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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33

通達無我法者 2010. 12. 26. 02:14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진실은 한 순간에 있으며 현재의 몸과 마음에 있습니다.

조금 전에 있던 순간은 지나가 버리고 현재가 되며,

현재라고 하는 순간도 이미 지나면 과거가 됩니다.

 

모든 것들은 변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오직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순간을 알아야 진실을 알 수가 있고,

몸과 마음을 알아야 진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 순간을 알아야 무상, 고, 무아를 알 수가 있고,

몸과 마음을 알아야 무상, 고, 무아를 알 수가 있습니다.

 

몸과 마음은 매순간 원인과 결과에 의해 상속됩니다.

원인과 결과를 알아야 존재하는 것들의 일반적 속성인 무상, 고, 무아를 압니다.

이러한 법들을 알아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번뇌가 불타버리는 열반에 이릅니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축적된 성향으로 삽니다. 축적된 성향은 과보이며 자신의 성격입니다.

 

마음은 순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다음에 일어난 마음은 새로운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굴러가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있는 과보가 굴러가는 것입니다.

과보가 굴러가서 다음 마음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성격대로 사는 것입니다.

 

수행을 할 때도 모두 자기 성향대로 합니다.

불선과보가 많은 사람은 바른 것을 왜곡합니다.

그러나 선과보가 많은 사람은 바른 것을 바르게 봅니다.

 

부처님의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의 지도를 받고 아라한이 된 것처럼,

누구나 스승의 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서

부정관의 7가지 습득에 관한 능숙함의 7번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7번째는 ‘한계로써’입니다.

비슷한 것의 한계와 비슷하지 않은 것의 한계, 이 두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이 부분은 이것에 의해서 위, 아래, 주위로 한정되어 있다고

이와 같이 비슷한 것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머리카락은 몸의 털이 아니고, 몸의 털도 머리카락이 아니고,

이와 같이 섞여 있지 않은 상태를 통해 비슷하지 않은 것들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스승이 7가지 습득의 능숙함을 설명할 때,

명상주제는 어떤 경에서는 혐오의 관점에서 설했고,

어떤 경에서는 요소의 관점에서 설한 사실을 알고 설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대념처경에서는 혐오의 관점에서 설하셨고,

긴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과 긴 라훌라 교계경과 요소 분결경에서는

요소의 관점에서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염신경에서는 머리카락 등에서 색깔의 카시나로,

나타나는 사람에 관한 4가지 선정을 설하셨습니다.

요소로 설한 것은 위빠사나의 명상주제이고,

혐오로 설한 것은 사마타의 명상주제입니다.

여기서는 사마타의 명상주제가 적절합니다.

 

이와 같이 7가지 습득의 능숙함을 설명한 뒤

첫 번째 순서에 따라, 두 번째 지나치게 급하지 않게,

세 번째 지나치게 느리지 않게, 네 번째 산란함을 방지함으로써,

다섯 번째 개념을 극복함으로써, 여섯 번째 차례대로 내버려 둠으로써,

일곱 번째 근본삼매로써, 그리고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열 번째는

세 가지 경우로써 습득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10가지 마음의 습득함을 능숙함으로 설명해야 하겠습니다.

그럼 그 10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순서에 따라서입니다.

이 32가지를 독송할 때 순서에 따라서 마음으로 숙고해야지,

32가지 부분들에서 단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마치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32단의 사닥다리를

중간에 한 단계씩 걸러서 올라가면 몸이 지쳐 다 올라갈 수 없듯이,

부분들을 빠뜨리고 마음으로 숙고할 때

수행을 성취하여 얻어야 할 만족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피로하여 수행을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미얀마에서 수행을 할 때

아랫배 호흡의 일어남과 꺼짐을 본 뒤에 앉음, 닿음을 합니다.

 

일어남, 꺼짐, 앉음, 닿음을 합니다. 그런 뒤에 이러한 지루함을 막기 위해서

일어남, 꺼짐, 앉음, 오른편 닿음/ 일어남, 꺼짐, 앉음, 왼편 닿음/

이때 닿음은 무릎을 말합니다.

