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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67

通達無我法者 2010. 12. 28. 01:20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일어나는 것은 사라집니다.

나쁜 일어남은 나쁜 사라짐이 있고

좋은 일어남은 좋은 사라짐이 있습니다.

이것이 원인과 결과입니다.

 

이처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무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어났다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영원이라고 합니다.

과연 일어났다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조건에 의해서 일어난 것은 반드시 조건에 의해서 사라집니다.

여기에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만 있습니다.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불교의 무상입니다.

일어나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항상 하는 것으로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영원입니다.

무상은 자아가 없지만 변하지 않는 영원은 자아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아가 있으면 집착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아가 있는 곳에서는 해탈이 없습니다.

 

오직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상에서만 자아가 없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기 때문에 해탈의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法念處]의 네 번째는

‘7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를 알아차림’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교재 대념처경에 있는 51쪽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7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를 알아차림입니다.

 

법념처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처음 수행을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장애를 알아차렸습니다.

다음단계로 수행을 하는 기본조건인 오온과 12처를 알아차리는 수행을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충실히 알아차리면 다음 단계로 7가지 깨달음의 요소가 성숙됩니다.

 

7가지 깨달음의 요소란 법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말합니다.

이는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인 정신과 물질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차츰 지혜가 계발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을 한문으로는 칠각지(七覺支)라고 합니다.

 

누구나 처음에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초보과정의 지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7가지 깨달음의 요소가 계발되기 시작하면서 도과를 성취하는데 필요한 지혜가

더욱 구체적으로 계발되기 시작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자가 도과를 성취하는 과정은 반드시 정해진 길을 갑니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서는 깨달음으로 가는 열반을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경전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과정들은 모두 같은 길이지만 필요에 따라서 약간 기술을 달리 한 것들입니다.

 

수행자가 도과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7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일곱 가지 청정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지혜가 계발되는 과정을 10가지로 설명하셨습니다.

 

붓다고사의 청정도론에서는 지혜가 계발되는 과정을 16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이 외에도 10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른 번뇌를 알아차리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10가지 족쇄를 소멸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상의 과정은 모두 하나의 열반을 향해서 갈 때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과정들입니다.

가는 길은 하나지만 나타나는 장애나 지혜에 따라서 분류한 것들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도과를 성취하는 길이 낱낱이 밝혀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가는 길이 아니고

이미 정해진 길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자가 수행을 하면 매단계마다 나타나는 현상이 있기 때문에

스승은 이것을 기준으로 가르침을 폅니다.

 

그리고 수행자에 따라서 발전의 속도가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반드시 누구나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깨달음으로 가는 이 길은 이미 정해진 길입니다.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찾아내신 12연기도 이미 있는 법을 찾아내신 것이지

부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만 아니라 똑같은 것을 경험하고

똑같이 무수한 윤회를 거치셨습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부처가 되기를 서원을 세우고

오랜 세월동안 보살로서 바라밀 공덕을 쌓은 과보로 부처가 된 것이 다릅니다.

 

깨달음으로 가는 지혜의 단계는 부처님께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앞서가신 역대의 모든 부처님과 벽지불과 아라한과 수많은 성인들이 가신 길을

고타마 부처님께서도 똑같이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도과도 부처님께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원래 있는 이 길을 단지 찾아내서 가신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7가지 깨달음의 요소 중에서 첫 번째인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와,

두 번째인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와, 세 번째인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는

지혜의 계발이라고 하기 보다는 수행을 시작할 때 필요한 깨달음의 요소들입니다.

이상 3가지의 깨달음의 요소가 성숙되면 본격적으로 지혜의 계발단계에 이르는데

이것이 네 번째인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입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7가지의 과정들을 거치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대념처경에 있는 ‘7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를 알아차림’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첫째,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念覺支]가 있을 때

내게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내게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둘째, 비구는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가 있을 때

내게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는

내게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셋째, 비구는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가 있을 때

내게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내게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넷째, 그는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喜覺支]가 있을 때

내게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내게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다섯째, 비구는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經安覺支]가 있을 때

내게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는,

내게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여섯째, 비구는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定覺支]가 있을 때

내게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내게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일곱째, 비구는 평등의 깨달음의 요소[捨覺支]가 있을 때

내게 평등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평등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내게 평등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평등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평등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법에서 법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법이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법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법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이상이 ‘7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를 알아차림’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셨습니다.

 

다음은 7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를 알아차림에 대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念覺支]가 있을 때

내게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내게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수행자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알아차림을 빨리어로는 사띠(sati)라고 합니다.

사띠의 뜻은 크게 2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알아차림입니다.

기억이라는 말은 현전(現前)하는 것입니다.

현전이란 눈앞에 있는 현재를 말합니다.

그래서 현재 여기에 있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해서 알아차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평소에 알아차릴 것을 잊지 않고 항상 알아차려야 하는 것과 함께,

현재 알아차리는 것을 잊지 않고 지속해서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에서 말하는 알아차림은 단순히 알아차림 하나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알아차린 뒤에 알아차림을 지속하는 것 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현재 여기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고 살지 못합니다.

지나간 과거에 매달려 후회하거나 그리워합니다.

또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면서 불안해하거나 꿈을 가지고 삽니다.

이것들은 모두 생각에 빠진 것으로 실재하는 진실이 아니고 관념입니다.

생각은 생각에 그칠 뿐이며 결코 생각으로는 통찰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의 알아차림은 단지 대상을 겨냥하여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대상에 마음을 머물게 하여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럴 때만이 고요함에 의해 통찰지혜가 계발되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림은 위빠사나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알아차림은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라서 계율을 지키는 행위입니다.

대상을 잊지 않음으로 인해 혼란한 상태가 아니고 항상 각성된 상태라서 청정한 마음가짐입니다.

 

알아차림은 마음의 작용으로 선한 행위에 속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있을 때는 6가지 감각기관이 6가지 감각대상과 부딪칠 때

행동, 말, 좋음, 싫음, 기호, 판단, 생각 등등에 얽매이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압니다.

그래서 마음이 대상을 받아들일 때 깨어있는 상태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누구나 대상과 마주할 때 깨어있는 상태로 마주하기 못하기 때문에 모든 번뇌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이 있을 때는 어떠한 번뇌도 침투하지 못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알아차림의 특성은 흔들리지 않고, 대상의 표면 위에 떠다니지 않고

대상에 깊이 들어가서 대상을 철저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것의 기능이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부주의함에 빠지지 않도록 수행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알아차림은 신, 수, 심, 법이라는 사념처 수행을 확립하는 것이 가까운 원인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릴 대상은 몸, 느낌, 마음, 법이라는 사념처입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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