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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65

通達無我法者 2010. 12. 28. 01:16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수행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위빠사나 수행은 바라거나 없애려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바라거나 없애려는 마음은 탐욕과 성냄으로 이것은 반드시 괴로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바라거나 없애려는 순간 이기적인 마음이 생겨

원하는 것을 없지 못하면 후회하거나 미워해서 평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바라거나 없애려는 마음이 있는 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늘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윤회의 원인입니다.

 

바라거나 없애려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도

오히려 더 많은 일을 바르게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라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움으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法念處]의 세 번째는

‘6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十二處]를 알아차림’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교재 대념처경에 있는 47쪽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6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十二處]를 알아차림’임입니다.

 

앞서 밝힌 것처럼 불교의 세계관은 한 인간의 정신과 물질에 국한합니다.

이러한 정신과 물질을 표현할 때 오온이라고 하기도 하고,

12처라고 하기도 하고, 18계라고 하기도 합니다.

 

오온은 5가지 정신과 물질의 무더기라고 할 때 사용합니다.

12처는 6가지 감각기관과 6가지 감각대상을 합쳐서

12가지의 영역이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18계는 이상의 12가지 영역에 6가지 아는 마음을 포함할 때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모두 같은 말인데 쓰임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합니다.

 

오온은 무더기라는 것과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밝히기 위해서 사용하지만

12처는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부딪치는 것을 말합니다.

12연기에서 보면 정신과 물질을 원인으로 6입이 일어납니다.

이때의 6입이 6가지 감각기관입니다.

다시 6입을 원인으로 접촉이 일어납니다.

이때의 접촉이 6가지 감각대상입니다.

이는 감각기관인 안, 이, 비, 설, 신, 의가

감각대상인 색, 성, 향, 미, 촉, 법과 접촉하는 것을 말합니다.

 

6가지 안팎의 감각장소를 한문으로는 12처(十二處)라고 합니다.

십이처는 6가지 안에 있는 감각장소가 6가지 밖에 있는 감각대상과 부딪친 것을

합쳐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6내처(六內處)와 6외처(六外處)가 접촉하여 12처(十二處)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12처의 접촉으로 6가지 아는 마음이 일어나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류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과정을 밝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6가지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통해서 의식하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도 이러한 경로를 통해서 들어오며, 불행도 이러한 경로를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리고 깨달음도 이러한 경로를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렇지 않고 이 것 외에 다른 통로는 절대 없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자가 수행을 하는 것은 6가지 감각기관의 문에

6가지 감각대상이 접촉할 때마다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6가지 아는 마음과 함께 느낌이 일어날 때 갈애로 진행시키지 않아서

스스로 번뇌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6가지 감각기관은 6입(六入)이라고도 하며, 또는 육문(六門)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감각대상이 감각기관에 와서 부딪치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자가 일차적으로 알아차려야 할 장소는 밖에 있는 감각대상이 아니고

6가지 감각장소라는 뜻에서 육입, 또는 육문이라고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6가지 감각기관은 생존의 기본조건입니다.

눈이 없으면 형상을 볼 수가 없으며 형상을 보는 마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눈이 빛에 의해서 형상을 보고 아는 마음이 일어나는 4가지를 조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원인과 결과라고 합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영역에서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눈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기관도 이와 마찬가지 조건을 가지고 아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행자가 할 일은

눈이 빛에 의해서 형상을 아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알아차림을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눈이 빛에 의해서 형상을 알 때 알아차림이 없는 상태에서 대상을 받아들입니다.

이때 알아차림이 없으면 느낌이 일어날 때 갈애가 일어납니다.

이 갈애가 10가지 족쇄를 불러들입니다.

그러면 생명을 윤회의 수레바퀴에 붙들어 매게 됩니다.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부딪쳐서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알아차림이 없으면

5가지 장애보다 더 구체적인 10가지 족쇄가 윤회의 세계에 발목을 붙들어 맵니다.

10가지 족쇄는 감각적 욕망, 악의, 아만, 사견, 의심,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 존재에 대한 욕망, 질투, 인색, 무명입니다.