 

그런 뒤에 일어남, 꺼짐, 앉음, 오른편 닿음/ 일어남, 꺼짐 앉음, 왼편 닿음/을 한 뒤에

일어남, 꺼짐, 앉음, 오른발 닿음/ 일어남, 꺼짐, 앉음, 왼발 닿음./

그리고 다시 일어남, 꺼짐, 앉음, 오른손 닿음/ 일어남, 꺼짐, 앉음, 왼손 닿음/이라고

몸의 특정한 부분을 선택해서 계속 입으로 외우거나 마음으로 알아차립니다.

 

이때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은 일어남, 꺼짐, 앉음, 오른발 닿음/

일어남, 꺼짐, 앉음, 왼발 닿음을 할 때,

다음 순서인 일어남, 꺼짐, 앉음, 오른손 닿음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면 일어남, 꺼짐, 앉음, 오른손 닿음을 할 때,

오른발 닿음을 하거나 다른 곳을 선택하면 이때 집중력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다시 시작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시작이 거듭되고, 거듭되고 또 거듭되면서 집중력이 더 증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서에 따라서 대상을 독송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단 하나라도 빠졌다는 사실은 수행자의 집중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지나치게 급하지도 않고’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순서에 따라 마음으로 숙고를 할 때에도 지나치게 급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3유순의 길을 따라서

나아가야 할 길과 피해야 할 길을 주시하지 않고, 100배나 더 빠른 속도로 다녀왔을 때,

비록 여행은 마쳤다고 하더라도 다시 여행을 할 때는

참으로 다시 물어본 후에라야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나치게 급하게 마음으로 숙고를 할 때는

비록 명상주제의 끝에 이르렀지만 명료하지 않고 수승함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너무 급하게 마음으로 숙고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와 같습니다.

토끼가 빠르지만 자기 속도를 유지하는 거북이가 결국 승리한 것처럼

속도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대상을 알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지,

빠르게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세 번째, ‘지나치게 느리지도 않으며’

그렇습니다. 지나치게 급해서도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느려서도 안 됩니다.

 

지나치게 급하게 하지 않듯이, 지나치게 느리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하루에 3유순의 길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이 길 도중에

나무와 산과 호수 등에서 빈둥빈둥 시간을 보낼 때 그는 도착지에 이를 수가 없고

이틀이나 사흘이 지난 후에 도착할 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이 지나치게 느리게 마음으로 숙고할 때는

명상의 주제의 끝에 이를 수가 없고 수승함을 증득하는 조건이 성숙될 수가 없습니다.

 

네 번째는 ‘산란함을 방지함으로써’입니다.

그렇습니다. 명상주제를 놓아버리고 밖에 있는 갖가지 대상에 대해

마음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만약 산란함을 방지하지 않으면,

마치 한 발 너비 밖에 되지 않는 낭떠러지 길을 가는 사람이

자기가 발 디딜 곳을 주시하지 않고 여기저기를 쳐다볼 때

발걸음을 놓쳐버려 백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처럼,

산란할 때는 명상주제를 소홀히 하여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산란을 방지하여 마음으로 숙고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개념을 극복함으로써”입니다.

이 머리카락, 몸의 털 등은 개념입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혐오스럽다고 마음을 확립시켜야 합니다.

 

마치 사람이 가뭄의 숲 속에서 샘물을 발견하고,

그곳의 야자수 잎 등으로 표식을 걸어두고 그 표식의 안내에 따라

와서 목욕도 하고 마시기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자주 다님으로써 오고 가는 길이 분명해진다면 더 이상 표식은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순간마다 가서 목욕을 하거나 그 물을 마실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먼저 머리카락, 몸의 털이라고 개념을 마음으로 숙고하고

혐오스러운 상태가 분명해지면 그때는 머리카락, 몸의 털이라는 개념을 극복하고

그 대신 혐오스러운 상태를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집중을 위해서 외워야 하겠지만

두 번째는 집중이 되면 그 머리카락과 몸의 털이 가지고 있는

혐오스러움을 아는 것이 수행의 단계입니다.

