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스님

부처님의 출가-2

通達無我法者 2008. 11. 25. 19:12

 

 

부처님의 출가-2

글· 광덕 큰스님


출가라고 하는 의미를 세간에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부처님의 경우에 출가는 바로 중생을 위해서, 진리를 위해서, 진리를 밝혀서 중생을 제도하겠다 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범부들이 살고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생사물결,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바닥에 깔려 있다는 사실, 불안·고뇌·불행·환란거리가 끊임없이 밀어닥치고 있는 그런 고난의 길, 그것을 사무쳐 보시고 여기서부터 이 중생들을 건지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들은 출가의 목적이 여기 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부처님의 출가가 그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출가하신 스님들이 그러하고, 부처님의 법문을 배워서 마음 출가하신 우리 불자 형제들 모두가 생사·고뇌·불안·환란이 없고 근심이 없는 땅 그것을 부처님은 이 땅에 안겨준다고 하였고, 어둠의 길을 헤매고 있는 중생에게 스스로 광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큰 원을 이루고자 출가했습니다.

열반경에 부처님은 횃불로 오신 것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어두운 밤중에 동서 사방 모르고 서로 싸우고 불안에 허덕이고 있는 그 어두운 평원의 끊임없는 어두운 벌판에, 한없는 고통이 휘감기고 있는 어둠의 황야에 부처님은 횃불을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어둠이 싸인 그 벌판에 범부들이 그 때서야 이웃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서로 붙들고 기뻐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부처님이 이 세간에 오시니 그런 것이 원래 카필라 성에 나시고 출가하시고 수행하시고 성도하시고 법을 설하는 그 모두가 자비시현 아닌 것이 없지만 바로 출가라고 하는 하나의 결단도 이 땅 우리 앞에 “너희들이 지금 죽음의 바다 가운데 빠져 있다. 어떤 영화도 권세도 이 죽음의 바다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전륜성왕이라고 하는 최고의 권세도 필경 이것의 극복은 불가능하다.” 하는 것을 달관하시고 무엇이 가치냐 했을 때 세상의 가치를 선택해서 결단하신 것입니다.


출가의 목적


우리들은 출가의 목적이 어디에 있었던가 여기서 다시 배우는 것입니다. 헤매는 중생, 삿된 길에 빠져 있는 중생들 저들에게 광명이 되리라. 양육자가 없는 자에게 내가 귀의처가 되리라. 이렇게 부처님은 출가하시면서 견고한 뜻을 굳힙니다. 카필라 성을 나오셔서 아마 카필라 성을 돌이켜 보신 모양입니다. 당신이 살던 29년이라는 땅, 조상 대대로 이어받은 그 왕국을 내버리고 출가하시면서 그 성을 돌아보십니다. 돌아보시면서 스스로 결심합니다.

“이 몸이 가루가 되도록 부서지든, 천 길 벼랑에서 굴러 떨어지든, 독약으로 죽게 되든 어떤 경우라도 중생들에게 생사가 없는 도리를 일러주는 이 길을 이루지 못한다면 결코 이 성에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러고는 나섰다는 말씀이 있는데, 성도하시기 위해서 니련선하에서 목욕하시고 보리수 아래에 앉았을 때도 그런 결심을 하십니다.

“내 이 몸이 가루가 되고 천 길 벼랑에서 굴러서 어떤 모진 고통을 당하더라도 무상도를 이루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라.”

하고 스스로 맹세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출가의 목적이 이와 같이 성스럽고 크고 위대한 만큼 출가의 길을 가는 그 뜻이 이와 같이 진리의 길을 위해서는 몸을 바쳐버리는 결정적인 결심, 확고한 결심이 그 바탕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심이 없으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제대로 못 지킵니다. 저녁에 주무시기 전에 단 30분을 지킨다고 마음 먹어도 그것도 제대로 지키지 못합니다.

