말했다.

“스승님, 자비를 베푸시어 더 큰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달마는 감았던 눈을 뜨면서 혜가에게 눈길을 보냈다.

“아까 스승님께서 좌방을 끊으라고 말씀하셨는데, 분명한 가르침을 주시옵소서.”달마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도(道)에는 3천6백의 방문(旁門), 72종(種의) 좌도(左道)가 있느니라. 내가 말한 좌방이란 것은 이에서 유래한 것이니라. 이것은 한 묶음으로 술(術), 류(流) 동(動) 정(靜)을 이루므로 사과(四果)의 문(門)이라고도 일컬어지느니라. 하지만 내가 전하는 진법은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유불도(儒佛道) 삼교(三敎)를 합일(合一)하는 불이(不二)의 법문으로 일관선천(一貫先天)의 대도(大道)이니라.”“술, 류, 동, 정을 일컬어 사과의 방문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옵소서.”“술이란 법술(法術)을 뜻하는 것이니라. 부적을 쓰고 주문을 외우고 운무(雲霧)를 타고 오르거나 하늘을 날고 허공(虛空)을 걷는 따위가 그것이니라. 여기에는 별을 밟고 걷는 것이나 우레를 불러 장수로 삼고 콩깍지를 흩뿌려 병졸로 삼는 일. 오행(五行)을 빌려 다섯 가지 둔갑술로 변화를 일으켜 모습을 감추어 도망치는 것 등 72가지의 법술이 있느니라. 하지만 이런 법술로는 초생료사(超生了死)할 수 없느니라. 이는 어느 것 하나도 결코 바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느니라.”

三敎 합일하는 不二법문
조사의 거침없는 설명에 혜가는 감격스런 표정으로 경청했다.

“류란 주류(週流)이니 두루 흘러다님을 뜻하는 것이다. 구름처럼 떠돌고 산이나 우상에 절하고 시방으로 다니며 모금을 하고 절을 수리하고 탑을 세우며 의술과 복술과 점성술과 관상술, 그리고 역술로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하느니라. 과거와 미래를 잘 맞추어 귀신같은 영험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느니라. 류에는 구류(九流)라고 해서 유(儒) 도(道) 음양(陰陽) 법(法) 명(名) 묵(墨) 종횡(從橫) 잡(雜) 농(農)의 아홉 유파가 있으며 삼교(三敎)도 이에 포함되느니라. 제자백가(諸子百家)는 입으로 삼매(三昧)를 말하고 있지만 류도(流道)를 벗어날 수 없느니라. 이것으로는 생사를 벗어날 수 없고 생사를 마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정법이라고 할 수 없느니라.”이어서 달마는 ‘동’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풀이해 주었다.

“동이란 행동(行動)을 뜻하는 것이다. 팔단금(八段錦) 같은 기공(氣功)을 배우는 것이나 인위적으로 호흡을 조절하여 토납(吐納)하는 따위는 동에 속하느니라. 손바닥을 비비고 주먹을 쓰는 일, 채약(採藥)하여 연단(煉丹)하는 일, 젖을 먹고 정액을 삼키는 일, 서거나 앉거나 걷거나 뛰는 운기(運氣)공부 같은 일체의 동작 행위는 유형(有形)의 도이니라. 이것 역시 아무리 공력이 높더라도 초생료사할 수 없느니 정법이라고 할 수 없느니라.”혜가는 새삼 눈앞이 환하게 밝아 오는 것을 느꼈다. 달마 조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은 정적(靜寂)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고요함을 탐하는 것이 정이니라. 흔히 암자에 숨거나 동굴 속에 들어가 정좌(靜坐)하여 공(空)을 관(觀)하고, 수식(數息)으로 지념(止念)하고, 벽곡하여 몸을 단련하는 따위는 이에 속하느니라. 이런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머릿골 정수리의 니환(泥丸)을 지키거나, 엉치등뼈인 미려(尾閭)를 지키거나, 항문(肛門)인 곡도(穀道)를 지키거나 배꼽인 제륜(臍輪)을 지키기 마련이니라. 흔히 눈은 코를 보고 코는 마음을 보는 것이라고 가르치기도 하느니라. 혈심(血心)으로 황정(黃庭)을 삼고 간장(肝臟)과 폐장(肺臟)을 일컬어 용호(龍虎)라고 하기도 하고 심장(心臟)과 신장(腎臟)으로 감리(坎離)의 괘(卦)로 삼기도 하느니라. 어떤 사람은 두 젖가슴 사이의 중단전을 지키며 어떤 사람은 성(性)을 닦으면서 명(命)을 닦지 않느니라. 그런가 하면 명을 닦으면서 성을 닦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이런 수련은 양(陽)과 음(陰)이 균형을 잃은 것이므로 맹목적인 수련이나 진배없는 것이니라. 이것으로는 결코 생사를 벗어날 수 없을 뿐더러 수련을 마칠 수도 없느니라.”말을 마친 달마는 한참 뜸을 들인 다음 목소리를 가다듬고 주위를 환기했다.