 

여섯 째, “차례대로 내버려 둠으로써”입니다.

나타나지 않는 부분들을 내버려 둘 때 차례대로 내버려 둠으로써 마음으로 숙고해야 합니다.

초심자가 머리카락을 마음으로 숙고할 때 계속해서 마음으로 숙고하여

이 마지막 부분인 오줌에 이르러서야 멈춥니다.

오줌을 마음으로 숙고할 때 계속해서 마음으로 숙고하여

이 처음 부분인 머리카락에 이르러서 머뭅니다.

 

이와 같이 계속해서 마음으로 숙고할 때

어떤 부분들은 나타나고 어떤 부분들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머리카락, 머리카락’ 외울 때 사실 오래 외우면 머리카락이라는 표상이 뜹니다.

그러나 뜨지 않고 외울 수도 있고, 표상을 가지고 외울 수도 있습니다.

수행자들은 분명한 표상을 선명하게 보는 것이 훨씬 집중력을 더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타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먼저 마음으로 숙고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두 부분이 나타날 때 그 중에 더 명료하게 나타나는 것 하나를 마음으로 숙고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나타나는 것을 계속해서 마음으로 숙고를 해서 근본삼매를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일곱 번째는 ‘근본삼매로써’입니다.

근본삼매에 드는 부분으로써 머리카락 등의 각각의 부분에 대해서

근본삼매에 든다고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기서 나타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머리카락 하나를 정확하게 겨냥하고 지속적으로 독송한다면,

머리카락 하나에서 근본삼매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몸의 32가지 대상은 어떤 것이나 대상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알아차림을 지속하면 그 순간 거기에서 선정이 일어납니다.

이때 특별한 대상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대상이나 어떻게 알아차림을 겨냥하고

어떻게 알아차림을 지속하느냐에 따라서 선정의 단계는 높아집니다.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열 번째는 세 가지 경우로써 높은 마음과 청량함과

깨달음의 구성요소에 대한 능숙함을 다룬 것을 말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비구들이여, 높은 마음을 닦는 비구는

때때로 세 가지 표상을 마음으로 숙고해야 한다.

 

때때로 삼매의 표상을 마음으로 숙고해야 한다.

때때로 정진의 표상을 마음으로 숙고해야 한다.

때때로 평온의 표상을 마음으로 숙고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높은 마음을 닦은 비구가 오직 삼매의 표상만을 마음으로 숙고하면

그의 마음은 자칫 게을러질 수 있다.

비구들이여, 만약 높은 마음을 닦은 비구가 오직 정진의 표상만을 마음으로 숙고하면

그의 마음은 자칫 들떠버릴 수가 있다.

비구들이여, 만약 높은 마음을 닦은 비구가 오직 평온의 표상만을 마음으로 숙고하면

그의 마음은 자칫 번뇌를 소멸하기 위하여 바른 삼매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높은 마음을 닦은 비구는 때때로 삼매의 표상을, 정진의 표상을,

평온의 표상을 마음으로 숙고할 때, 그때 그의 마음은 부드럽고, 적합하고, 빛나고,

부서지지 않고, 번뇌를 멸하기 위해서 바르게 삼매에 든다.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위없는 청량함을 실현할 수 있다.

그 무엇이 여섯인가?

 

여기 비구는 마음을 절제해야 할 때 절제하고

마음을 분발해야 할 때 분발하고

마음을 기쁘게 해야 할 때 기쁘게 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해야 할 때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수승한 도과로 기울이고 열반을 즐거워한다.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위없는 청량함을 실현할 수가 있다.

수행자 여러분! 이것은 청량함을 다룬 경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요소에 대한 능숙함은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마음이 느슨할 때는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수행할 때가 아니다.’라고

근본삼매에 드는 능숙함의 주석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이상이 청정도론에 있는 부정관의 주석서 내용입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