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인간의 정신과 물질은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여기에 나는 없습니다. 몸과 마음은 있지만 나의 몸과 마음이 아니고
매순간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생길만한 조건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이 조건의 힘으로 삽니다.
이처럼 외부의 초월적 힘이 개입될 수 없기 때문에
신(神)이나 어떤 다른 것에 매달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조건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은 조건이 사라지면 소멸합니다.
모든 것은 어리석음과 갈애가 만든 과보가 있어서 생기고,
어리석음과 갈애가 없어 과보를 만들지 않으면 생기지 않습니다.
깨달음이란 과보가 될 행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 습관, 게으름과의 싸움인 것 같지만,
사실은 싸움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싸움은 번뇌를 억누르는 것이지만 위빠사나는 번뇌를 말리는 수행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에 개입하지 않고 대상을 분리해서 지켜봐야 합니다,
망상, 통증, 졸림이란 손님이 찾아왔을 때 이것들을 바라거나 없애려고 하지 않고
단지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대상으로 알아차리기가 어려우면 다음 단계로 그 순간의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모든 일은 마음이 하므로 일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대상을 겨냥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다시 몸에 있는 호흡이나
몸에서 일어나는 다른 느낌을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계속해서 마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악도나 천상이나 모두 지은 업대로 살다가 다음 생을 받습니다.
그러나 색계 4선정의 정거천에서만 유일하게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색계 4선정의 정거천은 다섯 곳의 세계가 있습니다.
무변천이 있는데 수명이 1,000 대겁입니다.
다음에 무열천이 있는데 수명이 2,000 대겁입니다.
다음에 선연천이 있는데 수명이 4,000 대겁입니다.
다음에 선견천의 수명이 8,000 대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색구경천이 있는데 수명이 16,000 대겁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세계로 올라갈 때마다 배의 수명이 유지됩니다.
이토록 오랜 세월을 살면서 아라한이 됩니다.
그러니 인간으로 태어나서 아라한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나함이 되면 오하분결인 유신견, 회의적 의심,
계율이나 금지조항의 집착, 감각적 욕망, 악의가 완전하게 소멸합니다.
그리고 성냄에 뿌리박은 두 가지 마음이 완전하게 소멸합니다.
그러나 색계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아직도 오상분결인 색계와 무색계에 대한 욕망이 남아있습니다.
네 번째 마지막 성인의 단계는 아라한의 마음입니다.
아라한의 마음은 아나함의 도과를 성취한 뒤에 아라한의 도과를 성취한 마음입니다.
아라한을 빨리어로 ‘아라핫따’라고 합니다. 이는 ‘아라한이 됨’이라는 말입니다.
한문으로는 아라한을 응공(應供)이라고 하며
이는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로 불립니다.
다른 말로는 ‘존경받을만한 분’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아라한은 성인의 마지막 단계로,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최고의 지혜를 얻었기 때문에 오하분결과 오상분결의 10가지 족쇄를 완전하게 부수고
해탈을 하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아라한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정신적 지위를 말하는 것으로
자격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라한은 있어도 아라한을 얻은 자는 없습니다.
원래 오온은 무상하고 자아가 없기 때문에
아라한을 관념적인 인격체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상 수다원의 도과, 사다함의 도과, 아나함의 도과, 아라한의 도과를 4쌍 8배라고 합니다.
4가지 도의 경지에 8가지 도과가 있어서 이렇게 부릅니다.
이상이 출세간의 8가지 도과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세간의 마음 81가지에 출세간의 마음 8가지를 합쳐서 89가지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상의 마음으로 세간의 마음과 출세간의 마음이 모두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출세간의 마음을 40가지로 분류하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출세간의 마음을 40가지로 다르게 분류하면 121가지의 마음이 됩니다.
왜 출세간의 마음을 40가지로 분류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원래 사마타 수행을 선정수행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을 통찰지혜 수행이라고 합니다.
주석서에서는 선정 수행을 하지 않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자를 ‘건관자’라고 합니다.
건관자(乾觀者)는 이름 그대로 ‘마른 위빠사나 수행자’라는 말입니다.
이 말이 빨리어로는 ‘수카위빠사카’입니다.
여기서 ‘수카’는 ‘마른’이라는 뜻이고 ‘위빠사카’는 ‘위빠사나 수행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수카위빠사카’라는 말은 선정 수행을 하지 않고
바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자를 말합니다.
선정수행은 대상과 하나가 되어서 근본 집중을 하기 때문에
선정의 고요함이 있어서 풍요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선정수행은 대상을 억눌러서 고요함을 얻기 때문에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정수행에 반해서 위빠사나 수행은 통찰지혜 수행이라서
매우 신속하다는 특성이 있지만 지혜 수행이라서 수행을 해도 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지혜는 선정과 달리 겉으로 드러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근기에 따라서 선정수행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근기가 좋아서 선정수행을 거치지 않고 바로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도과를 성취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선정수행을 하지 않고 바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숫다위빠사나’라고도 합니다.