 

이 10가지 족쇄는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접촉할 때 일어납니다.

 

눈이 대상을 볼 때 달콤한 감각적 욕망이라는 족쇄가 일어납니다.

만약 원하지 않는 대상이 나타나면 대상을 싫어하는 악의라는 족쇄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내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이 대상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아만의 족쇄가 일어납니다.

이 형상은 항상 견고하다고 생각할 때 사견의 족쇄가 일어납니다.

이 형상이 중생인가 아니면 중생의 것인가를 의심하면 의심의 족쇄가 일어납니다.

 

미래에도 더 좋아지기 위해서 계율이나 의식에 대해서 집착할 때

계율과 의식에 대한 족쇄가 일어납니다.

더 나은 존재를 집착할 때 존재에 대한 욕망의 족쇄가 일어납니다.

이 형상을 다른 사람이 얻지 못하기를 바랄 때 질투의 족쇄가 일어납니다.

자신이 얻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을 때 인색의 족쇄가 일어납니다.

이 모든 것이 무지로 인해서 생기는 것을 모를 때 무명의 족쇄가 일어납니다.

이렇듯 우리가 대상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매 순간마다 이러한 족쇄들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상이 육내처가 육외처와 접촉할 때 알아차리지 못하면 일어나는 족쇄들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자가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은 바로 이 족쇄의 사슬에 묶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윤회의 수레바퀴에 밧줄로 묶이는 신세를 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하는 가장 절실한 이유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그러니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며,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대념처경에 있는 ‘6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十二處]를 알아차림’이라는 경전의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眼]을 알아차리고, 형상[色]을 알아차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를 알아차린다.

비구는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족쇄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귀[耳]를 알아차리고, 소리[聲]를 알아차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를 알아차린다.

비구는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족쇄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코[鼻]를 알아차리고, 냄새[香]를 알아차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를 알아차린다.

비구는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족쇄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혀[舌]를 알아차리고, 맛[味]을 알아차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를 알아차린다.

비구는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족쇄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몸[身]을 알아차리고, 접촉[觸]을 알아차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를 알아차린다.

비구는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족쇄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마음[意]을 알아차리고, 마음의 대상[法]을 알아차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나는 족쇄를 알아차린다.

비구는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족쇄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법에서 법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는 법이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는 단지 법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법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비구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이상이 ‘6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十二處]를 알아차림’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다음은 6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十二處]를 알아차림에 대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眼]을 알아차리고, 형상[色]을 알아차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를 알아차린다.

비구는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족쇄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수행자가 눈으로 대상을 볼 때는 눈이라는 감각기관과

형상이라는 감각대상이 부딪쳐서 보는 것이 성립됩니다.

모든 것은 이처럼 안에 있는 감각기관과 밖에 있는 감각대상이 있어서 일어납니다.

이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물질적 영역과 정신적 영역에서 서로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알아야 정신과 물질을 구별해서 보는 지혜가 나며,

그 다음으로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성숙됩니다.

 

수행자는 항상 대상과 아는 마음이라는 2가지 기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2가지 요소들이 각각의 영역에서 기능을 하는 것을 알아야 사견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상을 볼 때 내가 본다는 생각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법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신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수행자 여러분!

만약 알아차려서 10가지 족쇄가 일어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알아차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반응을 해서 족쇄가 일어났다면

다시 족쇄가 일어난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런 뒤에 족쇄에 걸린 것을 아는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가슴으로 와서 족쇄에 걸린 마음으로 인해서 일어난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이것은 모든 대상이 나타났을 때 이렇게 알아차리는 일련의 하나의 과정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전에 없던 족쇄가 일어났으면 일어난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때 왜 전에 없던 족쇄가 일어났는지를 아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족쇄가 일어났을 때 생각으로 족쇄가 일어난 것을 궁금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단지 족쇄가 일어난 것을 알아차려서 조건이 성숙되면 나중에 지혜가 나서

족쇄가 일어난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언제나 대상이 일어날 때, 또 다른 번뇌가 들어오기 전에

즉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대상을 알아차리면 결국에는 왜 이런 족쇄가 일어났는지를

지혜로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