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스님

부처님의 출가-1

通達無我法者 2008. 11. 25. 19:06

 

 

부처님의 출가-1

글·광덕 큰스님


“부처님은 카필라에서 나시고, 마가다에서 성도하시고, 바라나시에서 법을 설하시며, 쿠시나가라에서 멸도에 드시다.” 부처님은 이 땅 역사 위에 나타나시어 세간 속에 묻히시어 함께 고뇌하시고, 고뇌의 바닥을 비쳐 보시고는 필경 고뇌를 벗어날 큰길을 향해서 뛰쳐나오셔서, 인간이 다할 수 있는 극한의 고행을 다 친히 겪으신 다음 필경에 생사가 없는 큰 도를 확증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대중의 눈 앞에, “이것을 보라.”고 진리를 드러내 보이시면서 끝없는 불멸의 감로수를 부어주셨고, 그러고도 부족하셔서 열반시현이라고 하는 크신 법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끝없는 생명의 물줄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기회 있을 적마다 부처님은 진리의 몸이시고 법의 몸이시다. 나고 멸하는 몸이 아니시며 영원히 머무신 몸이시며 결코 허물어지지 않는 몸이시며 바로 법신이시다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법신, 진리로 머무신 부처님께 생멸이 있을 리가 없고 고뇌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런 부처님이셨는데 우리가 진흙에 빠지고 수렁에 빠지고 정말 더럽히고 더럽혀서 더 말할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진 그 어린 것들을 건지기 위해서 친히 그 구렁텅이에 뛰어드시어서 어린 자식들을 건져내셨습니다. 부처님 출가재일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거룩하신 자비시현의 구절구절을 돌이킬 적마다 우리는 그것을 생각합니다.

진리의 몸으로 생멸을 여의고 영원 자재한 불멸의 몸이신 당신은 짐짓 일부러 중생 곁에 오시어서 범부가 되시어서 범부와 함께 괴로워하시고, 범부가 가는 그 길 속에서 마침내 대 해탈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런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 부처님 카필라에서 나시고, 우리 부처님 마갈타에서 성도하시며, 우리 부처님 바라나시에서 법을 설하시고, 우리 부처님 구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심을 보이신 지극하신 자비를 돌이켜보고 마음속에 젖어보는 것입니다.


중생의 고뇌 속에 들어오신 부처님


필경 부처님은 생멸을 초월한 진리의 몸이시며 무한공덕을 스스로 자족하게 갖추신 부처이신 까닭에 이 부처님이 부족할 리가 없습니다. 이 땅에 오신 것이 오직 자비의 표현이시라, 이 중생을 어떻게 건지실까 하고 오랜 겁 동안 생각하고 생각하시어서 “언제나 이것들을 건져서 진리의 몸, 법성신을 회복하게 할 것인가. 내 잠시도 쉴 때가 없노라.” 하고 법화경에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도솔천에 나시고 도솔천에서 다시 이 땅에 오시어 카필라 국에 태어나시고 유관, 출가, 고행, 수도, 성도, 설법, 열반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사실 자체가 중생을 위해서, 중생이 고뇌하는 그것을 건져주기 위해서, 그것을 깨쳐주기 위해서 중생의 꿈 속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중생의 고뇌 속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의 큰 자비를 다시 보고, 부처님의 크신 은혜의 법문을 다시 새겨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 오신 것에서부터 세상을 돌아보시고, 세상이 필경 무엇인가를 다 보시고, 마침내 벗어날 길을 당신이 단행해 보이신 모든 것이 지극한 자비의 표현이십니다.

부처님은 그와 같이 범부세간에 오시어서 범부의 몸으로 태어나시어서 범부가 되십니다. 그래서 세상을 두루 보시고 세간에 고뇌하시는 것을 친히 체험하십니다. 사문유관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을 대표하는 하나의 설화입니다. 카필라성 동문에 가시어서 늙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남문에 가시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서문에 가시어서는 죽어서 장례 지나가는 모습을 봅니다.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는 것은 왕후장상이나 필부범부나 모두가 똑같이 거역할 수 없는 필연의 물결이라는 것을 친히 보시면서 ‘이 물결, 죽음의 물결을 벗어날 길이 없는가. 여기 몸을 던지고 함께 휩쓸려갈 것인가.’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중요한 귀로인 북문에서 한 출가 수행인을 만납니다. 여기서 죽음을 뚫고 나가는 길이 있는 것을 당신은 다시 체험하시면서 출가의 뜻을 굳힙니다.


