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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63

通達無我法者 2010. 12. 27. 01:03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마음은 대상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을 알아차려서 아무 것도 없을 때는

마음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고요함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잠을 잘 때는 마음이 잠을 대상으로 합니다.

열반에 들 때는 마음이 열반을 대상으로 합니다.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 이런 법을 모르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망상이나 졸음에 빠져 알아차림을 지속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비물질인 마음을 대상으로 하기가 어려우면

분명하게 나타나는 가슴의 느낌을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가슴의 느낌은 마음이 아니고 마음으로 인해서 생긴 느낌입니다.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서 가슴의 느낌을 알아차리면 분명한 대상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만약 느낌이 없을 때는 덤덤한 느낌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느낌은 분명한 어떤 것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이 느낌이기 때문에 그냥 알고 있는 마음만 아는 것도 느끼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늘부터는 항상 마음과 함께 있는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공부하시겠습니다.

 

마음은 오온의 식이며 마음의 작용은 수, 상, 행입니다.

그리고 물질인 색을 포함해서 오온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똑같이 마음의 작용이 없어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바늘과 실처럼

서로가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각각의 기능을 합니다.

이 둘의 관계를 왕과 신하라고도 합니다.

 

왕이 있는 곳에는 항상 신하가 있듯이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왕과 신하처럼 함께 있으면서 각각의 역할을 합니다.

마음이 모든 것을 이끌기 때문에 마음을 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작용은 마음에 의해서 일어나서

여러 가지 일을 하기 때문에 신하라고 합니다.

 

왕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신하가 일을 하듯이

마음은 비물질이라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왕은 결제만 하고 신하가 모든 일을 하듯이

마음과 마음의 작용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의 작용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때도

이 마음의 작용을 함께 알아차리지 않고서는 바르게 수행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때 일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수, 상, 행인 지각과 의도와 느낌까지 알아차리는 것도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정신과 물질입니다.

이것을 한문으로는 명색이라고 합니다.

 

이 정신과 물질을 좀 더 자세하게 나누면 오온으로 분류합니다.

오온은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의 5가지 무더기를 말합니다.

여기서 ‘온(蘊)’ 이라고 하는 것은 무더기를 뜻합니다.

이 다섯 가지는 각각이 무더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문으로는 무더기 온(蘊)자를 써서 오온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빨리어로는 ‘찌따’ 라고 합니다.

찌따는 그림이라는 뜻과 함께 마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회화라는 뜻으로 보건대 마음이란 여러 가지의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을 하고 무엇을 만들고 하는 것들이

모두 마음이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원래 마음이 이런 역할을 합니다.

이때의 마음을 한문으로는 ‘심’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수, 상, 행을 합쳐서 마음의 작용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마음의 작용을 빨리어로 ‘쩨따시까’ 라고 합니다.

 

쩨따시까는 마음에 속하는 것, 마음의 작용과 관계가 있는 것,

또는 한문으로 심소(心所)라고 합니다.

심소(心所)라고 할 때는 마음이 거처하는 장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쩨따시까를 마음의 작용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마음과 함께 있으면서 마음에 관한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주석서에서는 마음의 작용에 대하여 말하기를

‘마음과 함께 있으면서 그것에 의지하기 때문에 마음의 작용이라고 한다.’ 라고 말합니다.

마음은 마음의 작용이 없으면 일어나지 못하고

마음의 작용은 마음이 없으면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처럼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함께 일어나서 함께 사라집니다.

 

마음이 앞서서 모든 것을 이끌지만 마음의 작용이 없으면 이끌 것이 없어서

마음이 기능을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과 그것을 아는 마음인 식은

함께 일어나서 함께 소멸합니다.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서로가 하는 역할을 보면

두 가지가 의존하면서 작용하지만 기본적인 요소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정신과 물질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작용은 마음이 의지해서 대상을 인식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니까 느낌이 일어날 때 동시에 느낌을 아는 마음이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구나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대에 부처님께서 혜안으로

마음에 대해 통찰하신 뒤에 마음과 함께 있는 마음의 작용을 찾아내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비물질인 마음에 대한 것도 알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마음에 소속되는 마음의 작용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부처님의 위대한 지혜가 아니면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인도를 지배한 미란다 왕과

당시의 아라한이신 나가세나 존자와의 대화에서 나가세나 존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을 밝힌 것은

갠지스 강에 있는 물을 한 움큼 손에 쥐고 이 물은 히말라야의 어느 골짜기,

어느 골짜기에서 모인 물이다”라고 밝힌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물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식별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물을 보고 어느 어느 골짜기라고 밝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가세나 존자는 그 물이 흘러나온 골짜기를 모두 밝히는 것보다도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을 밝히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말이 주는 의미가 매우 큽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은 물론 마음의 작용까지 완벽하게 밝히셔서

바로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가 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일체(一切)를 알았다고 말씀하신 일체(一切)는

사실 정신과 물질에 관한 것입니다.