“내가 특별히 그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원심(寃心)이 깊고 전생에 죄가 많은 사람은 비록 대도(大道)에 입문했더라도 천명(天命)을 모르기 때문에 조금도 마음을 낮출 줄 모르니라. 이렇게 하여 별도로 자기 문파(門派)를 만들어 세상을 속이고 사람들을 사도(邪道)로 이끄니 그 죄가 막대하느니라. 이런 것으로는 결코 초승(超昇)할 수 없음은 물론이요, 더 더욱 정법과는 거리가 멀게 마련이니라. 이런 네 가지의 일, 즉 사과(四果)의 방문(旁門)에는 조금도 가까이 해서는 안되느니라. 그대는 이 점을 명심하고 원을 세운 대로 성심껏 수행하도록 하라.”혜가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 스승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머리를 들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좌도 방문이 사람들의 생과 사를 오도(誤導)하는 죄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제자는 오늘 비로소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결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제가 스승님이 이끄는 진법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처음부터 수행하는 방법과 중점을 두어야 할 바를 분명히 가르쳐 주시옵소서.”“그대가 그런 질문을 할 줄 알았다. 지난 49년간에 걸친 수행이 있었기에 그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정도(正道)로 들어가는 첫머리는 삼귀(三歸) 오계(五戒)를 지키는 것이니라. 하지만 정법 공부의 시작은 현관(玄關)의 일규(一竅), 곧 한 구멍을 지점(指點) 받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일·삼·오(一·三·五)의 숫자에 중점을 두고 구전(九轉)의 연단(煉丹)을 발판으로 삼아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삼교합일(三敎合一)과도 관계되는 것인지요?”“삼교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삼교란 본래 나누어질 수 없는데도 인간이 멋대로 나누어 파당을 지은 것이니라. 나눈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삼교합일의 이(理)를 밝히고 일·삼·오(一·三·五)의 숫자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일·삼·오(一·三·五)의 숫자란 무엇을 말하는지 스승님의 가르침을 원하옵니다.”

正道로 들어가는 첫머리
“일(一)은 곧 ‘하나’이니 내가 말하는 진법은 바로 이 ‘하나(一)’를 말하는 것이니라. 이 하나(一)는 비롯 없는 하나(一)이고 마침 없는 하나(一)이니라. 인간들이 구분한 삼교(三敎)도 근원은 이 하나(一)와 일치하느니라. 우리 불가에서는 만법귀일(萬法歸一) 곧 만 가지 법이 하나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하나가 바로 ‘하나(一)’의 진법을 가리키는 것이니라. 도교(道敎)에서는 이것을 포원수일(抱元守一) 곧 으뜸(元)을 품고 하나(一)를 지키는 것이라 하고, 유교(儒敎)에서는 집중관일(執中貫一) 곧 가운데(中)를 잡고 하나(一)로 관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느냐. 삼교가 모두 하나(一)로 중심을 삼고 있는 것은 결국 근원이 같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니라. 이런 이치를 알고 ‘하나(一)’의 공부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 사람 몸(人身)을 빗대어 이런 이치를 설명하면 온갖 공부법의 뿌리는 바로 ‘한 구멍’ 곧 일규(一竅)로 돌아가는 것 또는 일규를 관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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