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107

通達無我法者 2011. 2. 13. 20:04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자는 비록 세속에 살지만

출세간을 열망하기 때문에 수행을 합니다.


세간은 사마타 수행의 선정세계가 있고

출세간은 위빠사나 수행의 지혜의 세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의 근기와 과보에 따라서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을 합니다.


그러나 아직 선한 마음을 갖지 못했거나

선업이 부족하면 어느 수행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마타 수행은 번뇌를 억눌러서 고요함을 얻고

위빠사나 수행은 번뇌를 말려서 지혜를 얻습니다.


사마타 수행은 다섯 가지 장애를 억누르며

위빠사나 수행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증진시킵니다.


사마타 수행의 대상은 모양이나 관념이며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은 고유한 특성이 있는 실재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사마타 수행은 대상과 하나가 되고 근접삼매에 의해서 근본삼매를 얻습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은 대상과 하나가 되지 않고

분리해서 알아차리며 찰나삼매로 수행을 합니다.


사마타 수행은 좋은 곳에 태어나서 윤회를 합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은 열반을 성취하여 윤회가 끝납니다.


사마타 수행 하나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으며

위빠사나는 사마타 없이도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은 상호보완적이며

수행자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사명은 수행으로 선정을 얻거나 지혜를 얻어서

번뇌를 불사르고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행 중에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이 균형을 이루게 되는 상태를

우리는 수행이 잘 된다고 말합니다.


수행은 한 시간이 잘 된다싶으면 하루가 안 되고,

하루가 잘 된다 싶으면 일주일이 잘 되지를 않습니다.

한 번 수행이 잘 되면 다음 시간에도 잘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들뜨고 긴장을 해서 수행을 잘 할 수가 없습니다.


수행이 잘 되던 때는 과거이며 항상 새로운 조건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수행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수행이 잘 되던 때와 같이 기대를 걸고 하다가

잘 안 될 때는 잘 안 되는 것을 알아차리고 언제나 새로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수행을 시작할 때 지금 무슨 마음으로 수행을 하는가? 하고

알아차린 뒤에 수행을 시작해야 합니다.

수행의 대상은 수행이 잘 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나

수행이 잘 안 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나 똑같이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정정(正定)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집중은 바르게 훈련이 된 집중이 있고 바르게 훈련이 안 된 집중이 있습니다.

바르게 훈련이 된 집중은 마음을 바르고 고르게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흩어진 마음을 모아서 내적인 통합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알아차림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 상태에서 오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바르게 훈련되지 않은 집중은 이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물에서 잡은 고기를 즉시 바닥에 놓으면

팔딱팔딱 뛰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훈련이 되지 않은 마음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헤맵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사물의 참다운 성품을 알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발정한 코끼리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공연히 이것저것 시비를 가려서 불필요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을 한다는 것은 일단 집중을 하는 것입니다.

팔만사천법문도 모두 수행자가 어떻게 집중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스승들의 수행지도도 모두 집중을 전제로 말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필수적인 집중을 할 때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바로 수행방법이 달라집니다.


집중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계발합니다.

하나는 근본집중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찰나집중입니다.


그런데 근본집중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근접집중이 있어야 합니다.

초기에 근접집중에 이르러 다음단계에 근본집중을 합니다.

그래서 근접집중은 근본집중에 가까이 가기위해서 시작하는 가벼운 집중입니다.

근본집중은 대상에 깊게 집중하는 것으로 이때의 상태가 대상과 하나가 됩니다.

이런 집중방법으로 하는 수행을 선정수행이라고 합니다.

이 수행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사마타 수행입니다.


다른 하나의 찰나집중은 통찰지혜를 목표로 팔정도를 실천하는 수행입니다.

바로 이 수행이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여기서 통찰이란 말이 바로 위빠사나에서 말하는 ‘빠사나’ 라는 것입니다.

위빠사나라고 할 때 ‘위’ 는 ‘분리하다’ 는 말이고,

‘빠사나’ 라고 하는 말은 ‘통찰’ 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합성어로 썼을 때 위빠사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팔정도가 위빠사나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팔정도의 정은 위빠사나 수행의 알아차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상을 객관적으로 분리해서 지켜보는 수행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차이는 집중의 차이로 구별됩니다.

방법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집니다.


요약하자면 사마타는 대상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관념을 대상으로 수행하며 근본집중을 얻는 수행을 합니다.

이것이 선정의 고요함을 목표로 하는 사마타 수행입니다.


그러나 위빠사나는 대상과 분리해서 알아차리며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알아차리기 때문에 찰나집중을 해서 통찰지혜를 얻습니다.

바로 이러한 통찰을 통하여 무상, 고 , 무아의 지혜가 생깁니다.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수행방법은 달라도 기본적인 조건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사마타는 먼저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하는 수행이고

위빠사나는 다섯 가지 장애가 대상이 아니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성취하기 위해서 하는 수행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수행이 모두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때의 계율은 특별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바른 알아차림이 있는 상태에서

기본적으로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 수행이 모두 장애를 극복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같은 목적이 있습니다.