아시타 선인의 예언


당신이 일찍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아시타 선인이 상을 보시고 “세간에서는 전륜성왕을 이룬다. 32상 80종호의 상호를 갖추셨으니 필경 전륜성왕이 되어 위대한 성군이 되리라. 또 출가하셔서 수행하신다면 삼계의 중생을 제도하실 사생의 어버이신 부처를 이루시리라.” 하는 것을 예언합니다.

전륜성왕이라 하면 도리천왕이라고 일러집니다만 여기 전륜성왕은 가장 이상적인 군주를 의미합니다. 상호가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고 그 수명이 한량없이 길며 일체 장애가 없고 정법으로써 통치해서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성군을 옛부터 전륜성왕이라 했습니다.
부처님은 세간에 머무실 때 카필라라는 작은 나라의 태자로 머무셨습니다. 경전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그 나라는 파사익 왕의 마가다 국에 예속된 작은 나라였습니다. 파사익 왕이 군림하고 카필라 왕이 그 밑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작은 나라였기에 아마 전륜성왕이라고 하는 천하통일의 성군이 자기 나라에서 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 카필라 백성이라면 다 바라는 일이었을 겁니다.

기록에 보면 싯달타 태자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출가하면 성불하리라.” 하는 말은 본인의 귀에는 들리지 않도록 숨겼다고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중생을 제도할 큰 원을 가지고 오신 몸인 까닭에 세간에 어떠한 영화도, 성왕이라고 하는 가장 이상적인 최상의 권능도 당신이 가야 할 길을 막지 못하고 당신이 구하고자 하는 문제를 채워주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사문유관상 얘기를 잠깐 돌아본 것처럼 세간을 사무쳐 보시고 이 세간이 어떤 것이다 하고 판단을 내립니다.

“태자가 되든지 한 나라의 왕이 되든지 전륜성왕이 되든지 필경 그것은 고뇌, 근심거리다. 도대체가 이 세간이라고 하는 것, 인간을 감싸고 있는 현상적인 모두는 다 환(幻)이다. 근심거리다. 끊임없는 두려움이 물결처럼 밀어닥치고 있는 두려움의 바다다. 여기에 무엇을 탐착하고 집착할 것인가.”

누구에게나 죽음이 닥쳐옵니다. 불행이 닥쳐옵니다.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우리 주변을 감싸옵니다. 누구나 똑같이 죽음의 바다 위에 떠있는 일시적인 포말과 같은 인생, 생명, 그것을 사무쳐 봅니다.


내 마땅히 중생을 제도하리라


{본원경}에 의하면 열다섯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지혜가 없는 범부들의 삶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죄를 저지르는 백정과 같다. 또 아름다운 꽃병에 부정한 물건을 담아 놓은 것 같아서 겉모습은 아름답게 꾸며지지만 그 안에 끊임없이 부정한 것이 고여지는 범부들의 삶의 모습은 진흙에 빠진 코끼리와도 같다.”

코끼리가 무거운 체중을 감내하지 못해서 수렁에 한번 빠지면 못 나오는 것처럼, 나비가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제가 살 곳인 것처럼 가까이 가서는 타고 마는 것처럼 범부들은 그 욕망과 애욕의 불길 속에서 스스로의 몸을 불사르고 맙니다. 고기가 낚시를 쫓고, 꽃이 물의 근원을 잊어버려서 시들고, 장님이 천길 만길 벼랑 위를 가는 것과 같다는 등등 여러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싯달타 태자는 범부들의 무치한 삶이라고 하는 것은 잘 살고자 하면서도 이렇게 극히 위험하고 불안하고 절망적인 상황 그 속을 가고 있다고 봤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을 어둡고 불행하게 착색해서 본 것이 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인간이 몇 푼 어치냐 하고 달아 본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세간 인생사를 그대로 사무쳐 보고 여기서 뛰쳐나올 용기, 뛰쳐나올 결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땅히 용맹정진하여 복덕을 증장하고 큰 원을 세워서 세간을 제도하고 중생을 구하겠다.”

세간 사람들 모두가 이 죽음의 바다 가운데 빠져 있으면서도 이것을 모르고 헤매고 있는 속에서 당신은 마침내 거기서 뛰쳐나올 용기를 내어서 뛰쳐나와서 세간을 구하고 중생을 구하겠노라고 결심을 합니다.