출가는 머리 깎고 출가한 스님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상보리심을 발하고 청정계행을 가지며 번뇌를 끊고 진실행을 이 땅 위에 실현하겠다고 하는 모든 이들, 부처님의 큰 원을 이어받아서 ‘내가 행하리라’ 하고 마음을 낸 그 모두는 출가자입니다. 이것을 마음의 출가라고 합니다.

출가의 행을 닦는다고 하는 것은 진리의 빛으로 스스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실 때 결심한 것처럼 견고한 뜻이 있어야 합니다. 피곤하니까, 졸리니까, 오늘은 바빴으니까 내일 하지. 이렇게 물러빠져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게 주어져 있는 진리 광명이 내 속에서 타오르고 있지만, 그러한 자기의 나약한 생각이 덮어버려서 어둡고 깜깜한 밤중을 만들고 맙니다.

부처님 출가의 크신 목적을 생각하면서 여기서 비쳐지는 법문을 우리들 자신의 것으로 받아서 새겨야 하겠습니다. 출가는 형상적인 출가(몸의 출가)와 마음의 출가를 얘기한 바 있습니다. 세속살이를 떠나서 머리를 깎는다든가, 교단에서 정한 법의를 입는다든가, 가사를 수한다든가 그런 상황들을 형상으로서의 출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 출가


그리고 또 한 가지 출가는 마음의 출가입니다. 무상보리심을 발하는 것이 마음의 출가입니다. {유마경}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시기 전에 낳았다고 하는 라훌라가 출가한 후에 한 번은 카필라 성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옛날 같이 지내던 친구들을 만납니다.

친구들은 “세간에 살아서 왕이 되는 것보다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것이 무슨 공덕이 있소?” 하고 묻습니다.
“출가한 사람들은 계행을 가져서 청정한 몸을 가지고, 번뇌를 끊어서 청정본심을 살리고 무량공덕을 쌓는 것이다.”하고 대답합니다.

그 자리에 유마 거사가 나타나서 라훌라를 꾸짖습니다.
“어찌 출가를 그렇게 말하느냐. 출가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고 바로 마음 출가의 법문을 설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출가라고 하는 것은 진리의 길, 진리의 법, 그것으로 사는 것이다. 출가자는 무위법이다. 진리의 몸, 진리 가운데 뛰어드는 것이다. 진리로써 사는 것이다. 스님들뿐 아니라 재가불자 역시 진리로써 사는 것이다. 어두운 구름이 하늘 가득히 덮였어도 구름을 뚫고 푸른 하늘, 태양 빛나는 그 자리에 온몸 드러내 놓고 그 자신이 되는 것이다.

출가는 무위법이다. 진리의 몸 자체에 투입한 것이 출가다. 거기에는 이익도 없고 공덕도 없다. 완전한 진리 그것뿐인데 거기서 다시 더 얻고 잃을 것이 어디 있느냐. 상대를 초월한 절대적인 원만 가운데 있는 것이다. 열반은 번뇌가 다 끊어진 청정본연의 자리이다. 바로 그러한 열반에 머무는 이것이 출가며, 바로 이 출가는 지혜 있는 사람이 머무는 것이다. 그래서 거룩한 행이 거기서 발해지고 모든 마군을 항복 받고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

출가는 안으로 기쁨을 품고 모든 사람들을 두호한다. 열반이라고 하는, 번뇌가 끊긴, 망상이 끊긴 청정한 본성 그 자리일진대 그 가슴에는 기쁨을 항상 머금는다. 평화와 안식, 끊임없이 흐르는 밝음과 희망이 항상 넘치는 그러한 상태가 출가의 모습이며 마음이다.
그리고 그가 행하는 바는 중생을 두호하는 것 이것이 출가이다. 언제나 선정, 흔들림이 없는 깊은 마음에서 항상 머물러 있어서 일체 허물을 여의는 것, 이것이 진출가이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출가는 특별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만인의 것입니다. 우리 반야바라밀 입장에서 보면 번뇌가 본래 없는 것을 알아서 본래로 우리의 온 몸이, 우리의 마음이 본래로 청정한 반야바라밀 생명인 것을 알아서 반야바라밀 진리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반의 도리입니다. 이것이 청정이며 이것이 진실입니다.


