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마음은 행위를 일으키고 행위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가 지속되는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윤회는 끝없는 세상을 끝없이 살아가야하는 고통입니다.
이런 고통의 여정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원인과 결과가 세상의 가장 분명한 진실이라고 하지만
원인과 결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지는 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마음에 의해 일어난 선업과 불선업은 섞이지가 않아서
선업은 선한 과보를 낳고 불선업은 불선과보를 낳습니다.
선한 행위를 하면 그에 따른 선한 결과가 있으며,
선하지 못한 행위는 선하지 못한 결과를 낳습니다.
선하지 못한 과보로 인하여 괴로움이 생겼을 때,
선과보가 많으면 수행을 하고자 하는 선심이 생깁니다.
수행은 인간이 지녀야할 최고의 가치와 이상입니다.
수행을 통해서만이 번뇌를 불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선과보의 조건이 성숙되어서 수행을 한다 해도
이러한 조건이 언제 소멸될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언제 자발적인 불선의 과보나 유발된 불선업의 과보가 나타나서
수행을 포기하게 할지 누구도 모릅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므로 수행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성숙되었을 때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늘도 교재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제 9장을 계속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연기는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미래가 되는 것처럼,
괴로움의 원인인 집제가 괴로움뿐인 고제를 만들고,
다시 괴로움의 원인인 집제를 새로 일으켜 미래의 괴로움뿐인 고제를 만듭니다.
이것이 연기이며 이것이 윤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이렇게 탈출할 수 없는 윤회의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끝없는 윤회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윤회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윤회의 사슬을 끊는 유일한 방법은 8정도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지 않는 길, 단 하나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다시 한번 요약해보겠습니다.
이러한 연기의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과거 원인의 연속으로부터 현재 결과의 연속이 일어납니다.
다시 현재 원인의 연속으로부터 미래 결과의 연속이 일어납니다.
다시 미래 결과의 연속이 미래의 원인의 연속이 되어 과거 원인의 연속이 됩니다.
이 과거 원인의 연속이 바로 현재 결과의 연속으로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현재가 다시 생기는 것입니다.
이 현재는 내가 부른 것이 아니고,
단지 원인의 연속이 결과의 연속으로 이어져서 생긴 것입니다.
12연기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열두 가지 요소들은
어디에도 ‘나’라고 하는 자아가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12연기의 열두 가지는 모두 정신과 물질이지만,
이 정신과 물질이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원인과 결과로 지속된다는 것을 알아야하겠습니다.
연기가 주는 심오한 뜻은 여기에 자아가 없고,
단지 원인과 결과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외부적 작용이나 초월적 힘에 의해서 삶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스스로의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흐름을 계속한다는 것을 알아야하겠습니다.
이처럼 과거는 현재를, 다시 현재는 미래를,
미래는 과거를, 과거는 다시 현재를 불러옵니다.
연기의 고리나 윤회의 흐름은 매순간 정신과 물질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과 함께 흐르면서 끝없는 순환을 계속합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고 현재가 미래를 만드는 것이 반복되는 것이 윤회인데,
이 윤회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근본원인인 무명과 갈애인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제 여러분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말하십시오.
나는 무명과 갈애로 살고 있다 라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겠느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말씀하십시오.
지금부터는 무명과 갈애를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씀하십시오.
수행자 여러분! 그러나 무명과 갈애의 힘은 거대합니다.
그 거대한 힘과 맞서기 위해서는 바른 스승의 가르침으로 무장하고
굳센 인내와 각오가 뒤따라야합니다.
수행자 여러분의 진리에 대한 의지는 등잔불처럼 약한 것입니다.
이 불씨를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다시 연기를 성제(聖諦)로 보자면
도표 부분 1은 괴로움의 원인인 집성제에 해당합니다.
집성제가 바로 무명, 행, 갈애, 집착, 업의 생성입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지, 내가 괴로움의 원인이 아닙니다.
단지 그 순간의 마음속에 이런 요소가 있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저 스스로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으로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들조차도 일어나는 순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과거의 괴로움의 원인인 집제는 내가 아닙니다.
이것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무명입니다.
자! 도표의 부분 2를 보십시오.
도표의 부분 2는 괴로움인 고성제입니다.
그 고성제가 바로 식, 명색, 육입, 접촉, 느낌이라는 오온입니다.
그런데 이 오온에 무명과 갈애가 함께 숨어들었기 때문에
나의 오온이라고 생각해서 오온을 집착합니다.
그래서 오온을 오취온으로 만듭니다.