아울러 두 가지 수행을 할 때, 반드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있어서도

공통적입니다.


사마타 수행이나 위빠사나 수행이나 두 가지 수행 중에

한 가지를 스스로 선택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자가 처음부터 수행방법의 차이를 알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의 근기를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방법의 선택은 각자의 문제로 두고

반드시 어떤 스승이 되었거나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유념하시고

이 두 가지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팔정도의 정정을 다시 한번 요약해 보겠습니다.

집중은 세 가지가 있는데 근접집중과 근본집중이 있고 찰나집중이 있습니다.

근접집중과 근본집중은 사마타 수행의 집중이고

찰나집중은 위빠사나 수행의 집중입니다.


근접집중은 사마타 수행을 할 때 근본집중에 이르기 위해서 하는 초기 집중이고

이러한 초기 집중에 의해서 깊은 집중의 상태인 근본집중에 이릅니다.

그러나 찰나집중은 처음부터 대상과 분리되어서 알아차립니다.


근접집중과 근본집중은 관념을 대상으로 하고

대상과 하나가 되어서 선정의 고요함을 얻습니다.

그러나 찰나집중은 실재를 대상으로 하고

대상과 하나가 되지 않고 분리해서 보기 때문에 여기서 통찰지혜를 얻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이 대상과 분리되고 찰나집중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이 수행방법은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찾아내신 방법입니다.


부처님께서 연기(緣起)를 통찰하시고, 연기란 정신과 물질이

원인과 결과로 상속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연기를 통해 수행의 대상이 정신과 물질로 바뀐 것입니다.


바로 이 정신과 물질을 지켜보니 이것이 모두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느낌을 대상으로 수행을 하다보니 느낌이 변하기 때문에

대상과 하나가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상을 보는 마음도 변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찰나집중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러한 찰나집중의 방법으로 대상을 알아차리다 보니

대상을 분리해서 보는 위빠사나의 통찰지혜가 생긴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찰나집중과 위빠사나 집중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이 아니면 무상, 고, 무아를 철견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수행에 대한 모든 방법을 완벽하게 분류한 것이 비구 붓다고사가 쓴 청정도론입니다.

이 책이 상좌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주석서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붓다고사의 청정도론 외에 해탈도론이 있는데

상좌불교에서는 청정도론을 주석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청정도론의 방대한 수행방법을 보고 참으로 놀랍고 경이로웠습니다.

이렇게 많은 수행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쓰여 있다는 사실에 경외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사실 부처님의 말씀은 2500년 전의 언어로서

그 높고 깊은 뜻을 모두 알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위대하신 스승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알기 쉽게 주석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주석에 의지하지 않으면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서

정법에서 벗어나기 마련입니다.


역사가 계속되면서 위대하신 스승들에 의해 주석에 대한 주석이 또 나와서

지금까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사마타 수행이 아닌 마하시의 위빠사나 수행부터 배웠습니다.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가치를 알았습니다.

그런 뒤에 청정도론을 보니 모두 사마타 수행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위빠사나 수행은 내용이 조금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약간 실망하기도 하고 의문이 생겨서 저희 스승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청정도론을 보니 온통 사마타 수행에 대한 얘기 밖에 없고

위빠사나 수행은 너무 적어서 유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내용도 사마타처럼 많았으면

조금 더 위빠사나 수행을 잘 할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저희 스승님께서는 양으로 질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관념적이었던 제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았습니다.

많다, 적다는 것은 관념입니다.

도대체 무엇에 비해서 많고, 무엇에 비해서 적습니까?

단지 진실이 있으면 되는 것인데 외형적인 모양으로 대상의 가치를 평가했던 것입니다.

그런 뒤에 스승께서는 사마타 수행은 40가지가 되어서

설명할 것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마타 수행방법은 40가지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은 단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하나입니다.

물론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도 몸, 느낌, 마음, 법이라는 네 가지 수행주제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모두 몸과 마음에 관계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의 근기를 보시고 사마타 수행의 주제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깜마타나’ 라고 합니다.


사마타 수행의 40가지 수행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까시나’ 라고 하는 수행대상 10가지입니다.

둘째는 부정관을 할 때의 수행대상 10가지입니다.

셋째는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수행대상 10가지입니다.

넷째는 신성한 머뭄의 수행대상 4가지입니다.

다섯째는 무색계의 수행대상 4가지입니다.

여섯째는 인식하는 수행대상 1가지입니다.

일곱째는 분석하는 수행대상 1가지입니다.

이렇게 해서 40가지의 사마타 수행대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은 4가지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의 수행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몸입니다.

둘째는 느낌입니다.

셋째는 마음입니다.

넷째는 마음의 대상인 법입니다.

이것을 신수심법 4념처라고 말합니다.


이상 사마타 40가지와 위빠사나 4가지의 대상은 집중의 차이로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더 구체적인 구별방법이 있지만 크게 나누면 집중의 차이로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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