청하지 않아도 벗이 된다


이와 같이 참 자기로 살아서 기쁨을 항상 그 가슴에 머금고 두호중생, 모든 중생을 항상 기쁘게 하고, 더욱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 바치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청하지 않아도 벗이 된다.”하는 대목은 {유마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정말 기쁨을 머금고 모든 이웃이 청하지 않아도 자진해서 쫓아가서 벗이 되는, 즉 어찌되었든지 도움이 되고, 그 분에게 장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찬탄하는 가운데서 항상 전법과 법등의 형제로서 커가는 것을 바로 출가의 뜻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있던 왕자들한테 유마거사가 말합니다.
“왜 당신들은 출가하지 않소?” 하고 물으니까
왕자들이, “출가하자면 부모님들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 유마 거사 말씀이,
“출가는 무상보리심,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 보리심을 발하면 그것이 출가입니다. 또 더 보탤 것 없이 그것으로 구족입니다.”

보리심을 발하면 즉시 출가며 구족입니다. 무엇이 출가냐 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며 마음 출가, 궁극적인 출가의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 출가재일을 맞이해서 부처님의 출가를 생각하며 출가를 통해서 보여주신 부처님의 법문을 다시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출가는 저 때에 부처님의 출가로써 보이셨지만 부처님의 출가는 무한의 법문이어서 우리의 참된 출가를 일러 주시며 참된 출가를 몸소 행하시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위없는 법문이셨다고 이해되는 것입니다.

결론을 돌이켜 보면 우리는 반야바라밀을 수행한다는 점에 있어서 바로 이와 같이 무위의 법, 너와 나 대립경계에 있는 내가 아니라 모두와 함께한 진실한 생명, 진리생명으로서 살고 있는 최상의 법문을 닦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버려야 할 때가 없습니다. 반야바라밀 부처님의 무량공덕생명, 그것이 바로 모든 생명일진대, 다시 또 닦고 더 얻을 것이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들은 반야바라밀을 여실히 수행함으로써 우리의 본성 청정, 항상 열반에 머무는 그러한 청정진실을 자신 가운데 실현해가는 것입니다. 생각생각 반야바라밀을 염하고 생각생각 부처님의 무량공덕이 내 생명 온 국토에 충만한 것을 관하고, 그리고 행마다 대립이 없는 행을 한다는 것, 이것이 바라밀행입니다.

반야바라밀 지혜로는 모두가 한 몸입니다. 겉모습을 보면 하나하나 김씨, 박씨, 이씨 등등 여러 사람이 있지만 그 밑바닥 생명의 뿌리는 반야바라밀 진리생명 하나이며 한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립을 보고 미워하고, 대립을 보고 스스로 취하려고 하고, 대립을 보고 탐진치 삼독을 일으키는 것, 그 모두가 미혹입니다. 출가는 이와 같이 대립의 입장에서 살고 있던 내가 대립이 아닌 완전무결한 진리로써 자기라는 것을 깨닫고 그 행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진실한 출가행 망령된 나는 순간순간 존재하는 나입니다. 즉 순간순간 변해가고 있는 가운데 순간적인 나입니다. 언제부터가 아니고 순간순간 허물어져가는 것입니다. 이 몸은 귀하게 아끼고 싸매고 보존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그냥 무정하게 저버리고 떠나버리고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불멸의 자신을 이룩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노력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출가가 가르쳐주는 큰 법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가에 대해서 보여주신 부처님의 대도는 자신의 진실한 면목을 보고 진실에 구김없이 살아가는 길입니다. 모두가 함께 불멸의 생명 이것을 향해서 곧 바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바라밀 법문을 힘써 닦아 성불의 대도를 이루어가자는 것이며, 사실인즉 바라밀수행 하나하나가 진실한 출가행의 성취라고 하는 것을 다시 우리 마음 속에서 다지고 싶습니다. 형제 여러분들의 정진을 부탁드리면서 오늘 이 법회에 부처님의 크신 출가법문을 함께하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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