바로 이것이 괴로움의 진리인 고성제입니다.
이런 괴로움은 실재하는 것이라서 세속적인 진리라고도 말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도표 부분 2가 괴로움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또다시 부분 3으로 넘어가서 괴로움의 원인을 만듭니다.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도표의 부분 3은 괴로움의 원인인 집성제입니다.
역시 부분 2의 오온은 고성제라고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과거에 했던 갈애와 집착을 다시 현재에도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근본 원인인 무명과 갈애를 바닥에 깔고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도표 부분 4를 보십시오.
도표의 부분 4는 괴로움인 고성제입니다.
부분 3이 일어난 이상 그 결과가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를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미래에도 현재와 같은 괴로움의 결과를 맞이해야합니다.
이처럼 하나하나의 연기가 회전하면서, 부분들도 함께 회전하고,
그리고 성제도 계속해서 회전합니다.
그래서 12연기를 이해할 때 하나하나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분들이 모여서 이동한다는 것과 성제들이 함께 이동한다는 것도 알아야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처럼 연기의 각 요소들과 부분들과 성제들만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과 똑같이 시간도 함께 흐릅니다.
시제로 보면 부분 1은 과거이고, 부분 2는 현재입니다.
그리고 부분 3은 현재이고, 부분 4는 미래입니다.
그래서 과거가 현재가 되고 다시 현재가 미래가 되는 끝없는 순환이 연속됩니다.
또 있습니다. 부분 1은 원인이고 부분 2는 결과입니다.
그리고 부분 3은 새로운 원인이고 부분 4는 결과입니다.
이처럼 연기는 원인과 결과를 바탕에 깔고 흐르고 있습니다.
또 무엇이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도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부분 1의 다섯 가지 요소는 무명, 행, 갈애, 집착, 업의 생성입니다.
그리고 부분 1을 원인으로 부분 2가 일어나는데
부분 2의 다섯 가지 요소는 식, 명색, 육입, 접촉, 느낌입니다.
다시 부분 2를 원인으로 부분 3이 일어나는데
부분 3의 요소는 갈애, 접촉, 업의 생성, 무명, 행입니다.
다시 부분 3을 원인으로 부분 4가 일어나는데
부분 4의 다섯 가지요소는 식, 명색, 육입, 접촉, 느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원인과 결과로 흐를 때 모두 20가지의 요소가 윤회합니다.
그렇지만 그 20가지의 요소라는 것을 살펴보면
실상은 다섯 가지가 한번씩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윤회한다는 것은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현상들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회의 근본 원인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과거에는 무명이었고, 현재에는 갈애인 것입니다.
과거의 무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이므로
현재의 갈애를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자의 의무입니다.
모를 때는 어쩔 수 없이 당했지만
이제 무엇이 범인인지를 알았으면 그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갈애를 없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느낌이 일어났을 때 그 느낌을 알아차려서
갈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수행을 해야 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인간은 무지로 인해서
선하거나 선하지 못한 온갖 종류의 행위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원인으로 말미암아 괴로움뿐인 오온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오온은 과거에 한 행위의 결과물입니다.
내가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가는 과거의 원인이 말해줍니다.
그러나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지난 것은 업의 형성으로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에 답이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오온은 다시 무명에 이끌리고
갈애에 의해 내몰리는 범부가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물질적 이득이나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
온갖 종류의 잘못된 행위를 저지릅니다.
물론 선한 행위도 하고 선하지 못한 행위도 함께 합니다.
그러나 그 바탕에 무명과 갈애가 깔려 있기 때문에
선한 행위보다는 선하지 못한 행위를 더 많이 일삼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행위로 말미암아 비참한 존재들의 세계인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의 4악도에 떨어집니다.
한편으로는 선한 일을 해서 행복한 세계에 태어났다고 해도
언젠가는 4악도에 태어날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지 않는 한 괴로움은 있기 마련입니다.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가 소속된 집단이나 국가를 위해서 하는 불선행도
결코 그 과보의 고통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무슨 일이나 명분은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다는 명분은 있지만 그 명분은 다분히 관념적인 것입니다.
실재가 중요합니다.
그 행위가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 계율을 지킨 것이냐, 어긴 것이냐,
선정 수행이냐, 위빠사나 수행이냐 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떤 명분이든 연기를 회전 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명분이 괴로움을 만들고 관념이 괴로움을 만듭니다.
우리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위해서
갈애를 일으키지 않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갈애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바로 느낌이 일어났을 때
느낌을 알아차려서 갈애로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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