수행자의 대상이 오직 정신과 물질에 관한 것이라면 바로 수, 상, 행의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아는 것이 일체를 알았다는 것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 상, 행을 모르고서는 일체를 알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작용은 마음과 함께 오온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은 모두 52가지입니다.

그런데 단지 52가지가 있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이것들이 서로 결합을 하면서 여러 가지의 계층으로 나타납니다.

수, 상, 행이 서로가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석서에서는 마음의 작용을 두 가지의 상호보완적인 측면에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결합의 방법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작용이 다른 어떤 마음과 결합하는가를 밝힌 것입니다.

둘째는 조합의 방법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어떤 마음의 작용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밝힌 것입니다.

 

이처럼 오온의 식이 수, 상, 행과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규명하는데

다음 4가지로 정의합니다.

이것은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설정입니다.

 

첫째, 결합의 방법에서 결합의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주석서에서는 마음의 작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함께 일어나고 함께 사라지며 동일한 대상을 가지고

동일한 토대를 가지는 마음과 결합된 52가지 법을 마음의 작용이라고 한다.’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마음의 작용에 대한 모든 것을 밝히는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주석서에서 밝힌 이상의 내용이 무슨 말인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함께 일어나고 함께 사라진다는 것은,

마음이 일어났는데 마음의 작용은 나중에 일어나거나 뒤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라질 때에도, 마음이 사라질 때 마음의 작용은 남아있지 않고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에 함께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모두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마음이 일어날 때 느낌도 함께 일어납니다.

마음이 일어날 때 지각, 인식도 함께 일어납니다.

마음이 일어날 때 의도도 함께 일어납니다.

그래서 식이 일어날 때 수, 상, 행도 함께 일어나서 함께 소멸하는 것입니다.

 

단지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서로 다른 기능을 할 뿐이지, 우리가 산다는 것은

우리가 안다는 것은 이 다섯 가지의 것들이 결합되어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먼저라고 무엇을 나중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것은 단순히 아는 마음 하나로 그치지 않고

물질과 수, 상, 행이 함께 있어서 아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다음으로 동일한 대상을 갖는다는 것은

육문인 안, 이, 비, 설, 신, 의와 육경인 색, 성, 향, 미, 촉, 법이 부딪힐 때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같은 대상을 가지고 함께 일어나서 함께 소멸합니다.

마음이 눈을 통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났을 때 이때 마음의 작용이

다른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오직 눈이 대상을 알도록 함께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서로가 협동을 하여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일한 대상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이렇게 함께 일어나서 함께 사라지며

동일한 대상을 갖는 배경에는 마음에 대한 일정한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기준을 전제로 할 때 마음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질 것입니다.

그 기준을 다시 한 번 요약해보겠습니다.

 

첫째, 마음의 기준이란 마음이란 대상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이건 마음이 일어나면 반드시 대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둘째, 아는 마음의 대상은 현재의 몸과 마음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하지만 마음의 대상은 현재의 물질과 정신뿐만 아니라 과거의 것들까지

그리고 미래의 것들까지 대상으로 삼습니다.

 

셋째, 마음은 한 순간에 두 가지 대상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것을 동시에 알지만

사실은 한 순간에 하나 밖에 갖지 못하기 때문에 한 순간에 하나만 압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아는 것은 마음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아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동시에 아는 것 같지만 모든 것에는 선후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번에 모든 것을 알고 한 번에 모든 것을 본다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바로 아는 것이 마음의 실제이며

이렇게 마음이 찰나생 찰나멸하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무아의 지혜가 납니다.

 

넷째,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순간은

물질이 한 순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의 17배보다 빠릅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이 한번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순간에

마음을 17번이나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몸이라는 물질도 그냥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매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몸과 함께 있는 마음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속도가 다릅니다.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속도는 이처럼 몸에 비해 매우 빠릅니다.

그래서 혜안이 없으면 마음을 이해하기가 어렵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바로 부처님께서 최고의 지혜가 나셔서 본 것이 마음이 찰나생 찰나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은 매우 빠르게,

빛의 속도의 100만분의 1보다 빠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