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이비설신의 無眼耳鼻舌身意
집착할 것 없는 혀의 작용
저는 어려서 먹어본 것 중 몇 가지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부자 친구 집에서 처음 먹어본 치즈의 맛, A B C가 새겨진 새알 초콜릿의 맛, 요구르트의 희한한 맛, 라면을 처음 먹었을 때의 맛 등인데 다른 것은 지금도 먹을 수 있지만 라면만큼은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40대 이상의 분들은 아시겠지만 처음 삼양라면에서 팔던 라면은 닭기름으로 튀겨서 만들었습니다. 라면을 끓이면 뽀얀 닭기름이 뜰 정도였는데 지금의 짜고 매운 스프의 맛과는 비교가 되질 않았습니다. 제가 도봉산에 한 3년쯤 있었는데, 근처에 삼양라면 공장을 지날 때면 닭 끓이는 듯한 냄새가 싫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고 보면 미각味覺도 참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라면 얘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제가 아는 한 분은 라면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거의 매일 밤 라면을 먹지 않으면 허전해 잠을 못 잘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라면을 먹고 잠들기 전에 꼭 라면을 발견한 사람의 '명복'을 빌어준다고 하여 웃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맛이란 게 온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와인 같은 경우는 마실 때의 온도에 따라 그 품격까지도 달라지지만 우리가 단순히 '달다', '쓰다'고 느끼는 정도도 온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짠맛은 실온 정도에서는 온도가 높아질수록 짜게 느껴지고, 쓴맛은 섭씨 37도가 넘으면 강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국은 미지근하면 더 짜게 느껴지고, 쓴 약은 찬 물에 먹는 게 덜 쓰게 느껴진다는 말이 됩니다.
과일의 단맛은 온도가 낮을수록 강하게 느껴진다니 과일은 냉장고에 넣었다가 먹는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쓴 맛은 혀의 뿌리 쪽에서 강하게 감지되고, 단맛과 짠맛은 혀의 끝 부분에서 강하게 느껴진다니 알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혀 끝에 대고 녹여 먹는 것은 현명한 방법입니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벼룩도 안남아난다'는 속담이 있지만, 저는 솔직히 고기가 맛있는 줄은 모르겠습니다.
반야심경의 이런 '입맛'도 공한 것이니 집착하지 말라는 설명을 드린다는 것이 그만 맛의 분별심을 돋우는 엉뚱한 쪽으로 흐르고 말았습니다. 옛날 맛 얘기하다 저도 모르게 '맛'이 간 모양입니다.
※ 성법스님 저서인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