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이야기·지묵스님

“바로 자기 자신 문제야”/지묵스님

通達無我法者 2009. 4. 29. 01:52

 

 

“바로 자기 자신 문제야”

36.조주어록 보기 〈끝〉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만약 불생불멸 진리의 땅이라면 어디서 얻습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그대 아사리(=스승)가 한번 다시 말하게!”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만가지 경계가 한꺼번에 일어나는 데요. 이때 미혹하지는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있지!”

학인이 여쭈었다. “누가 미혹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그대는 불법(佛法)이 있음을 믿는가?”

학인이 말씀 올렸다. “불법이 있음을 믿음은 고인이 말씀하신 대로지요. 누가 미혹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뭣 때문에 이 늙은 중에게 묻지 않았어?”

학인이 말씀 올렸다. “여쭈었는데요.”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미혹되었군!”

강설 / 이상하여라. 묻는 사람에게 왜 묻지 않는가? 하신다. 짐짓 떠보는 이런 질문에 빠지면 미혹된다.

 

어떤 스님

“학인들이 서로의 경계를 보지 못한다고 말할 때

  통함이 가능합니까”



조주스님

“서로 통하지 못한 건 바로 자기 자신 문제야”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알지 못합니다. 옛사람과 지금 사람은 가까운 점이 있습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가깝다면 아주 가까워! 허나 동일하지는 않아!”

학인이 말씀 올렸다. “왜 동일하지 않습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법신이 설법을 하지 않는 이치지(法身不說法)!”

학인이 말씀 올렸다. “법신이 설법을 하지 않는다면요, 화상께서는 누구에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산승은 그걸 일러주는 답변이야!”

학인이 말씀 올렸다. “어찌 법신은 설법을 하지 않는다고 하십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그대의 부친을 제도하려는 의도야! 허나 그 분 역시 종내 벗어나지 못하네!”

강설 / 자네 부친이 뉘신가? 이렇게 질문하는 자네의 부친은? 자네의 부친부터 제도했어야 하는데. 참.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학인들이 서로의 경계를 보지 못한다고 말할 때인데요. 이때 오히려 통함이 가능합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헤아려서 통함을 아는군!”

학인이 말씀 올렸다. “헤아려서 알지 못한다면요? 서로 통함은 무엇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서로 통하지 못한 건 바로 자기 자신 문제야.”

학인이 말씀 올렸다. “화상의 공부 정도의 경계를 헤아려 볼 수 있습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사람이 가까워지면(人卽轉近) 도는 더욱 멀어지는 거야(道卽轉遠也)!”

학인이 말씀 올렸다. “화상께서는 왜 스스로 숨습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산승은 지금 그대와 이야기를 하는데도!”

학인이 말씀 올렸다. “그러면 왜 가까워지지 말라고 하십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그래야만 꼭 알맞지!”

조주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셨다. “교화할 수 있는 사람은 금생의 일. 교화 시킬 수 없는 사람은 삼생의 원수! 만약 교화 하지 않는다면 일체 중생이 타락할까 염려되네. 또한 교화하여도 역시 원수야. 그대들은 교화하겠는가?”

어떤 스님이 말씀 올렸다. “교화하겠습니다.”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일체 중생이 그대 경계를 보겠는가?”

학인이 말씀 올렸다. “보지 못합니다.”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왜 보지 못하지?”

학인이 말씀 올렸다. “상(相)이 없기 때문이지요.”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지금 이 늙은 중은 보이는가?”

학인이 말씀 올렸다. “화상께서는 중생이 아닌데요.”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스스로 죄를 알았다면 됐네!”

강설 / 겨우 제 허물이 어디에 있는지 눈치를 채는 초보자가 달인과 대좌하고 앉았다. 헌데 스스로 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지묵스님 / 장흥 보림사 주지

*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출처 : http://www.buddhist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