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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 ③ 마음챙기는 공부의 요점

通達無我法者 2010. 8. 29. 01:36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 ③ 마음챙기는 공부의 요점

“마음챙김 없이는 닦을 수 없다”


이제 마음챙기는 공부의 요점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무엇보다도 개념적 존재(施設, pan~n~atti)의 해체가 중요하다. 이것이 <대념처경>(D22)이나 <마음챙김의 확립 상윳따>(S47) 등에서 마음챙김의 대상을 몸.느낌.마음.법(신.수.심.법)으로 해체해서 제시하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필자는 파악하고 있다. 나니 내 것이니 남이니 산이니 강이니 컴퓨터니 자동차니 우주니 하는 개념적 존재를 해체할 때 무상.고.무아를 보편적 특징(共相)으로 하는 법(dhamma)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면 더 이상 개념적 존재를 두고 갈애와 무명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무상 고 무아 中 ‘고’를 통찰

원함 없는 ‘무원해탈’로 결론




그래서 해체는 중요하다. 해체의 중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 중생들은 무언가 불변하는 참 나를 거머쥐려 한다. 이것이 모든 취착 가운데 가장 큰 취착이다. <대념처경>에서 나라는 존재를 신.수.심.법으로 해체하고 다시 이를 21가지나 44가지로 더 분해해서 마음챙김의 대상으로 제시하신 것은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체하지 못하면 개념적 존재(pan~n~atti)에 속는다. 해체하면 법(dhamma)을 보고 지금.여기에서 해탈.열반을 실현한다.

둘째, 다시 강조하지만 마음챙김은 대상이 중요하다. 이것은 입만 열면 주객을 초월하는 것이 수행이라 얼버무리는 우리 불교가 깊이 새겨봐야 할 점이다. <대념처경> 등은 나라는 존재를 해체해서 들숨날숨부터 사성제까지, 참구의 대상을 21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물론 21가지 혹은 44가지 대상들을 모두 다 챙기고 관찰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마음챙김으로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통합하고 있다. 불교수행법은 크게 사마타 수행과 위빳사나 수행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지(止)로 한역되었고 후자는 관(觀)으로 한역되었으며 지관수행은 중국불교를 지탱해 온 수행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마타는 삼매(定) 수행과 동의어이고 위빳사나는 통찰지(慧, 반야) 수행과 동의어이다.

그러나 그것이 집중(止)이든 관찰(觀)이든 마음챙김이 없이는 닦을 수 없다. 사마타는 찰나생.찰나멸하는 법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표상(nimitta)이라는 개념적 존재(pan~n~atti)를 대상으로 하고, 위빳사나는 찰나생.찰나멸하는 법(dhamma)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어떤 것이든 마음챙김이 없이는 표상에 집중하는 사마타도, 법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위빳사나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화경(火經)>은 “마음챙김은 모든 곳에 유익하다.”(S46:53)라고 강조하고 있다.

넷째, <마음챙김의 확립 상윳따>와 <대념처경>은 사성제를 관찰해서 구경의 지혜(an~n~a-)를 증득하는 것으로 결론 맺고 있다. <청정도론>에 의하면 해탈에는 세 가지 관문이 있다. 그것은 무상.고.무아이다. 무상을 꿰뚫어 알아서 체득한 해탈을 표상 없는(無相) 해탈이라 하고, 고를 꿰뚫어 알아 증득한 해탈을 원함 없는(無願) 해탈이라 하고, 무아를 꿰뚫어 알아 요달한 해탈을 공(空)한 해탈이라 한다. 그러므로 마음챙기는 공부는 무상.고.무아 가운데 고를 통찰하는 원함 없는(無願) 해탈로 결론짓는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경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그것은 염오로 인도하고,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한다.”(S47:32)

각묵스님 /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