빨리어 ‘숫다’는 청정한, 깨끗한, 순수한, 혼합되지 않은, 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사마타 수행과 섞이지 않은 순수 위빠사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마타 수행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자를 건관자‘라고 하기도 하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수행을 ’순수 위빠사나‘라고도 합니다.
이때 ‘마른’이라고 하는 말이 부정적인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마타 수행의 선정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바로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선정수행과 통찰지혜 수행은 수행이라는 면에서는 같지만
방법에서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서로 다른지 잠시 살펴보시겠습니다.
선정수행은 세간적 수행입니다.
그러나 통찰지혜 수행은 출세간적 수행입니다.
세간적 수행이란 것은 윤회가 있고,
출세간적 수행이란 것은 윤회가 끝나는 것을 말합니다.
선정수행은 고요함이 목표고, 통찰지혜 수행은 지혜가 목표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할 때 먼저 모든 거친 번뇌가 드러날 때는
먼저 번뇌를 알아차려서 번뇌를 해결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선정수행을 합니다.
그러나 통찰지혜 수행은 지혜가 목표라서
대상을 통찰해서 대상을 말려버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선정수행은 관념적인 대상을 선택하여 하나가 되는 근본 집중을 하지만
통찰지혜 수행은 실재를 대상으로 하여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리는 찰나 집중을 합니다.
그래서 선정수행은 번뇌를 억눌러서 계속해서 잠재적인 성향이 남아있지만
통찰지혜 수행은 번뇌를 말려서 소멸시킵니다.
이처럼 선정수행과 통찰지혜 수행은 그 목표와 결과가 다릅니다.
이상이 사마타 수행인 선정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인 통찰지혜 수행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선정수행의 고요함이나 위빠사나 수행의 도과를 성취하는 지혜나
모두 선(禪)에 기초한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방법이 서로 다르지만
이것들 모두가 선(禪)을 하는 마음의 유형에 속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목표로 하거나 어떤 결과를 얻거나 수행을 한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선정수행과 지혜수행을 똑 같은 부류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도와 과를 5선정 수행에 대비해서
그 마음을 분류합니다.
이러한 분류방법으로 수다원 도의 마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일으킨 생각, 지속적인 고찰, 희열, 행복, 집중을 가진 1선정의 수다원의 도의 마음입니다.
둘째, 지속적인 고찰, 희열, 행복, 집중을 가진 2선정의 수다원의 도의 마음입니다.
셋째, 희열, 행복, 집중을 가진 3선정의 수다원의 도의 마음입니다.
넷째, 행복, 집중을 가진 4선정의 수다원의 도의 마음입니다.
다섯째, 평온, 집중을 가진 5선정의 수다원의 도의 마음입니다.
이상이 수다원 도의 마음 5가지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사다함의 도의 마음 5가지, 아나함의 도의 마음 5가지,
아라한의 도의 마음 5가지를 합하면 모두 20가지 마음입니다.
이제 같은 방법으로 수다원의 과의 마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일으킨 생각, 지속적인 고찰, 희열, 행복, 집중을 가진 1선정의 수다원의 과의 마음,
둘째, 지속적인 고찰, 희열, 행복, 집중을 가진 2선정의 수다원의 과의 마음,
셋째, 희열, 행복, 집중을 가진 3선정의 수다원의 과의 마음,
넷째, 행복, 집중을 가진 4선정의 수다원의 과의 마음,
다섯째, 평온, 집중을 가진 5선정의 수다원의 과의 마음,
이상이 수다원의 과의 마음 다섯 가지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사다함의 과의 마음 다섯 가지,
아나함의 과의 마음 다섯 가지, 아라한의 과의 마음 다섯 가지를 합하면
모두 20가지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도의 마음 20가지와
과의 마음 20가지를 합쳐서 모두 40가지 마음으로 분류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총 121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여기서 위빠사나의 도의 마음과 선정 수행의 4개의 마음을 대비시켜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색계선정 수행은 4선정으로 나누기도 하고 5선정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4선정으로 나눌 때는 1선정에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하나로 봅니다.
그러나 5선정으로 나눌 때는 1선정을 일으킨 생각으로 하고 2선정을 지속적인 고찰로 나눕니다.
선정의 분류는 경장과 논장이 서로 다릅니다.
무색계의 마음은 색계 5선정의 마음과 같습니다.
무색계 선정은 색계 5선정의 평온과 집중의 두 가지 선의 항목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무색계 선정을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토대로 하였다면
그때의 도와 과의 마음은 제 5선의 출세간의 마음으로 분류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까지 분류한 마음의 숫자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분류로 여러 가지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그쳐도 무방합니다.
이러한 마음들이 매순간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지
같은 마음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하나이지만 태어난 곳, 마음의 상태와 마음의 경지에 따라서
다양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의 마음이 이런 조건에 의해서 변한다는 사실은
어느 것도 나의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매순간 조건에 의해서 변하는 마음만 있지
사실은 내가 소유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단지 조건에 의해서 무수한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만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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