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36

通達無我法者 2011. 1. 4. 23:10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오늘도 지난시간에 이어서 부처의 조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정등각자이신 삼마삼붓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삼마삼붓다이신 정등각자는 지금까지 25분이라는 사실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로 벽지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벽지불을 빨리어로는 빠제까 붓다라고 말합니다.

이를 독각 또는 연각이라고도 합니다.


빠제까 붓다라고 하는 벽지불은 스승 없이 홀로 깨닫지만

위없는 깨달음의 지혜를 얻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번뇌를 해결할 뿐이지, 세상에서 법을 펴지 못하는 부처입니다.


그래서 홀로 깨달았다고 해서 독각(獨覺)이라고도 하며

연기법에 따라 깨달았다고 해서 연각(緣覺)이라고도 합니다.


벽지불은 부처님이 계신 시대에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또한 부처님의 정법이 있는 시대에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태양이 하나이듯이,

부처님도 한 분이시고, 정법도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런 법을 펴는 것도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합리적인 조건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벽지불은 부처님과 같은 삼법인을 깨달았지만,

법을 선포하지 않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은자(隱者)로서 인류를 위해 기원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벽지불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정신과 물질이 있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정등각자이신 고타마 싯달타 부처께서는

정신과 물질이 오온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정신은 아는 마음이고, 다시 마음의 작용인 수상행이 있다는 사실은

정등각자가 아니면 밝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위없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은

한 인간의 정신과 물질에 관한 모든 것들을 다 아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벽지불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위없는 깨달음을 얻지 못해서

법을 펴지 못하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냥 세속에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로 열반을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정등각자와 벽지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세 번째는 아라한입니다.


이 아라한을 응공(應供) 또는 성문(聲聞)이라고도 말합니다.

여기서 응공이라는 말은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라는 뜻이고

성문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스승에게 들어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으로 성문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부처님도 아라하따 라고해서 아라한에 속합니다.

그러나 아라한은 부처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탐진치라는 불선업의 번뇌가 모두 불타서 해결된 것은

부처님이나 아라한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번뇌가 불타버려서 윤회가 끝나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부처는 아라한과 달리 모르는 것이 없이 위없는 깨달음을 얻었지만은

아라한은 위없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자신의 번뇌, 탐진치만 해결하는 성자이십니다.


여러분! 부처는 전지(全知) 전선(全善)합니다.

그러나 전능(全能)하지는 않습니다.


아라한은 전선하기만하지 전지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번뇌를 해결한 것은 부처나 빠제까 붓다나

아라한이나 똑같지만 깨달음의 종류가 다릅니다.


아라한은 부처님이 선포하신 법에 의해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없는 깨달음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라한은 부처님이 펴신 법에 의해서 수행을 합니다.

그래서 성문이라고 하고 또는 공양 받을 자격이라고 합니다.


공양 받을 자격이라는 말은 이미 번뇌가 불탄 분이기 때문에

가장 최고의 공양의 효과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법에 의해서 깨달음을 얻은

사리불이나 목련존자 등이 모두 아라한으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분들은 아무리 지혜가 수승해도

사념처 위빠사나 수행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12연기를 모르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단 한마디라도 부처님의 법에 관해서 들어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제일 먼저 법을 편 초전법륜경을 우리가 예로 들어볼 때

그분들도 부처님의 말씀에 의해서 아라한이 되신 분들입니다.


여러분! 아라한이 되는 과정은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이라는

지혜의 단계를 거쳐서 마지막으로 아라한이 됩니다.


수다원이 된 과정은 수다원의 도와 과로 구별됩니다.

다시 사다함의 도와 과와, 아나함의 도와 과,

그리고 아라한의 도와 과라는 단계를 거쳐서 완성됩니다.


여기서 도(道)는 지향하는 것이고, 과(果)는 열매라는 뜻으로 결과를 말합니다.

또 도는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과는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열반에는 이렇게 도와 과가 있습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네 가지 성위가 있다는 것은

모두 부처님에 의해 발견된 것이지, 부처님이 만들어 놓은 과정은 아닙니다.


원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이런 불가피한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성자가 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질서라고 표현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어떤 질서라는 틀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수다원이 된다는 것은 일단 열반을 경험한 것으로 빨리어로는 ‘아리아’라고 부릅니다.

이 아리아를 성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네 종류의 성자가 각기 도와 과를 얻은 것을 4쌍 8배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아라한이 되는 이 4단계의 성자는 부처님이 정하신 것이 아니고

인간이 깨달음으로 가는 정신적인 성숙 단계로 가는 불가피한 코스에 해당됩니다.

이는 우리의 오랜 무지를 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깨달음은 단 한순간에 이루어지지만

그 과정은 바라밀을 쌓는 무수한 세월을 쌓는 무수한 세월의 결정체입니다.

또한 수도 헤아리기 어려운 작은 깨달음을 통해서 더 큰 깨달음으로 나아갑니다.