“불멸의 생명을 키워주는 어머니 같은 양육자가 없는 범부들에게 내가 의지처가 되리라. 집 없는 중생, 끝없이 떠도는 나그네 저 중생에게 내 집이 되리라.” 이러한 결심을 합니다. 지금 인용하는 용어들은 대개 {본원경}에 나오는 말씀들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당신은 출가를 합니다. 라훌라를 낳은 지 며칠 만에 29세의 나이에 출가의 뜻을 결정합니다. 출가 전에도 부왕에게 말씀을 드려서 허락을 청합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끝까지 말립니다. “무엇이든지 너의 원을 들어주마. 이 왕궁에 머물러서 나라를 이어다오.”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버님, 두 가지 청이 있습니다. 늙고 병들고 죽음이 없는 그 길을 가르쳐 주옵소서. 그렇다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이 세간이 다했을 때 다시 옴이 없는 도리를 가르쳐 주옵소서. 그렇다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생사를 초월해서 생멸이 없는 그 진리를 얻기 전에는 이 땅에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간에 사는 입장에서 봐서는 허황한 꿈을 가진 지극히 우직한 사나이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 필경 생멸이 없다고 하는 새로운 대지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부왕은 그것만은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태자가 출가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는 것을 압니다.


부처님 출가의 뜻


2월 8일 밤에 당신은 고요히 마부를 부릅니다. 마부를 불러서 말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마부는 묻습니다.
“지금 이 밤에 웬 일이십니까. 적군이 넘어왔다는 말도 없고 집안에 내란도 없습니다. 이 밤에 웬 말입니까.”
“내가 너한테 말을 끌고 오라고 했다. 칸타카(말의 이름)를 데려오너라.”

태자의 출가의 뜻을 칸타카는 압니다. 그래서 그 밤에 성을 나옵니다. 경에 의하면 그 성문이 수백 명이나 되어야 움직일 수 있는 무겁고 굳건한 문이었다고 합니다마는 천신의 도움으로 쉽게 소리없이 열렸다고 합니다. 성을 나오자마자 파순이는 부처님 곁에 와서 속삭입니다.

“칠 일만 참으시오. 칠 일이 지나면 당신의 손에 윤보(배를 운전하는 핸들 같은 것)가 안기리다.”

그것은 전륜성왕이 가지고 있는 여덟 가지 보배 중에 제일 보배라고 합니다. 그것을 굴리면 천하가 태평해진다는 것입니다. 물이 평탄해지고 산이 평탄해져서 천하가 통일된다는 보물입니다.
“칠 일이 되면 그대에게 윤보가 돌아가리라. 기다려라.”

태자는 대답합니다.
“나는 이 땅의 성군을 원치 않는다. 이 땅의 제왕을 원치 않는다. 나는 무상도를 이루어서 인간과 천상을 제도하리라.”

당신은 결연히 떠납니다. 마왕 파순이가 부처님 귀에다 속삭였는지 아니면 성문을 열고 나왔을 때 마지막 미련이 남아 있어서 ‘내가 전륜성왕이 될 것이냐. 아니면 성불의 길을 갈 것이냐.’ 두 가지 선택 길 가운데서 스스로 결단하는 장면을 그렇게 설명하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성을 나오십니다. 그리고 말을 타고 출가하신 얘기들은 불전을 통해 읽으셔서 다 아실 것입니다.

로히니 강가에 새벽까지 옵니다. 올 때도 스스로 말한테 채찍합니다.
“칸타카여, 나를 이 밤 사이에 저 산까지 데려다 다오.”

마침내 산 밑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영락과 보물과 옷을 다 벗어서 마부 찬다카에게 줍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어머니(당신의 어머니는 낳으신 지 7일 만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기르신 어머니가 이모 되시는 마하파자파티)께 갖다드리고 야쇼다라에게 갖다 주어라” 하고 전해줍니다.

그리고 부왕에게는 이렇게 말씀드리라며 전합니다.
“제가 이제 출가한 것은 세상 사람 가운데서 속아서 출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한이 있거나 한을 못 풀어서 출가하거나 화가 나서 홧김에 출가하거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재물을 구하거나 태자로서의 복록이 적어서 출가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나아가 천상에 태어나고서 하늘나라로 가기 위해서 출가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제가 출가하는 것은 그릇된 길, 바르지 않은 길에 머물러서 미혹의 어두운 밤길을 헤매며 삿된 길을 가고 있는 일체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무상도를 이루어서 이들 중생 세간사람들을 이익되게 하고 이 세간의 광명이 되겠습니다. 삿된 길, 어둠의 길, 방황하는 중생들에게 광명이 되겠습니다. 바로 정법을 깨달아 광명이 되고자 출가합니다. 생사가 없는 길을 통달해서 세간에 이익을 주고 근심이 없는 땅을 세간에게 주고자 합니다. 그러니 부왕이시여, 근심을 놓으소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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