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이비설신의 無眼耳鼻舌身意
집착할 것 없는 몸의 작용
반야심경에서는 '신身'이라고 했습니다만, 이 말은 몸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접촉(觸)으로 느끼는 신체의 작용이라는 의미입니다. 몸은 한 겨울의 삼베처럼 거친 것 보다는 비단처럼 부드러운 느낌에 집착한다는 것이고, 반야심경의 (공중空中) '무신無身'이란 그런 촉감에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이 촉감에 집착할 정도의 느낌을 갖는 사람은 필경, 보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을 얻은 사람일 것 같습니다. 당장 먹는 것을 해결해야 할 사람이 좋은 옷 사려는 마음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까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제게도 평생 잊혀지지 않는 가슴쓰린 과거의 '스냅 사진'들이 몇 장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바로 전 해 겪은 일이니까 6살 때의 일입니다.
서울역 부근 중림동에 살 때의 일인데 추석을 며칠 앞두고 잠결에 '불이야'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보니 커다란 불길이 집을 삼킬 듯 눈앞에 가득했습니다. 새벽이라 속 옷 차림 그대로 신발도 못 신고 그냥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곤 멀찌감치에서 우리 집이 불타는 것을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한 어른이 팬티차림으로 오돌 오돌 떨고 있는 어린 저에게 '얼마나 놀라고 춥겠니'하시며 담요를 한 장 덮어주셨습니다. 그때의 그 '포근함'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불에 타 재가 되고만 우리 집에는 말 그대로 숟가락 하나 건질게 없었습니다. 다음 날 적십자사에서 냄비 몇 개와 이불을 구호품으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때 구호품으로 온 이불이 바로 '나이론(당시에는 나이롱이라 했지요)'이라는 비싼 제품이었는데, 매끌매끌한 촉감이 어찌나 신기하고 좋았던지, 제 형하고 둘이 뒹굴며 마치 큰 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즐거워하더라는 겁니다.
제가 다 큰 후에 어머님이 눈물을 글썽이며 그 말씀을 하실 때 철없던 어린 자식들의 '촉감에 현혹된 즐거움'이 얼마나 부모님의 가슴을 멍이 들게 했을까 싶어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시 불을 낸 장본인은 지금은 굴지의 제과회사인 K제과 공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K제과로부터는 변변한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인연이란 것이 참 묘해서 지금은 돌아가신 이 K제과의 회장 부인이 제가 주지로 있는 절에 거의 10년 넘게 다니셨습니다. 당신네 조상제사를 다 제가 지내드렸습니다.
처음 그 분이 절에 오셨을 때, 저는 ‘과거에 당신의 공장이 불이나 우리가 보상도 제대로 못 받았는데 그 업으로 부처님이 이제라도 그 과보를 일깨워 주시느라 내게 인연을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순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에게는 과거의 '인연'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로 이해시켜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업을 상쇄시킬 정도의 공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분에게 따로 보시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제사비용도 10만원이었습니다. 그 정도는 다른 신도들도 내놓는 것이고, 제사비용을 보시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것이 다였습니다. 주위의 스님들은 저보고 '바보'라 하고 나 역시 그 '바보'의 의미를 충분히 알지만 그때 제가 중으로서 세운 원願이 있습니다. '공덕을 지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내게 보시를 못한다, 아니 내가 안 받는다. 나에게는 이미 공덕을 성취한 사람만이 보시할 수 있다'고 발원하였습니다. 과연 그때의 제 발원이 실현된 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중 노릇을 거의 30년을 해도 아직도 절 생활비도 채우지 못하고 천막으로 겹겹이 빗물을 막아놓은 요사채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릴 때 나일론 이불 촉감에 빠졌던 저처럼 '촉감'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 반야심경의 '무신'無身이라는 설명을 하다가 뜬금없는 신세타령이 되어버렸습니다.
※ 성법스님 저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