만약 누군가가 쉽게 깨달았다면

이미 오랜 동안 바라밀을 쌓고 수행을 해서 열매가 무르익은 결과일 것입니다.

지혜가 성숙된다는 것은 그냥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쉬지 않고 선업을 쌓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부처가 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부처는 살아있는 생명 중에서 인간에게서만 나옵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그 시작을 알 수가 없고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태어났는지 상상도 할 수가 없는데, 이 기간 동안에 부처는 겨우 25분에 불과하셨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부처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는 상상 이상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출현하여 그렇게 되기 어려운 부처가 되려하지 말고

자신과 똑같은 아라한이 되어서 번뇌를 해결하라고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법을 펴신 겁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정법이 있어도

나는 아라한이 되지 않고 부처가 되어야 되겠다고

서원을 세우는 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여러분이 부처가 되시기를 서원을 세운다면

바라밀 공덕을 쌓으십시오.

그러면 그 공덕의 과보로 언젠가 부처가 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멀고 너무 험합니다.

그래서 부처와 똑같은 아라한이 되어서 윤회를 끝내라고 부처님께서는 법을 펴셨습니다.

여러분 31천에 있는 살아있는 생명들의 수요가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인데,

인간은 많아야 고작 60억 밖에 못됩니다.


이렇게 수많은 생명 중에서 인간이 될 확률은 기적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언제 인간으로 태어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태어났을 때에도 선업을 쌓아 출세간으로 가야하며

적어도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부처와 벽지불과 아라한이 되는 조건에는

첫째 본인이 서원을 세울 때 무엇을 세웠는가에 따라서 다릅니다.

이런 일은 서원이 없으면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선업의 공덕입니다.

바라밀 공덕을 행해야 그 과보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되기를 원한다면

제일 먼저 서원을 세워야 되고

다음으로 바라밀 공덕을 쌓고

그에 따른 합당한 수행을 해야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부처가 되었다는 것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최고의 바라밀을 쌓은 과보로 출현합니다.


여러분! 부처가 되려는 사람은 많아도

그중에 가장 수승한 공덕을 쌓은 구도자가

오직 그 과보에 의해서 부처로 조건지어지는 것입니다.


다음은 경전에 기록된 일곱 분의 부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일곱 분은 한 겁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행운의 겁이라고 이것을 말합니다.


부처의 출연은 겁과 겁 사이의,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만에 출연하시는데, 저희가 알고 있는 이 행운의 겁에서는

현재까지 일곱 분의 부처가 출연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여래는 신통하고, 위력이 넓고 커서,

전생의 무수한 겁 동안의 일을 모조리 알고 있다.

이것은 법의 본성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아는 것이기도 하고,

천인들이 와서 말해주기 때문에 아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재미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위없는 깨달음을 얻어서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까마득히 오랜 세월의 문제는 색계나 무색계에 있는

천인들이 와서 말해주기 때문에 알 수 있다고 말하시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과거의 것들을 모두 아시는 것이 자신의 힘으로도 알뿐더러,

천인들이 말해준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가까운

과거의 칠불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부처는 위빠시 부처이십니다.

두 번째 부처는 시기 부처이십니다.

세 번째 부처는 웨싸부 부처님이십니다.

네 번째 부처는 까꾸산다 부처이십니다.

다섯 번째는 꼬나가나마 부처이십니다.

여섯 번째는 까사빠 부처이십니다.

 

일곱 번째로 바로 우리시대에 출연하신 고따마 싯달타 부처이십니다.

고따마 붓다라고 할 때  고따마는 석가 족에 남자의 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석가족의 여자의 성은 고따미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겁과 겁을 통해서 출현하시는 부처가

우리 행운의 겁에는 네 분이나 출현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겁은 산스크리트어로 ‘깔빠’를

한문으로 소리 나는 대로 음사한 것입니다


겁은 무한한 시간을 뜻합니다.

이 무한한 시간을 반석 겁, 겨자 겁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즉 가로 세로 높이가 약 10Km인 돌산 위를 어떤 사람이

백년에 한번씩 긴 옷자락을 입고 지나갈 때

그 스치는 옷자락에 돌산이 다 닳아서 없어진다고 말하는 것을 1겁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까마득한 세월에 부처가 출연하십니다.


또 가로 세로 높이가 1유순인 성안에 가득 찬 겨자씨를

어떤 사람이 백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그 겨자씨가 다 없어진다고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기간입니다.


과거의 7불 중에서

첫 번째 붓다이신 위빠시 부처는 과거 91겁 전에 세상에 출연하셨고,

시기 부처는 31겁 전에 출연하셨고,

그 다음으로 31겁 중에 웨싸부 부처가 출연하시고,

다음으로 현겁에서 까꾸산다 붓다, 꼬나가나마 붓다 까사빠 붓다

그리고 고따마 붓다가 출연하셨습니다.


이렇게 부처는 출연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음시간에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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